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않는 새(5)
- 여강 최재효
5
“여사님, 기분 좋으시죠? 어제 두 아드님 내외하고 두 따님 부부가 얼마나 보
기 좋던 지요? 두 아드님은 키도 훤칠하시고 잘 생기셨어요. 따님들과 며느님
들은 탤런트 뺨치는 미모를 지니고 계셔서 너무 부러웠어요.”
김인희 실장은 S의 호출을 받고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S의 아들딸들 자랑에
호들갑을 떨었다. 김 실장의 달콤한 말에 S는 씁쓸히 미소만 지었다.
“김 실장님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요?”
“그럼요. 여사님께서 자식 농사 하나는 참 잘 지으신 거 같아요.”
“그래요. 잘 지었지요. 너무 웃자라서 탈이지......”
“네에? 여사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김 실장이 두 눈을 크게 뜨고 S의 얼굴
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S의 얼굴에 잔잔하게 퍼지는 우수(憂愁)의 어두운 그
림자가 S를 애잔하게 만들었다.
“김 실장님, 그동안 김 실장님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말로
공치사하려고 불렀어요. 나 신경 쓰느라 고생 많았죠?”
S는 마치 먼 여행을 떠
나는 사람처럼 김 실장의 손을 잡았다.
“어머? 여사님, 왜요? 어디 가세요? 혹시 아드님들이 여사님을 퇴원이라도
시키시겠대요?”
김 실장은 S의 알쏭달쏭한 말에 불안했다.
“가긴요? 이 병원이 내 집보다 더 아늑하고 편한 걸요. 내가 만약 퇴원해서
집에 가면 난 새가 돼야 해요. 울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는 자식들에게 철
저히 길들여진 새가 되어야 해요.”
S의 두 눈에 금방 눈물이 폭포수처럼 떨어 질것 같았다. 김 실장은 S의 자식
들이 왔다간 영향으로 S의 심기가 몹시 불편
해진 것을 감지하고 잠시 전 호들갑을 떤 것에 대하여 속으로 미안해 했다.
“여사님, 새가 되다니요? 전 무슨 말씀인지......”
“김 실장님.”
“네에, 여사님. 말씀하세요.”
“김 실장님 네는 형제가 어떻게 되나요?”
“저희는 딸만 셋이에요. 제가 장녀구요. 막내는 아직도 미혼이에요. 그래
서 친정어머니는 막내만 보면 얼른 시집가라고 성화에요.”
김 실장의 말에
S는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씽긋 웃기도 했다.
“요즘 딸들이 아들들 보다 훨씬 좋다고 하지요? 나는 아들 딸 넷을 두었
지만 요즘은 자식이 없느니만 못해요. 차라리 자식 없이 혼자 늙어가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처음 시집와서 자식이 없어서 안달하다가
겨우 자식을 얻어 키우느라고 한 평생을 다 바쳤어요. 그런데 자식들이 다
커서 각자 짝을 지어 제 인생길을 걷더니 나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보고있
어요.
나는 자식이 넷이지만 갈 곳이 없어요. 내 비록 나이는 많지만 마음만은 이
십대에요. 지금이라도 저 창공을 훨훨 날고 싶어요. 더 시간이 지체되면 나
는 정말로 박제된 새가 될 것 같네요. 사람은 할 일 있어야 해요. 김 실장님이
보기에 나는 살아있는 송장이죠? 내가 빨리 이승을 떠야 숟가락 하나라도 덜
지요. 오늘 자식들이 다녀갔는데, 기쁨보다 참담한 심정이에요.
어제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나는 저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었어요.
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면 십 미터는 족히 훨훨 날 수 있을 테지요.“
S의 양 눈가에 어느새 부연 액체가 스며들고 있었다.
“여사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직도 사실 날이 많이 남아있는데요.
요즘은 의학이 발달되어 건강관리만 잘하시면 100세까지 얼마든지 사실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여사님은 백 이십세 까지 사실 수 있을 것 같아
요.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씀 하지마세요. 여사님을 바라보는 아들, 딸, 손
자들은 어찌하라고요. 오래오래 사시면서 호강을 누리셔야지요.
여사님이 아드님과 따님들을 이해하셔야 해요. 여사님과 최소한 30년 이
상 차이가 나니까 여러 면에서 의견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를거에요.
저희 어머니도 툭하면 여사님처럼 그런 말씀을 하세요. 결국 자식들이 부
모님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한 결과겠지만 이 세상에 자식들 만큼 소중한
재산이 어디 있겠어요.
