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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영가(2)

* 창작공간/중편 - 가을 영가(靈歌)

by 여강 최재효 2010. 9. 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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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영가(靈歌) - 2

 

 

 

 

                                                                                                                                                     -  著者 : 여강 최재효 

 

                                                                                  

 

 

 "재연씨,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어떻게 하면 재연씨 어머니하고

형수님 마음을 돌릴 수 있나요, 네에?"

 인영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다시피 했다. 포장마차 테이블 위에

빈 소주병이 세병, 반쯤 마시다 남은 한 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옆 테이블 남자들은 재연과 인영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재미있는 듯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 훔쳐보고 있었다. 월미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였지만 두 사람은 시간을 잊은 듯 했다.

 

 “인영아, 왜 그랬어. 왜 제주도에 가 있는 동안 나한테 기별을 안 한거

야? 우리 형님네 집 전화번호와 집 주소도 알고 있잖아. 나에게 편지

한 통이라도 주었더라면 어머니와 형수가 반대를 하지 않았을 거야.”


 “재연씨, 이미 말했지만, 한 달간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식히고 싶었

어요. 나의 미래, 나와 우리 가정, 그리고 나와 재연씨 문제 등등, 그간

산적해 있던 문제로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바보, 그래도 나한테는 말해줬어야지. 내가 너 없는 동안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니?”

 재연은 소주잔을 비우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재연씨, 미안해요. 나는 한 달만 잠적해 있다가 집에 오면 모든 것이

잘 정리가 될 줄 알았어요. 이렇게 일이 꼬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미안해요 재연씨.”


 “이젠 엎질러진 물이야. 나도 우리 어머니와 형수를 이해시키려고 노

해보았지만 어머니는 워낙 완고하신 분이라 뜻을 굽히지 않으셔.”
 “재연씨, 그럼, 난, 난 어떻게 해야 돼요?”

 인영은 소주잔을 비우고 재앞에서 한 번도 피우지 않던 담배를 입에 댔

다.

 

 지난 3년간 재연과 인영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치 잉꼬부부

처럼 지냈다. 주변에서는 재연이 졸업하자마자 인영과 결혼할거라고 추

측했고, 두 사람도 은연중 미래를 함께 할 거라 믿고 있었다. 한 학년

위인 인영이 대학을 졸업하자 곧 D그룹에 특채되어 기획조정실에 근무

하게 되었다.

 

 거의 매일 만나다 시피 했던 두 사람 사이가 인영의 취업으로 차차 소원

지기 시작하였다. 재연은 불안했다. 국내 유수기업에 취직한 인영과

자신의 현재 위치가 자주 비교되었다. 재연이 인영이 보고 싶어 인영의

회사에 전화를 걸면 인영이 직접 받을 때도 있지만 대개가 다른 사원이

전화를 받아 연결해 주거나 메모를 전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재연은 자신의 잦은 전화로 인하여 '인영이 회사 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

나면 다행이었다. 인영이 바쁠 때면 보름에 한 번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

했다.

 

 인영의 아버지는 늘씬하고 서글서글한 외모의 호남형인 재연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처음 주안역 근처에서 재연을 보았을 때 인영이 아버지는 마치

사윗감을 대하는 것처럼 상당히 정성을 쏟는 눈치였다. 재연의 부모와 가정

환경 현재 형님네 집에서 살고 있는 사항 등에 대하여 세밀하게 물어 보았

다. 중국요리 집에서 첫 번째 만남에서 재연은 인영의 아버지가 따라주는

이과두주에 취해 정신을 놓을 뻔하였다.

 

 미래의 사윗감이 술에 취하자 인영의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딸이

마음에 드는지, 또 다른 여자 친구나 애인이 있는지, 자신의 딸에 대하여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어느 정도 까지 알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무척 궁금

듯 재연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비록 술에 취하기는 하였지만 재연은

정확발음으로 대체적으로 인영 아버지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하였다.

 

 재연이 인영의 아버지와 첫 만남이 있은 뒤 얼마 안 돼 정식으로 인영의

머니께서 재연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재연은 인영의 부모님으로 부터

상당히 호감을 사고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며칠을 고민 끝에 재연은 인영의 어머니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름이 끝나가는 9월 초순 경, 재연은 형님의 양복을 빌려 입고 인영이네

집으로 향했다. 재연을 데리고 있는 형수는 대학교 3학년생이기는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곧 취직이 되면 재연이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대궐 같은 3층 양옥집에서 1남2녀의 단란한 집안의 장녀로 자란 인영은

아침부터 가슴이 콩닥거렸다. 토요일이라 학교수업이 없는 관계로 인영은

동인천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용실을 찾았다. 미용사는 최신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을 인영에게 선물하였고 인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인영은 여러 가지 옷을 꺼내 놓고 입었다 벗었다 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인영의 아버지는 그런 딸의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맞춰 재연이 신사복 차림으로

나타나자 인영의 아버지는 대문까지 나와 재연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반

겼다.

