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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암투(終)

* 창작공간/중편 - 꽃들의 암투

by 여강 최재효 2018. 7. 3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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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終


  



                                                                                                                                                              - 여강 최재효





 황룡국에서 돌아온 해명은 주변국들의 입장을 무시하고 졸본성에

묻혀 보란 듯 강군(强軍) 양성에 매진하였다. 그는 할아버지 추모왕

주몽을 존경하였다. 유리태왕의 애매모호한 외교정책으로 주

들이 오판할 수 있었다. 그들이 연합군을 형성해 언제 고구려에 창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졸본성에는 날마다 군사들의 우렁찬 함성과 말 울음소리 나팔과

북소리진동하였다. 우연히 졸본성에 들렀던 외국 사신들은 해명

태자가 양성하는 군사들의 위용을 보고 겁에 질려 허겁지겁 돌아

갔다.


 사신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왕에게 보고한 내용이 금방 국내뿐만

아니라 국에도 알려져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

고 있었다. 한나와 부여 그리고 낙랑국과 북옥저 심지어 송양국

에서 보낸 사신들이 고구려 국내성으로 들이쳐 유리태왕에게

항의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송후의 걱정과 우려는 이저만이 아니었다. 친정아버지인 다물

후 송양왕은 별도로 딸 송후에게 밀서보내 해명의 행동을 저

지하라고 하였다. 해명을 그대로 두었다가 장차 그가 태왕이 될

경우 송양국은 고구려에 정복될 가능성이 컸다. 


 “태왕, 우리 한나라는 귀국의 영토를 침범한 적이 없소이다. 우

리 황제께서는 고구려와 평화로운 관계 유지를 원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귀국의 태자가 군사를 양성하고 우리 한나라를 침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들었소이다. 즉시 사병양성을 멈추시오. 황

제의 명이 먹히지 않을 경우 전쟁이 을 것입니다.”


 “그 아이는 비록 태자이기는 하나 졸본성을 지키는 병사를 훈

련시키는 입니다. 사신은 돌아가서 황제에게 잘 말씀드려

주시오. 그리고 열흘 으로 졸본성의 모든 군사 행동을 중지

할 것입니다.”
 태왕은 한나라 사신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고구려의 입장을

해명하느고역을 치러야 했다. 한나라 사신이 돌아가자 말자

동부여 사신이 국내성에 도착하였다. 


 “우리 동부여 황제께서는 당장 해명 태자를 인질로 데리고 오

하셨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황제께서 친히  수만의 군사

를 이끌고 당장 국내성으로 물밀 듯 쳐내려 오실 것이오.”


 “황제께 잘 말씀드려 주시오. 해명이는 그동안 졸본성을 지키

는 군사를 훈련시켰을 뿐입니다. 당장 해명이를 태자의 자리에

서 내치고 졸본성 군사들도 파할 것입니다.”


 북옥저, 낙랑국, 송양국, 현토군 등 수많은 나라에서 사신들이

국내성에 들어와 해명 태자의 행동에 거칠게 항의하면서 고구려

가 말을 듣지 으면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태왕을 겁박

하였다.


 “폐하, 소첩은 전쟁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송양국 아버님께서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송후의 처소에 든 태왕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송후, 걱정 마오. 곧 중대 결정을 내리리다.”
 “폐하, 우리 무휼이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천문지리에 능통하고,

법 등 병서에도 모두 달통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창과 칼

병장기를 마음대로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고수입니다.”
 태왕의 마음은 이미 태자 해명에게 떠나 셋째 왕자인 무휼에게 가

었다.


 무휼의 외할아버지가 송양국 왕이라는 사실이 태왕에게 많은 위안

되었다. 고구려가 송양국과 합심한다면 한나라같은 대국의 침입

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튼튼한 방어망을 형성 할

수 있을 것같았다. 물론 황룡국도 있었나 송양국 보다 국력이 형편

없었다. 태왕은 송후에게 자신은 해명 태자 보다 무휼을 더 사랑한다

는 언질을 주었다.


