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처(3)
- 여강 최재효
“동수야, K여고 인기스타님이셔. 인사해.”
“안녕하세요? 윤선주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권동수라고 합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주와 동수는 수줍어서 서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사방이 어둑해서
똑바로 본다고 하여도 어렴풋하게 얼굴 윤곽만 파악할 수 있었다.
“야, 그럼, 난 간다. 둘이 오붓한 시간 가져봐라. 히히 히히......”
영태는 선주와 함께 온 여학생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저쪽으로 갈까요. 여긴 좀......”
동수는 노인들로 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공원 한쪽으로 선주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
동수가 앞서서 걷고 그 뒤를 선주가 바싹 따랐다. 밤이라고 하지만 열대야의
영향으로 땅의 열기가 훅훅 등줄기를 오르 내렸다. 엷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
어 공원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100여 미터를 걸었는데 동수는 마치 십여 리를
걸어 온것 같았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의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자주는 아니지만 동수는 몇 번 공원에 와본 적이 있어서 벤치가 있는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벤치에 10미터쯤 다가갔을 때 동수는 얼른 뒤돌
아 서서 선주의 손을 잡았다.
“저기요. 우리 다른 데로 가요.”
동수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선주에게 속삭였다.
“......”
벤치에는 이미 한쌍의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었는데 마치 캔버스에 그려진 어둠
의 자식들 같았다. 여인의 비음(鼻音)이 은은히 들리기도 하였다.
분명 바람난 유부녀와 유부남 아니면 열애에 빠진 대담한 청춘들 같기도 했다.
남들이 연애하는 것을 훔쳐보는 일은 짜릿하면서도 흥분되는 일이어서 만약 동
수 혼자 우연히 연애 광경을 목격했더라면 숨어서 한참 동안 엿보았을 터였다.
얼떨결에 동수에게 손을 잡힌 선주는 손을 빼지도 못하고 동수의 의지에 따라
공원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동수는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던 노인들을 피하
여 공원을 빠져 나왔지만 막상 어디로 갈 지 막막했다. 선주도 행여 자신을 알아
보는 사람들이 공원 어두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에 고개를 푹 숙이고 동
수를 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서 동수에게 손을 놓으라고 말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내가 손을 너무 세게 잡아 아픈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둠속에서도 선주의 양 볼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 강가로 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신경이 쓰여요.”
동수가 선주의 의향을 물었다. 읍내 사람들은 강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강도
아니고 개울도 아닌 폭이 50미터 쯤 되는 천(川)이었다. 장마 때는 강처럼 보이
기도 했다.
“시간이 너무 늦기는 했는데......, 그럼, 잠깐만 있어야 해요. 집에서 엄마가
어디 가냐고 하시길래 친구네 집에서 공부 좀 하다 빨리 온다고 했거든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태네 집에 가서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온다고 어머니
에게 말씀드렸거든요. 우리 같은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공부와 대학 진학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들어가도록 해요. 너무 지체하면 집에서 걱정할겁니다.”
“고마워요.”
선주는 모기소리 만하게 동수의 배려에 속으로 고마워하였다. 구름이 걷히자
막 이지러지기 시작한 둥근달이 하얀 얼굴을 내밀어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해
주었다. 동수는 처음으로 보는 선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수줍은 동수는 용기가 부족했다.
선주 역시 익히 동수의 명성은 듣고 있었지만 한 번도 동수를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상황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그런
와중에 동수는 슬쩍 선주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그와 동시에 선주도 동수의
갸름하고 귀티 나는 뽀얀 옆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대낮은 아니지만 달빛에 보는 얼굴이 무척이나 예쁘구나. 내가 좋아하는
양귀비 같은데......’
‘이 남학생 이름이 권동수, 그리고 나와 경쟁하고 있는 H고등학교 학생이라고
했지. 그런데 말도 없고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너무
늦은 밤이라서.....’
두 사람은 무거운 침묵을 만들어 내면서 방죽길에 하얗게 쌓인 달빛을 밟았다.
동수가 앞에 서서 걷고 바로 뒤에 선주가 바싹 붙었다. 제방 둑을 20여분 걸어도
마땅히 앉아서 이야기 할 만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동수의 가슴은 몹시 뛰
면서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 전신(全身)을 휘감았다.
