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어가는 사람들
- 글. 최재효
그곳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초겨울의 바람을 헤치고 바퀴는 고속으로 달렸다. 사촌형님이 처음으로 큰딸을 결혼을 시키는 날이다. 충주까지 3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다. 일요일이라서 등이 아프도록 잠에 취해보고 싶은 자유마저 포기해야 하는 현실, 친인척 사이에도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의외로 고속도로에 손님들이 없었다. 이미 주말에 도심을 빠져나간 탓이리라. 차량이 별로 없는 아스팔트 도로위로 대신 차가운 바람이 달렸다.
해주최씨좌랑공파와 인연이 있는 하객을 실은 대형관광버스가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장은 10년 또는 20년 이상 얼굴을 뵙지 못한 친인척들도 많았다. 서로의 손을 잡고 반가운 듯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들이 없어 보인다. 하객들이 타고온 버스를 직접 운전하고 온 고교동창생을 만났다.
문학을 좋아했던 사춘기 소년은 간데 없고, 얼굴에 세상의 이끼가 덕지덕지 묻은 배불뚝이 중년의 아저씨가 나의 어깨를 툭 치면 아는체를 한다.
"누구-, 시더라?"
"임마, 나야. 나 몰라?" 녀석의 이름을 듣고서야 세월의 무정함에 치를 떨었다. 갑자기 녀석과 톨스토이를 논하고 이태백을 읊었던 시절이 그리웠다. 종중회의 같았던 잔치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시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해주최씨좌랑공파의 돌림자를 되뇌여 보았다. 아버지 대는 빛날 섭(燮)자를 사용했고, 나의 세대는 있을 재(在)를 쓰고 있으며, 내 아 랫대는 호경 호(鎬)자를 사용하고 있다. 십 수년전만 해도 종중(宗中)의 대소사에는 섭자돌림의 성함을 가지신 분들이 행사의 주역이 었다. 그러나 오늘은 재자 돌림의 나를 비롯한 친인척들이 중심이 되어있다.
마왕처럼 달려오는 세월을 어찌 막을 수 있으며, 도도한 강물처럼 흘르는 시간을 무슨 방법으로 잡을 수 있으랴. 하객으로 온 친인척중 섭자 성함을 가지신 어르신 몇분 보였지만, 대부분은 나와 같은 재자를 이름속에 포함하고 있는 세대와 호자를 가지고 있는 파란싹들이 약간 보일 뿐이다.
섭자를 돌림으로 하는 아버지를 포함한 분들은 대개가 바람이 되셨다. 불과 얼마전까지 가문내 주역들이셨 그분들은. 그나마 살아있는 분들은 이미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 있거나 노환으로 몸이 불편해 먼 여행을 하기는 무척 힘이 부친다. 알게 모르게 세월의 무자비함에 평정 되어 바람과 함께 사라진 세대들, 조만간 재(在)자 돌림의 형제들도 그리 될 것은 뻔한 일이지만.
지난주 목요일 나와 같은 재자를 돌림으로 사용하는 서울 면목동에 살던 사촌형님이 다른 세상으로 돌아올 기약 없는 소풍을 떠났다. 주변의 사람들이 오랜세월 서있던 자리가 소리없이 비어 갈 때마다 그 다음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원망을 해본다.
"누가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1년을 365일로 만들었나?"
만약 광속의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의 행성중 하나인 토성에 정착해 산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는 365일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돌지만 토성은 30년만에 한바퀴를 돈다. 그렇다면 토성에서 10 년을 사는 것은 지구에서 300년 사는 계산이 된다. 꿈속에서 우연히 선계(仙界) 들어가 정신 없이 놀다 깨어보니 몇 년이 흘렀다는 마치 태평광기나 중국괴담에 나오는 한단지몽 같은 이야기다.
우리는 꿈을 꾸고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루 24시간중 잠에 빠져있는 7시간 정도는 꿈속에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을 실현해보기도 하고, 실망감을 맛보기도 한다. 좀 이상(理想)이 강한 사람은 백일몸(白日夢)을 꾸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꿈을 꿀 수 없다면 사회가 얼마나 삭막할까. 참으로 조물주는 인간을 교묘하게 만들어 놓았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잠속에서 이룰수 있게 해놓지 않았던가.
한 세상 이룰 수 없는 꿈만 쫓다가 허망하게 바람이 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스스로 그리된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리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그리 되어가고 있다. 한정된 자리에 한치의 양보도 없는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의해 갈등이 빚어지고, 좌절하거나, 일찌감치 생(生)을 포기하는 형제들이 늘어 가고있다.
피로연이 열리고 있는 홀, 옆테이블에 매형과 정답게 국수를 들던 둘째 누이와 얼굴이 마주 쳤다. 금년 정월 갑자기 찾아 온 병마에 생사의 기로에서 간신히 생의 길로 돌아온 누이다. 누이는 남동생과 눈이 마주치자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응대로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처녀시절 한 떨기 장미같았던 그 고운자태와 정열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점점 시들어 가는 누이 얼굴을 보고 괜히 성질이 났다. 소주로 자작(自酌)을 하자 내 속을 모르는 아내는 자꾸 눈치를 준다. 그 누이 앞에 요즘 부쩍 말라가는 셋째누이 얼굴에 시선이 갔다. 나의 그런한 심정을 알아 차렸는지 누이는 하얀 미소를 보낸다. 더 이상 테이블에 앉아 있기 불편해 다른 테이블로 옮겨 갔다.
다른 테이블 역시 생이 얼마남지 않은 고령의 집안분들이 나를 알아보고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한참때의 그분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눈이 혼란 스럽다. 고운 자태는 간데 없고 힘없는 노인이 되어있는 형제자매들. 동창생이 따라주는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노아의 방주 같은 우주선을 만들어 형제자매를 태우고 토성에서 10 년쯤 살다 왔으면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소주가 간신히 목줄기를 타고 넘어간다.
마음이 우울할 때면 가까이 있는 부평공동묘지를 찾는다. 수 만의 죽엄들이 검은 문패를 하나씩 걸고 누워있다. 검정색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어본다. 그중 비문뒤가 산자들의 이름으로 빽빽한 비문을 본다. 이성지합의 인연에 의해 사위나 며느리가 된 이름까지도 선명하게 각인되 있다. 누워있는 분이 살아생전에 사랑과 정성을 쏟았을 혈육들이다. 고인은 비록 본래의 세상으로 떠나갔지만 현 세상에는 고인이 남긴 흔적들이 무수히 남아 이승과 저승의 끈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나도 저들 처럼 비석에 초라한 이름석자 남기고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겠지만. 지금 2004년11월21일 오후3시15분30초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다시 오지 않을 황금같은 시간. 거동이 불편한 팔십이 넘은 고모부에게 약주 한잔 올리면서 천천히 얼굴을 바라 본다. 어쩌면 나에게 마지막 생전의 모습이 될 수도있다는 느낌이들었다.
가족사진을 촬영하는데 남녀노소 수 많은 혈족들이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4단으로 도열해 한폭의 정물화가 되었다. 후레쉬가 터진후 모두는 시간이 멈춘 순간과 영원의 세상에 들어갔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그러나, 그곳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