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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공간/Essay 모음 2

by 여강 최재효 2006. 6. 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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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강 최재효

 

 

 

 

  혼자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주말, 느지막한 오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아침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마누라도 아니고, 다른 가족도 아닌 차가운 빵 한 조각 이다. 울컥, 서러움 같은 것이 속에서부터 치고 올라온다.
  “어쩌다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주말마다 회사가 쉬는 관계로 나는 주말 오전 오후를 혼자 집지키는 강아지 신세가 된다. 최근에는 강아지 신세를 면해보려고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들 보다 먼저 등산가방을 메고 일찍 집을 나선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 온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로 3개월 동안 회사와 집을 왕래하는 것 말고는 두문분출 해야 했다.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주말이나 휴일은 주로 집에서 컴퓨터의 친구가 되어 주거나 먼지 속에 잠을 자던 책들과 친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 날에는 망상(妄想)도 해보고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도 펼쳐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이런 한심한 나의 뱃속을 채워주는 빵이 있어 그래도 심심치 않다.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오늘 같은 날이면 아내가 식탁에 차려 놓은 생기 없는 아침상 보다 빵을 찾는다. 어제는 고향 선배가 시내에 파리바게트 빵집을 개업 했다. 일주일 이상을 먹고도 남을 빵을 한 아름 사왔더니 아이들과 아내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빵은 아주 귀한 음식이었다. 소풍 갈 때 콜라 한 병에 앙꼬빵 하나면 충분했다. 주로 앙꼬 빵이나 단팥빵을 좋아했던 나는 가방 속에 늘 빵 한두 개 정도는 넣고 다녔다. 초, 중, 고 학생시절 질리도록 먹었던 빵을 군대에서도 잊지 못했다.

 

  술을 자유롭게 마실 수 없는 병영(兵營)에서는 주로 빵과 콜라나 사이다로 심심한 입을 달래야 했다. 일과가 끝난 자유시간이면 동기(同期)들과 군대내 매점인 PX로 달려가곤 했다. 그 시간이 되면 세상 부러울게 없었다. 콜라 한 병에 빵 하나면 나는 행복했다. 사회에 진출하면서도 나는 빵과 인연을 끊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 두 딸들까지 빵의 애호가로 만들어 버렸으니 나중에 그 애들이 시집가서 빵을 찾게 되면 친정아버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리라.


  요즘에는 주로 크림빵을 주로 찾는다. 겨울에는 퇴근길에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입구에 두툼한 손의 아주머니가 만들어 파는 붕어빵과 국화빵이 내 입을 즐겁게 해준다.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아파트 담장을 노랗게 치장하면 더 이상 그 아주머니를 볼수 없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많은 가정의 현모양처들이 산업의 역군이 되었다.

 

  당연히 하루 세끼의 밥 대신 빵이 식탁에 올라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밥은 차차 빵이나 피자 햄버거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나 같이 40이 넘은 부류들은 피자나 빵 종류의 먹을거리보다는 얼큰한 된장찌개가 곁들인 식단을 선호하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빵 종류의 음식을 즐긴다.


  작년 연말에 아내가 잘 아는 선배네 빵 가게에서 빵을 산더미처럼 사온 일이 있었다. 그날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면서 빵을 내다 버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며칠동안 냉전으로 집안 분위기는 썰렁했고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며 빵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리 직장 일로 가사를 돌볼 시간이 없다하더라고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만큼은 빵이 아닌 정성이 들어간 따뜻한 밥과 찌개 고등어조림, 멸치볶음, 나물, 김치등 계절마다 싱싱한 야채류로 식단을 만들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도록 해주기를 바랐지만 아침일 찍 출근하고 밤 늦게 귀가하는 관계로 식탁에 인스턴트 음식을 잔뜩 사다가 식탁을 꾸미는 일은 가장(家長)으로서 탐탁지 않다.


  부부 싸움 후 얼마간은 집안에 빵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빵이 다시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요즘은 모르는 척 하고 아침이면 내가 먼저 우유 한 컵에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면 아이들도 나를 따라 한다. 우리처럼 게으른 맞벌이 부부 가정에 빵은 없어서 안 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최근에 생각해 낸 것이 토스트다. 우유 한 컵에 영양가 없는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기보다 학교에 가는 두 딸과 내 뱃속의 평안을 위해서 바쁜 아침에는 살짝 구운 식빵을 계란 프라이를 넣고 토마토케첩을 발라 우유나 베지밀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토스토로 아침을 때우다 보니 이제는 서서히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아내에게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하라고 하자 ‘당신하고 이혼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직장은 포기할 수 없다‘라는 말에 나는 큰 낭패감을 맛봐야 했다.


  기혼 여성에게 직장은 자아(自我)의 실현 자기만족과 가정에서의 현모양처 위치보다 사회에서 남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획득등 여러 가지 요소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가사도 중요하다.

 

  물론 집에 빨리 귀가하는 남편들이 빨래나 설거지 청소를 도와 줄 수는 있어도 집에 왔을 때 적막강산 같은 집에 오고 싶은 마음이 차차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심심풀이를 찾게 된다.


  나는 지금 팥빵 한 조각과 우유 한 컵으로 아침을 대신하면서 나 같은 처지의 남편들이 꽤 있을 것이라 추정해 본다. 둘 이 벌어야 먹고살 수 있는 시대에 맞벌이부부가 같이 쉴 수 없는 경우 식탁에 빵이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을 것이고 남편들은 점점 말 수가 줄어들겠고 부부사이에 대화의 횟수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오늘따라 빵과 우유 맛이 무미건조하다.

 

                                                                    2006. 6. 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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