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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 새(1)

* 창작공간/단편 - 울지않는 새

by 여강 최재효 2011. 1. 1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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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않는 새(1)

 

 


                                                                                                                                                                                  - 여강 최재효

 

 

 
                                               1

 

 태초에 조물주는 새에게 울 수 있는 기능을 부여했다. 세상에는 수 천 종류의

새가 있다. 인간의 상상 속에 사는 봉황새, 난(鸞)새와 현실 세계에서 날아다니

는 꿩, 메추리, 공작, 비둘기, 제비 등 수 많은 새들이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소

리로 나타낸다. 물론 소나 돼지 등 인간과 가까이 사는 짐승들은 더 많은 의사

표현을 나타내며 사람들의 각별한 정을 받기도 한다.

 

 부화(孵化)하여 날개를 펼쳐 창공을 날아보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울지도 못

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사람이나 새나 살아가는 과정은 다를 게 없다. 암수

가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일정기간 알을 품어 새끼가 부

화되면 그 새끼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때 까지 어미로써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자칫 의무를 게을리 했다가는 어떤 귀신에게 잡혀 먹을지 모르기 때

문이다.

 

 예전에 귀신들은 매정하지 않았다. 흔히 우리가 여름철 TV 납량특집(納凉特

輯)에서 보는 처녀 귀신도 인정은 남아 있었다. 원수를 갚으려다 마지막에 복

수심을 거두고 회개하거나 인정을 베푼다. 한 포기 난초처럼 또는 청산에 고고

한 학(鶴)처럼 그녀는 늘 혼자였다. 김인희 실장은 처음 그녀가 입원하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그녀는 지난해 봄 병원에 들어섰

다. 첫눈에도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떠서 병색(病色)이 완연하거나 혹은 어딘

가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번에 병자(病者)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종합적인 검진결과 그녀는 특이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김인

실장은 그녀의 두 아들과 며느리들을 불렀다.

 

 그녀의 두 아들들은 김 실장에게 선뜻 명함을 내밀었다. 큰 아들 명함에는

점잖은 글씨로 ‘xx대학교 교수’라고 쓰여 있었고 둘째 아들 명함에는 xx기업

대표이사‘라고 박혀 있는데 명함 테두리에도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두 며느

리들은 패션쇼에 출전하는 모델로 착각할 정도였다. 진한 색조화장에 명품으

로 몸을 감싼 두 여인을 보자 김 실장은 은근히 부아가 났다.


 “저어, 실장님, 실은 저희 어머니가 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병원에 좀

모시고 싶어서요. 이 근처 여러 병원을 다녀봤지만 이 병원이 가장 마음에 듭

니다.”


 약간 대머리가 벗겨진 40중반의 큰 아들은 김 실장을 바라보지도 않

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태도로 자신의 말만 하였다.


 “교수님, 저희 병원은 요양소가 아니랍니다. 환자들이 병 치료를 위하여

단기 혹은 길어야 한 달 정도 기간으로 머무는 병원이에요.”

 김인희 실장의

말에 이번에는 둘째 아들이 끼어들었다.


 “아, 물론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 어머님께서 실버타운이나 요양원 같은 시

설은 절대로 안 가시겠다고 하여 이리로 모시고 왔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

다.”


 누런 금테안경을 뒤집어 써 형보다 더 늙어 보이는 둘째 아들은 약간 거

만하면서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다.

 

 김인희 실장은 병원의 규약을 들이 밀면서 난처한 입장을 보였지만 두 아들

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두 아들과 입원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김 실장은 원장의 전화를 받고 입원 수속을 허락하였다.


 S, 78세, 키 162cm, 슬하에 2남3녀를 두었으며 20년 전 홀로됨. 두 아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였는지 병원 규약이 무색해졌다. 병원장의 특별지

시에 의해 S에게 10평정도 되는 독실(獨室)이 배정되었다. 10평이면 일반 입

원환자 6명이 충분히 입원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일반 병실 한 칸을 그녀를 위

하여 특별히 개조하였다. 병원 직원들과 간호사들은 병원 측에서 병실까지

개조해 가며 S에게 독실을 제공하자 S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 간호사, 1501호실 환자 말이야. 그 할머니 대단한 분이라며?”
 “어머? 박 간호사도 알고 있었어?”
 “두 아들들이 고위층과 아주 긴밀한 사이라며? 둘째 아들 처가가 K그룹이

라는데......”


 “재벌 사위라면 외국이나 다른 곳으로 할머니를 모시던지 왜 도심 한복판

있는 우리병원에 모시려고 할까?”