 해명이 졸본성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동안 국내성의 정치는 엉망

되어 가고 있었다. 해명을 지지하는 부족과 중신들은 해명의 행동

에 찬사와 함께 강력한 지지를 표시하였고, 덩달아 화희의 지위도 굳

건하게 되는 듯싶었다. 송후는 매일 모란 공주와 이마를 맞대고 사태

의 심각성을 상의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왕후님, 화희 왕후를 단번에 내칠 수 있는 극비 정보가 있습니다.”
 송후의 친정은 송양국이고 모란의 친정은 황룡국이니 어찌 그녀들의

이 없겠는가. 모란 공주가 이미 대사자와 고추가를 통해 입수한

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송후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중요한 정

보를 넘기는 대신 조국 황룡국의 안전을 보장 받고 싶었다.


 “공주, 나에게 빨리 말하지 않고.”
 “왕후께 한 가지만 다짐을 받고 싶습니다.”
 “무엇인지 말해 봐요.”


 “왕후님의 소생이신 무휼 왕자가 장차 고구려의 태왕이 되신다면 우리

황룡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해주십시오.”
 “당연하지요. 그 애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요.”
 송후는 모란 공주가 알고 있는 중요한 정보가 급선무였다. 그녀는 빨리

모란 공주 입에서 나올 정보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다.

 

 “왕후님을 믿어도 되겠죠?”

 “공주, 걱정하지 말아요. 그동안 모공주가 나를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는데. 당연히 그래야겠지. 나는 그애 생모입니다. 공주는 내 친 여동생

같이 여기고 있어요. 무휼이도 공주의 그간의 공로를 알고 있답니다.”


 송후의 세치 혀는 모란 주를 안심시켰고, 모란 공주는 화희의 계획을

고해 바쳤다. 모란 공주는 송후보다 한참 하수(下手)였다. 송후는 즉시

태왕에게 화희의 음모를 알렸다.


 태왕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고추가와 대사자

잡아들이게 하였다. 국문장이 열리고 형리(刑吏)들이 무시무시한 형

구를 준비하였다.


 “이놈들, 너희가 화희와 짜고 역모를 꾸몄겠다.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당

네놈들 목을 잘라 성문에 걸 것이다.”


 태왕의 노기충천한 모습에 대사자와 고추가는 오줌을 지렸다. 형틀에

묶인 두 사람은 이미 한차례 매질을 당해 눈동자가 반쯤 풀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은 잘못이 없고 모든 죄를 화희에게 돌렸

다.


 “폐하, 소신들은 다만 화희 왕후님의 사주를 받았을 뿐입니다. 실행에

거나 별도로 군사를 움직일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왕후님의

강압적인 지시에 대답만 했을 뿐입니다.
 “네놈들이 해명이 태왕이 되면 고위직을 보장 받았겠다?”

 유리태왕이 금방이라도 쇠몽둥이로 두 사내의 머리통을 내리칠 기세

였다.


 “폐하, 소신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화희 왕후님이 시키는대로 움직

이려고 했습니다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의 군사를 움직

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태왕 폐하 한분이십니다. 소신들의 말을 믿어

주십시오.

 두 사내들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모든 것을 화희의 지시라고 둘러댔

다.


 “이놈들이 뜨거운 맛을 못 봤구나. 여봐라, 이들을 정법(正法)하라.”
 태왕은 화희를 역모죄로 옥에 가두고, 그녀의 두 책사인 대사자와 고추

가를 효수(梟首)되어 목이 성문에 내걸렸다.


 태왕은 잠시의 여유를 두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졸본성으로 향했

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졸본성에서는 사전에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에서 한밤에 유리태왕 일행의 방문을 받고 큰 혼란에 빠졌다.


 “해명과 그의 떨거지들을 모두 잡아와라.”
 태왕은 다짜고짜 해명을 포박하라고 명령했다. 해명은 잠자리에서 오

을 받았다. 또한 해명을 따르던 수하들도 모두 포박당하여 태왕 앞

에 무꿇려졌다.


 “너는 어찌하여 태왕의 명을 거역하였느냐?”
 태왕은 아들 해명을 아들로 보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태왕에게

해명은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패악무도한 자이며, 장차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는 난신적자에 불과하였다. 


 “아버님을 뵙습니다.”

 해명태자가 태왕 앞에 나가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너의 아비가 아니다. 아비의 명령을 거역하는 아들을 둔 적이 없다.”
 “아버님.”
 유리태왕은 역정을 내며 해명을 꾸짖었다.


