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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암투(3)

* 창작공간/중편 - 꽃들의 암투

by 여강 최재효 2018. 7. 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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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부


                                                          - 여강 최재효



 황룡국왕은 고구려 유리태왕으로부터 밀서를 받고 많은 고민을 하

고 있었다. 해명을 죽인다면 당장은 아무 일이 없을지 모르지만 나중

에 고구려와 관계가 악화 될 경우 태왕은 아들의 원수를 갚는다는 빌

미로 국경을 넘어올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였다.


 밀서가 아닌 공식적인 국가 문서라면 모르지만 고구려 태왕과 황룡

왕만 아는 밀서는 위험이 컸다. 나중에 황룡국왕이 고구려의 태자

해명을 죽였다는 소문이 주변국들로 퍼져 나갈 경우 대외적으로 고립

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또한 고구려 국내성에는 큰딸 모란 공주가 인질 아닌 인질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선우왕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왕은 신하들

에게 태왕이 보낸 밀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밀서를 공개할 경우 밀서의 내용이 알려질 것이고, 고구려는 내분

에 휩싸이게 됨은 물론 황룡국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구려 태왕으로부터 밀서를 받고 할 수 없이 해명을 초대는 하였

지만 선우왕은 마음이 가볍지 못했다.


 “태자, 먼 길 오느라 고생하였소.”
 땅거미가 어둑할 무렵 황룡국 선우왕은 손수 왕궁 문 앞까지 나와서

일행을 영접하였다. 


 “대왕, 지난번 활 사건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결례를

하소서.”
 해명이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아니오. 다 지나간 일이오. 태자는 그일을 괘념치 마시오. 그리고

여긴 내 둘째 여식 월희입니다. 황룡국에서 제일가는 미색입니다.”
 ‘지난번 사신의 말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아비가 딸을 미인이라

하다니, 얼마나 아름답운 여인이기에…….’
 해명은 선우 왕 옆에 고개를 반쯤 숙이고 서있는 월희 공주를 보고

눈앞이 아찔하였다. 방금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가 분명했다.


 “월희야 뭘하니, 태자님께 어서 인사올리지 않고.”

 “소녀, 월희라 하옵니다. 태자님을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월희 공주가 고개를 들어 해명을 똑바로 보고 인사를 하였다. 해명

태자가 월희 공주를 바라보다가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뻔 하였다. 해

명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는 고구려 태자 해명이라 하오.”
 ‘아니. 소문에는 불학무식하고 거만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

구나. 내가 그동안 해명 태자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었구나. 이렇게

헌헌장부에 옥골선풍인 줄 몰랐어.


 내가 잘못하면 천하의 인재를 죽일 뻔하였어. 바라보아도 든든

하다. 나에게도 이런 왕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선우왕은 해명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황룡국에는 과연 미인이 많다더니 사신의 말이 틀리지 않구나.

일찍이 이렇게 예쁜 미인을 본적이 없었다. 월희 공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어. 이런 미인이 황룡국에 있었다니…….’
 해명은 얼굴이 빨갛게 익어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월희 공주

앞에서 숨소리 조차 내지 못했다.


 ‘소문하고는 천양지차로구나. 나는 해명 태자가 호랑이나 늑대처럼

억실억실하고 무지막지하게 생긴 남자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

아. 장부답고 믿음직하다.’
 월희 공주 역시 양쪽 볼이 달아오르고 속이 울렁거렸다. 해명은 황룡

국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미장부였다.


 “자, 안으로 드십시다.”
 선우왕은 해명을 위하여 성대한 주연을 준비하였다. 궁궐에서 가장 크

고 넓은 대청에 황룡국 신하들이 모두 참가하여 해명을 맞이하였다.

연상 마다 한나라와 낙랑국 그리고 옥저와 예맥에서 수입한 산해진미로

가득하였다.


 수백 명의 미희들이 주청을 돌면서 시중을 들었고 수백 명의 악사들이

은은하고 경쾌한 풍악으로 주연장의 흥취를 돋웠다. 황룡국 선우왕과

왕비, 해명 ,월희 공주는 주연상 가운데 마련된 주연석에 앉고 좌우로

길게 중신들과 미희들이 앉았다.


