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으로
글. 최재효
“최서방, 나가 택배로 감 좀 보냈응께. 애기들 하고 맛 좀 보시게나.”
아침일찍 전선을 타고 장모의 구수한 목소리가 전해진다. 당신께서 직접 과수농사를 짓지 않으시면서 매년 감을 보내신다. 딸 가진 부모 마음을 사위가 어찌 다 헤아리랴. 먼 훗날 두 아이들이 시집을 간 뒤 아내 또한 같은 심정이리라. 약간 떫은 감을 맛보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백년손님에 대한 배려를 느껴본다.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문학적 사고와 분위기에 휩싸여 시인이되고, 작가가 된다. 나 또한 그 부류에 속하기를 스스로 원해왔고. 쉬는 토요일 이나 일요일에는 으레 집에서 가까운 소래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아내와 두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다녔지만, 점차 꾀가 나는지 이핑게 저핑게로 빠지더니, 이제는 일요일 아침일찍 엄마를 유혹해서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늘도 아침을 대충 마치고 등산가방에 시집 한권, 생수 한통, 과장 한 봉지, 감 서너개를 넣고 집을 나선다. 가을이 부르고 있는데 마냥 집에서 문명의 이기와 씨름하고 있기노라면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인천대공원에 들어선다. 주차장에는 이미 수도권에서 모여든 수많은 가문을 싣고온 차들이 쉬고있다.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행락객들로 눈이 어지럽다. 계절에 따라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다르다. 벚꽃이 피면 공원은 남녀노소, 인산인해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데, 단풍이 깊은 시월에는 가슴이 휑한 삼사십대들이 많이 찾는다. 노인층은 가끔 눈에 띠지만 봄에 비해서 훨씬 적다. 아마 낙엽지는 가을이 인생의 쇄락을 의미하거나 쓸쓸함을 주기에 나이든 분들이 덜 찾는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을 외로움, 고독, 쓸쓸함, 향수등 자연본연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의미를 부여해온 것은 시인들이 잘못이라고 본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은 인간들에게 무조건적인 혜택을 주고 있지만 인간은 자연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새싹이 나고 열매를 맺고 인간은 그 열매를 미안한 마음 없이 취하면서 괜히 쓸쓸해 한다. 오히려 고맙고 감사해 하며 기쁨으로 맞아야 할 가을이지만 왜들 쓸쓸해 하는 걸까. 아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지.
군 부대입구에서 소래산쪽으로 들어서니 부천방향에서 온 삼삼오오 등산객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철탑 아래서 잠시 앉아 땀을 식히기로 했다. 날씨는 초여름 같다. 정말 가을이 오긴 온 걸까.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가을속으로 사라진다. 장모가 보내 온 감을 한입 깨문다. 약간 달착지근 하면서 떫은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가을을 자양분으로 하여 익은 감이 뱃속으로 들어 왔으니 나는 가을 한 가운데 있는 셈이다. 산 정상에는 이미 가을을 탐닉하러 온 사람들로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인천대공원과 시흥시내가 한 손에 잡힌다. 먼산과 눈아래 야트막한 산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중 마지막연이 저절로 나온다. “別有天地非人間”. 산의 높고 낮음을 떠나 황금의 법칙과 기계소음이 없고 산새 소리들을 수 있는 산이면 그곳이 바로 “비인간” 즉, 무릉도원이 아닐까.
늦 가을의 하늘이 시원하다. 좋아하는 시 몇수 감상하고 올라 온 길을 내려오니 밤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인쥐들에 의해 대부분의 밤송이는 겁질만 나뒹굴고 있다. 다람쥐들의 겨우살이가 걱정이 된다. 자연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거늘, 함께 은혜를 나눠야 자연의 섭리에 부응하는 것일 텐데. 가방을 뒤져 먹다남은 감 네개를 땅을 살작 파고 묻어 놓고, 반쯤남은 과자는 나뭇잎으로 살짝 덮어놓았다.
군부대 입구 만의골이라는 동네에 등산객을 상대로 순두부와 막걸리를 판매하는 집이 있다. 마당에 가운데 꽤큰 단풍나무 한그루가 있고, 그 아래 평상 서너개가 놓여있고 그 위에 탁자를 올려놓고 손님을 받는데 이미 평상마다 손님들로 만원이다.
할 수 없이 평상 옆에 돗자리를 깔고 기본을 주문하자 막걸리 한통, 모두부 한모 그리고 시골인심이 물씬 풍기는 겉저리 배추김치 한접시가 나왔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단풍나무가 시집가는 새색시 얼굴처럼 붉다.
소금끼가 하얀 얼굴들이 텁텁한 막걸리 한 잔에 시름을 잊고 소박한 웃음을 하늘높이 띄우고 있다. 막걸리 한통이 거의 비워 갈 무렵, 자꾸 뒷퉁수가 근지러워 돌아 보았더니 고려시대 때 부터 이 동네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할아버지 한 분이 노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정정하게 서계시다.
“이보시게, 내가 올해 자식농사를 풍덕하게 지었네, 가는 길에 은행 좀 주워가시게.”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 졌다.
2004. 10. 10.
-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만의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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