  너는 내가 몇 차례 사람을 보내 국내성으로 들어오라고 하였거늘 나

을 거역하고 어째 이곳에서 사병을 양성하느냐. 네가 나의 명을 거

한 것은 심을 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고구려 태자의 지위에서 폐하겠다. 또한 나는

너의 아비가 아니다. 고구려의 태왕으로서 명한다. 당장 이 자리에서

자결하라. 유리태왕은 자루를 해명 앞에 던졌다.


 “이놈, 어서 자진하지 않고 뭘 꾸물대는 거냐?”
 “아버님-.”
 “나는 너의 아비가 아니라고 했다. 너는 단지 역모를 일으키려는 역적

과하다, 빨리 자진하지 않고 뭘 하느냐?”


 태왕 곁에는 국내성에서 따라 온 대신들과 장군들 그리고 군관들이 즐

게 서 있었다. 태왕의 진노가 너무 커서 누구도 나서서 해명태자를

두둔하거나 태왕에게 간언하는 중신이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실랑이

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국내성에서 해명의 이복동생들이 도착하였다.


 “아버님, 형님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무휼이 태왕 앞에 엎드렸다.
 “아버님, 형님을 용서하십시오. 형님께서 졸본성에 머물고 있는 것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사병을 훈련시키고 성을 든든히 하고자

이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마음을 쓰시기 바랍니다.”


 유리태왕이 가장 아끼고 귀여워하는 넷째 아들 해술(解術)이 울면서

부왕에게 했다. 태왕은 슬하에 여섯 명의 아들을 두었다. 장남 도절

은 동부여의 인질 문제로 태왕의 명을 거역한 죄로 부왕의 명을 받고

자결하였고, 둘째 아들 해명은 지금 부왕의 질책을 받는 중이며, 셋째

아들 무휼과 넷째 아들 해술이 해명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있었

다. 다섯째 아들은 해색주(解色朱), 막내아들은 재사(再思)였다. 태왕

의 여섯 아들들은 제각기 성질이 다르고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무휼과 해술은 일어나거라.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해명

번이 이 아비의 명을 거역하였다. 비록 나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아비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여섯 명의 아

들을 두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아비인 나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살려

둘 수 없다.”


 태왕은 아들들이 해명을 용서해달라는 청을 매정하게 뿌리 칠 수 없었

다. 이 틈을 타 말도 못하고 태왕의 눈치만 보고 있던 중신들과 장군들이

일제히 엎드려 해명을 용서해달라는 주청을 올렸다. 그들은 대개 화희

와 해명을 지지하거나 친분이 도타운 인사들이었다.


 “폐하, 신 대대로 아뢰옵니다. 아비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옵

니다. 부부는 갈라서면 남남이 된다지만 아비와 자식을 영원히 부자지간

입니다. 끊으려고 하여도 결코 끊을 수 없는 사이입니다.”


 “폐하, 신 태대형 아룁니다. 해명 태자의 지난 일은 백번 벌을 받아 마땅

지만 태자의 입장에서 국태민안을 위하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코자 한

이니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폐하, 신 대모달 감히 아뢰옵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큰아드님이신 도절

자를 잃으신 뼈아픈 기억이 있사옵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신다면 만

성이 우려하고 주변 국가들은 속으로 웃을 것입니다.”


 “폐하, 신 태대사자 아뢰옵나이다. 부디 성심을 바로 하시어 고구려의 천

대계를 세우소서. 고구려는 이제부터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할 시기입

다. 왕실이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면 그만큼 나라의 대계가 흔들리게 되

니다. 폐하께서 하해와 같은 성심으로 태자를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아무리 태왕이라 하지만 나라를 혼자 경영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들

들과 중신들 그리고 장군들이 일제히 엎드려 읍소(泣訴)하자 태왕의 분기

(憤氣)가 어느 정도는 꺾인 상태이긴 하였으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

다.


 “해명은 듣거라. 내일 아침까지 네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생각해보고 그

잘못이 도저히 네 자신과 나라에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칼로 너

죄를 단죄하도록 하여라.”
 태왕과 중신들 그리고 네 명의 동생들은 국내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졸본성에 머물기로 하였다.


