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의 꽃(3)
- 여강 최재효
하늘의 인연법에는 실수가 있을 수 없다. 남녀가 부부가 되기위한
조건도 주변 여건도 미리 준비되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나라, 다
른 가정에서 나고 성장하여도 하늘이 정한 인연법에 의해 부부는
맺어지게 되어 있다. 부부로 잘 살고 있다가도 전쟁이나 혹은 예상
하지 못한 천재지변으로 이별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부부로 맺어
지기 위하여 하늘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니 어쩌다가 니시하라 가문이 조센삐를 며느리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래. 허허, 망조로다. 망조야.”
“니시하라 유키나가가 속이 깊은 아이인데 잘 알아서 평생의 반려
자를 선택하였겠지. 우리는 술이나 푸자고.”
니시하라 가문의 원로(元老)들은 불편한 속내를 토하며 조선의 처
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유키나가를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니시하라
가문에서 큰 어른인 니시하라겐죠의 처사에 대하여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지 못했다.
“키레이데스네. 혼토”
[정말로 예쁘네요.]
“소우데스네. 얏바리 조선노 조세이가 쓰바라시이네.”
[그러네요. 역시 조선 여성이 훌륭해요.]
니시하라 가문의 남자들과 달리 여인들은 화려하게 꽃단장한 소근
비를 바라보면서 탄성을 질러댔다. 왜의 여자들 중에서 찾아보기 힘
들 정도로 키도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갸름한 얼굴의 새치
름한 소근비를 왜녀(倭女)들은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속살거렸
다.
새하얗게 얼굴에 분을 바르고 선홍빛 입술연지 부풀린 머리에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들. 소매가 긴 붉은색 비단 기모노에는 꽃과 구름 그
리고 부채와 사군자 등의 문양이 눈이 부실정도로 수 놓아져 있었다.
기모노에 긁은 허리띠인 황금색 오비로 매듭을 하여 뒤로 감아 비끄
러 매고 치장하였는데, 왜녀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기모
노를 입은 소근비는 가슴이 아려왔다.
‘족두리를 쓰고 치마와 저고리를 입어야하는데 어쩌다 내가 왜녀의
옷을 입어야 한단 말인가? 조선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
이 알면 얼마나 가슴아파 할까?’
소근비는 혼례식을 치르는 동안 내내 고향을 그리며 속으로 울고 있
었다. 소근비의 눈가에 자주 눈물이 어리비치자 니시하라유키나가는
자닝하여 차마 똑바로 소근비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런 마음은 시어머
니 될 하루꼬(春子)도 마찬가지였다.
‘에구, 어린 것이 왜국에 포로로 잡혀 와서 부모형제도 없이 혼자 혼
례를 치르다니…….’
그러나 시아버지 니시하라 겐죠는 모지락 스러운 얼굴로 흐트러짐 없
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니시하라 가문의 연장자답게 늘 굳은 표정으로 무사(武士)의 체
통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혼례식이
끝나고 늦은 밤 시니하라유키나가와 소근비만 별채로 들었다. 방에 조
촐한 주안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근비, 한잔 들고 일찍 자리에 듭시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피곤하겠소.”
니시하라는 곡진한 태도로 소근비를 위로하였다.
“…….”
“자, 잔 받으세요. 우리 앞으로 잘 살아봅시다. 나는 그대가 내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오.“
“니시하라상…….”
소근비가 흐느끼자 니시하라가 따듯한 말로 소근비를 다독였다.
“울지마오. 오늘 같은 날 조선에 계신 부모님이 함께 했다면 좋았을
것을…….”
소근비는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주체하지 못했다. 니시하라가
살며시 소근비를 안아주자 소근비는 더욱 소리 내어 흐느꼈다.
“울지마오. 내 전쟁이 끝나면 조선 땅으로 건너가 그대의 부모를 만
나 볼 생각이오.“
“니시하라님, 고마워요.”
