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야短夜
- 여강 최재효
잠 없는 나그네가 잠을 설치고는
어스름 새벽 창가에 기대어 앉았네
겨우내 심술부리던 동장군은 숨을 죽이고
메밀꽃 같은 잔설殘雪 밤을 밝히네
지금이 내 나머지 날 중에 어디쯤인가
박빙薄氷 같은 무명 이불 황량한데
밤하늘 부운浮雲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동창同窓으로 부질없이 별빛만 쏟아지네
인간 세상에 너무 시비가 많아라
사람 어리석어 한옥寒屋에 사는데
공연히 행인行人 다가와 돌 던지고
옛 몽중인夢中人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네
세사世事에 매이지 않은 묘안이 무엇일까
감주甘酒에 빠지니 병마病魔 들고
화월花月 상사하다 공연히 시름만 더해졌는데
백년 세월에 하룻밤이 천년 같네
반백년 동안 사람 이름 빌려 보았지
하늘 못 속여 그 흔한 공명功名도 없고
가까운 사람도 얻지 못했으니
늘 취하여 안개 속을 거닐고 있다네
이제는 부귀공명도 강 건너 일이고
금준미주金樽美酒도 멀리 하였는데
흉중에 미진微塵한 춘심 있어
공방空房에 원앙금침 깔고 얼굴 붉히네
- 창작일 : 2013.02.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