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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영가(1)

* 창작공간/중편 - 가을 영가(靈歌)

by 여강 최재효 2010. 9. 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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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영가(靈歌) - 1

 

 

 

 

 

 

                                                                                                                                           -  여강 최재효

 

 

 

 


"재연씨, 안돼요. 안돼요. 우리가 그동안 함께한 무수한 시간들을 어떻게 지우라

고요. 안돼요. 제가 정말로 잘못했어요. 어머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릴

게요. 내일 저 하고 재연씨네 고향에 가요. 네에? 재연씨-"
 "인영아……."


 "제가 다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이렇게 빌어요. 내일 저하고 여주에 가요. 제가

재연씨 어머니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릴게요. 네에? 이렇게 허무하게 헤어질

수 없어요. 재연씨, 제발."
 "인영아......, 못난 남자를 용서해다오. 용서해다오."
 "재연씨……."


 벌써 21년 전 일이 되었다. 재연은 요즘 자주 인영이 생각나 먼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21년이면 인영도 지금 쯤 장성한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재연이 딸만 둘을 둔

것처럼 그녀도 한 두 명의 자녀를 두었을 것이다. 지난 21년이 흐르면서 종종 꿈에 

나타난 적이 있긴 했지만 요즘 인영이 이상하리 만큼 자주 나타나 재연을 우울하게

했다.

 

 21년 전 10월 중순 경 재연과 인영은 이별의 눈물 잔을 나누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이어진 주점 순례에 마지막 종착역이 월미도 포장마차 집이었다. 재연은 인영이

울면서 하던 마지막 말들이 마치 녹음테이프에 저장된 것처럼 풀려 나오자 창가로

다가 갔다.


 '그녀도 혹시 저 달님을 보고 있을까?' 서천에 선녀가 빗다 잠시 던져 놓은 참빗

처럼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구름에 가려 보일락 말락하며 간신히 서천을 향해 흐

르는 달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재연은 언제부터인가 정확히 알 수 없

지만 달을 보면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달이 서산이나 바다에 잠길 때 까지 돌부처

가 되어야 했다.


 '분명히 인영이도 저 달을 보고 있을 거야. 인영이네 집이 월미도 쪽이니까 달님이

더 잘 보일 테지. 아니지 시집을 서울이나 지방 혹은 외국으로 갔다면 저 달을 잘 볼

수 없을 거야.' 재연이 3년간 병역의무를 무사히 마치고 학교에 복학하였을 때 동료

학생들은 제5공화국의 정권을 부정하며 캠퍼스는 연일 체루 가스로 뒤덮여 있었다. 


 그 날도 과격한 남학생들과 일부 여학생들이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아침부터 데모

를 하기 시작하여 오후에 접어들면서 서로 지쳐가고 있었다. 재연 역시 용암처럼 끓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갓 군복무를 마친 점잖은 예비역 복학생이라 어린

동급생들과 같은 예비역 복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멀리서 구경하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느긋한 마음으로 주안역에서 청량리행 전철을 탔다.

지방 소도시 출신인 재연은 큰 형님네 집에서 기거하며 서울로 전철과 버스를 번갈

타면서 통학을 해야 했다. 복학하면서 형수의 눈칫밥을 얻어먹는 것이 싫어 어머니

에게 학교 근처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재연이 어머니는 자식을

물가에 내놓는 것 같아 허락하지 않았다.


 N전철역에서 다시 시내 버스로 갈아타야 학교까지 갈 수 있었다. 시국이 뒤숭숭한

터라 학생들도 자주 수업에 빠지기 일쑤여서 캠퍼스는 한산하다가 노동자들의 5월

춘투(春鬪) 시기와 맞물리면서 캠퍼스는 시끄러워졌다. 버스 안에는 운전기사와

재연과 여학생, 세 명뿐이었다. 주안역에서 부터 재연은 그 여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키는 167cm 정도로 상당히 날씬한 편이고 단발머리에 보라색 투피스 차림의 발랄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재연이 복학한 지 두 달이 좀 넘어서 부터 그 여학생이

시야를 어지럽히기 시작하였다. 늘 단정한 투피스 차림의 여학생은 일주일에 보통

두세 차례 전철을 타고 내리는 역이 재연과 같았기 때문이다.


 '상당히 예쁜데. 저런 여학생을 꼬여서 애인이나 친구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 같은  촌놈을 저렇게 세련되고 예쁜 여학생이 거들떠보기나 할까?' 재연은

먼발치에서 혼잣말로 웅얼거리며 여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지만 한 번도 재연

과 시선이 마주치거나 옷깃이 접촉한 적이 없었다. 전철 안에서도 재연은  그 여학

생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여학생 가까이 다가가곤 했지만 이내 장승처럼 멍청히

있어야 했다. 