소근비는 니시하라의 말이 진정으로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아니요. 비록 우리 왜와 전쟁을 하고 있으나 나에게는 그대를 낳아준
조선이오. 또 나의 처가가 있는 조선이오. 내 꼭, 꼭 좋은 날이 오면 전라
도 땅으로 가서 그대의 부모님을 찾아 뵐 것이오.”
“니시하라님,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부부로 있는 동안 불가할 지도 모
릅니다. 조선 사람들은 왜인들을 보면 모두 죽이려 들거예요.”
“아니오. 내 꼭 조선에 계신 장인 장모님을 찾아뵐 것이오. 만일 조선
이 나를 왜인이 아닌 조선의 사위롤 맞아준다면 나는 장차 조선에 귀화
할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니시하라가 조선으로 귀화를 고려한다 말에 소근비는 속으로 은근한
감동을 받고 있었다.
“고, 고마워요.”
“자, 합환주 들고 자리에 듭시다. 나도 무척 피곤하오.”
두 사람이 합환주를 나눠 마시고 자리에 들었을 때 밖에서 소근비의
몸종으로 일하고 있는 언년이 문밖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죽는 날 까지 당신을 인애 할 것이오. 한눈 팔지 않고 당신만 아끼리
다. 우리 이제부터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한 평생 살아봅시다.“
“니시하라님, 고마워요.”
소근비로서는 니시하라유키나가가 은인이었다. 만약 니시하라가 자
신을 건사하지 않았더라면 소근비는 멀리 아라비아나 로마 아니면 알 수
없는 곳으로 팔려가 평생 비참한 노예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비록 원수의 나라 남자지만 인간성이 따뜻했고 시시풍덩하지 않
으며, 다정다감한 품성이 소근비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니시하라님, 잠시만 밖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밖에는 왜요?"
"조선에 계신 부모님에게 오늘의 이 사실을 고하려고요. 합환주는 잠
시후 들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소근비는 서천으로 달려가는 하현달을 올려다 보았다.
희붐한 구름 속을 들락거리며 흐르고 있는 달은 고향에서 볼 때 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아버님, 어머님. 이 불효자식 부모님 허락도 없이 혼례를 올리게 되었
습니다. 용서하세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 한몸으로 혼사를 거부할 수
도 없었습니다. 살아 생전에 아버님 어머님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불효 막심한 여식을 자나깨나 걱정하고 계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보
고 싶어요. 오늘 왜인의 처가 되었습니다. 저 달을 통해 소식을 전하옵니
다. 용서하세요. 아버님 허락도 받지 못하고 왜인의 처가 됨을 용서하세
요. 아버님, 어머님……."
소근비는 서녘 하늘 높이 떠있는 달을 바라보면서 절을 올렸다. 방안
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니시하라의 마음도 아팠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계신 조선을 향해 절을 하는 아내가 애처로웠다. 밤 이슬을
흠뻑 맞고 들어 온 소근비를 니시하라는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소근비,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쉬어야 해요."
합환주를 나눠 마신 뒤 니시하라는 소근비의 대례복을 벗겨주었다.
서둘지않고 천천히 소근비의 옷을 벗겨주며, 니시하라는 소근비의 육
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몽실하고 실팍한 젖가슴이 드러나자 소근비
는 고개를 숙였다.
니시하라는 소근비의 수줍어 하는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 옷
을 벗겨 나갔다. 머리에 꽂혀있던 장식들을 하나 하나 뽑아 내며 니시
하라는 여인의 체취에 흠뻑 취하기 시작했다. 왜의 여인들에게서 맡을
수 없는 향긋하고 기분 좋은 체취였다. 그는 거의 알몸이되다시피한
소근비를 요에 눕히고 마지막으로 손바닥만한 속곳을 벗기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조선의 꽃이 하얀 요 위에 수줍게 피어 있었다. 니시하
라는 잠시 불빛에 흔들리고 있는 아름다운 나신을 바라보면서 쿵쾅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니시하라의 따뜻한 손이 소근비의 목덜미와 젖가슴을 간지럽혔다.