 “오늘은 고구려 해명 태자께서 우리 황룡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오래전

부터 나라는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로 형제지간과도 같습니다. 그

동안 풍문으로만 듣던 해명태자의 고매한 인품을 직접 뵈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황룔국의 왕은 제신들과 한뜻으로 해명태자의 만수무강을 축

원하며, 두 나라가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오늘밤에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껏 드시기 바랍니다.”

 선우왕은 자신이 일국의 지존이라는 체면도 잊은 채  아들같은 고구려

태자 해명에게 아부성 인사를 건넸다.


 “대왕, 고맙습니다. 저를 이리 환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

다.”
 해명은 선우왕에게 허리 굽혀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선우왕의 인사말

이 끝나자 풍악이 울리고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해명은 선우왕과 황룡

중신들이 건네는 술잔에 금방 취기가 올랐다. 월희 공주는 해명의

곁에 바싹 붙어 앉아 해명의 시중을 들었다.


 “대왕, 해명 태자를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소비가 보기에는 무례

거나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소인배는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희가 있잖아요. 월희의 배필로 적격입니다.”
 황룡국 왕비는 소문으로만 듣던 해명이 전혀 무례하거나 불학무식해

이지 않았다. 왕비는 선우왕에게 해명태자를 칭찬하느라 속살거렸

다.


 왕비는 첫눈에 해명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녀는 해명에게서 눈을 떼

하고 해명의 행동거지를 예의 주시하였다. 왕비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녀해명을 장차 황룡국의 둘째 사윗감으로 생각하는 등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큰딸은 아비에게 둘째딸은 그 아들에

게 시집보내려고 하는 왕비의 뜻이 가상하기는 하나 선우왕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왕비,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영웅호걸이 될 자질이 충분해요. 저런

사내를 죽이면 천벌을 받을 겁니다. 그가 황룡국에 있는 동안 최고의

국빈으로 대접하고 월희에게 시중을 들도록 해야 겠습니다.”


 “대왕, 기회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절

호의 기회입니다. 하늘이 우리 황룡국을 돕고 있습니다.”
 황룡국 선우왕과 왕비는 해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 또한 그를 월희 공

주의 배필로 적합하다고 보았다.


 “태자님, 마음 푹 놓으시고 마음껏 드세요. 소녀, 예전부터 태자님의

고명을 듣고 뵙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지내왔습니다.”
 “월희 공주, 고맙습니다. 내가 마치 요지경(瑤池鏡)에 와 있는 듯한 착

이 듭니다. 공주는 지금까지 내가 본 여인들 중에 최고입니다.”


 “과찬이세요.”
 해명은 선우왕과 왕비 그리고 중신들이 따르는 술잔을 남기지 않고 모

마실 정도로 호주가(好酒家)였다. 술을 마시고 풍악에 맞춰 월희

춤을 추며 흥겨운 한때를 보내는 사이에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아무리 장사라 할지라도 술 수백 잔을 받아 마시고 올바른 풍신을 유

지하기는 어려웠다. 주연장에서 대취하여 잠이든 해명은 월희 공주와

침소에 들었고 시비들은 밤새 침전을 지켰다.


 “아들아, 이제는 우리 모자 두 다리 뻗고 잠잘 수 있게 되었구나.”
 “어머니,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송후는 아들 무휼 왕자를 불러 저녁을 함께 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다음 왕위는 네가 이을 것이야.”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무휼은 두눈을 껌뻑거리며 모후의 말뜻을 해석하려 하였다.  


 “며칠만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송후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 무휼에게 태왕과 은밀히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해명이 황룡국에 초대받아 가 있는 것이며, 그곳에서 태왕

의 밀명에 라 해명이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모두

이야기 해주었다.


 또한 한나라와 동부여와 북부여, 낙랑국, 북옥저 등 주변국들

태자 해명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으며, 그들은 해명이 고구려

의 태자로 있는 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태왕의 뒤를 이을 왕자는 당연히 무휼이 될 것이며, 태왕

위에 오르면 아버지 태왕의 유지를 받들어 주변국들과 사소한 마

찰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실을 다지며 때를 보아야 한다. 

송후는 곧 무휼이 태왕이 될 것처럼 말하였다.


 “어머니, 소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무휼은 송후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려 하였다.