 재연은 버스 뒷자리에 여학생은 중간에 앉아 있었다. 버스가 학교 앞에 도착하자

여학생과 재연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출구 쪽으로 다가갔다. 여학생이 먼저 내리고

재연이 뒤따라 내렸다. 공과대학 쪽 삼거리에 전투경찰들을 수송하는 버스 서너

대가 무질서하게 주차해 있었다. 남학생들은 주뼛거리며 전투경찰들을 피해 캠퍼스

로 향했고 여학생들은 체루 가스 자욱한 거리를 당당하게 다니지 못하고 가로변

상가 건물 입구에 삼삼오오 모여서 남학생들과 전투경찰이 벌이는 전투장면을 지

켜보며 어서 전투가 끝나기를 바라곤 했다.


 "아, 이러다 수업이 늦겠는걸. 벌써 2시가 다 되었는데……."

 재연이 역시 머뭇거리며 상가건물 입구에 서서 전투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캠

퍼스 정문에서 화염병과 각목으로 무장한 남학생 50여명이 우르르 몰려나오자 전

투경찰들이 삼거리 쪽으로 후퇴하면서 도로는 금방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전투경찰들이 무차별로 쏘아대는 최루탄이 사방에서 작렬하면서 하얀 분말이

공중에서 살포되었다. 동시에 학생들이 만든 화염병이 터지면서 유리 조각이 도로

산산이 흩어졌다. 한쪽에서는 남학생들과 전투경찰들이 한데 뒤엉겨 육박전을

치루고 있었다. 피차 하얀 체루 분말을 뒤집어 쓴 몰골이 처참해 보였다.

 

 재연은 정문 쪽으로 뛰어가면서 동료 남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맞추려면 잠시의 비겁을 감수해야 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다 시피

하고 뛰어가고 있을 때 였다. 바로 앞에 여학생이 주저앉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뒤 저만치에 전투경찰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재연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런. 저러다 전투 경찰들한테 잡히면 곤욕을 치를 텐데.' 재연이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여학생은 넘어졌는지 스타킹에 피가 배어 있었다.
 "자, 제 손을 잡으세요. 어서요. 전투경찰들에게 잡히면 큰일 나요."

 재연이 실눈을 뜨고 여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앗, 그 , 그 여학생이다.'


 재연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여학생도 다급했는지 얼른 손을 내밀어 재연의 손

을 잡았다. 여학생의 가녀린 손과 재연이 손이 닿았을 때 재연은 정신이 몽롱해지

면서 잠시 꿈을 꾸는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단순히 남녀의 손과 손이 이어진 것이 아닌 청춘의 두 마음의 끈이 이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학생은 잠시 장승처럼 서서 움직일 줄 모르는 재연이를 올려다

보았다.


 "저기여,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해요. 저기 전경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네? 아네, 네. 그렇군요."


 재연은 여학생의 손을 잡고 부추겨 간신히 일으킨 뒤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다.

두 사람이 골목길로 들어가자마자 한 무리의 전경들이 곤봉으로 방패를 탁탁 치

면서 학교 정문을 향해 돌진하였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여학생은 봉변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재연은 절룩거리는 여학생이 잘 걷지 못하자 답답한 생각이 들어 여학생의

의사도 묻지 않고 여학생을 들춰 업고 골목길을 달렸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

어서 여학생은 '싫다거나', 안 된다거나'하는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재연이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헉헉거리며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가파른

경사로 길이어서 종아리에 피가 흐르는 여학생을 업고 걷는 다는 것은 무리였다.

여학생의 타이트한 스커트에서 단단한 육감이 느껴졌다.


 "저어, 이제, 그만요. 이제 그만 내려주세요."

 여학생이 어색한 말로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재연은 못들은 척 하며 천천히 걸

었다.


 '아아, 여인의 육감이 이렇게 사나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구나. 생각 같아

서는 계속 걷고 싶은데 힘이 빠져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게 참으로 아쉽구나.'


 "저어. 그만이요. 그만 내려주세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

 여학생을 어느 양옥집 출입문 계단에 내려놓고 재연이 얼른 손수건을 꺼내 여학

생의 종아리에 빨갛게 물든 부위를 닦아주려고 하자 여학생이 제지 하였다.


 "저기여. 제 가방에 티슈가 있어요. 손수건 버리잖아요."
 "집에 손수건 많아요. 괜찮습니다."

 재연은 겸연쩍게 웃었다.


 "고마워요. 최루탄 터지는 소리에 놀라서 뛰어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요.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 했어요."

 여학생은 하얀 스타킹을 빨갛게 물들게 한 피를 티슈로 닦아 내면서 얼굴을 붉혔

다.  


 "저는 최재연이라고 합니다. 영문과 2학년이고요."
 "저는 장인영이라고 해요. 경영학과 3학년이에요."


 "아, 참으로 예쁜 이름이네요. 우리 구면이죠?"
 "……."


 "전철에서 많이 보았어요."

