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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암투(4)

* 창작공간/중편 - 꽃들의 암투

by 여강 최재효 2018. 7. 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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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부




                                                                                                                                                      - 여강 최재효





 고구려 태자 해명이 황룡국왕의 초대를 받아 갔다가 무사히

고구려의 졸본성으로 돌아왔다. 해명의 무사귀환을 두고 졸본

과 국내성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해명이 영영 고구려로 돌

오지 못할 것을 기대했던 한나라, 낙랑국, 북옥저, 동부여, 북부

여 등 주변국들은 국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해명의 무사귀환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해명태자의 아버

지인 유리태왕이었다. 자신의 밀서가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는 것을 깨닫순간 태왕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태왕은 대놓고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 났다는 소문이 날 경우 자신

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물론 나라의 백성들로부터 지탄

을 받을 것이또한 해명의 생모 화희(禾姬)를 지지하고 있는 고

구려내 부족들과 무휼을 지지하는 부족과 송양국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이 뻔다.


 송후는 태왕에게 황룡국의 처사에 강한 불만을 토해내며, 외교적

으로 문제를 삼으라고 유리태왕에게 간청하였다. 태왕은 황룡국

공주 모란을 불러 심하게 문책하였지만 차마 그녀를 죽일 수 없었

다. 


 아들 해명이 사지(死地)였던 황룡국에서 돌아오고 얼마 후에 화

태왕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태왕이 자신을 멀리하고

는 것에 가슴앓이를 해왔으나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식이 고구

려의 태자의 지위에 올라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러나 지아비가 아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 사실을 접하

고 그녀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화희는 자신과 태자

해명을 지지하는 부족의 대표인 고추가와 신하를 은밀히 불렀다.


 “문제는 무휼 왕자입니다. 무휼은 나이는 어리지만 상당히 침착

행동거지가 곧고 정도(正道)를 걷는지라 함부로 그를 헐뜯는

을 하거나 그를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화희를 지지하는 부족의 대사자가 무휼에 대한 평가를 내놓았다.


 “대사자, 무휼을 깎아내리기 위해서는 송가년을 쳐야 합니다. 그

년을 함정에 빠트리면 자연 그 악영향이 무휼에게 가게 됩니다.

그때 기회를 봐서 그년과 무휼이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을 니다.”


 화희는 머리회전이 빠른 여인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태자 자리

에 굳히고 차기 고구려 태왕의 위에 추대하기 해서는 고구려 조

정 내의 반대파 중신이나 외부 적들의 흉계를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지모(智謀)가 있어야 했다. 


 “왕후께서 송후를 칠 계책이 있습니까?”
 “두 분께서 나의 계책이 어떤지 한번 들어 보세요.”
 무휼의 외가는 고구려의 인근 국가인 송양국(松讓國)이 었다. 송양

왕은 두 딸을 모두 현재의 고구려 태왕에게 시집보냈다.


 고구려보다 작은 나라가 고구려를 쥐락펴락 조정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은 고구려 왕을 자신의 외손(外孫)으로 앉히는 거

였다. 송양왕이 차기 고구려 왕의 외할아버지가 된다면 송양국의 안

은 확고부동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지도 공고히 될 수 있었

다. 화희는 송후의 조국인 송양국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해명과 자신을 지지하는 부족의 사병들을 은밀하게 동원하여 송양

병사로 위장한 후에 송후와 무휼을 지지하는 부족 마을을 쑥대

으로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무휼을 직접 공격하거나 살해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으나 만약 실패할 경우 그 후폭풍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왕후의 계획이 참으로 교묘합니다. 제 동생이 대모달(大模達)입니

다. 동생 수하에는 여러 명의 말객(末客)들이 있습니다. 한명의 말객

휘하에 일천 명의 병사가 있습니다. 말객 두세 명만 움직이면 충분합

니다. 그럼, 제가 아우에게 말해 사병 이삼천 명을 동원하여 송양국

과 가까운 지역에 소요사태를 일으키라고 하겠습니다.”

 고추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희의 눈치를 살폈다.


 “좋아요. 나는 두 분만 믿고 있겠습니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습니

다. 일이 잘되고 해명이 태왕의 지위에 오르게 되면 두 을 대대로

태대형의 지위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화희의 말에 두 사람의 입이 양쪽 귀에 걸렸다.


 대사자는 6등급의 지위였고 대대로(大對盧)는 일인지하만인지상

지위였다. 고구려는 5부족 연맹체로 구성되어 있는 연합국가 형태로

출범하였다. 태왕이 5부족을 완전히 통괄하지 못한 때라 5부족 중 한

두 부족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킬 경우 태왕의 목숨은 풍전등화 신

세가 된다.