아버지는 저희 세자매가 어렸을 때 아들이 없어서 서운해 하셨는데 이제는
세 딸이 남편과 외손자들은 데리고 자주 친정에 들리고 말동무도 해드리니
까 지금은 흡족해 하세요. 제 남편은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고 나중에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면 제사도 모시겠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감격해 하세요.
“
S는 김 실장의 말을 재미있게 들으며 소녀처럼 좋아하였다.
“아이고, 김 실장님 부모님은 정말로 복 받으신 분들이세요. 세상에 재물이
많다고 행복하고 편한 것은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서로
소통하면서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펴야 행복한 인생이지요. 저 한 몸 편하자
고,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하여 부모형제를 헌신짝 취급하는 사례가 요
즘 얼마나 많아요. 돈은 먹고 살만큼 적당히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에요. 주
체할 수 없을 만큼 분에 넘치는 재물은 오히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요.
서로 그 재물을 차지하려고 부모를 기망하고 형제 끼리 싸움을 하는 세상이
잖아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불렸는데
오늘 날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으로 암담해요. 우리 자식들만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 내 자식 남의 자식 할 거 없이 모두가 황금에 눈이 멀
어 제 뿌리도 몰라보고 있으니 누굴 탓하겠어요.
이 모든 것은 한국 전쟁 이후 못 먹고, 못 배운 기성세대들의 한을 자식들
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자식들에게 무한 경쟁을 유도한 결과라고 봐요.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급감하
자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 온 남편들이 무조건 아이들을 만들었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자식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가르쳤으니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참담하게 나타난거예요.
인성 교육부터 시켰어야 했어요. 사람 됨됨이가 먼저지요.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얼 해요.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편이며 수단이지요. 그런데 우
리나라가 경제개발을 하면서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렸어요. 경제개발은 인
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하여 정부가 핀 정책인데 그 부수물로 엉뚱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어요.
이 사회를 멍들게 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빨리 사회에서 은퇴해야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있어요. 그들로 인해서 국가 얼마나 황폐화 되었는지 아시잖아요.
공교롭게도 내 자식들 모두가 그 범주에 있어요. 땅 투기, 아파트 투기, 무분
별한 주식투자, 남보다 내 것, 내 탓보다 네 탓,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내 새
끼 내 마누라 밖에 모르는 편협한 행동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비리를 만들어 낸
주범들이 우리 자식들이 속해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이에요. 물론 그 들이 현재
의 경제성장이 있도록 헌신하기도 했어요.
지금 부터라도 우리는 도덕교육을 다시 시켜야 해요. 전 국민이 일 년에 20시
간씩 의무적으로 효도 및 예의범절 교육을 받고, 1일을 경로당이나 양로원에 가
서 현장실습을 하도록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의무화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이대
로 한 세대 지나면 삼천리 금수강산은 '금수(禽獸)의 강산'이 될 거에요.
김 실장님, 이 늙은이 말이 틀리는지 똑똑히 지켜보세요. 벌써 그런 조짐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잖아요. 내가 김 실장님을 오시라고 해놓고 쓸데없는 이
야기만 했어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흥분을 해서......“
S는 우리사회 전반에 대하여 무엇에 홀린 듯 설교를 하였다.
“맞아요. 김 여사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요. 경쟁심만 유발하는 우
리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빨리 개선시키지 않는 한 여사님 말씀처럼 우리 사
회는 동물농장이 될 게 뻔해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어떤 때는 정
말이지 ‘이 아이들에게 경쟁심만 심어줘서 나중에 무엇이 될 건가?’ 하고 생
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오늘 여사님 말씀 백번 공감하고도 남습니다.”
김 실장과 S는 마음을 터놓고 무엇이든지 말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김 실장님, 이 병원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이 되었으며, 자선사업이라든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무료로 병을 고쳐주는 경우도 있는지요?”
“여사님, 저희 병원은 영리법인이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의 어려운 사람
들의 병을 무료로 시술해주기도 한답니다. 지난 해에는 100여명의 국내. 외
불우한 가정의 어린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찾기도 했어요.”
김 실장은 제스처를 써가며 병원 자랑에 열을 올렸다.
“저런, 정말로 잘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한번만 좌우로 돌아보면 우리 주
변에 어려운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오늘, 긴 시간 김 실
장님과 나눈 대화 시간 정말 고마웠어요.”
