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소나타(5)
- 여강 최재효
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 창고에 와 있는데 잠시 좀 나와 주세요. 급합니다.“ 있던
“내가 전에 보았던 창고 분명한데.”
나는 창고 앞에 적혀있는 관리인 휴대전화로 즉시 전화를 걸었다. 보통으로
말하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여보세요? 창고 관리인 되시죠? 저는 법무부 산하 보호감호소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수사하다 필요해서 선생님께서 관리하고 있는 창고를 꼭 수색해 볼 일
40후반 된 낯선 사내가 10분도 안 돼 나타났다. 다행히 내가 퇴직 후에도 지니고
공무원증을 그 사내에게 보였다.
“어떻게 오신 거죠? 경찰서에서 오신 것도 아니고?”
“우리가 경제사범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상당량의 장물이 숨겨져 있
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있어서 그럽니다. 실례합니다만,
이 창고 안을 조사해야 겠습니다. 그냥 살펴만 볼 테니까 잠시 문만 열어 주시죠.“
사내는 잠시 주저거리더니 문을 열었다.
“들어가 보세요.”
“고맙습니다.”
창고 안에는 내가 열흘 전에 보았던 쌀이 그대로 있었다.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 창고의 저 쌀의 소유자가 주식회사 서해물산 맞습니까?”
“네에? 아닌데요? 서해물산이 아니고 대구에서 크게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는
청구산업 소유입니다.“
나는 다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럼, 청구산업 소유라는 증명이라도 있는지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내는 창고 사무실에 들어가 장부와 전표 뭉치를 꺼내와 내 앞에 놓았다.
장부에는 살의 반입 날짜와 출하 날짜 그리고 전체 물량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럼, 내가 10여일 전에 보았던 장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제가 10일 전에도 이 창고에 왔었는데. 그 때는 아저씨가 아니고 전혀
다른 남자가 창고를 지키고 있던데 그 남자는 누구지요?“
“아, 그 사람이요? 언젠가 나에게 오더니 하루만 창고를 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농림수산부에서 직원이 나와 전국의 쌀 저장 창고 중 상태가 가장 좋은 곳을 찾아
서 홍보용 사진을 찍겠다면서요.“
“뭐, 뭐라고요? 홍보용 사진을 찍는다고요?”
“네에? 그 사람이 그랬어요.”
나는 순간 조 영진이 짜 놓은 그물에 걸려 든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내가 내려 보낸 13억이 넘는 자금을 빼돌리고 내 눈을 속이기
위하여 가짜장부를 만들었단 말인가? 아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
떻게 사람의 신의를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형, 왜 그래요?”
내가 비틀거리며 땅 바닥에 주저앉자 봉산이가 내 허리를 잡고 부축을 했다.
“봉산아, 올라가자.”
“형, 왜요? 저 쌀이 형님 쌀 아니에요?”
‘내쌀? 내 살은 이미 허공으로 사라졌구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봉산아, 가자. 어디 가까운 주점이나 가자. 목이 타는 구나.”
“혀엉?”
고향 후배이면서 유일하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봉산이는 최근 20년간의 나의
희로애락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친동생 이상으로 잘 대해
주었고 객지에 홀로 나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봉산이 역시 나를 의지하며 따랐다.
“혀엉, 이럴 수가 있단 말이요?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형 처럼 착한 사람
등을 쳐 먹는단 말이요,“
봉산이는 내가 울어야 할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봉산아, 울지 마라. 사내가 그만한 일 같고 뭐 그렇게 우니? 자, 술이나 들자.”
“형은 참 마음도 좋으슈, 형이 부처님이라도 된단 말이예요?”
“미안하다. 너에게 오늘 못 보여줄 것을 보여 주는 구나.”
“나 같으면 벌써 미쳐버렸을 것 같아요, 그 새끼들 반드시 찾아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어야 해요. 절대로 그냥 두면 또 형처럼 착하고 법이 없이 살아 가
는 사람에게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또 다른 비극을 만들거고요.“
‘이 녀석아 나라고 왜 너처럼 성질이 없겠니? 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놈들 잡으면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은 심정이란다. ‘
“자, 봉산아. 건배하자. 너 대구에 처음이지?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나랑
술이나 마시자.“
“형이 너무 착해서 그래요. 지금 세상에 형처럼 살다간 아무 것도 남아나지
않는다구요. 어쩐지 그 조 영진인가 하는 새끼가 난 늘 마음에 안 들었다고요. 그
새끼 눈빛을 보면 독기가 서려있어요. 언젠가는 형님에게 안 좋은 일을 저지를 거
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사람은 앉혀놓고 바보 천치를 만들다니. 도저히, 도저
히 용서하면 안 돼요. 형.“
나는 대구에서 봉산이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세상에서 영
원히 살고 싶었고,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닌, 나의 가면을 쓴 타인이라고 믿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태식이가 사무실로 찾아 왔다.
