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無書
- 여강 최재효
무소식이 오히려 이 몸에게 위안이 됩니다
만 백 년 세월이 무에 그리 두려울까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돌부처로 먼발치에 계시면 됩니다
저 인당수에 비친 초승달은 알고 있겠지요
억지로 소경이 돼야 했고
뒤늦게 귀머거리로 살아야 하는 일이
피할 수 없는 천형天刑이라는 것을요
백구白鷗처럼 창공을 훨훨 날 수 있다면
먼 섬에 흘러와 탄식하고
제팔자를 탓하며 원가怨歌를 부르는 일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연분緣分이 천지신명의 뜻이라면
별리別離는 속없는 사람들 객기 아닐는지요
한세월 여명이 드리울 때까지 공방空房에
온기 없는 금침衾枕만 있었어요
지난해 돌풍에 꺾인 버드나무 아픈 자리에
새 가지가 자라나 바람에 흔들리고
포구에는 오가는 배도 보이지 않아
올해는 홀로 빈 잔을 잡을 일도 없을 듯 해요
춘화春花와 여인麗人의 마음 쉽게 시들고
미주美酒 역시 쉬 변하니
뉘라서 깊이 흉금을 내보일 수 있을까요
그냥 그렇게 먼발치에서 한 오백년 계셔요
백령도 두무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