K여고와 H남고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은밀하게 늦은 밤 데이트 하는 광경이
같은 반 친구들이나 혹은 선, 후배들에게 목격되는 날이면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이었다. 그 소식이 각자의 교장이나 담임선생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두 사람
은 교무실에 불려가 경위서를 쓰거나 한참동안 훈계를 듣고 한눈 팔지 않겠다
고 각서라도 써야 할 판이었다. 선주의 하얀 티셔츠가 달빛을 흡수하면서 더욱
하얗게 빛났다.
“저기로 가요. 저기가 괜찮을 것 같은데요.”
동수가 우묵한 곳을 가리켰다. 늙은 버드나무가 머리를 칭칭 늘어뜨려 달빛
을 가려주고 있어서 가까이 사람들이 다가와도 금방 버드나무 아래에 누가 있
는 지 잘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동수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 모래 위에 깔아 주
었다.
온기가 동수에게 전해지면서 동수는 점시 정신이 몽롱해 졌다. 사춘기가 시작된 이후로 한번도 여학생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던 동수였다.
“선주씨, 우리 다시 인사해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요.”
동수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다. 선주는 살며시 하얀 손을 내밀었다. 선주의
“권동수입니다. 선주씨, 고마워요. 이렇게 선주씨를 보니, 마치 소풍가는 초등
학교 학생처럼 가슴이 울렁거리네요. 선주씨에 대하여 풍문으로만 듣고 있었
어요. Y읍내에서 가장 예쁘고 공부도 잘한다고......”
고요.” 다른 학생들이 알면 두 학교에 소문이 나겠죠?”
“윤선주예요. 반가워요. 그리고 저 예쁘지 않아요. 공부는 그냥 좀 하는 편이
“선주씨, 대충은 알고있는 걸요. 우리가 이렇게 늦은 밤 만나고 있는 사실을
“아마도 그리되면 저는 학교에 못 갈 거 같아요. 창피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밤 우리가 만난 사실은 영태와 선주씨하고 같이 온
그 여학생 밖에 모르잖아요.”
“또 있어요. 하늘과 땅 그리고 저기 무수히 많은 별님들과 달님, 풀벌레, 개구
리들, 반딧불이, 또 누가 있을까?”
“선주씨, 굉장히 감성이 풍부한 것 같아요.”
동수는 선주와 무주앉아 선주와 시선을 맞추었다. 선주도 동수의 그런 시선이
부담이 되긴 하였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선주는 동수와 잠시 시선을
맞추면서 자꾸만 가슴이 울렁거리며 심호흡이 가빠져 오는 것을 감지하였다.
늘 공부만 생각하고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소녀의 가슴이 서서히 부풀어 오
르고 있었다. 달님은 더욱 환하게 지상에 하얀 달빛을 쏟아내고 풀벌레 소리
는 사방을 몽롱하게 장식하였다.
‘내가 왜 이러지? 여태껏 남학생 앞에서 이렇게 가슴이 뛰거나 흔들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영태의 간청에 어쩔 수 없이 나오긴 했는데......, 이러다
내가 이 애하고 연애를 하면 어쩌나? 그럴리야 없겠지.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열심히 마무리해서 좋은 성적을 내야하니까. 그런데 이 애가 별로
나쁘지 않으니 어쩌나......’
선주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누군가를 그렸다. 동그라미
가 둥글넓적한 것으로 보아 여자는 아니 것 같았다. 선주는 무의식 중에 남자
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나마 얼굴의 윤곽과 눈, 코,
입은 그릴 수 있었지만 남자의 얼굴에 여드름이 어디에 얼마가 있는지, 주근
깨가 있는지 그리고 마음은 어떤지 볼 수 없었다.
동수는 선주가 모래 바닥에 그리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주가
동그라미를 지우고 또 다시 원을 그리고 안에 눈, 코, 입을 그려 넣었다. 그
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동수는 몹시 궁금하였지만 묻지 않았다.