 

 인영의 어머니도 재연을 보자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이미 딸에게 재연

의 모든 내용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 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재연이

낯설지 않았다.

 

 재연이 거실에 들어서자 인영의 부모님에게 넙죽 절을 하였다. 인영의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재연이 자신의 딸과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인사를

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 했다. 인영이 바로 아래 남동생과 막내 여동

생은 신기한 묘한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재연이 인영의 부모에게 인사

마치고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부잣집답게 넓고 호화스러운 식당 벽에는 고흐와 모네의 대형 액자

그림이 걸려 있는데 부엌의 구조와 조명에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재연

자신이 중세 유럽의 어느 백작의 호화 궁전에 초대된 왕자라고 생각

했다. 

 

 인영의 아버지는 재연과 첫 번째 만남에서 재연의 주량을 어느 정도 파

악한 상태라 식탁에 앉자마자 술병 마개를 땄다. 중세풍의 식당에 어울리

는 고급 양주였다.  검붉은 코냑이 젊은 여인의 S라인 허리를 연상시키는

크리스탈그라스에 가득 담겨 재연에게 전해졌다.

 

 술을 좋아하는 인영의 아버지는 연신 미래의 사윗감 후보자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재연은 엉겁결에 서너 잔의 코냑을 마시고 말았다. 빈속에 마신

탓인지 재연은 금방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인영의 아버지는 재연이

잔을 비울 때 마다 ‘남자는 술을 어느 정도는 마실 줄 알아야 한다’며 은근

재연을 부추겼다.

 

 인영은 불안해 졌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재연이 가족들에게 무슨 실수

라도 할까봐 좌불안석이었다. 미래의 장인과 사위는 점심 식사는 뒤로 미룬

채 코냑 한 병을 금방 비웠다. 인영은 술은 그만 마시고 식사를 하라고 권했

지만 두 남자는 들은 체 하였다.

 

 소, 닭, 돼지, 광어, 게, 고등어, 전어, 낙지, 문어, 사과, 포도, 감귤, 바나나,

감자, 고구마 등 하늘, 땅, 물속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들로 만들어진 음식

으로 고급스러운 식탁이 더욱 풍요로웠다. 인영의 어머니는 재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면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재연의 훤칠한 외모와 술을 마

시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침착한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맛있는

음식을 재연 앞으로 갖다 놓았다.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인영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동생들 눈치를 보

아야 했다. 코냑 두병이 비워지자 인영의 아버지는 식사 보다 자신의 살

아온 이야기와 자식 자랑에 열을 올렸다. 한국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

와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며,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이야기, 지금의 부를 축적하기 까지의 고생스러

웠던 지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인영은 아버지 입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그만 하라고 만류하기도 하였지만, 기분이 좋아진 인영의

아버지는 미인 딸 자랑에 신이 난 듯 했다. 저녁 때 까지 이어진 인영의 아버

와 재연의 술자리는 시종일관 인영의 아버지가 화재를 꺼내 이야기하면

재연과 인영이 응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인영의 어머

니는 거실과 식당을 오가며 행여 남편이 술에 취해 백년지객이 될 지도 모르

손님에게 큰 실수라도 할까봐 노심초사 하였다.

 

 인영의 어머니는 식당에 새로운 음식을 들이면서 딸과 시선이 마주치면

재연에게 술 좀 그만 마시게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큰 실수 없이 재연은

인영의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마쳤고, 인영의 부모님과 동생들은

재연이 가끔 인사차 집에 들르면 재연을 마치 진짜 사위처럼 대해 주었다.

 

  인영은 재연을 미래의 동반자로 부모에게 승낙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1년 365일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났다.  

 커피숍, 학교 근처 학사주점, 캠퍼스, 버스와 전철, 백화점, 극장, 동인천

역전 주변 주점, 등이 두 사람의 주로 다니는 활동 무대였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재연은 인영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대개의 젊은

연인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을 마치 자신들의 가장 성스럽고 중요한 날로

인식하기 일쑤여서 그냥 지나치면 곧 이별을 의미하거나 애정 전선에 심

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 멀리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항구 도시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호텔에서 어깨를 마주한 채

고요하고 열정적인 밤을 보냈다.

