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月)의 자손들
- 글. 최재효
나는 요즘들어 달에 대하여 존경과 아부성 이야기를 자주 한다. 먹고살기에 1초가 아까운 사람들에게는 할일 없는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받겠지만.
나는 달의 자식이다. 물론 육체적으로 나를 이 땅에 낳아준 사람은 당연히 어머니 이지만 나를 원초적으로 만든 기원(基源)은 다름 아닌 달이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죽어 공동묘지에 묻혀있거나 구천을 헤매고 있을 모든 인간들은 모두 달의 자식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테미스(Artemis)라는 달의 여신과 동양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선녀 항아(姮娥)가 달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하는 사실은 미국이 쏘아 올린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에 의해 확인 되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달에 생물이 살지 않는다고 확인 되었지만 달 그 자체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본다. 인간은 양력보다 먼저 달의 공전주기를 바탕으로 한 음력(陰曆)을 만들어 사용해왔고 태양을 기준으로 한 양력이 만들어 진후에도 음력은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달의 반지름은 지구의 1/4이고 태양은 지구 반지름의 100배 크기다.
그렇지만 태양과 달은 우리 육안으로 보았을 때 그 크기가 비슷하게 보인다. 달과 태양 그리고 지구의 위치가 일치 할 때 일식(日蝕) 또는 월식(月蝕)의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가 사는 지구로부터 태양까지 거리는 1억5천 킬로미터이며 달까지는 38만킬로 미터다. 그런데 지구에서 보면 크기가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 1달이 되고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면 1년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나는 어머니인 여자의 몸에서 나왔다. 물론 아버지가 어머니 몸속에 사랑의 씨앗을 파종하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수태(受胎)가 되었고 달이 지구를 10바퀴 돌고난 뒤 어머니 몸밖으로 나왔다.
여자인 어머니는 수임(受任)가능이 되는 여성이 되면서부터 달의 지배를 받아왔다. 흔히 말하는 보통 가임기 여성들의 달거리(月經) 주기는 달의 공전주기와 같다. 월경은 한 달을 주기로 몸속에서 수태 가능한 난자(卵子)를 하나씩 배출 하는 때를 말한다.
그때를 맞추어 미혼남여는 결혼 날짜를 잡고 한 몸이 된다. 난자는 아버지의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정자(精子)를 만나면 수정이 되고 곧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달의 자식이 아니랴. 만약 달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언젠가 영국 BBC 티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대양(大洋)의 거북이들은 보름달이 뜨는 밤 해안으로 올라와 알을 낳는 장면이다. 나는 그때까지 달을 막연히 지구의 위성으로 생각했었다. 달의 자전에 따라 조수(潮水) 간만의 차이가 생기고 밀물과 썰물이 일어난다. 달이 동산에서 떠서 서녁으로 진다. 동해안에서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지 않음은 그런 연유에서다.
지구가 23도 기울어져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남극과 북극이 존재하는 것도 달이 지구 를 중심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달이 멀리 우주속으로 이탈해 달아 난다면 지구에는 남극과 북극이 없어지고 지구는 마음대로 자전과 공전을 하리라.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하루 아침에 동서남북의 극지방이 뒤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어찌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달이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달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태양은 늘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달은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의 한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한 달의 변화과정은 멀리 지구에 살고있는 자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이다. 그러한 달의 변하는 모습을 보면 엄숙함과 경외심 마져 든다. 지구에 사는 자손 누구나 태어나서 성장하고 병이들고 죽음을 맞이하고.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설(輪回說)이 바로 저 달의 한 달간의 변화와 억겁동안 반복되는 동일한 과정의 탐구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본다.
세계 3대 종교의 경전이나 상징을 보면 달이 많이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정복왕조의 깃발을 보면 반드시 초승달이 등장한다. 현재의 이슬람 국가 국기에도 상당수 초승달의 문양을 볼 수 있다. 사찰의 지장전(地藏殿)이나 명부전(冥府殿)을 자세히 보면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명부시왕(冥府十王)들이 협시하고 그 옆으로 월직사자(月直使者)가 있다. 그가 누구인가 바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저승사자 아닌가. 이렇듯 달은 인간의 모든 일에 알게 모르게 관련되어 있다. 이 땅의 자손 한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자손들의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의 고유 풍습에 가임기의 우리 여성들은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날 밤 달의 정기 즉, 월정(月精)을 마시는 흡정(吸精) 의식을 해왔다. 나는 어릴 때 그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피식 웃어 넘기곤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우리 옛 조상들은 인간이 달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사람이 이승을 떠나면 저승을로 돌아간다고 하는 데 혹시 저승이 달속의 어느 지점에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보곤 한다. 지구에서 육신을 받아 살다가 육신을 버리면 다시 달에 안주 하고 있다 그 사람의 이승의 업적에 의해 인간이나 축생등 다양한 형태의 자궁으로 들어가 윤회의 길을 걷는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문자시대가 되면서 인간은 누천년 동안 달에 관한 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기록해 왔다. 달에 토끼가 살고 이태백이 놀던 곳이라고 하며 노래까지 지어 부르는가 하면, 서양에서는 달은 밤의 제왕이라 하여 보름달이 뜨면 괴성을 지르며 우는 늑대를 등장 시켜 무시무시한 전설을 만들어 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글께나 쓴 다는 사람치고 달에 대하여 나름대의 서정을 읊지 않은 자가 없다.
겨울하늘 높다랗게 떠서 자신의 후손들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달.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달의 자식인 줄 모르고 살아간다. 달은 그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서정이나 제공하고 상상이나 로맨스의 상징이나 의미를 투영하는 한낮 인간들의 심심풀이 대상 쯤으로 생각해 왔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리 부인을 하여도 달의 자손임에 틀림없다. 혹시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부정해도 이해가 가겠지만.
오늘 밤 다시 달이 떠오르면 한 잔술을 올려 달에게 경배하며 그 고마움을 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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