S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김 실장
은 얼른 S를 눕히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S의 자식들이 다녀간 다음날, 아침 일찍 태균은 처와 함께 S를 찾았다. 태
균의 처는 S를 위하여 몸에 좋다는 보약 재료를 한 아름 안고 병실안으로 들
어왔다. 태균은 들어오자 어머니 S의 어깨며 팔다리를 주물렀다. 곁에서 태균
의 처는 과일을 깎으며 시어머니 S에게 듣기 좋은 말을 골라 하느라 법석이
었다. S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아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정을 음미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라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엉성했다.
“태균아, 이제 그만 되었다. 네가 내 팔다리를 주물러주니까 몸이 한결 가뿐
하구나. 힘들 텐데 그만하거라.”
“아니에요. 어머니, 죄송해요. 진작 자주 와서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 하는
건데......”
태균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훌쩍거렸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S는 혼란스러
웠다. 태균의 처는 과일을 깎아 포크에 찍어 시어머니에게 공손하게 건
넸다. S는 며느리의 정성을 생각해 한입 베어 물었다. 태균의 처는 남편 대신
S의 어깨를 주무르며 사가지고 온 보약재에 대하여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니, 저 보약은 친정아버님이 특별히 어머님을 위해서 오늘 아침 일찍
택배로 보내오셨어요. 옛날 청나라 황제들만 복용했던 보약이래요. S그룹 총
수가 현재 이 보약을 들고 있는데 회춘(回春)을 할 정도래요. 약값만 해도 이
천만원이 넘는대요. 제가 의사를 만나서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해 달여 드리
라고 부탁을 할게요.”
태균의 처는 입에 침을 튀기면서 자신이 얼마나 시어머니를 위하는지 생색
을 냈다.
“그렇게 귀한 약을 사돈께서 보내오시다니, 정말로 고맙구나. 아버님에게
고맙다고 전해 드리거라.”
S는 측은한 눈길로 둘째 며느리를 바라다보았다. 태균이 담배를 피기 위하여
병실을 나오려는 순간 S의 큰딸 태진이 남편과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 태균이와 올케가 와있었구나. 너, 안 바쁘니? 지금쯤 해외에 나가있
어야 할 얘가 여긴 웬일이니?”
태진이 비아냥거리는 조로 입을 모물거리며
톡 쏘자 태균의 처는 금방 얼굴이 굳어지며 마지못해 목례로 아는 체 했다.
“고모야말로 아침에 웬일이세요? 식당일로 꽤 바쁘실 텐데. 고모부님까지
오시면 식당일은 누가하세요?”
“어머? 올케네 나 잘해. 우리일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일은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외국에 나가야 할 사장님과 사모님께서 언제부터 시어머니에
게 신경을 쓰셨나요? 날아가던 새들도 웃을 일일세 그려.”
큰 올케의 뼈있는 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둘째 며느리는 가지고 온 보약재
를 가지고 원장을 만나보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흥, 보약 좋아하네. 노인네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보약이라니? 어디 정
신이 잘못된 거 아냐? 어머니, 안 그래요?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데 한약방에
서 가짜 싸구려 보약재를 사가지고 와서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건지 원.”
태진이 S의 동의를 구했지만 S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고상처럼 앉아있는 S는 오탁악세(五濁惡世)로부터 초월한 성자의 모습처
럼 보였다. 태진은 그런 어머니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곁에서 처남댁과 설
전 아닌 설전을 지켜보던 태진 남편은 처남댁이 나가자 찬스라고 생각하였다.
“장모님, 이제라도 저희 집으로 가세요. 며칠전 작은애가 군대에 가서 빈방이
하나 남아요. 오늘 도배사를 불러서 도배를 하라고 시켜놨어요. 아들네 집보다
아무래도 딸네집이 마음 편하시잖아요. 그러니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저희를
따라서 가세요. 저희도 효도를 할 기회를 주셔야지요.”
둘째 사위는 간절할 정도로 장모인 S의 손을 잡고 애걸하다시피 하였다. 그
애걸복걸하는 눈빛이 너무나 처량하여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S는
그런 둘째 사위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S는 차마 손을 빼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생전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적이 없는 큰 사위였다. 오히려 사위의 두툼한 손이
부담스러웠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태균이 여동생 부부와 함께 병실 안으
로 들어왔다. 병실 안에 있던 S와 태진은 깜작 놀라는 눈치였다.
갑자기 S의 병실이 시끄러워졌다. 마치 다시 병실에서 모이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시간에 둘째 아들과 두 딸 부부가 모인 것이다.