 

 졸업반이 되면서 인영은 봄부터 국내 일류기업 두 세 곳을 목표로 취업

시험을 준비하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밤늦게 까지 공부하다가 재연과 인

영은 거의 매일 마지막 인천행 전철을 타야했다. 취업 준비에 인영은 피로

한 기색이 보이기도 하였지만 늘 곁에서 한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재연

에게서 큰 위안을 받고 있었다.

 

 재연은 예전처럼 인영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인영이 졸업하기

전에 목표로 하는 기업체에 취직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었다. 인영은

재연과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졸업하는 날 D기업체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D기업 기획조정실에 근무하게 되면서 인영의 인생은 화려한 날개를 단

듯 했다. 대개의 대기업 기획조정실은 웬만한 배경 없이는 근무하기 어려

운 부서였다. 그만큼 힘 있는 부서였기 때문에 사내에서 배경이 화려하

거나 특출난 재목 아니면 근무하기 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다.

 

 입사 동기 사원 중에서도 인영은 비록 여성이었지만 군계일학(群鷄一鶴)

이었다. 인영의 입사로 사내 총각사원들은 각별히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인영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총각 사원들은 숨

소리도 죽여야 했고, 엘리베이터 내부 거울이나 벽면에 비친 모습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하였다.

 

 미스코리아 뺨치는 미인이 입사하였다는 소문에 인영을 소개해 달라는

총각사원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한 마리 학으로 인하여 색이 바랜 상당

수 닭들은 인영을 질투와 시기의 대상으로 여겼다. 여직원들은 화장실,

휴게실, 구내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이면 으레 인영의 차림새나 헤어스타

등 일거수일투족을 두고 재잘대느라 열을 올렸다.

 

 인영이 이태리제 명품 투피스에 프랑스제 핸드백을 들고 왔다며 입방

를 찧기도 하고, 어떤 여사원은 인영의 말투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깔깔거리기도 하였다. 해외영업부에 근무하고 있던 윤대리는 기획조정

실장의 대학교 후배였다.

 

 윤대리는 인영이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면서부터 자주 선배를 찾아왔다.

바람둥이로 소문난 윤대리는 총각이지만 배가 나와 나이가 들어 보여

사내 여사원들로 부터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초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후배의 집요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기획조

정실장은 인영에게 업무적으로 상의할 것이 있으니 저녁 때 시간을 내라고

하였다. 거의 일방적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인영이 기획조정실장과 회사

근처 고급 한식집에 도착하자 미리와 있던 윤대리가 뛰어 나오며 두 사람

을 맞았다.

 

 인영은 윤대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직속 상사의 권유에 할 수

없이 한 자리에 앉게되었다. 윤대리 역시 집안 배경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고급 공무원으로 회사 고위층과 막역한 사이라고 하였다. 윤대

리는 인영과의 첫 미팅에서 침이 튀도록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대하여 자

랑을 늘어놓았다.

 

 윤대리의 열변을 어쩔 수 없이 들어 줘야하는 인영은 지옥 같은 시간

을 보내야 했다. 인영은 실장과 대리의 자화자찬을 조용히 들으면서 웃기

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를 해야 했다. 윤대리는 인영이 자신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오판하고 있었다.

 

 윤대리와 첫 만남 이후 윤대리는 거의 매일 두세 번씩 기획조정실을

드나들었다. 실장은 윤대리의 후광과 후배라는 이유로 할 수 없이 윤대

리를 반기기는 하였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인영이 자신에게 상당

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윤대리의 편집증적인 행동은 인영을

서서히 힘들게 하였다. 인영이 자신의 애인이니 다른 총각사원들은 건드

리지 말라며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녔다.

 

 어느 날 인영의 생일날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윤대리는 아침 일찍 호화

로운 화환과 케이크, 샴페인을 기획조정실로 배달시키기도 하였다. 인영

이 야근을 하는 날에는 치킨이나 떡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점점 입장이

난처해진 인영이 윤대리에게 자신은 윤대리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니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부탁해보았지만  윤대리는 막무가

였다.

 

 한술 더 떠 조만간 인영이 자신과 백년가약을 맺을 거라며 은근히 소문

을 퍼트리고 다녔다. 소문은 삽시간에 사내에 가장 인기 있는 화재감이

되었고 인영은 충격을 받았다. 인영이 기획조정실장에게 윤대리의 막무

가내식 행동을 자제하게 해달라고 부탁해보았지만 실장은 알았다고만 할

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인영이 곧 윤대리와 부부가 될 거란 소문은 사실처럼 굳어지면서 총각

사원들도 더 이상 인영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윤대리는 시간만 되면 기획

조정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인영은 집요한 윤대리의 데이트 청을 뿌리

치지 못하고 응해 주기로 하였다.

