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않는 새(2)
- 여강 최재효
2
결혼한 지 5년 만에 S는 이혼하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S는 임신하지 못했다.
전국에서 용하다는 산부인과를 모두 찾아 다녀도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이를 갖기 위하여 S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기 않기로 하였다. 민간요법도 써
보고 점쟁이에게서 점을 보았지만 S는 끝내 수태를 하지 못하자 모든 책임이
S에게 가해졌다. 시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S는 조용히 이혼하는 길을 택했다.
S는 머리 깎고 여승(女僧)이 되려고 해보았지만 속세의 흔적이 너무도 많아
1년 만에 하산하고 말았다. S의 친정아버지는 이혼당한 딸로 인하여 화병을
얻었고, 어머니는 남들 보기 창피하다며 S를 나이 많은 홀아비에게 재취(再娶)
로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빠들의 강력한 반대와 S의 거부로 S는 지루하
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S는 큰 오빠의 소개로 법률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잠시나마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법률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 같은 회사 소속으로 일
하던 이 변호사가 S에게 저녁을 같이하자고 하였다. S는 업무적인 일이거니
생각하였다.
“S씨, 나와주셔서 고마워요. 나는 S씨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날부터 줄곧
지켜봐왔어요.”
“......”
뜻 밖에 말을 들은 S는 당황하였지만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계기로 S는 이 변호사와 금방 가까운 사이
가 되었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둔 이혼남이었다. 이 변호사의 입
장을 알게 된 S는 아이 딸린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빠져들었다. 훤칠한 외
모, 신뢰감을 주는 말과 태도에 S는 자신도 모르게 이 변호사를 사모하게 되었
다. 사모하는 정은 갈수록 깊어져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남몰래 밀애를 즐기는
사이로 발전했다. S는 결혼에 한번 실패한 상처를 이 변호사를 통해 치유하고
싶어 했다.
자신이 나이 많은 총각이나 아이가 없는 이혼남에게 시집을 가도 충분했지만
S는 이 변호사와 마치 천생연분인 듯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변호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S가 재혼하자 전 남편도 재혼하였다는 소문이 들렸다. S는
자신에게 이상이 없다는 듯 임신을 하였고 곧 아들을 낳았다.
이듬해 딸을 낳으면서 S는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라는 오명을 씻고 남편의 사
랑을 듬뿍 받게 되었고 주변에서는 침이 마르도록 천생연분이라고 칭찬이 자
자했다. 늘 딸로인하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친정어머니는 입이 함지박만해
졌고, 병석에 누워있던 아버지도 외손자를 안아보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 S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오로지 남편의 자식과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식을 양육하는데 S는 온 정성을 쏟았다. S는 이 변호사에게 복
덩어리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동료 변호사 두 명과 서울 S동에
법무법인을 설립하였다.
김인희 실장은 S의 기나긴 결혼 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S의 입장이 된
듯 웃기도 하고 가슴이 찡해 금방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아 S에게 무안해 하기
도 하였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S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감정을 섞어 자
신의 이력(履歷)을 펼쳐 보였다.
자신의 발자취를 그려내는 S의 말솜씨에 김 실장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김
실장은 S가 친정어머니 같다고 생각했다. 친정어머니도 한번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시간제한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 마다 김 실장은 어머니 가슴에
수백 권의 소설책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보, 이제 돌아갑시다.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어요. 병원 계신 어머님 소
식이 궁금해요.”
사업을 핑계로 스웨덴으로 온 S의 둘째 아들 태균은 병도 없는 어머니를 병원
에 입원시키고 아내와 이국에서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외국기업과 합
작을 위한 현지 조사와 국제시장 분석등 그럴듯한 이유를 달았다.
“귀국하려면 당신이나 하세요. 난 이곳에서 한 달 정도 더 있다 갈 테니…….”
“여보, 당신 너무하는 거 아니오?”
“너무하다니요? 그럼 내가 어머니 수발들며 간병인이라도 돼야한단 말이에
요?”
까칠해진 아내의 심기를 태균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
태균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아내를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장인의 막강한 배경이 없었더라면 태균은 벌써 수차례 부도를 맞고도 남았
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태균은 마지못해 사업체를 운
영하고 있었다. 부품의 대부분을 장인에게 납품해야 하는 태균 입장에서 장
인과 아내는 자신의 숨통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장인은 늘 사위를
못 마땅한 태도롤 대했다. 자신이 바라던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위를 점
점 신뢰하지 않자 태균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아내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에 큰 풍파를 의미했다. 남
편이 사업차 외국에 나갈 일이 생기면 남편의 사업체를 자신의 남동생이 전
무이사로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을
돌아다니며 돈을 물 쓰듯 하며 귀족 같은 생활에 푹 젖은 태균 부부는 안락
함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태균은 아내를 아나콘다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대한 아나콘다가 순한 양이나 사슴을 칭칭 감고 있어서 감히 빠져 나간다
거나 다른 환상을 그리면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 버릴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태균은 철저히 아내의 종물(從物)로 있어야 했다. 태균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태균을 통채로 삼키려 들었다.
