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여강 최재효
무휼은 기골이 장대하고 길차며, 둘째형 해명과 같이 완력 또한 강
하여 국내성 사람들은 그에게 천하장사란 별명을 붙여 주기도 하였
다. 그러나 무휼은 형 해명과 달리 대외적으로 힘을 과시하거나 개인
적으로 사병을 양성하지 않고 조용히 부왕을 보좌하고 중신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리태왕은 셋째 아들 무휼이 침착하고 자신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태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한 뒤로 잠시 정치적으
로 혼란스러웠지만 차차 안정이 되어 왕실 분위기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왕후의 질투와 시기가 노골화 되어 가면서 중신
들과 부족(部族)들 사이에 갈등의 조짐이 보이기도 하였다. 태왕은
그 같은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방적으로 무휼의 생모인 송후를
두남두었다. 이에 두 왕후간의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년은 천격스럽고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야. 그년 아들이 비록
태자이기는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 태자는 언제든지 바
뀔 수 있어. ”
송후는 화희와 화해하기는 벌써 글러 버린 것 같았다. 서로를 적
대시 하며 골이 깊어져 이제는 자기 아들에게 대권을 물려주기 위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두 분이 사이좋게 지내야 우리 형제의 우애도 좋습니다.”
무휼은 두 왕후의 쟁투를 가슴 아파하였다. 형 해명과는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왕후들의 싸움으로 언제 도타운
형제의 우애가 깨질지 몰라 불안해 하였다.
“무휼아, 너는 비꾸러진 성정의 해명이와는 근본이 다르다. 네 외
할아버지는 송양왕이야. 그러나 해명이 외가는 별 볼일 없는 지방
의 토호에 불과해. 네가 장차 부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 태왕의 자리
에 앉아야 한다. 아무리 형제 사이라 하여도 권력은 절대로 나누는
게 아니다. 이 어미의 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유리태왕은 화희를 뜨악해 하면서도 그녀를 궁 밖으로 내치지
못하였다. 그녀의 아들이 태자인 까닭도 있었지만 그녀의 뒤에
는 부족들이 버티고 있었다. 권력은 비정한 것이며, 부자지간이
라도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국내성에서 졸본에 몇 차례 사람을 보내 해명을 국내성으로 들
어오라고 하였지만 그때마다 해명은 적당한 구실을 붙여 어기대
면서 부왕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중신들과 백성들에게 태왕의 체
면은 말이 아니었다. 해명에게 크게 실망한 유리태왕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향방까지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그놈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졸본에서 왕 노릇을 하고있다고?
그렇다고 아비로서 군사를 몰고 가서 그놈을 잡아 올 수도 없고.
무슨 묘안이 없을까. 참으로 골치 아픈 녀석이로다. 지 에미가 짐
의 눈밖에 나더니 자식까지 그 모양이구나.’
술잔을 잡고 골몰해 있는 유리태왕을 송후가 눈여겨 보고 있었
다.
“폐하, 뭘 그리 골몰하세요?”
송후가 태양 가까이 다가 앉았다. 여인의 진한 분냄새가 유리태
왕의 음욕을 자극하였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태왕은 얼른 얼굴빛을 바꾸고 송후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폐하, 소첩의 말씀 좀 들어 보세요.”
“송후,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있으신 게요?”
태왕은 요즘 들어 화희의 처소를 거의 찾지 않았다. 이삼일에
한번 송후의 처소를 찾는 태왕은 늘 그녀의 말을 듣게 마련이었
다. 송후는 화희 보다 훨씬 나이도 어리고 외모도 빼어났다. 또한
잠자리에서 태왕의 혼을 빼놓는 요분질과 태왕의 마을을 훔치는
요술(妖術)이 보통이 아니었다.
“태자 이야기입니다.”
송후는 태왕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태왕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의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슬며시 해명태자 이야기를 꺼냈다.
송후의 가벼운 입술이 태왕의 귓전에서 빨른 속도로 속살거렸다.
'해명이 곧 고구려 왕이 될 거라면서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닌다.
폐하께서 정정하신데 태자라는 자가 벌써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공공연히 입밖으로 흘리고 다닌다면 나라의 안위 뿐만 아니라 태왕
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서둘러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조정이
분열되고 백성들도 큰 혼란에 빠질 것이며, 추저분한 주변국 왕들
이 고구려의 내정에 간섭하려 들 것이 뻔하다.'
