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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 여강 최재효
변한 것은 없습니다.
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 새는 늘 머리맡에 와서
방금 일어난 사소한 일들을 알려 주곤 합니다
늘 후덕했던 이웃이 방금 하늘로 소풍을 갔고
딸애는 새벽을 열고 애인을 만나러 갔으며
아내는 세월을 거스르며 입술연지를 짙게 발랐고
식탁에는 쉐리와인 한잔과 갓 구워낸 빵
십 년 전 찍은 젊은 가족사진이 단정히 앉아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을 얼마만큼은 바르게 살았다고
애써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남았고 끝은 보이지 않기에 약간은 안심이 됩니다
집 근처 공원에는 이제 막 가정에 환원 된 친구들이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무의미한 미소를 짓습니다
오래 산만큼 생에 대한 애착은 길어지나 봅니다
봄은 잠시 인사만 하더니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고
가을은 금방 찾아왔으며 겨울은 날이 시퍼런 칼을
세우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달려듭니다. 이제
여름은 나 하나쯤은 우습게 여기는 것 확실합니다
해가 지고나면 어김없이 달이 다양한 얼굴로
찾아오고, 별들도 약간 자리를 옮겨앉은 듯 합니다
기다리는 추억보다 이미 만들어진 추억이
뇌리에 더욱 맑게 찾아오고 자주 눈을 감습니다
다시 10년이 흐르면 내가 저 하늘 의 별이 되어
반짝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결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합니다
양쪽 눈꺼풀이 예전보다 많이 무거워졌고
예전에는 답답해 보였던 돋보기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으며
눈은 더욱 날카로워 졌다는 사실 외에는
몇 가지 더 추가하여 말씀드린다면 천둥을
우습게 알던 내가 겁쟁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장육부의 능력이 상당히 감퇴 되었으며
평생의 반려자인줄 알았던 국선생(麴先生) 조차
이별을 고하였고, 덩달아 가슴이 큰 친구들도
차차 멀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하늘 모르고
쌓아 올리던 바벨탑을 하나하나 무너트리며
스스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 비애 외에는
특별히 변한 것을 모르겠습니다
- 창작일 : 2005. 10. 1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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