 '형님은 고구려의 태자입니다. 형님이 졸본성에 남아 이곳 국내성

으로 오지 않는 이유는 아버님이 유약하고 줏대가 없기 때문이며,

도절 큰형님을 자결케 한 아버님의 갈팡질팡하는 외교의 산물이라

고 봅니다.


 만약에 해명 형님이 황룡국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경우 다음번

희생양은 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절대로 해명 형님이 죽으면 안 됩

니다.'

 무휼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모후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사내가 큰 뜻을 품으려면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너는 지금다 더 강인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무휼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송후는 도리어 아들을 유약하다며

꾸짖었다.


 이미 큰형 도절이 아버지 태왕의 명령에 의해 자결을 하였고 , 이

번에는 둘째형 해명까지 죽이려는 부왕의 복잡한 속내를 무휼은

경계하였다. 무휼은 영웅들의 색쇠애이(色衰愛弛)의 묘리(妙理)

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


 큰형 도절이 죽은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무휼에게 이모가 되

는 송양왕의 큰딸, 즉 태왕의 첫 번째 왕후의 요절이었다. 태왕

은 주변국 특히 강국인 동부여의 인질 요구에 태자였던 도절을 보

내려고 하였지만 도절은 거부하였다. 


 만약 도절의 생모가 살아 있었더라면 도절은 자결을 강요받지 않

았을 것이며, 지금도 태자의 자리에 있었을 것이었다. 도절이 죽

고 태왕의 둘째 아들 해명이 태자에 책봉되었지만, 그는 지금 부왕

의 미움을 받아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 다니고 있는 절박한 상태였

다.


 해명의 생모는 한나라의 여인인 치희를 내쫓은 화희였다. 태왕은

치희가 쫓겨난 뒤로 화희를 미워하게 되었고 결국 그 미움은 화희

의 아들 해명에게 옮겨갔다.


 남녀의 애정 관계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안개 속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같았다. 무휼은 지금 부왕이 생모인 송후

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진, 해색주, 재사 등 이복동생들이

더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만약 생

모인 송후가 태왕의 눈 밖에 나면 자신이 언제 도절이나 해명같이

부왕에게 죽음을 강요당하는 처지가 될지 알 수 없었다.  


 “태자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공주, 기다려주시오. 일이년 내로 다시 그대를 만나러 오리다.

만약 내가 올 수 없는 경우에는 공주를 고구려로 부를 겁니다.”
 황룡국에 초대되어 갔던 해명은 한 달 정도 머물다가 고구려로

돌아가게 되었다.


 황룡국 선우왕은 해명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고구려 태왕의 부

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을 죽여 달라는 태왕의 부탁을 선우

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우왕의 목적은 황룡국이 고구려의 침입

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소문과 달리 해명은 상당히 영특하고 담력이 있으며, 능히 천군

만마를 호령할 수 있는 지략을 갖춘 장수감이면서 나라를 능히 다스

릴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선우왕은 해명을 죽이는 대

신 사위로 선택하였다.


 그는 고구려 왕자를 비열한 방법으로 죽여 고구려와 주변나라들의

원한을 사느니 차라리 해명을 끌어안음으로써 화해의 길을 도모하고

자 하였다. 큰딸이 고구려 태왕의 애첩이 되어 해명을 제거하고자 모

계를 꾸미고 있는 중이지만 선우왕은 마음을 바꾸었다.


 선우왕은 둘째딸 월희 공주를 해명과 짝을 짓도록 주선하였다. 월희

공주는 해명이 황룡국에 온 첫날부터 한순간도 그의 곁을 나지 않

았다.


 “저는 이제 태자님의 여인입니다. 죽을 때 까지 태자님만 생각하겠

니다. 가급적 빨리 오셔요. 태자님이 떠나시면 저는 이제 무슨 낙으

로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태자님이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벌써

부터 그리워지는 걸요.”
 월희 공주는 해명의 품에 안겨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황룡국 선우왕 부부는 가슴이 아팠다. 딸이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를 가까이 둘 수 없다는 현실이 얄밉기만 하였

다.  그러나 상대는 고구려 태자의 신분이었다. 선우왕은 태왕의 진

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 해명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였으니 곧

태왕이 또 떤 요구를 해올지 걱정이 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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