그러나 송후는 자신이 낳은 무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
다. 자칫 잘못 말했다가 아들 무휼에게 해가 미칠 수도 있었다.
“송후, 무휼이는 잘 지내고 있지요?”
태왕은 술잔을 비우고 지그시 두 눈을 감았다. 촛불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는 죽은 도절태자와 해명태자 그리고 무휼을 떠올
렸다. 모두 출중한 아들들이 틀림없었다.
‘무휼이가 아직 나이가 어리기는 하나 무용(武勇)이 해명이 못지않
다. 성격이 침착하고 치밀하며, 짐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아이가
번개처럼 나타나 나를 보우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
직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유리태왕은 면벽에 든듯 미동도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폐하, 어제 황룡국에서 온 공주는 어찌하실 것인지요?”
송후가 태왕의 삼매경을 깨웠다.
“모란 공주는 황룡국왕이 우리 고구려와 화친하는 뜻에서 잠
시 보낸 것입니다. 때가 되면 황룡국으로 돌려보내야지요.”
태왕은 이미 모란 공주의 미모에 마음이 기울어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딴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상당한 미색인데 폐하의 침첩(寢妾)으로 삼으시지요?”
송후가 태왕의 의중을 슬며시 떠보았다.
‘침첩으로 삼으라? 송후가 어쩐 일로 그런 말을 다하는가. 알다
가도 모를 것이 여인네들 속마음이로다. 침첩이라-.’
태왕은 송후가 모란 공주를 침첨으로 삼으라는 말에 속으로 무
척 기꺼워하였다.
“송후가 그리 마음을 써주니 참으로 고맙구려.”
'남자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예쁜계집을 보면 음심을 다스
리지 못하고 껄떡대니 원-.'
송후는 말없이 주억거리며, 유리태왕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유리태왕은 송후의 언니가 큰아들 도절(都切)만 낳고 죽은 것에
대해 송양왕과 송후에게 늘 미안해 하였다.
송후는 왕의 그같은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송양왕은 둘
째딸을 또 태왕에게 시집보내면서 딸에게 귀가 아프도록 한 말
이 있었다. 송후는 시집오기전에 부왕이 한 말을 곱새겨 보았
다.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
부왕의 그 한마디는 송후에게 큰 부담이었으나 무휼을 낳으면
서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 졌다. 만약 그녀가 무휼을 낳지 못했거
나 딸을 낳았다면 감히 화희에게 대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왕이 요즘들어 무휼에게 각별한 정을 쏟는 다는 것을 알고 그
녀는 날아갈 것 같았다.
국내성의 봄밤은 깊고도 따뜻했다. 송후는 태왕의 품을 파고
들면서도 해명의 이야기를 하였고 태왕은 그때 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묵시적으로 그녀에게 유의미한 언질을 주었다.
유리 태왕에게 시집오기전에 그녀는 남자를 다루는 법을 익혔
다. 어접린, 호보, 토연호, 귀등, 원박 등 소녀경을 달통한 그녀의
방중술(房中術)과 미태술(媚態術)에 유리태왕은 혼인 초기에는
밤마다 밭은 숨을 내쉬느라 밤낮이 바뀌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여러 방중술 중에 그녀의 토연호 기술은 가히 따를 후궁이 없었
다. 아무리 외모가 출중한 여인라하여도 이불 속에서 재주를 부리
지 못하면 금방 남정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마련이었다.
‘황룡국 왕이 그깟 활 하나 선물로 건네고 나의 완력을 시험하
려 드는구나. 괘씸한 지고.’
해명은 황룡국 사신을 맞이하며 주억거렸다.
“태자님, 우리 황룡국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활을 선물하오니
흔쾌히 받아 주소서.”
활을 받아든 해명은 얼굴은 기꺼워하는 빛이었으나 속내는 그렇
지 못했다.
“고맙소이다. 돌아가면 선우왕께 이 해명이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황룡국 모란 공주가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
가인이라 들었습니다. 공주는 잘 계시오?”
