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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알친구

* 창작공간/Essay 모음 1

by 여강 최재효 2005. 3. 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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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알친구






- 글. 최재효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내가 부르는 노랫가락에 맞춰 불알친구 녀석들과 생(生)에 최고의 날을 맞이한 하얀 어머님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춘다. 비록 지방의 중소도시 고희연 무대이지만,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서울의 물 좋은 나이트클럽보다 분위기는 뜨겁다. 어머니들의 바싹 마른 뺨이 촉촉이 젖어 있다. 평생에 한번 있는 고희잔치를 해드리는 아들들과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백발의 어머님. 괜히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목이 멘다.


중년을 넘기고 부터 고향의 불알친구들로부터 자주 편지와 전화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부모님 고희연이나 팔순 잔치를 알리는 청첩장이 대부분이다. 속도를 요하는 전화의 경우는 부모님 또는 형제자매의 부음(訃音)을 알리는 내용이다. 나와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인생의 갈무리를 하는 계절 한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칠십 평생을 고생하신 어머님들의 위로연이 단 몇 시간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송구한 생각이 든다.


가족친지들의 노래자랑이 끝나자 불알친구들이 무대로 우르르 몰려나가 돌아가며 갈고닦은 장기를 선보인다. 약주를 약간 드신 어머님들은 천진한 아이들 같다. 아들의 친구들도 아들로 생각하시는 시골의 어머님들이다. 설날이면 친구의 부모님을 찾아 세배를 올린다. 오랜 세월을 한 마을에서 살아오신 부모님의 오랜 벗이자, 친구들의 어머님이다. 친구들의 어머님은 또한 나의 어머님이다. 외부의 기운이 덜 침입한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감대 의식이다.


하얗게 웃는 어머님들의 얼굴에 오랜 고단함과 회한이 담겨 있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어머님이 노래하는 내손을 잡고 고운 눈빛으로 고마움의 표현을 한다. 비록 나를 낳은 친 어머니는 아니지만 따스한 모정(母情)이 가슴에 전류처럼 전해진다. 가슴이 찌르르하고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낀다. 개그맨처럼 묘한 표정을 하고 춤을 추는 친구 녀석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모두의 입이 함지박만큼 커졌다.


도우미는 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 하객들을 무대로 잡아끈다. 노래 못하고 춤 못 추는 하객은 연신 화장실만 들락거린다. 대개의 경우 잔치 주인공은 자식들과 하객들이 올리는 술에 이미 불콰하게 취해있다. 약삭빠른 노래 도우미는 술 취한 하객(賀客)에게 꼬리를 내밀며 한 몫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기도 하다.


벌겋게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있는 불알친구들을 천천히 뜯어본다. 초등학교 때 공부 보다는 노는데 더 관심이 있던 녀석, 푸줏간 주인이 되어 있는 공 잘 차던 녀석, 장난이 심해 자주 선생님한테 손바닥을 맞던 녀석
, 어느덧 모습을 알 수 없는 중년이 되어버린 고무줄 잘하던 계집애들.
. 이 사회의 중심축이 되어버린 중년이 된 친구들의 얼굴에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천진함은 사라졌지만, 아직 시골의 순수함이 있어 다소 안심이 된다.


친구들과 일년이면 평균 너댓번 불규칙적으로 만나다. 대개는 갑자기 누구의 아버님이, 또는 가족 중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 달려가 얼굴을 맞대는 만남이다. 경사(慶事)보다 조사(弔事)가 더욱 많은 횟수를 차지한다. 부모님들의 연로함이 그 원인이리라.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경사가 줄을 이으리라. 조만간 각자의 자식들이 혼기에 접어들면 이곳저곳에서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 쇄도 할 테니.


이미 몇 녀석은 이승의 여행을 마쳤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먼저 간 녀석들을 생각하면 측은 한 생각이 든다. 이런 경우는 녀석의 아내들이 친구들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찾는다. 예전에는 일년에 몇 차례 날짜와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 수시로 경조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불알친구, 그 의미는 좀 외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 함께 해온 고향의 친구들을 부르기에는 이 보다 좋은 호칭이 없다. 유년시절 누이들 앞에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벌거벗고 개울에서 함께 미역을 감고, 참외서리를 하며, 앞산과 뒷산을 헤매며 칡이나 산머루를 따먹던 말 그대로 땅강아지 같은 친구들이다.


그 범주에는 함께 같은 초등학교에서 동문수학을 한 계집애들도 포함된다. 불알친구라 해서 남자들만 포함한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이제 희긋희긋한 귀밑머리가 나기 시작한 나이에 남여칠세부동석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유년기와 청년기, 결혼기를 거쳐 이제는 중년기를 맞는 불알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한 시기는 얼마 안 된다.


이제는 각자의 바쁜 일상에서 나를 뒤돌아 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불알친구들이 일상의 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거나, 배우자들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해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답답함을 느낀다. 또는 개중에는 불알친구들을 무시하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자신들이 천년을 살 줄 아는 친구들이다. 그러한 친구는 막상 큰일을 당하면 고립무원이 된다.


솔잎을 먹고 자란 촌놈들이 수돗물을 마신다고 촌놈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촌놈인 몇몇 불알친구들이 자신이 촌놈이기를 거부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측은해 보인다. 3대를 거슬러 따지고 보면 이 땅에 촌놈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이클잭슨이 피부를 표백했다고 백인이 되었는가. 그는 지금 탈색의 후유증으로 코가 썩어 문드러지고, 기행(奇行)으로 말미암아 폐인이 되었다. 까마동과 오디를 따먹고 옥수수대를 씹으며 천진난만했던 불알친구들이 표백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다.


내가 불알친구들의 경조사에 다니면서 느낀 점은 서로의 방문이 품앗이와 같다는 점이다. 내가 가야, 그 애들이 오기 때문이다. 철저한 기브엔 테이크(Give and take)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어찌 보면 씁쓸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현실은 받기만 하려는 태도는 용납이 되지않는다. 아직 사고(思考)의 틀을 깨지 못하거나, 자신의 성(城)에 안주하려는 불알친구들이 어서 얼굴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향 청마루에 공동묘지가 있다. 고향을 지키며 평생을 보낸 가난한 분들에 대한 동네 차원의 배려에서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이곳에 모신다. 그런데 최근에 이곳에 수돗물이 그리워 고향을 떠났던, 고향에 전혀 공로가 없는 자들이 죽어 갈 곳이 없어 이곳으로 오고 있다. 뒤늦게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진의를 안 까닭일까. 이곳은 고향을 지키던 고마운 분들과 불알친구의 훗날의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


불알친구는 영원히 불알친구다. 거기에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이미 친구로서의 이미지는 색이 바래지기 마련이다. 오늘 친구 어머님의 고희잔치에서 순순함이 남아있는 녀석들을 만남은 앞으로 긴 시간동안 각박한 생활전선에서 청량제로 작용하리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해맑은 녀석들과 박꽃처럼 하얀 어머님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2005. 3. 28.




_()_ 복된 한주 되시고
늘 건강하세요

최재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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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茶사랑
글쓴이 : 징키스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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