 인영은 전철이라는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재연을 올려다보았다. 잔잔한 미소

가 인영이 얼굴에 퍼지면서 인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어떻게 해요? 저 때문에 수업에 못 들어가신 거 같은데……."


 "수업대신 인영씨를 알게 되었잖아요. 수업 열 번 빠진다고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인영씨를 만날 수 있다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나중에 친구들에게 노트를 빌려

보면 돼요. 인영씨, 우선 가까운 병원이나 의원을 찾아봐요. 인영씨 다리에 찰과

상을 입었잖아요. 그냥 두면 안 될 텐데요?"


 "괜찮아요. 이 정도면 곧 아물 거예요. 고마움의 표시로 제가 커피 살게요."

 인영은 찢어진 스타킹을 벗고 핏기를 말끔히 닦은 뒤 새 스타킹으로 갈아 신었다.


 "정말로 괜찮을까요?"

 재연과 인영은 커피숍 대신 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학사주점으로 향했다.

 

 두 사람 이 학사주점을 나온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서 였고, 인천행 마지막 전철을

간신히 탈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주안 전철역에서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통학하는

일이 습관적으로 이루어 졌다. 두 사람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 거의 주안역에서 전철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야, 재연아, 너 요즘 통 안 보인다 했더니 이렇게 절세가인을 만나느라 그랬구나."
 "히야. 너 이제 보니 보통 재주가 아니구나. 하긴 너는 얼굴도 핸섬하고, 키도

훤칠하고, 말도 잘하고 거기다 글도 잘 쓰니 여학생들이 많이 따르겠어. 짜아식

축하해."


 "재연이 너 술 좀 사야겠다. 어디서 이렇게 미인을 구했냐?"

 재연이 학교 구내식당에서 인영과 점심을 먹다가 친구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재

연이 친구들은 재연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재연이 '월척을 물었다'고

생각하였다.


 재연이 인영이와 캠퍼스 커플로 소문이 날 즈음, 경영학과 남학생들은 영문과 남

학생에게 인영이를 빼앗겼다는 충격에 빠졌다. 한번은 경영학과 남학생 두 명이

도서관에서 인영이와 학기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재연이를 찾아와 시비를

걸기도 했다. 인영이 간신히 싸움을 말렸지만 그 일로 두 사람은 캠퍼스 커플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자기야, 우리 아빠가 자기 좀 보자고 하셔."
 "응? 자기네 아버지가 나를?"


 "응, 오늘 저녁 우리 아빠가 사주신데. 오늘은 대충 하고 오후 5시쯤 집에 가자.

응?"


 '아니, 인영이 아버지가 어째서 나를 보자고 하시는 걸까?' 재연은 도서관에서

나와 담배 한가치를 입어 물었다. 인영이와 단짝이 되면서 같은 반 친구들의 부러

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터라 재연은 행동에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야, 재연아, 담배 좀 있냐?" 재연이와 친하게 지내는 영구가 다가왔다.

 "미안하다. 내가 요즘 너희들하고 자주 어울리지 못했구나."


 "괜찮아. 그런데 너 굉장한 여학생을 물었다며?"
 "짜식-, 여학생이 무슨 고깃덩이냐? 물다니?"
 "고깃덩이가 아니라 황금덩이를 물었지. 너 아직 모르는가 보구나."


 "뭘?"
 "짜식-, 그 여학생네 집이 인천에서 굉장한 부자라고 하는데……."


 영구는 재연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경영학과 친구들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상당

한 미인에다 여학생 아버지가 상당한 재력가라는데 남학생들은 재연이를 운이 좋

은 사내라고 부러워했다. 이왕이면 가난한 집 딸보다 부잣집 딸을 사귀는 것이 훨

씬 더 좋은 일이라고 재연 생각했다. 재연은 담배를 피우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럴 거야, 인영이 돈쓰는 품새가 보통 집 여학생들과 달라. 늘 명품의 투피스

아니면 쓰리피스로 단정하게 옷을 입고 다는 게 여간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었어.

가방도 보면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거 였는데 나는 말로만 듣던 명품들이었어.

인영이가 부잣집 딸이건 아니건 간에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뭐. 아니야, 인영이나

인영이 아버지는 나를 어쩌면 사윗감으로 은근히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군대도 다녀왔고, 인영이도 재수를 한 입장이라 나이가 적은 편도 아니지.

이거 내가 괜히 인영이를 깊이 사귄 게 탈이 난 거 아닌가? 인영이가 자기 아버지

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부담스러워. 어쩌나, 오늘 저녁에

인영이 아버지를 만나야 하나 아니면 적당한 핑계거리를 들어 거절할까.'

 재연은 다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불을 붙였다.

 

 

 

 

 

                                                                                                                     - 계속 -

 

 

 

 

 

 

 

 

 

 

 

 

 

 

 

 

             * 아직 탈고 전이라 오탈자나 비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은 이해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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