‘이런 빌어먹을-. 모란 공주님은 태왕에게 스스로 인질로 가셨구먼.
이일을 어찌한다-.’
사신이 뜸을 들이다가 해명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모란 공주님께서는 양국의 평화와 화친을 위하여 태왕께 기인(其人)
으로 가셨습니다.”
‘뭐라, 아버님에게 인질로? 노인네가 망령이 들었구먼.’
해명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황룡국 사신은 두 손을 비비며, 큰 죄라도 지은 듯 해명에게 굽실
거렸다. 해명은 이전부터 모란 공주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한 번도
속내를 보인적은 없었다. 해명은 부왕에게 모란 공주를 빼앗긴 것
같아 속이 쓰렸다. 해명은 손에 쥐고있던 파랑새가 창공으로 날아
가버린 것 같아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좋소. 내가 귀국에서 선물한 활을 쏴 보겠소이다.”
해명이 침묵을 깨고 활을 들었다.
“저희 황룡국 강궁으로 화살을 쏘면 화살이 천보(千步)는 거뜬히
나간답니다. 태자님은 완력이 좋으시니 훨씬 더 멀리 나갈 테지요.”
황룡국 사신은 해명에게 활과 화살을 건네면서 비굴하게 웃어보였
다. 그 비굴한 웃음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해명은 몰랐다. 해명
이 사대(射臺)에 올라 황룡국의 활을 들었다. 손아귀에 묵직하게 잡
히는 활의 감각이 고구려 활과 달랐다.
해명은 활시위에 화살을 끼우고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 활시위가 해
명의 오른쪽 가슴으로 최대한 당겨졌을 때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활이 두 동강나고 말았다.
“이게 황룡국이 자랑하는 활이 맞소?”
해명은 부러진 활을 잡고 짜증을 내고는 옆으로 획 집어던졌다.
“태자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소이다. 내 완력이 강한 게 아니라 활이 약해서 부러
진 거요. 다음에는 좀 더 강한 활을 주시오.”
해명의 수하들은 태자의 완력에 놀라며, 자신들의 주군(主君)이 대
단한 장사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였다. 해명이 황룡국에서 선물한
활을 사신이 보는 앞에서 부러트린 사건은 고구려 조정에 분란을 일
으키고 말았다.
태왕은 태자 해명이 무람없이 행동한 데 대하여 격노하였고, 무휼
을 지지 하고 있던 중신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태자의 무례한 행동을
비난하였다. 무휼의 생모인 송후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중신들을 시켜 태왕을 압박하여 해명을 태자의 위(位)에서
끌어 내리도록 하였다.
“폐하, 지금 태자의 일로 나라 안이 몹시 시끄럽습니다.”
“짐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보오.”
송후는 유리태왕과 반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떠한 묘안이신지 소첩이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왕후만 알고 있어야 하오.”
태왕은 문밖을 살폈다. 태왕은 황룡국의 선우왕에게 특사를 보내
태자 해명을 살해하라는 밀지(密旨)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것은 해
명을 처치하여서 황룡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차
기 태왕의 위(位)를 무휼이 잇게 하려는 무서운 계획이었다.
유리태왕이 해명태자를 죽이려하는 것은 그가 여러 차례에 걸쳐
해명을 국내성으로 불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고, 자신의 허락도
없이 졸본성에서 군사를 양성하여 자칭 고구려왕 노릇을 하는 태
자 해명의 방종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
다.
“왕후님을 뵙습니다.”
황룡국 공주 모란은 송후와 화희의 눈치를 보며, 아직은 태왕의
침실에 들지 않았다. 두 왕후의 묵인이 있어야 모란 공주는 태왕을
모실 수 있었다. 왕후의 뒤에는 각 부족들이 버티고 있었다.
각 부족에서 영민한 사람들이 대대로, 태대형, 울절 등 고구려 조
정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어 태왕조차 왕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마음대로 내칠 수는 없었다.
“과연 듣던 대로입니다. 낙안(落雁)의 왕소군(王昭君)이나 침어(沈
魚)의 서시(西施)도 공주 곁에 서면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송후는 왕후의 체면을 잊고 모란 공주를 보비위하였다.
