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無人
- 여강 최재효
임은 허공에서 나를 비추고
나는 텅 빈 방에 앉아 임을 바라보는데
겨우내 잠자던 춘의春意가
눈치도 없이 저절로 눈을 뜨네
달빛 녹은 앞산은 춘수春水로 가득하고
한거寒居는 밤이슬에 젖었지만
밤새 함께할 사람 없고
월궁月宮 두드리는 것도 이골이 났네
지난 봄 별루別淚가 뼛골에 스며들어
편작扁鵲이 와도 그냥 돌아가고
백약百藥도 무용無用이라
오로지 가인佳人의 섬수纖手뿐 이라네
초저녁 선잠에 옛임이 살며시 찾아와
홍주紅酒를 따르며
배시시 웃고는 서천西天을 가리키는데
그 뜻을 몰라 밤을 지새우네
뜰에는 산수유 꽃들 재잘대고
춘지春枝에 잠 없는 새들 지저귀는데
공방空房에 등불은 하얗게 변하여도
나그네 한숨은 멈출 줄 모르네
바람 처럼 한 사람이 왔다 가고
백 사람이 유령 처럼 다녀 갔지만
아무래도 금세今世에는 인연이 없는 듯 하여
몽중夢中에 들어 청조靑鳥만 날릴뿐 이네
- 창작일 : 2013.03.29. 05:00
[주] 청조靑鳥 - 연인의 소식(편지)을 알려주는 전설상의 파랑새
思無人(생각할 사, 없을 무, 사람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