사면초가에 처한 태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아내의 시종
노릇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 어쩌다 저런 여편네의 수족(手足)이 되었단 말인가. 이
건 도대체 남편을 남편으로 대하는 게 아니고 마치 하인 부리듯 드니 원. 어
머니는 병원에서 잘 알아서 간호해 드리겠지. 아니지, 아프지도 않은 분이시
니 차라리 병원에 계신 것이 더 편하실 거야. 나는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자.’
황금 앞에서 태균은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어갔다.
“여보, 우리 오후에 스톡홀름으로 나가요. 이 호텔은 너무 산 속 깊이 있어
서 밤에는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요.”
태균의 처는 금방 한 마리 구미호가 되어 태균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자고. 나도 이 호텔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당신 말대로 오늘밤은 스
톡홀름에서 보내고 내일은 오전에 노르웨이로 넘어 가자고.”
덴마크 그 호텔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어요. 그 호텔 특실에 있으면 내가 마치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에요." "당신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북국의 여신이야. 수 많은 남자하인들을 거느리 고 하고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여신이라고." "당신 나 놀리시는거에요?" 전라(全裸)의 여인은 한 마리 거대한 아나콘다가 되어 태균을 칭칭 감았다.
“태균씨, 그 나라 말고 덴마크나 네덜란드로 가요. 지난해 우리가 묵었던
“그래? 그럼 그리로 가지.”
구미호는 빨간 혀를 내밀어 순양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오로지 쾌락을 위하여
태어난 여인이었으며, 태균도 깊이 쾌락에 길들여져 그 깊은 쾌락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장
인의 거대한 황금성 앞에서 뜻을 접어야 했다.
객실은 다시 서서히 덥혀지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육탄(肉彈) 공격을 받으며 태균은 자신을 위하여 늘 천지신명께 기도하는 어머니에게 미안해했다. 자신을 위하여 한 평생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희생하였지만 아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끔
“고마워, 역시 당신은 나의 남자야.”
마지 못해 전화를 걸어 어머니 S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전부였다.
‘아아, 어머니는 이 순간에도 이 탕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실 테지. 내가 조
국의 수출역군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온 몸을 받쳐 노력
하고 있는 줄 아실 테지. 젠장, 돈 많은 집안 사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사내로써 못할 짓인지 누가 이 사정을 알아준단 말인가? 나는
이 여자네 집에서 기르고 있는 주구(走狗)야, 주구. 내가 어디 병이 나거나 몸
이 쇠약해지면 이 여자는 자신의 쾌락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헌신 버리듯 할
테지. 나 같이 한심한 놈이 또 있을까?’
태균은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온 몸으로 아내의 끈적끈적한 육공(肉攻)을 받
아내고 있었다. 아내에게 철저히 길들여진 태균은 오로지 아내를 위하여 존재
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되어 있었다.
“여보, 어머님에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는
데......”
“괜찮아. 어머님에게 한 두어 달 일정으로 미국하고 유럽으로 학술연구차
당신하고 같이 다녀온다고 말씀드렸거든. 그리고 당신이 10달 동안 배 아파
서 낳은 태균이도 있는데 뭐? 그 녀석은 재벌가 사위잖아?
나는 꼴랑 봉급쟁이 교수 신분이고. 어머니에게 병문안을 그 녀석이 아마
삼사일에 한번 정도는 다녀갈 거야. 그러니 우리는 크게 신경 쓸 거 없어.”
S의 큰아들 태성은 S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집에 있었다.
태성은 유명대학교 정교수로 있으면서 늘 세미나, 학술연구회, 현지답사
등을 이유로 항상 집에 붙어있기 힘들다고 버릇처럼 말해왔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지성인 중에 지
성인으로 자부하며 주변으로부터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이라는 칭찬을 받
고 있었다.
비록 S의 몸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S가 지성으로 키운 덕분에 S에게 깍듯하
게 아들 노릇을 해오고 있었다. 욕심이 많은 태성은 이복(異腹)동생 태균을 보
면 히스테리컬하게 변하고 만다. 자신보다 대학도 시원찮고 외모도 별로인데
재벌가의 사위가 된 것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질 정도였다. 태성은 동생에게 늘
라이벌 의식을 가지며 결혼 전까지 월등히 자신이 동생 태균보다 모든 면에서
한수 위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재벌가의 사위, 미모의 제수(弟嫂), 중소기업체 대표이사 등, 총체적 외적 수치
에서 태성은 동생이 물 좋은 가문의 여인을 만나 보기 좋게 당했다고 이를 갈았
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입장에서 동생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데 태성은
절망하고 있었다.