‘아, 과연 영태 녀석 말이 맞는구나. 그냥 얼굴이 좀 반반할 거라고 추측
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는데. 영태 녀석에게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예쁘고 선한 여학생이야. 그러나
나나 이 애나 대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어, 연애에 빠져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우리가 일 년 후에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리되면 당당하게 성인들 흉
내도 내고,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할 텐데. 그렇지만 내가 이 애를
밤 늦은 시간에 만나는 것도 어쩌면 내 인생에 예정 된 일인지도 모르지. 먼
옛날부터 이미 정해진......‘
동수는 선주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망측한 상상을 하며 몰래 희죽희죽 웃었
다.
“동수씨는 무엇을 전공하려고요?”
그리던 그림을 지우고 선주가 적막을 깼다.
“K대 경영학과인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선주씨는요?”
“난 영문과를 가고 싶어요. 아직 어느 대학교라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서울
에 있는, 좀 괜찮다고 하는 대학교면 되거든요.”
“나도 문학에 관심은 많아요. 그러나 부모님은 경영학과를 원하고 계세요.
영문과를 가고 싶어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선주는 동수의 질문에 동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선주의 시선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동수는 겁먹은 강아지마냥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동
수는 순간 당황하였다. 마치 누이뻘 되는 여인이 남동생을 사랑스러운 눈길
로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었다. 선주는 그렇게 한참동안 동수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 애가 왜 이리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거야? 등에 땀나게 시리.
날씨도 더운데......’
“동수씨, 내가 시를 읊어 볼게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잔잔한 호수를 상상
해 보세요. 그 호수 위에 한 쌍의 백조가 정답게 유유히 헤엄을 치면 더 좋고
요.‘
‘시를 읊는다고? 아니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야. 영문과에는 왜 가느냐고
물었더니 시를 읊겠다니. 거참, 여자들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씀이야.’
“아, 선주씨가요? 좋지요. 한번 낭송해 봐요. 두 눈 감고 감상할게요.”
외로운 여름과 /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지그시 송이송이 / 내려앉는 눈과도 같이
조용히 천천히 / 땅 속에 뿌리박은 일
‘아, 이것이, 이것이 이 애의 답이로구나. 이 시는 생소한데 누구의 시지?
윤동주? 한용운? 서정주? 아니면 김소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보면 나의 국어 실력이 금방 탄로 날 테니. 아 답답해.
시를 낭송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너무 감동적이야. 여름, 달, 별, 바람,
풀벌레, 반딧불이, 별똥별. 개구리 노랫소리. 아, 이 모든 소품들이 오늘 밤
나와 이 애의 만남을 축하하고 있음이야. 분명해. 그런데 왜 눈물이 날려고
하지? 사나이가 이까짓 감미로운 시 한수에 눈물을 보이면 안 돼 는데......’
선주의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는 은은하게 냇가와 들녘으로 퍼져나갔다.
개구리들도 선주가 시를 낭송할 때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고, 풀벌레들도 합창
을 멈추고 아름다운 소녀의 고운 시를 듣고 있었다. 시냇물조차도 졸졸 소리
를 내지 못하고 소녀의 시 낭송에 화합하였다.
사랑의 열(熱)은 더디고 조용한 것 / 내려왔다가 치솟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 조용히 씨앗은
싹을 틔운 / 달이 커지듯 천천히
“우와-, 멋있다. 정말로 멋있어요.”
동수는 선주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자 잠시 일어나 상기된 얼굴을 들어 바람
에 식혔다. 선주의 하얀 티셔츠에 반딧불이 두 마리가 달라붙어 반짝거렸다.
버드나무 가지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을 받은 선주의 모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동수는 소녀의 아름다운 하체 곡선미가 드러나는 청바지가 무척
이나 매력적이면서 살짝 만지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을 꾹 참았다.
“방금 내가 낭송한 시는 미국의 여류시인인 G 밴더빌트의 ‘사랑은 조용히 오
는 것’이란 시예요. 물론 우리가 배우고 있는 국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아요.
작년에 우연히 이 시를 접하게 되면서 밴더빌트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어요.
영문과를 가고 싶은 것은 이 시인처럼 시를 감상하고 시를 쓰고 싶어서예요.
물론 영문과를 졸업하면 취직도 잘 되고요.”
“아, 그랬군요. 선주씨의 시를 감상하면서 콧날이 찡했어요. 어쩌죠? 앞으로
그 시를 듣고 싶을 텐데…….”
