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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늦으리

* 창작공간/Essay 모음 1

by 여강 최재효 2006. 5. 2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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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늦으리





                                                                                                                                      - 여강 최재효





   “아빠, 운동가?”


둘째가  현관을 나서는 내 등에대고 약간 불만 섞인 소리를

지른다. 나는 저녁식사후 두 시간후 쯤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간다. 전에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갔으나

이제는 나 혼자간다.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고 가기싫다고

하고, 아내는 회사에서 가져온 서류와 씨름을 하느라 시

간이 없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 세번의 술 자리가 있는 날을 빼고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은 나와의 싸움을 한다. 밤 이라는 시간은 참

으로 묘하다. 어둠속에 모든 것을 감춰준다. 얼굴이 예쁜

든 그렇지 않든 어둠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운동장에 나가면 참으로 마음이 홀가분 하다. 집안에서 느

끼는 답답함과 소음이 없어 좋다. 우선 경보(競步)로 운동장

을 20 바퀴정도 걷고난 뒤 다시 5바퀴를 뛰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러닝셔츠가 촉촉이 젖으면 일종의 성취감과 함께

희열을 느낀다.



 육체를 움직이지 않고 흘리는 땀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목욕탕안에서 땀을 흘리는 것은 수분만 뺄 뿐, 건강에 큰 도

움은 못 준다. 육신을 움직에 몸속에서 열이 나고 그 운동

에너지가 피부의 땀구멍을 통해 몸소의 염분과 노폐물을 배

출 시킬 때 건강이 다져진다.



 성인병 예방에 걷기가 좋다고 알려진 뒤 저녁시간대에 온

가족이 걷기운동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로

집 근처 학교나 도로 혹은 하천을 끼고 있는 제방둑에는 어

김없이 소잃기 전 외양간 고치려는 주민들로 넘쳐난다.



 내가 저녁 때 걷기를 시작한 것은 2년 전 봄이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등산을 하거나 걷기

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웃기도 했었다. 그해 초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북한산을 등산하였다.



 도봉산 관음암을 오르다가 현기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한

참동안 서있었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날

음주를 한 것도 아니었고 집에서 나올 때에도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다. 그 당시 내 몸무게가 85kg이었다.



 결혼전에 75kg 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비만이었다. 그때

충격을 받아 매일 저녁 걷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다시 총각

시절의 몸무게를 되찾았다. 담배도 끊고 좋아하던 술도 줄이

고 운동을 꾸준히 하니 자연 몸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주말

이나 일요일 등산가방 덜렁메고, 소잃고 외양간 고치치 않

으려고 서울근교 산을 찾는다.



내 앞에 40대 후반의 뚱뚱한 아주머니가 뒤뚱거리며 걷고

있다.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등이 땀으로 흔건하다. 하얀

반바지를 입은 뒷 모습이 부담스러워 보인다.



“진작에 저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더라면 평생 처녀같은

몸매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그 앞으로 30대 초반의 여자 둘이서 담소를 하며 걷고 있다.



 그 분들은 심심파적으로 마실을 나온 것 같다. 밤에 운동

장에 나와 걷기를 하다보면 얼굴이 익숙한 분들도 더러 만

난다. 그러나 자세히 쳐다보지 않으면 잘 구별할 수가 없다.



 뛰고 걷고는 이웃들의 싱싱한 삶을 구경하는 것 같아 기

분이 좋다. 다만 하늘의 스카이라인을 기하학적 무늬로 만

드는 고층아파트숲이 아닌, 여치와 찌르레기 반디불이를 만

날 수 있는 천연의 숲속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집

가까이 이만한 운동장이 있는 것만이라도 얼마냐 싶어 크

게 감사한다.


검푸른 하늘 한가운데 45억살의 달님이 배시시 웃으며 쳐

다보고 있다. 달밤에 체조하는 인간들을 내려다 보며 한마디

하신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렇게 땀을 흘리시는가?”


괜히 쑥스러운 생각이 든다. 100살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

이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 모습이 측

은하게 보인다.


 그러나 주어진 한 평생이나마 알차게 산다면 영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육신이나 기계도 일정기간 지나면 고

장이 나게 마련이고 결국 세상을 달리하거나 폐품이 된다.



 영원을 사는 분들이 있다. 부처나 예수는 인간의 몸을 지

니고 태어났다. 육신은 2000년 이전에 이승을 떠났지만

그분들의 말씀은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계신다. 이

지구가 종말이 올 때까지 그분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살아

계시리라. 우리 모두가 그분들처럼 종교를 만들어 영원히

 살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몸속에는 수 천년 이전부터 흐르던 피가 흐르고 있다

. 아버지 어머니가 그 자식들에게 피를 물려주셨고 그 자

식들은 다시 그 자식들에게 피를 물려주셨다. 나는 부모님

에게 피와 살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고, 다시 내 자식들에

게 내 피를 물려주었다.


 그 흐르는 핏속에 멀리는 고조선 대륙적 기질과 고구려의

기개가 살아있고,백제와 신라의 위대한 혼(魂)이 살아 숨

쉬고 있고, 고려와 조선의 숭고한 영(靈) 꿈툴대고 있다.



 나는 한 개체에 불과하지만 위로는 수 천년 동안 면면히

이어온 배달민족의 정기가 흐르고 있다. 그 도도하게 흐

르는 민족의 정기를 나에게서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

선 내가 건강해야 한다.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다.


주위에서 일찍 자신을 포기하는 선후배들을 본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 사명을

버리는 것은 아닌지. 술과 마약 육욕(肉慾)에 자신을 맡기

고 폐인이 되가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지난달에 불알친구 한 녀석이 세상을 버렸다. 욱하는 성

격의 녀석은 회사일로 동료들과 시비를 벌이다 분을 참

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다. 그 녀석의 영전에서 나는 속으

로 중얼거렸다.


 “저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 무책임하게 ...”

 녀석은 분명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친구들 곁을 떠났다.

분명히 세상에 온 목적이 있을텐데.


 운동장 스무 바퀴를 걷고 다섯 바퀴를 뛰었다. 런닝셔츠

가 축축하게 젖었다. 상쾌한 기분이 들며 새가 된 것 같다.

내 앞에 모녀가 정답게 걸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걷기와 뜀뛰기를 마친 몇몇 이웃들은 철봉대앞에서 체조

를 하며 숨을 고르고 있다. 외양간을 튼튼히 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달빛이 그들의 어깨위에서 하얗게 부서지

고 있다.


 나도 그들 옆에 서서 체조를 하며 숨을 고르고 있다. 얼굴

에 짭짜롬한 운동의 결과가 자랑스럽게 묻어있다. 잠시 벤

치에 앉아 발바닥을 주무르고 종아리를 만져본다. 튼튼한

다리가 믿음직스럽다. 이 두다리에 아이들과 나의 미래가

달려있다.


 들녘에서 울던 귀뚜라미는 8월이면 인간이 사는 집으로

숨어들고 9월이면 문지방을 기웃 거린다. 저 달 잔월(殘

月)되기 전에 외양간을 튼튼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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