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배日杯
- 여강 최재효
공가空家에 오로지 한 사람이 있고
대지大地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
대월對月하며 얼굴을 펴보려 하는데
천년 바위가 되어있어 뜻대로 되지 않네
사람이 그리워도 볼 수 없어
단심丹心으로 밤새워 달려가 보아도 먼발치일 뿐
변심한 세상에게 고래고래 소리쳐 놓고
뭇시선이 두려워 납작 엎드려 있네
반쯤 지나간 쓸쓸한 궤적軌跡은 안개 속에 있고
무거운 이력履歷만 태산 같은데
다행히 금주錦酒 한 동이 품안에 있어
이 풍진風塵에서 힘없이 웃을 수 있네
밤하늘을 나는 저 외기러기도
한 쌍으로 창공을 날 때 오늘을 몰랐을 테지
부질없이 한恨을 품어본들
어찌 한잔 미주美酒에 비할 수 있을까
금년에는 이미 만화萬花가 피고지고
고운 단풍도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명춘明春에 화신花信이 전해질 무렵
내 고운임 앞에 두고 수작酬酌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