“저기 좀 봐봐요. 저기 북동쪽 하늘을 보면 알파벳 W자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별자리 보이죠?”
“아, 카시오페아 자리요?”
“그 별자리 좌측으로 안드로메다별자리가 있어요.”
“동수씨, 안드로메다 별자리에 대하여 아세요?”
“조금 알아요. 자세히는 모르고. 카시오페아 왕비의 딸이라는 사실 정도.”
“그럼, 내가 안드로메다 이야기를 해줄까요?”
“......”
울에서 금방 수정 알이 떨어질 것 같았서 동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손수건이 한 장더 있더라면 동수는 손에 들고 있다가 수정 알이 굴러 떨어지 면 얼른 받고 싶었으나 손수건이 한 장 밖에 없었다. 선주는 시를 낭송하던 목소리를 가다듬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소리가 작아 동수는 선
선주는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선주의 맑은 눈망
주에게 바싹 다가가야 했다.
옛날 에티오피아에 왕국을 다스리던 케페우스 왕에게 카시오페아라는
왕비가 있었대요. 그녀는 아름답기는 하였지만 허영심이 많은 여자여서
항상 바다의 요정들보다 자신이 더 아름답다고 떠벌리고 다녔어요. 카시오
페아의 이야기가 바다의 요정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용정들은 바다의 신(神)
인 포세이돈에게 카시오페아를 혼내줄 것을 요청했어요.
포세이돈은 요정들의 청을 들어주기 위해 괴물고래를 만들어 에티오피
아로 보냈답니다. 괴물 고래의 습격을 받은 에티오피아 왕국은 날로 황폐
해져 갔고 케페우스 왕은 이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름다운 딸 안드
로메다 공주를 괴물에게 바쳐야 했어요.
때마침 메두사를 처치하고 에티오피아의 하늘을 날아가던 페르세우스는
바위에 묶여 괴물 고래에게 회생되려는 찰나에 안드로메다 공주를 보게
되었고, 그는 곧장 지상으로 내려와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하여 괴물고래
를 돌로 만들어 버렸대요.
괴물을 처치하고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 페르세우스는 공주와 결혼하
게 되었답니다. 케페우스 왕과 카시오페아가 죽게 되었을 때, 포세이돈은
이들 부부를 괴물 고래와 함께 하늘에 올려 놓았는데, 카시오페아는 그녀
의 허영심에 대한 벌로 하루의 반을 의자에 앉은 채 거꾸로 돌게 하였다고
해요.
그리고 훗날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공주가 세상을 뜨자 아테네 여신
은 이들을 케페우스, 카시오페아, 괴물고래가 있는 곳에 두 개의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대요. 저 북동쪽 하늘을 보면 괜히 가슴이 시려요. 참 이상하
죠? 살아 있을 때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 대던 괴물고래와 안드로메
다 공주, 페르세우스 그리고 왕과 왕비가 모두 가까운 장소에 몰려 있으니.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는 자주 북동쪽 하늘을 올려다 보는 버릇이 생겼
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나와 함께 저 북동쪽 하늘을 볼 사람이 옆에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바램이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게 이루어 진 것 같아요.
그 날은 최소한 대학생이 되어서 멋진 남학생과 호젓한 장소에서 밀어를
주고 받으면서 카시오페아 자리를 함께 보고 싶었는데. 호호호호......, 동
수씨, 어때요, 별자리 이야기 재미 있어요?
“와 -, 선주씨는 영문학과에 갈만해요. 과연 K여고 인기스타 답습니다.”
동수는 선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공주를 마치
오늘 첫 만남을 가진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믿고 싶었다.
금방 밴더빌트의 아름다운 시와 그리스 신화로 교감을 나눈 동수와 선주
는 서서히 가슴을 열어가고 있었다. 동수가 선주의 손을 살며시 잡자 선주
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동수의 하얀 얼굴을 눈동자에 곱게 새겼다.
그때 한 무리의 반디 불이들이 버드나무로 몰려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고, 멀리서 한 쌍의 비둘기가 사랑의 찬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둘기의 구구 거리는 소리를 신호로 들녘에서 개구리들의 합창소리와 숲
속에서 이름 모를 산새들의 묘한 울음소리가 초록의 들녘과 별들이 반짝거
리는 여름 하늘로 퍼져 나갔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