 

 단 둘이 만나서 다시 한 번 자신과 관련한 소문을 더 이상 퍼트리지 말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할 참이었다. 인영의 애원에도 불구

하고 윤대리는 오히려 자신의 청을 들어달라며 결혼하자고 하였다. 인영이

오래 전부터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하였지만 윤대리는 믿지 않으려

하였다. 윤대리와의 둘만의 데이트가 소득 없이 끝난 뒤에도 윤대리의

안하무인식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대리가 정중하게 찾아와 딱 한번만 만나달라고 하였다.

만나서 그간의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해명하고 사과하겠다고 하였다.

인영은 주말 늦은 오후에 먼저 기획조정실장과 함께 만났던 한식집에서

윤대리를 만났다. 윤대리는 정중하게 그간의 일에 대하여 사과하면서 마지

막 자리가 될 수도 있으니 술이나 한잔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

자고 하였다.

 

 인영은 마지막 자리라는 말에 기쁜 나머지 체면치레라고 생각하고 윤대

리가 따라 주는 소주를 마시면서 윤대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로 하였다.

신바람이 난 윤대리는 침을 튀기면서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인영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윤대리가 따라 주는 술 서너 잔을 받아 마시고 난 뒤 인영은 정신을 잃었

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인영이 의식을 되찾

았을 때 인영은 윤대리 곁에 누워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지나친 시간들을

반추해 보았지만 도저히 지난 시간들의 편린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영의

눈에 방안의 물건들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경대, 경대위에 화장품, 티슈, 천정의 샹들리에 전등, 벽에 걸린 그림

속에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아프로디테를 비롯한 여신들의 반라(半裸)의

미끈한 육신들, 대형 티브이. 순간적으로 인영은 아랫도리에 손이 갔다. 

아랫도리가 밋밋한 상태로 느껴졌다.

 

 인영은 무엇인가 딱딱한 물질로 엉겨 붙은 거웃이 만져질 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하였다. 아래로 부터 통증이 스멀스멀 벌레처럼 상반신

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인영은 실눈을 뜨고 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재연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날이 생각났다. 재연과 인영은 밤을 새다시피

면서 서로의 눈부신 나신(裸身)을 탐험했다. 인영은 그날 밤 생전 처음

맛 본 달콤한 통증과 지금 파도처럼 밀려오는 약간의 통증이 거의 흡사

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인영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존해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인영은 장시간

그대로 누워서 앞으로 전개 될 자신의 역사(歷史) 어떻게 기록될 지 걱

정하였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곁에 있는 남자는 코를 골면서

마치 세상을 정복한 패자(覇者)의 자세로 잠에 취해있었다.

 

 호텔을 빠져 나온 인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간밤에

아무런 소식도 없던 인영이 파김치가 되어 일요일 오후에 집에 들어

오자 인영의 어머니는 인영이  재연과 보냈을 거라 짐작하고 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인영은 정신적 충격과 자신의 은밀한 부위에

난 이빨 자국으로 인하여 말 할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가 일었지만

어쩌지 못하고 누워서 지난밤 일들을 기억해 보려고 하였다.

 

 윤대리와 한식집에서 함께 술잔을 주고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인영은 벌떡 일어나 샤워하면서 타월로 몸에 난 불

결한 흔적들을 지우려고 하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인영은 간밤 자신

의 미숙한 행동에 대하여 통곡하였다. 인영은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면

서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대학

선배가 살고 있는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배는 제주도에서 제법 잘나가는 바(Bar)를 운영하고 있었다. 인영

과 마찬가지로 재력가인 부모를 둔 덕분에 선배는 쉽게 돈 버는 방법

을 터득하고 있었다. 선배는 인영을 반겼다. 두 사람은 외모도 비슷하여

같이 서있으면 자매로 착각 할 정도였다.

 

 인영은 선배의 집에서 일주일간 두문불출하고 누워 있었다. 윤대리

에게 받은 충격을 삭히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일주일 내내 집에만

박혀 있는 후배가 안타까웠는지 선배는 인영에게 심심하면 바에 나와

세상사는 구경을 해보라고 권했다.

 

 

 

 

 

 

                                                                                                                               - 계속 -

 

 

 

 

 

       _()_  아직 탈고 전이라 오,탈자와 뛰어 쓰기가 안 된 부분이 있습니다. 깊은 이해 있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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