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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연애

* 창작공간/Essay 모음 1

by 여강 최재효 2005. 3. 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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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연애




- 글. 최재효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오후에는 더욱 평안하시길 빌어요.”
점심식사를 하고 사이버 세상에 발을 들여놔 본다. 곧 심연(深淵)으로 빠져든다. 미지의 친구로부터 안부메일을 받고 잠시 흥분에 휩싸여 본다. 관공서로부터 오는 편지를 제외하고 누구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우선 가슴이 뛴다. 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다. 편지내용 또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한반도는 지금 열애중이다. 거대한 봄의 연풍(戀風)에 휩싸여 있다. 봄이 되면서 금수강산은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해 지고 있다. 자연이나 사람 모두 행여 이 대열에 끼지 못한다면, 상당한 소외감을 느끼거나 주변 환경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고 있음을 금방 깨닫는다.


자주는 아니지만 인터넷에 내가 쓴 글들이 여기저기 동호인홈페이지에 올려지면서 전혀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서 이메일을 받는다. 우리사회에는 불과 10년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경험을 하고있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서 이메일을 받는 일은 이제 희한한 일이 못된다. 컴퓨터를 만질 줄 아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편지를 이용한다.


단순히 편지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취미와 연령대 그리고 지역에 따라 활발한 동호회 활동을 한다. 더러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상당수 건전한 네티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사고와 생활방식을 변화시켰다. 미국이나 영국에 거주하는 교포와 시공을 초월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사귄 국내의 친구들과는 만나기도 한다.


종교, 문학, 사업, 연예인, 등산등 다양한 목적을 두고 비슷한 사람들이 만난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 땅의 몇몇 대형 포털 사이트에게 지역화합에 지대한 공로를 인정해 훈장을 주고 싶다. 우리는 지금 세종류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1+1=2가 되는 빡빡한 현실의 사회와 1+1=99가 되어도 상관없는 나만의 세상 그리고 1+1=1이 되어도 너그로운 사이버 세상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틈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언제 서울사는 사람이 부산이나 광주사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있던가. 우리는 오랜 세월 지나가는 남정네나 여인네에게 눈길 한번 줘도 백안시(白眼視)하는 분위기 아니던가. 문학을 하는 이유로 문학모임으로부터 자주 초대를 받는다. 참석해 보면 형님, 동생, 아우, 누이들이다. 천진스러운 어린아이들 같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 이 풍진 세상의 먼지와 근심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초등학교 때 소풍 온 아이들 모습이다. 소주 한 잔속에 지나간 세월의 뒤안길을 회상해 보며,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을 탓해보는 분위기다.


우리는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사회다. 공맹(孔孟)의 말씀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유학의 본토보다 더 철저하게 두 성인(聖人)을 받들어 왔다. 누이들에게 일부종사(一夫從事),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미덕으로 강요했던 긴 한의 세월이 있다. 신라와 고려는 지금보다 자유분방했다. 초대를 받아 모임에 나가서 초면의 또래들을 대면하면 나는 속으로 읊어보는 노래가 있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몽고인)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1)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2)
두레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3)
술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4)
얼음 위에 댓잎 자리를 보아 임과 나와 얼어 죽을망정 정을 준 오늘 밤 더디 새어라,
더디 새어라.(5)


(1)에서 (4)까지는 고려의 대표적인 가요, 쌍화점(雙花店)의 4연중 첫대목으로 고려여인들의 자유분방한 남녀 관계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만두가계에서 아라비아 상인이 고려 여염집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장면이며, 스님이 속세의 여인을 유혹하는 장면이 춘화처럼 그려진다. (5)번은 더욱 노골적인 남여의 정사(情事)를 그린 고려가요중 남여상열지사의 최고봉인 만전춘(滿殿春)의 첫 대목이다.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가 들어서면서 500년간 여인들은 추운 겨울을 만난다. 고려의 자유분방함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혜원 신윤복이나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일부 양반들이 기생들과 밀애장면을 유추해 볼 수 있지만 고려의 봄같은 분위기는 볼 수 없다. 800년 전의 송도(지금의 개성) 어느 번화한 거리의 주루(酒樓)의 분위기를 상상해보면 요즘 잘나가는 서울 강남의 나이트클럽이나, 시설이 잘 되어있는 카페보다 더욱 농도 짙은 밀애의 장면이 쉽게 그려진다.


요즘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외국인과의 로맨스 즉, 송도의 여인들은 당시 고려와 무역이 빈번했던 대식국(아라비아)나, 중국의 상인들과도 염문을 뿌렸다. 신라에는 선덕,진성,진덕등 세 명의 여왕이 존재했던 사실로 미루어봐도 남자천하의 조선과 최근까지 우리 사회보다 남여의 교류가 빈번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신라 서울 밝은 달밤에 새도록 놀다가
돌아와 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아아, 둘은 내 것이거니와, 둘은 누구의 것인가?“

신라시대 지은 향가인 처용가의 일부다. 물론 역신을 쫓는 내용이지만 표현방법이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철옹성 같던 조선 500년 금녀(禁女)의 문(門)과 만세반석같았던 완고한 할아버지의 위엄이 일시에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상상을 해보라. 사대부가의 며느리나 딸들이 공공연히 외간 남자와 밀회를 가지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대표적인 예로 조선 세종 때 왕가의 며느리였던 어우동은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다 풍기문란 죄를 뒤집어쓰고 국가에 의해 처형되었다.


2008년도부터 호적법이 전면 폐지된다. 강력한 치맛바람이 휘몰아 칠 조짐이 벌써부터 감지가 된다. 의사연애(擬似戀愛)는 보다 엄격한 자제가 요구된다. 사이버 인연은 온라인에서 시종일관이면 좋을성 싶다. 이성간, 부부간 한두 번의 이메일 교환으로 기혼여부를 떠나 쉽게 만난다면, 많은 혼란이 예상된다. 많은 자유에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이 수반돼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부부가 다른 부부를 만나 연애를 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기존의 의식구조나 도덕의 잣대를 거부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참을 두고 생각해 봐야하겠다. 어느 한 시대의 표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겉으로는 엄격하면서 뒤로 소돔(Sodom)을 동경하며 최첨단 상상의 나래를 펴는 야누스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러한 요구에 맞물려 의사연애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남편 이외의 남자들로부터 최소 한통의 이메일도 받아 보지 못한 누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봄이 시나브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가슴을 들뜨게 하는 봄이다.
왕성한 생육의 활동이 보장되는 계절이다.
금수강산에 열풍(熱風)보다 잔잔한 미풍이 불었으면 좋겠고, 세속의 욕망에 사로잡힌 수많은 이카루스가 제자리에 돌아왔으면......



2005. 3. 30.



_()_ 긴글 읽으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복된 하루 잘 마무리 하시고
늘 건강/ 평안 하소서

최재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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