“여보, 내일이라도 우리 한번 어머님에게 다녀와요.”
“허허, 그 사람 참. 어머니는 우리가 학술연구차 미국에 가 있는 줄 알고 계시
다고. 그런데 내일 불쑥 병원에 나타나면 나는 어찌되나?”
태성은 시가를 피우다 말고 상기된 얼굴로 아내를 꾸짖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봐요.” 저녁식사를 하던 태성 부부는 S의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큰 며느리로 서 도저히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태성의 처
“여보, 전 어머님이 궁금해 죽겠어요. 멀쩡한 사람을 병원에 입원시키는 짓도
는 한숨만 푹푹 내쉬며 남편의 도덕 불감증에 대하여 속으로 한탄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리킨단 말인가? 정말 이 사람이
대학교수가 맞는가? 이 나라 교육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참으로 한심스럽
구나. 아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로 암담하구나.’
태성의 처는 우울한 심사를 술로 달래야 했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곁에 없
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태성은 자식들에게 공격을 받고도 남을 것이
뻔했다. 태성은 와인 그라스를 빙빙 돌려가며 이태리산 포트와인을 음미하였
다.
“여보, 장모님에게 한번 가봐야 하잖아?”
“흥, 그 잘난 두 올케가 있는데 우리가 뭐하러가요? 우리가 가면 오히려 어머니
에게 부담만 된다고요. 당신이 두 오라버니들처럼 제법 이 나라에서 알아주는 위
치가 된다면 나도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겠지만 당신이 그 잘나가던 회사를 말아
먹고 이렇게 구차하게 사니 내가 어디 얼굴 들고 다닐 수 있어야지요?”
S의 친딸 태희는 제과점을 운영하는 남편에게 오히려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어때서? 당신, 우리 아이들 밥 안 굶기고 큰 아파트에서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는데 뭐가 어떻다는 거야? 내가 처갓집에서 돈을 빌어다 당신 밥을 먹여
아니면 어디서 구걸을 해서 아이들 교육을 시켜? 나는 당신네 집안의 당당한 사
위라고. 비록 얼마전에 IMF로 운영하던 사업체를 말아먹긴 했지만 날이야. 난
멀쩡하게 살아있어. 법적으로 당당한 당신 남편이라고."
아내의 말에 심기가 틀어진 사내는 침을 튀겼다.
“당신은 우리가 무슨 소, 돼지에요? 밥만 먹고 살게요? 사람이란 여가 생활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내 동창들은 모두 BMW나 벤츠를 타고 다니며 상류
사회에서 알아주는 여류인사로 지내고 있다고요. 그런데. 난, 난 뭐죠? 싸구려
국산 차나 몰고 다니며 겨우 집 근처 골프장에 가서 하루 일과 보내는 거 말고
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태희는 입에 거품을 물며 남편에게 대들었으나 태희의 남편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담배만 꾸역꾸역 피워댔다.
“김 실장님, 우리 큰 아이는 이 나라 교단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에요. 아마 그
아이가 외국 유명대학교에서 오라고 하는 걸 뿌리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큰 인물을 잃을 뻔 했어요. 지금쯤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리나라 발전을 위하여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을 거 못 먹으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 큰 아들이 얼마나 대견해요.
난, 늘 그 아이에게 미안해요. 제 어미 품에서 커야하는데 계모의 눈칫밥을
먹고 컸으니 그 아이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겠어요? 큰애는 자나 깨나
오로지 자신의 영달이 아닌 나라와 이 사회를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조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르까 노심초사하는 아이에요. 그런 애가 내 아들이라는 사
실이 나는 고맙고 행복해요.”
S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큰 아들 태성을 걱정하였다.
“여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 아드님은 우리나라 교육계에 거목이 될
거에요. 그리고 둘째 아드님은 곧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계의 큰 별이 될 거
구요. 두 아드님들이 여사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늘 미안하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정말이지 여사님은 두 아드님을 잘 키우셨어요.”
김인희 실장의 칭찬에 S는 아이들처럼 환하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
렸다.
계신 것은 두 아드님들에게 일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심적 부담을 주 지않기 위한 여사님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반영된 행동이라고 봐요. 저도 여 사님 처럼 든든한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여사님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워요." 김인희 실장말에 S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생글생글 웃어가며 아이처럼 박수 를 치기도 했다.
“김 실장님, 내가 정말 아들들은 잘 키웠죠?”
“그럼요. 여사님에게 이 나라는 훈장을 드려야 해요. 지금 여사님이 병원에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