“형님, 조 영진, 박 동철, 윤 병수 그리고 미스 홍 형님이 주신 주소를 찾아 가보
았는데 실제 그런 사람이 살고 있더라고요.“
“그래?”
나는 태식이 말에 어떤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말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런데, 뭐가?”
“그 사람들은 그 세 사람이 전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글쎄요. 그래서 나도 이상해서 혹시 주민등록증을 잃어 버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네 사람 모두 삼사년 전에 분실한 적이 있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그 네
연놈들이 남의 분실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며 행세 하고 다닌 것 같아요.“
“형님, 그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문적으로 사기를 치는 브로커들 같다는 생
각이 드네요.”
나는 나에게 처음 나에게 조 영진을 소개한 식당을 운영하는 정 사장을 찾아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오후 시장 통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정 사장을 찾아 갔다. 홀에는
서너 명의 술꾼들이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시시덕거리고 있었고 정 사장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요즘 잘 나가신다는 최 사장 아니신가?”
정 사장은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반가운 체 했다.
“정 사장, 자네가 2년 전 나에게 소개했던 조 영진이란 사람알지?”
“어? 아, 그 사람? 자네하고 동업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에 대하야 자세히 좀 말해 줘봐. 그 사람 본명이 뭐고, 나 소개 하기 전 뭐
하는 사람이었으며, 그 사람 고향이 어디인지, 자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정
보를 모두 말해줘.“
“아니, 최 사장.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건 묻지 말고 나중에 이야기 해 줄 테니까. 어서 말해줘봐.”
“나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 전에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나하고 술잔을
자주 부딪친 일 말고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고.“
“정 사장, 정말 이럴 거야? 아는 대로 이야기 해줘 봐.”
“정말이야. 내가 아는 건 그 사람 이름이 조 영진이라는 거 하고,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는 거뿐이야. 정말이야.“
“야, 이새꺄. 너 오늘 죽어 볼래? 엉?”
“최 사장, 왜 이래?”
나는 맥주병을 들어 정 사장의 머리를 내리 쳤다.
“퍽”
소리와 함께 파편이 선술집 바닥에 흩어졌다.
“그 새끼가 내 사업장을 모두 말어 먹고 잠적했어. 너하고 한 통속 아녀? 똑바로
말해봐.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오늘 너 내손에 죽는 줄 알어.“
내가 다시 맥주병을 들자 얼굴에 피가 낭자한 정 사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내 손
을 잡았다.
“최 사장, 최 사장. 내 말들어봐.”
“네놈의 새끼 말을 더 들어 볼 것도 없어. 오늘 너 제삿날인 줄 알어. 어서 그놈들
있는 곳을 말해?”
“왜 이래요? 우리 그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한번 만 더 병을 깨면 경찰을 부
를 거예요.“
정 사장의 아내가 사색이 되어 달려와서 고래고래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 댔다.
“최 사장, 최 사장님. 정말입니다. 나는 그 사람 이름 밖에 모른다니까. 정말
입니다. 믿어줘요. 정말 이름 밖에 모른다고. 그 사람들 있는 곳도 정말 몰라.“
“야, 이새꺄, 이름 밖에 모르면서 왜 잘 아는 척 하고 나에게 소개했어?”
“내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최 사장님이 사람이 좋고 인자하다고 말한 게
잘못입니까?“
다급해진 정 사장은 나에게 존대말 까지 사용해 가며 자신은 조 영진 이름 밖에
모른다고 강변했다.
“정 사장, 난 네가 소개 시켜준 그 놈 때문에 인생망쳤다. 그 놈이 모든 것을 다 해
쳐먹고 잠수했어. 난 네놈이 나에게 소개 할 때는 네놈과 지연이나 혈연적으로 무
슨 관계가 있는 줄 알고 그놈을 친 동생처럼 대해 주었지. 그런데 지금 그놈은 나에
게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바람처럼 사라졌단 말이야. 이 것을 어떻
게 이해해야 하니, 응? 말 좀 해봐. 이 새끼야.“
내가 정 사장의 머리를 흔들고 소리 쳤지만 그는 얼굴이 하얗게 변한 정 사장은
덜덜 떨기만 했다.