“아이고, 장모님, 잘 주무셨어요? 둘째 사위놈 왔습니다. 간밤에도 장모님
이 잘 주무시는지 궁금해서 한 잠도 못 잤답니다. 새벽에 장모님이 보고 싶
어 달려오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말리는 바람에 이제야 달려왔습니다. 장모
님이 좋아하는 바나나와 수박을 사가지고 왔어요. 어제 마트에서 사다가 냉
장고에 밤새 재워놔서 아주 시원합니다. 여보, 뭐해? 어서 장모님께 시원한
수박을 드리지 않고.”
둘째 사위는 쉬지도 않고 말을 속사포처럼 해댔다.
“그리고 장모님, 저도 자식의 한 사람으로써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사위도 엄연히 자식이랍니다. 장모님이 배 아파 낳은 자식만 자식이 아니라
고요. 어제는 큰 처남과 작은 처남이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도
자식입니다.
장모님도 저희 집에 예전처럼 오셔서 가족처럼 지내세요. 외손자들도 장모
님이 오시면 대환영 일겁니다. 애 엄마도 일체 가게에 나오지 말고 장모님
만 모실 거예요. 장모님, 오늘 저희 집으로 가세요. 저희 부부가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둘째 사위의 간곡한 사정에 S는 반응이 없었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태균
은 킁킁 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둘째 사위의 계속되는 부탁에도 S는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태희는 몸이 달았다. 태균은 어떻게 해서든지 S의 마음
을 돌려보겠다고 다짐하였다. 원장실에 갔던 태균의 처가 다시 병실로 들어
왔다. 배시시 웃으며 S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어깨를 주물렀다.
“어머니, 원장에게 친정아버님이 보내오신 보약재를 건넸어요. 잘 달여서
어머님께 드리라고 했어요. 곧 팩으로 포장해서 한 달 치 정도를 가져올 거예
요. 매 식사 때마다 드시면 몰라보게 혈색도 좋아지고 힘이 넘치실 거예요.
어머님이 회춘하시면 어머니 또래 남자 분들이 어머니에게 데이트 하자고 달
려들지도 몰라요.”
두 딸과 두 명의 사위는 태균 처의 아부에 잘못하면 S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는 불안감에 초조해 하였다. 태진과 태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였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면서 태성 부부가 나타났다. 태성 부부는 동생들을 보자,
기가 막히는지 멍한 상태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쳐다보았다. S의 큰 며
느리는 S에게 다가오더니 S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어제에 이어 S의 병실은
아들 딸들과 며느리, 사위들로 북적거렸다. S는 기가 막혔지만 말을 아꼈다.
아들 딸들이 몰려왔지만 S는 기쁨보다 서러움이 앞섰다. 자식들이 아니라 이리
떼처럼 느껴졌다. S가 아무 말도 없이 또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태균은 어
머니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있다면 동생들에게 잠시 밖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4 남매 부부가 다시 어제의 그 휴게소에 모였다. 누가 모이자고 한 것도 아닌
데 기가 막히게 비슷한 시간에 4남매가 S의 병실로 모인 것이다. 4 남매 부부는
커피 한잔 씩 테이블 위에 놓고 말이 없었다. 남자들은 헛기침만 해대고 여자들
은 서로의 시선을 피해 천정만 멀뚱히 올려다보며 침묵이 깨지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두 사위들은 처남들의 눈치를 보며 금연구역이라는 푯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애꿎은 담배만 쪽쪽 빨아대고 있었다. 태성이 드디어 침묵을 깼다.
“태균아, 태진아, 태희야, 우리들 피를 나눈 남매 맞지?”
태성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 후에 태균이 입을 열었다.
“형님, 저희들이 남매 아니면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이 병원에 왔겠어요?”
“그래, 우리는 형제자매다. 맞아,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이 씨 집안에 장자(長子)인 내가 어머니를 일 년간 모시고, 다음에 태진
이가 그 다음에 태균이가 또 그다음에는 태희가 일 년씩 모시자. 내 어제부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가장 합당한 방법 같다.”
태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희가 반대 의견을 냈다.
“오빠, 그건 안돼요. 예전에는 십년이면 강산이 변했지만 지금은 일 년도
안돼 강산이 변해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려면 3년이 지나야 하는데 어머
니의 지금 상태로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요. 저는 반대에요. 만약 오빠들이
나 언니가 어머니를 강제로 모셔간다면 나는 어머니에게 미래에 나에게 돌아
올 상속분을 법원에 청구할거에요.”
태진이 입에서 상속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모두 올 것이 왔다는 표정들이었다.
난감해진 태성은 동생들을 설득하려고 별의별 방법을 동원하여 S를 자신이 모
시겠다고 하였지만 동생들은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