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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는 도깨비

* 창작공간/Essay 모음 2

by 여강 최재효 2006. 5. 2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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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는 도깨비



                                                                  - 글. 최재효




     내 고향에는 10년째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낯익은 물건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들은 고향 뒷동산에 진달래피고 종달새 짝을 찾는 계절부터 시작해서 북녘으로부터 기러기 날아 올 때 까지 가족의 일원이 되어 함께 땀 흘리며 고락을 함께 하곤했다. 이제는 홀어머니가 사시는 옛집 헛간에 벌겋게 녹이 슬어 사그라드는 그들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미어져 내린다.


아버님께서는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밀 때 겨우 천수답 네마지기를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으셨다. 그 네마지기가 아버지의 피땀으로 열마지기가 되고, 나중에 스무마지기 되었으며,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에는 아버님은 동네에서 부자(富者) 소리를 들으셨다.


아버님은 동이 트기도전에 지게에 그것들을 싣고 베르실이나 배실, 평장께 들녘으로 다니시며 당신의 꿈을 일구셨고, 우리 칠남매는 아버님의 그 꿈을 먹고 자랐다. 그 만큼 그들은 우리 가족의 미래와 행복을 지탱시켜 주던 소중한 존재였다.


그중에 만만해 보이는, 아버님의 땀이 스며든 지게를 져 보았다. 칠남매중 제일 약골로 자란 나는 빈 지게 지는 것도 버거웠다. 아버님은 이 지게에 쟁기며, 써레, 탈곡기, 갓 추수한 볏가마등 당신보다 더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사자처럼 들녘을 누비셨다. 갑자기 문약(文弱)하게 자란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님은 유독 막내아들을 귀여워 하셨다. 아버님이 새벽녘 이슬을 헤치고 들녘에 나가실 때면 잠이 덜깬 막내는 귀신같이 알고 강아지처럼 뒤를 졸졸 따라나섰으며, 그런 막내가 안스러우셨는지 당신의 지게에 태워주시곤 하셨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 막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며, 당신이 한창시절 씨름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던 전설들을 들려주셨다.


그때는 들녘에서 목청을 자랑하던 개구리들도 숨을 죽이고, 밤새 울던 소쩍새도 아버님의 구수한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아버님은 눈물을 자주 훔치셨다. 당신과 달리 자식들에게는 쟁기대신 펜대를 잡게 해주시고 싶어 하셨으니, 감개가 무량하셨을 께다. 70년대말만 해도 농촌에서 대학을 보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다.


나와 형제들에게 삽과 낫 대신 펜을 잡게해준 우리집 일등공신들이 쉬고있는 헛간은 나에게 마치 성인(聖人)들이 잠들어있는 성역과 같다. 이제는 퇴역군인처럼 일선에서 물러나 호젓하게 쉬고있는 농기구들을 훗날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면 한적한 곳에 전통찻집이라도 차려놓고, 장식용 기구로 화려한 옷을 입혀 가족의 일원으로 다시 맞이 할 예정이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도깨비가 된다고 한다. 빗자루, 부지깽이, 호미, 도리깨, 쟁기, 지게, 낫, 삽, 숟가락등......

아버님이 다른 세상으로 떠 나신지 어언 10년이 되었지만, 팔순이 넘으신 어머님은 홀로 고향집을 지키시고 계신다. 자식들이 수돗물 나오는 곳으로 모시려고 해도 당신께서 한사코 만류하시는 까닭은 아마도 당신과 아버님의 피 땀이 스민 분신과도 같은 그들을 무정하게 버리실 만한 용기가 없으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향집 대문에는 아직도 아버님의 문패가 50년째 걸려려있다. 그 문패는 어머님이 이 세상 마지막 날 까지 그대로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문을 드나드실 때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성함 석자를 보시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물론 고향집을 지키는 정든 도깨비들과 함께 사시고 계시니.


말로만 효를 하는 내 자신이 고향을 지키는 도깨비들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도깨비들 덕분에 펜대를 잡았으니 그들은 나를 위해 희생한 고마운 존재다. 어릴 때 귀가 아프게 듣던 아버님의 단골 노래가락을 이제 도깨비들이 부르고 있다.


"어~머님에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매년 초 장모님은 노란 종이에 붉은 색으로 그려진 각종 부적을 큰 사위와 딸에게 보내주신다. 그 부적에는 시집간 딸과 사위, 외손(外孫)들의 안녕을 위해 주문하신 알 수 없는 글자나 그림이 그려져있다. 언젠가는 우리 가문을 일궈준 농기구들이 도깨비로 되살아나 다시한번 가문을 일으키는데 힘이 되어주길 빌어본다.


요즘 젊은층은 1년이면 휴대폰을 두세번씩 바꾼다고 한다. 자동차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주인에게 외면을 당하기 일쑤지만. 비록 심장이 없는 것이라도 생명을 불어 넣어 가족의 일원으로 맞이해 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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