장야長夜
- 여강 최재효
서창西窓에 쌓인 희뿌연 잔설殘雪이
봄바람에 떨어진 이화梨花 같아서
자꾸만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북풍에 나목裸木이 찬바람에 떨고 서있네
엊그제 설 명절 고향 다녀온 후로
나그네 겨울밤 지루하게 길어져
무료하여 휘파람 낮게 불어보지만
세상에 들어주는 이 아무도 없어라
봄밤의 고운 꽃바람 고운 달
옛 임 아름다운 노랫소리
베개 베고 누우면 생생한데
탄식 소리에 춘몽春夢 깨질까 두렵네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사람 인연
비익조比翼鳥로 날아보지 못하고
연리지連理枝는 먼 데 있으니
먼 훗날 민망하여 어이 뒤안길 돌아볼 수 있을꼬
망망한 인해人海 가운데 집을 지어도
문 두드리는 발길 없어
타관 땅에 겨울밤 심사가 허탈하여
한 잔술로 수심 달래려니 갈증만 더하네
홀로 잔 잡는 밤이 벌써 몇 년째인가
달밤이면 월궁月宮 항아 몰래 꾀어내고
요지瑤池에 서왕모西王母 정중히 초빙하여
계수나무 아래서 질탕하게 놀았다네
안타까워라, 추몽秋夢 꾸기에 너무 일러
월하노인月下老人에게 한번 더 청을 넣어
복사꽃 살구꽃 흩날리는 날
신녀神女 오시면 운우雲雨의 잔 가득 채우리
- 창작일 : 2013.02.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