 “그건, 그 할머니 고집이 보통이 아니래. 그 할머니가 우리병원을 직접 선

였대.”

 휴게실에서 두 간호사가 커피를 홀짝이며 속삭였다.


 S의 두 아들로 인해 기분이 상한 김인희 실장은 며칠 동안 유심히 S의 상태

살폈다. 특이한 증상도 없는 환자 아닌 환자를 입원 시킨 원장의 의도에

간의 실망을 느끼면서도 김 실장은 애써 불쾌한 감정을 감췄다. S는 아침

6시쯤 일어나 세수를 하고 곱게 화장을 하며 아침 식사가 제공 될 때 까지

성경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원장의 특별지시로 김 실장은 S의 식사와 병실 안 집기며 기타 사항들을 꼼

꼼히 챙겼다. S는 김 실장이 아침 8시면 자신의 병실에 들리는 것을 처음에는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김 실장은 주치의가 다녀간 뒤 S의 이런 저런

것들을 살피고 잠시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지만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

다.

 

 고령(高齡)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단정한 자세를 보이며 타인에게 흐트러

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S가 측은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김인희 실장

의 말에 S는 간신히 대답대신 고개를 앞뒤로 끄덕이거나  좌우로 가로 젓는

게 다였다. 원장은 김 실장에게 매일 아침 S의 상태에 대하여 보고를 받았다.

원장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S가 병원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병원

시설 이용에 불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김 실장, 나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S가 병원에 입원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인터폰을 통해

S가 김 실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늘 고고한 매화나 난초처럼 청초해 보

이는 S에게 김인희 실장은 질투심이 일 정도였다. 


 ‘웬일일까? 나에게 손을 다 벌리고?’
 “김 실장님, 어서 오세요. 바쁘신데 오시라고 해서 미안해요.”

  S는 환한

미소까지 지어가며 김 실장을 맞았다.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죠?”


 “네에, 없어요. 그런데 할머니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 우울해지네요.”
 “아,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해요.”


 김 실장은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김 실장

의 두 뺨이 빨갛게 물들자 S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김 실장의 손을 잡았다.


 “당황하지 마세요.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만.”
 “......”

 S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 한 병을 꺼내 김 실장에게 건넸다.


 “김 실장님, 요즘 저를 이상하게 보고 계시지요?”

 S는 뜬금없이 김 실장게 말을 걸었다. 김 실장은 S의 말을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말뜻을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사님, 이상하게 보고 있다니요?”

 김 실장이 두 눈을 크게 뜨고 S를 바라보았다.


 “혹시 병원에서 우리 자식들이 면회를 오지 않는다고 나에게 손가락질 하

는 건 아니죠?”

 S를 억지로 입원시킨 S의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한 달이 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병원에서 S는 수수께끼 같은 노파였다.  

 

“여사님, 누가 손가락질을 해요? 전혀 그런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여사님

우리병원 최고 VIP입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김 실장은 S가 툭 던지 말 한마디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니면 되었어요. 난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봐 걱정돼서요.”

 S의 장난기에 김 실장은 혼란스러웠다. 늘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고

난초처럼 고고하던 S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여사님, 그런데 여사님 저희 병원에 입원할 때 오셨던 두 아드님과 며느리

그리고 딸, 사위들은 모두 국내에 안 계세요?”


 김 실장은 혹시 자신의 질문에 S가 기분상해 할까봐 걱정이 되면서도 조심스

럽게 말을 꺼냈다. S는 김 실장의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잠시 김 실장의 얼

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누가 우리 아들 며느리를 욕하나요? 그 아이들이 안 온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고, 연로하신 어머님이 병원에 계시는데 입원한 이후 한 번

도 병원에 안 오신 것 같아서요.”

 김 실장은 이야기를 꺼내 놓고 미안한 표정

을 지었다. S는 잠시 주저거리더니 결심을 한 듯 했다.


 “김 실장님,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들어 보실래요? 그 아이들은 지금 이 나라

의 발전과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불철주야 산업전선과 강단에 서서 땀을 흘리

고 있어요. 그러니 그 아이들이 나에게 올 시간이 없다고요. 나는 그 아이들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일 할 시간에 나를 찾아오는 것을 반대하거든요.”

 S의 두 눈에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 계속 -

 

 

 

 

 

 

              _()_  2011년 들어 첫 단편입니다. 아직 탈고 전이기에 여러군데 흠결이 발견될 수 있으니 양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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