“왕후님, 과찬이십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자주가 아니라 매일 오세요. 내가 요즘 무척 적적하답니다. 그리
고 태왕께서 공주를 무척 마음에 드셔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부
터 공주가 페하의 침소에 들어 시중을 드셔도 됩니다.”
송후는 마치 큰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모란 공주에게 살갑게
대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하였다.
“고맙습니다. 하해와 같은 왕후님의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
“갚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송후는 옹골차며 오달져 보이는 모란 공주가 미뻐보였다. 그녀는
인사 온 모란 공주와 거래를 시도하였다. 송후의 거래 내역을 다
듣고 모란 공주는 환한 미소로 송후에게 응답하였다.
‘내가 바라던 대로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고 있어. 우리 황룡국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나 한 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그날 밤, 송후의 묵인 아래 모란 공주는 태왕의 침소에 들게 되었
다. 태왕은 억실억실한 화희나 음종하고 가드락가드락대는 폐첩(嬖
妾) 송후 보다 풍신이 단정하고 영민해 보이는 모란 공주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 황후가 늦서리 맞고 시드는 추국(秋菊)이라면 모란 공주는 오뉴
월에 아침 이슬을 머금고 갓 피어난 벽도화(碧桃花)였다. 초야를 치
른 후 유리태왕은 하루 종일 모란 공주를 곁에 두고 있을 정도였다.
태왕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모란 공주는 서서히 본심을 드러내
기 시작하였다.
“폐하, 소첩 생각에는 해명 태자보다 무휼 왕자가 더욱 믿음직합니
다. 무휼 왕자는 많은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음은 물론 주변
국에서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있나이다. 아버님도 해명 태자보다
무휼 왕자를 더 신뢰하고 계십니다.”
공주의 야살스런 말에 유리태왕은 그녀의 실팍한 하체를 주무르며
흐뭇해 하였다.
“공주가 과연 나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구나.”
태왕은 마음 속의 말들을 꺼내 모란 공주에게 들려주었다. 태왕이
황룡국왕에게 밀서를 보내 해명을 죽이라고 할 계획을 모란 공주
는 기꺼이 수용하였다.
공주는 자신이 데리고 온 시자(侍者)를 내일 당장 본국으로 보내
태왕의 뜻을 전하겠다고 하였다. 국내성의 늦봄은 달콤하였고, 태
왕은 긴긴 밤을 달뜬 상태에서 보내며 지상 최고의 극락을 만끽하
였다.
며칠 후 황룡국에서 사신이 졸본성에 도착하였다. 해명은 지난번
에 황룡국왕이 선물한 활을 망가트린 일로 부왕과 대신들에게 비난
을 받고 있는 터라, 황룡국 사신의 방문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해
명의 모후인 화희는 해명을 찾아와 당장 부왕을 찾아뵙고 황룡국
에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을 용서받으라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황룡국 선우왕께서 나를 초대한다고?”
“태자님, 대왕께서는 지난일은 모두 잊으셨습니다. 행여 그 일로 태
자님이 마음을 다쳤을까 염려하여 태자님을 위무하려고 초빙하는 것
이니 뿌리치지 마소서.”
황룡국 사신은 정중한 태도로 해명에게 황룡국 왕의 친서를 건넸다.
“기꺼이 가야지. 그런데 모란 공주는 돌아 왔소?”
해명은 황룡국왕의 초대보다 모란 공주의 소식이 더 궁금했다.
“아닙니다. 국내성에 계십니다. 태왕 폐하의 총애를 받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태자님, 황룡국에는 절세가인들이 많습니다. 둘째
월희 공주는 황룡국 최고의 미인입니다.”
사신이 월희 공주의 미색에 대하여 침을 튀겨가며 극찬하였다.
‘뭐라, 모란이 부왕의 후궁이 되었단 말이냐. 그런데 황룡국에
모란 공주보다 더 절색의 미인이 있다고, 월희 공주?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인데.’
해명은 아쉽지만 모란 공주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여인
을 두고 부자지간에 연적(戀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명
은 이튿날 사신을 따라 황룡국으로 향했다.
졸본성에서 황룡국 도성까지 말을 타면 이틀 정도 걸리는 아주 가
까운 거리였다. 고구려 태자가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황룡국 백성
들은 고구려 태자를 구경하기 위하여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