“미, 미안해. 나는 그저 단순히 술친구나 하라고 소개 시켜 준 것 뿐이야. 아무생
각 없이 단순히 술동무나 되라고.“
정 사장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밖으로 나왔으나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낮달이 벌
써 나와서 오후의 시간을 재촉했다. 다음날 영식이에게서 쌀과 주류를 공급받던 업
체들 조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형님, 서해산업 여직원이 와서 잔대금을 모두 받아 갔다는데요. 들리는 데 마다
받을 잔금이 한 푼도 없이 깨끗하게 수금해 갔더라고요.“
“이 나쁜 년. 사람을 이렇게 철저히 갈취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통곡을 하였지만 별 다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주 거래 은행에 전화
로 잔고를 파악해 보았지만 단돈 일원도 남기지 않고 모두 인출했다. 너무 한심
하고 기가 막혀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치밀하고 철저하게 농락당하다니, 지금까지 살아 온 50년이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구나. 어째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온 걸까? 어째서?‘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한 끼의 식사도 하지 못하고 대낮부터 사무실에 앉아 술과 담배 그리고 조 영진, 박 동철, 윤 병수와 미스 홍 휴대전화에 온갖 욕
지거리를 입력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일 말고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땅속으로 꺼져 버렸거나 공중으로 숨어 버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사람들 같았다.
“최 사장님, 안녕하시죠? 경동물산입니다. 오늘 이자 내는 날 아시죠? 오후 3시까
지는 입금하셔야 합니다.”
사채업자의 전화였다. 순간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건물 관리인을 찾아가 사무실
임대보증금이라도 되찾아 이자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장님, 지난주에 이사 간다고 경리 아가씨가 찾아와 보증금을 반환하여
달라기에 벌써 계좌로 보내줬는데요? 모르셨어요?“
나는 다시 한번 천근 바위가 내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과 동시에 그 자리에 쓰러지
고 말았다.
“여보, 괜찮아요? 좀 어때요?”
내가 눈을 뜬 것은 하루가 훨씬 지난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
내의 손을 잡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보, 아무말씀도 하지말고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당신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우선 안정을 취해야 한대요.“
아내는 손수건으로 내 눈가를 닦아주면서 일부러 환한 얼굴을 하였다.
“여보, 어디서 전화 오거나 차아 온 사람 없었어?”
“아뇨?”
나는 야차보다 무서운 사채업자들을 떠 올렸다. 앞으로 그 야수 같은 자들이
어떠한 행패를 부릴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도 병원에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집으로
퇴원한 나는 밤늦게 온 가족을 모아놓고 나의 생각을 전했다.
로 미안
“당신 그리고 너희들 똑바로 들어둬라. 그 동안 아빠가 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았단다. 이 밤중으로 당장 이삿짐을 싸야 할 것 같다. 아주 중요한 거 아니면
내버려 두고 꼭 필요한 것만 챙기거나. 아빠로서 너희들에게 면목이 없구나. 정말
하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이삿짐센터를 불러 살림에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덩치가
큰 물건을 모두 고향 여주로 내려 보냈다. 그러나 문제는 곧 들이닥칠 사채업자들
이었다. 나 한몸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다 큰 딸아들과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 아들
이 겪게 될 고통이 아이들에게 감내할 수 없을 것이기에 속이 쓰렸다.
다음날 나는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를 다니며 삭흘세방을 얻어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다행히 가족들이 피신할 때 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나
는 혹시하는 생각에 살던 집을 찾아가 보았다.
[야, 쥐새끼 같은 최 사장, 너 숨는다고 우리가 못 찾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
야. 당장 우리 사무실로 찾아오지 않으면 네 예쁜 마누라하고 다 큰 딸들은 귀신도
모르게 납치해서 사창가에 팔아버릴 수 있어. 명심해. 이틀내로 나타나지 않으면
각오해.]
현관문에 빨간 매직으로 쓴 글을 보고 나는 오금이 저려왔다. 즉시 아내와 세 딸
들에게 휴대전화를 걸어보았다. 다행히 모두 잘 있노라고 했다.
그러나 사채업자들이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에 아내와 아
이들이 사는 집은 찾지 못한다 하여도 막내가 다니는 학교와 딸애들 직장을 알 수
도 있을 거란 생각에 등골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아이들에게 전화
를 걸어 퇴근시간 전에 미리 회사에서 나와 막내 이모네 집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그래,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지. 내가 달게 받아야지.‘
내가 해 질 무렵 경동물산을 찾았다.
“어이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하더니 이게 뉘신가? 그 천하의
최 사장님 아니신가? 우리 몰래 이사한다고 이 세상에서 바람처럼 사라질 건가 아
니면 바다 속으로 들어 갈건 가? 그래 돈은 가져 오셨겠지?“
경동물산 박 사장이 느물 가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