이어 촉촉하고 달콤한 혀가 소근비의 입 안을 침범했다. 니시하라는
뜨거워진 몸으로 소근비 위에서 지그시 눌렀다. 파도가 치다가 잠시
고요했고 다시 폭풍우를 동반한 율동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어졌
다.
누런 황촛불이 너울 댈 때마다 벽에 아름다운 모습들이 흔들리면서
다양한 모습이 그려졌다. 니시하라의 격렬한 몸짓에 소근비는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입에 살살 녹는 사탕처럼 니시하라의 혀가 소근비의
전신을 간질였다.
소근비는 얼마전에 이탈리아 노예상인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의 광
경이 떠올랐다. 우악스런 남성이 성난 파도처럼 연달아 밀려들었을
때 소근비는 까무러쳤었다. 그 백인 노예상들에 비하면 니시하라는
마치 보물 다루듯 정성을 다하며 소근비를 열락으로 안내하고 있었
다. 처녀성을 백인 노예상에게 빼앗긴 것이 너무 원통했다.
타게 했다. 환희와 슬픔의 눈물이 동시에 소근비의 양볼 위로 흘러내
고 있었다. 소근비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니시하라는
두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주는 소근비가 사랑스러
웠다.
한참 동안 정성을 다하여 강약을 조절하던 니시하라의 몸짓이 멈
추면서 외마디 신음과 함께 음액(陰液)을 토해냈다. 땀으로 흠뻑 젖
은 니시하라가 밭은 숨을 몰아쉬면서 소근비의 몸에서 떨어질 줄 몰
랐다. 매우 흡족한 듯 니시하라는 소근비를 꼭 안아주었다.
"소근비, 고마워요. 그대는 내가 겪어본 여자 중 최고예요. 나 니시
하라는 너무 행복해요."
니시하라는 소근비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소근비 보다 서너살
많은 언년이는 창밖에서 소근비의 첫날밤을 훔쳐보면서 입술을 깨
물며 몸을 비비꼬았다.
세상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어느 날 니시하라는
소근비에게 교토 시내를 구경시켜 준다며 함께 외출을 하였다. 혼례
를 올린 후 바로 신사(神社)에 가서 참배하지 못한 것이 니시하라는
늘 섭섭했었다.
“소근비상, 오늘은 교토를 구경하고 혼노지(本能寺)에 가서 제를
올립시다. 왜에서는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신사를 찾아요. 우리 혼
례식 때는 남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당신을 데리고 신사를 참
배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우리 니시하라 가문과 인연이 깊은 혼노지
에 가서 예를 올리고 싶어요.“
“슈진, 고마워요.”
하인 두 명을 대동하고 니시하라와 소근비는 교토 시내를 구경하
면서 혼노지를 향해 걸었다. 늦봄이라 날씨도 따뜻했다. 두 식경 쯤
혼노지에 도착한 니시하라와 소근비는 법당으로 들어 부부의 예를
올렸다.
“소근비, 여기는 십 년 전 6월 왜를 다스리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
長)라는 장군이 심복인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때의 사건을 혼노지노 헨(変)으로 불리지요. 아버님도 그때
노부나가 장군을 지근에서 보좌하고 있었는데, 주군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늘 그때의 악몽을 되새기며 절치부심하고 있답
니다.