 해명은 부왕이 얼마나 자신을 역겹게 생각하는 지 직접 목격한 상태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단지 큰형 도절처럼 부왕의 눈 밖

에 나 자결을 강요받거나 부왕의 친정(親政)에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국내성에 가지 않았을 뿐 부왕에게 대항할 뜻은 없었다.


 “아버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해명은 자신을 노려보며 자결하라고 강요하던 태왕의 얼굴을 떠올리고

서리를 쳤다. 부왕이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나 같은 자식이 살아서 무

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절 형님 같은 비극을 재현하지 않으려고 나는

내 방식대로 이곳에 터를 잡고자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부왕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구나. 태자라는 허울 때문에 나는 지금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어. 이 허울은 내죽어야 벗어날 수 있을 테지. 고구려 태자라.

 해명은 술병을 들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

였다.


 “형님, 많이 취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침소에 드세요.”
 무휼, 해술, 해색주, 재사 등 해명의 이복동생들은 해명을 위로하기 위

하여 해명을 찾아 위로주를 건넸다. 모두 형 해명에게 착한 동생들이었

다.


 모후들끼리는 질투와 시기로 점철되는 세월을 보낼지라도 아들들은 모

후들과 같지 않았다. 이미 큰형 도절이 부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했기 때문

에 왕자들은 서로 반목하면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었다.


 “무휼아, 나, 나는 틀린 거 같다. 네가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부왕을 보

하여 고구려를 만세반석에 올려 놓거라.”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께서 마음이 풀린 듯합니다.”


 “해술이, 해색주, 재사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나의 동생들이다. 우리가 비

배다른 형제지만 서로 반목하지 않고 잘 지내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

길 바란다. 너희들 양 어깨에 고구려의 명운이 달려 있단다.”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해명은 동생들을 달래놓고 침소로 들었다. 그는 침소에 들자마자 모달

을 불렀다. 모달은 해명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였다. 해명의 명을 받은 모

달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태자님, 술이 덜 깨셔서 하신 말씀이 맞지요? 이밤에 그런게 왜 필요

하신지요?”
 “나 술 안 취했다. 모달아, 부탁한다.”
 “태자님, 태왕께서는 잠시 노여움을 이기지 못해 그런 처결을 내리신 겁

니다. 태자님은 태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다스릴 태왕에 오르셔야 합니

다.”


 “아니다. 나는 이미 틀렸다.”
 해명은 마음속으로 이미 결심을 한 듯 했다. 부왕의 마음은 이미 자신에

멀어졌고 부왕의 명을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내가 졸본성에 있더라

도 부왕이 나를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던 내가 멍청했다. 해명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자책하였다. 모달은 할 수 없이 말 한필과 장창(長槍) 세 자루

를 해명에게 건넸다. 동이 터올 무렵 해명은 말을 몰아 졸본성에서 가까

운 여원(礪原) 언덕을 향해 달렸다.


 해명이 졸본성을 빠져나갈 때 뒤이어 모달이 해명의 뒤를 따랐다. 해명

은 여원에 도착하자 땅을 파고 장창 세 개를 한 발짝 간격으로 손잡이 부

분을 땅에 묻었다. 동천에서 막 해가 뜰 때였다. 장창 끝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랴-.

 해명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창을 향해 전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질주

하던 말이 창과 10보 정도 되었을 때 해명은 말에서 일어나 말 잔등에 올

라서더니 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숲속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모달

은 방금 눈앞에서 펼쳐진 끔찍한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아버님, 어머님, 불효막심한 소자 먼저 갑니다. 월희, 미안하오. 그대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이오.’
 “태자님, 안 됩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가시다니. 안 됩니다.”


 모달은 해명의 목과 가슴, 배를 관통한 세 개의 장창을 제거하였지만 이미

해명은 절명한 상태였다. 모달은 해명을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해명의 얼굴

은 온화해 보였고 마치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 청정했다.


 서기 9년 부왕의 자결 명령을 받고 밤새 고민하던 해명 태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서기전 12년에 탄생하여 겨우 21세의 나이에 고구려

의 태자 해명은 유명을 달리했다. 형 도절이 자결하고 고구려 태자에 책 

봉된 지 5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해명을 태자의 예

로서 장례하고 그가 자결한 곳에 묘(廟)를 세우고 창원(槍原)이라 하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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