 화희는 두 사내가 나가자 깔깔거리며, 박수를 쳐댔다. 그녀는 한나

라 고조 유방(劉邦)의 고사(古事)를 생각해 냈다. 유방은 본처인 여

후(呂后)는 지아비인 유방에게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유방이 후궁

인 척부인(戚夫人)만 총애하였기 때문이었다.


 유방이 죽고 그의 아들이 황위에 오르자 여후는 척부인의 사지를

자르고 두 눈알을 파낸 뒤 변소에 집어넣고 인체(人彘), 즉 사람돼지

라 부르게 했다. 해명이 태왕의 위에 오르면 제먼저 무휼생모

인 송후와 다른 후궁들을 참혹하게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후와 후궁들이 죽게 될 경우 그들 몸에서 태어난 왕자들은 당연

히 제거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네가 친정에 사람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느냐?”
 “태왕 폐하, 확실하게 소첩의 수하를 아버님에게 보냈습니다. 소첩

도 태자무사히 귀국한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모란 공주는 억울하다는 듯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친정 아버지 선

우왕의 속뜻을 궁금해 하였다. 


 “당분간 너는 외궁(外宮)에 나가 있도록 하여라.”
 “폐하, 너무하십니다.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번 실패

하였다고 소녀를 이리 내치십니까?”
 모란 공주는 태왕에게 눈물로 하소연하였지만 소용없었다.


 냉혈한(冷血漢)으로 변한 태왕을 보며 모란 공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 그녀는 해명이 무사히 돌아온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 선우왕은 딸의 부탁을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


 딸의 부탁이 아니라 사실은 고구려 태왕의 부탁이었다. 그런데도

적지(敵地)에 있는 딸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부왕이 자신의 부탁을

거부한 까닭을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맞아. 월희 때문일 거야.’
 모란 공주의 생각이 동생 월희 공주에 닿았다. 그 애가 해명 태자를

드긴 거야. 그렇지 않고서 일이 틀어질 리가 없어. 아아, 자매사이

에서도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다니…….


 혹시, 부왕이 일부러 해명 태자를 살려 보낸 것일까. 죽이는 것보다

살려 내는 것이 황룡국에 더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신 걸까. 도대체

부왕의 속을 알 수가 없구나. 돌아가야지. 태왕이 이번일로 나를 대

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 애정이 식은 거야.


 내 나라 황룡국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러나 기왕에 고구려에 왔으니

무슨 물이라도 가져가야 해. 무슨 선물을 만들어야 부왕이 좋아하

실까. 모란 공주는 두문불출하면서 잠시 사태의 추이를 두고 보기로

했다.


 “공주, 뭐해요?”
 “어머나. 왕후께서 누추한 곳에 웬일로…….”
 해명이 살아 돌아온 일로 태왕 다음으로 낙담한 사람은 바로 송후

다. 


 그녀는 아들 무휼이 다음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

이면서 자신과 무휼을 지지하는 부족과 중신들에게 넌지시 태왕의

의중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해명이 당당하게 귀국함으로써 그녀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

다. 그녀는 황룡국왕이 밉기도 하였지만 이미 글러버린 일을 가지

고 왈왈부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모란 공주를 자기편으로 확실하게 만들어 놓않으면 후환이

생길 것 같았다. 모란 공주가 국내성에 들어 올 때부터 송후모란을

환대하며 모란 공주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해명이 고구려의 차기 태왕이 되면 안 됩니다.”
 송후는 모란 공주에게 해명을 헐뜯는 말을 쏟아냈다. 그는 독사와 효경

(梟獍)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태왕이 되면 나와 우리 무휼이는 죽은 목숨

입니다.


 그리고 황룡국 역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는 졸본성에

머물며 군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계책으로 그를 반드시 없애

합니다. 모란 공주가 나를 도와주시면 나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

습니다. 송후는 진심으로 모란 공주에게 속내를 보이며 도움을 요청

하였다.


 “왕후께서 무슨 묘안이라도 가지고 계신지요?”
 “해명을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방도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그 어미인 화희를 공주가 함정에 빠트리는 겁니다.”


 “화희 왕후를 어떻게 함정에 빠트리지요?”
 갑자기 모란 공주의 눈이 빛나며, 관심을 보였다. 조국 황룡국의 평화

안정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는 모란 공주였다.


 “화희에게 두 명의 책사가 있어요. 화희를 지지하는 부족의 고추가와

자인데 그 두 명은 주색(酒色)에 눈이 먼 속물들 입니다. 그 두 명

을 공주의 사람으로 만들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어요.”
 모란 공주는 송후의 의중을 알고 배시시 웃었다.