이 혼노지는 그때 부하의 손에 비명횡사한 오다노부나가 장군의 혼
을 달래기 위하여 법당 앞에 공양탑을 세웠습니다. 우리 가문의 사람
들도 해마다 이곳에 와서 그 분의 명복을 빌고 있답니다. 앞으로 소
근비도 나와 자주 이 절에 올 것입니다.“
니시하라는 마치 자신의 가문의 일인 양 매우 들뜬 상태에서 절의
역사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다
시 한번 교토 시내를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교토 시내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니시하라는 소근비를 데리고 사람들
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길가에 마차 십여대가 줄을 지어 서있었는데, 마차마다 어른 키만 한
사각형의 나무상자 두개가 실려 있었다. 그 상자 안에는 커다란 독이
들어있었고 독 뚜껑은 굳게 닫혀있었다.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서 무
엇인가를 읽으며 환호하고 있었다. 니시하라는 마차에 쓰인 선전문(宣
傳文)을 읽은 후 소근비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슈진, 저 마차에 무엇이 실려 있는데 그러세요? 가까이 가서 보고 싶
어요.”
“타메, 타메데쓰요.”
[안돼, 안돼요.]
니시하라는 소근비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슈진, 무엇인데요? 점점 더 궁금해요.”
소근비는 니시하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마차 가까이 다가가 선전
문을 읽어 내려가다 충격을 받았다. 그 마차 상자 안의 독에 조선인
의 코와 귀가 담겨 있다고 적혀 있었다.
“아-, 이럴 수가. 어찌 이럴 수가?”
“언니, 뭔데 그래요?”
곁에 있던 언년이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소근비에게 물었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찌…….”
“언니, 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언년이는 가막눈이라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언년아, 저 큰독 안에는 소금에 절여진 조선 백성의 코와 귀가 들어있
단다.“
“네에? 조선 백성들의 코와 귀가요?”
“그래, 우리 조선의 백성들 살점이 저 독안에 들어있은데 왜놈들이 전
국을 돌아다니며 자랑을 한다고 하는구나. 어찌 이렇듯 왜놈들이 간악할
수가 있는 거니?“
“나쁜 놈들. 조선 백성을 포로로 잡아온 것도 모자라 조선의 무고한
백성들 죽여 코와 귀를 잘라내어 저렇듯 가지고 다니다니. 천벌을 받을
놈들이야. 천벌을.“
“쉿, 언년아, 이곳은 왜의 심장부야. 조용히 해.”
“언니, 저 광경을 보고 어찌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에요.
너무 딱해요. 조선에는 코와 귀가 없는 시신들로 넘쳐 날텐데, 장차 왜놈
들이 천벌을 어찌 감당하려고…….“
언년이는 씩씩대며 당장 마차 위로 올라가 상자를 때려부술 태세였다.
“소근비, 어서 다른 곳으로 갑시다.”
니시하라는 소근비와 언년이를 그냥 두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라 불안해 하였다.
“슈진, 아버님도 우리 조선에 건너가 선량한 조선의 백성들을 죽여 저
“소근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소근비는 조선 백성들의 코와 귀가 소금에 절여
진 채 담겨있는 커다란 항아리가 눈에 어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외출에
리가 후둘 거린답니다.“
렇게 코와 귀를 베었을 거 아니에요?“
“아니오. 아버님은 사람을 쉽게 죽이지 않소.”
“저는 아버님이 무서워요. 앞으로 어지 살아가야 할지. 너무 두려워 다
서 받은 충격은 소근비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었고, 그 상처는 소
근비가 세상을 끝마치는 날까지 아물 수 없는 것이었다. 세월은 아무렇
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조선과 왜의 전쟁도 끝났고 왜도 예전처럼 정국이 차차 안정되어 갔다.
조선을 침범했던 풍신수길(豊臣秀吉)은 전쟁 중 죽었고, 그의 가문은 도
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멸문지화를 당했다.
소근비가 왜인의 처가 되어 두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늘 마음은 고향
땅에 가 있었다. 왜인 남편 니시하라가 아무리 잘 대해주어도 늘 가슴
한편에는 십년 묵은 체증이 남아있는 듯 시원치 않았다. 이듬해 소근비
는 아들을 그 다음해에는 딸을 니시하라 가문에 안겨 주었다. 소근비가
자신의 혈통을 이어주자 늘 근엄하던 시아버지도 소근비에게 차차 마
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