 모란 공주는 고구려로 오기 전부터 남성편력이 심한 편이었다. 황룡

에서 인물 한다고 소문난 사내는 모두 모란 공주에게 색공(色供)

을 바쳐야 했다.


 송후는 모란 공주에게 황금 일만 냥을 건네며 빠를 시일 내그 두

남자의 혼을 빼놓고 공주의 사람으로 만들라고 하였다. 모란 공주는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하루 종일 외궁에 파묻혀 지내는 신세였다.

왕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모란 공주는 화병이 날 정도 였다. 찾

오는 사람도 없어 밤낮으로 술을 입에 달고 지냈다.


 모란 공주는 시비(侍婢)를 시켜 먼저 대사자를 초빙하였다. 대사자

모란 공주가 태왕의 총애를 잃고 외궁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왕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니 모란 공주는 무주공산이렷다. 황룡국

최고의 희인 공주를 잘만하면 애첩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야.’


 모란 공주의 뜻밖의 초대에 대사자는 황홀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황룡국 공주의 초대를 받는 일은 태왕의 부름을 받는 것 보다

흥분되고 응분의 대가가 있을 거란 희망을 갖게 하였다.


 “대사자님, 놀라셨지요. 대사자님이 고구려에서 가장 미남이라 들

습니다. 저는 미남자를 보면 그냥 지나지 못한 답니다.”


 “공주님,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음을 용서하소서.”
 모란 공주의 미소에 대사자는 숨이 넘어갈 듯 했다.


 공주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을 익혀 이미 대사자가 무슨 엉

큼한 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공주는 금준미주에 옥반

가효를 준비하여 대사자를 맞이하였다. 대사자는 단순한 사람이었다.

돈과 권력을 손에 쥐어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었다.


 “이 술은 황룡국에서 가져온 술이랍니다. 백년 묵은 영약(靈藥)으로

담근 인데 한잔만 마셔도 십년은 젊어진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대사자는 모란 공주가 건네는 술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공주의 빨간 입술에서 요기(妖氣)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하얀 치아

붉은 혀는 대사자 혼을 금방 빼놓고 말았다. 빈 술병 세 개가 탁자 위에서

나뒹굴 때 쯤 대사자와 모란 공주는 합방하였다.


 다음날 오후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대사자는 모란 공주의 충복(忠僕)이

되어 그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낼 정도가 되어있었다. 왕의 여자

를 건드렸으니 이 일이 새나가면 대사자의 목은 무사하지 못것이었

다. 이튿날 모란 공주는 화희의 책사 중 또 한 사람인 고추가에게도

를 던졌다.


 나이 많은 고추가는 금방 술에 취해 해롱거렸다. 늙수그레한 나이에

룡국 공주를 독대하니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고추가는 모란 공주

송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또한 그녀가 해명

죽이기 위하여 스스로 고구려 태왕의 애첩이 된 사실도 전혀 모르

있었다.


 늙고 추한 남자를 유혹하는 일은 모란 공주에게 누워 떡먹기 보다

일이었다. 공주가 따르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시던 고추가는

서너 잔에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 했다.


 “고추가께서는 고구려 최고의 지략가라 들었습니다. 저는 황룡국 공

이지만 해명 태자님을 존경한답니다. 앞으로 제가 고추가님과 친

게 지내면 자연 해명 태자님을 뵐 수 있겠지요?”


 “공주님, 말하면 잔소리지요. 아무 염려 마세요. 제가 조만간 태자님

뵙게 해드리지요. 그 전에 나와 아주, 아주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알다마다요. 오늘은 고추가님 품에 안겨 맛 좋은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우싶답니다.”


 ‘옹골차고 실팍한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오는 구나.’
 고추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추가는 나이는 꽤 먹은 편이었지

만 술상당히 센 편이었다. 고추가의 간은 이미 부어 있었다.


 새벽이 되어서 끝난 술자리에 이어 운우지락의 질펀한 향연이 펼쳐

졌다. 추가가 일어난 시간은 다음날 해가 질 무렵이었다. 고추가

시 하룻밤 사이에 모란 공주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짓에 따라 움직이는 영혼 없는 남자는 살아있는 송장이나

았다. 대사자와 고추가는 화희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하루 종일 모

주의 전갈이 오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셔요.”
 대사자와 고추가는 화희가 자신들에게 송양국과 고구려 접경 지역에

소요 사태를 일으켜 송양국의 둘째 공주인 송후를 곤란하게 만들려

는 계획을 모두 말해주고 말았다.


 그들은 모란 공주는 송양국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설사

의 계획을 안다고 하여도 태왕에게 버림받아 외궁에 있는 모란 공

가 무엇을 어찌하랴 싶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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