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해이사금은 피폐해진 육신으로 내외 우환에 시달리면서도 날마다 황음(荒淫)에 빠져 국사를 소홀히 했다. 중신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박씨 집단과 김씨 집단 그리고 석씨 집단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촉즉발의 양상을 보였다.
그미가 고구려로 떠나자 서라벌의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하에 숨어있던 잠룡(潛龍)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서라벌은 권력 투쟁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밤. 정체불명의 무리가 *월성(月城) 동쪽 담장을 넘었다. 병장기를 손에 든 괴한들은 연지(蓮池) 주변에서 잠복해 있다가 대궐 수비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일대 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관군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첨해이사금은 초저녁부터 궁녀들과 어울려 주연을 즐기다가 허둥지둥 몸을 숨겨야 했다. 괴한들의 정체와 궁궐 담장을 넘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첨해이사금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이 분명했다. 고빗사위를 간신히 넘긴 첨해이사금은 더욱 움츠러들어 국정은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 월성 – 박혁거세부터 사로국의 궁성은 금성(金城)이었으나, 파사 이사금 때 월성을 새로 지어 정궁으로
삼았다. 후대에는 궁성의 형태가 반달 같다 하여 반월성이라고도 불렀다.
정월부터 시작된 가뭄이 계속되는 바람에 농작물은 자라지 못했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백성들이 도둑 떼로 변해 전국의 인심이 흉흉했다. 전국적으로 메뚜기떼가 그나마 남아있던 농작물을 모두 갉아먹는 바람에 민심은 최악의 상태였다.
또한, 여태껏 가물다가 갑작스럽게 폭우가 내리면서 수백여 마을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민가가 매몰되어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로 첨해이사금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 와중에 백제군이 국경을 넘어 백성들을 도륙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일길찬 *익종(翌宗)이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수많은 군사가 죽임을 당했다. 계림군은 백제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려 *봉산성(峰山城)까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계림국 군사들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져 눈앞에 적군이 활보하여도 성문을 굳게 닫고 응대하지 않았다. 첨해이사금은 고육지책으로 백제와의 전쟁을 막기 위하여 백제에 친선사절단을 보냈지만, 고이왕(古爾王)은 계림국 사신들을 접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옥모태후가 떠나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네그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게 생겼어. 빨리 이사금을 갈아치워야 해.”
“뺑덕어멈 말이 맞아. 첨해는 원래 이사금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네. 석우로 장군이 군주가 돼야 했어. 그리되었더라면 우리 계림국 백성들이 지금처럼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야.”
“첨해가 왜놈들과 내통하여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석우로 장군을 죽이고도 잘 될 거로 생각했다면 그건 큰 착각일 거야. 천지신명이 노한 거야. 나라의 큰 인물을 함정에 빠트려 죽였으니 나라가 잘될 리가 있나?”
“내 조카가 궁궐 문지기로 있는데, 첨해가 매일 술에 절어 여우 같은 궁녀들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대요. 몸에 병이 들어 거동도 잘 못 하는 상태에서도 항상 취해있으니 조만간 국상(國喪)이 일어날 거래.”
“지금 서라벌에서는 미추공과 조분이사금 장남이신 유례공(儒禮公) 그리고 박씨 가문의 이무기들이 차기 이사금 자리를 노리고 암투를 벌이고 있대요. 첨해가 죽으면 서라벌은 한바탕 피바람이 불게 생겼어.”
“어젯밤에도 살별이 나타나고 밤새 유성우(流星雨)가 쏟아졌대. 아무래도 나라에 불상사가 일어날 조짐이 분명해. 시국이 어떻게 변할지 난 너무 무서워 죽겠어.”
* 익종 - 첨해이사금 때의 이벌찬(伊伐飡)으로 석씨(昔氏)로 추정되고 있다.
* 봉산성 – 경상도 영주 지역에 있던 산성.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은 빨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요즘 서라벌 정세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아낙들의 걱정과는 반대로 한동안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폭풍 전야처럼 정국은 고요했고 가난한 백성들은 일상처럼 첨해이사금을 원망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첨해이사금이 계림국의 군주가 된 지 14년이 되는 섣달 28일 새벽이었다. 지난 밤 고주망태가 되도록 대취한 첨해이사금은 후궁과 영명궁(永明宮)에 잠들어 있었다. 한 무리의 복면을 쓴 괴한들이 다시 월성 동쪽 담장을 넘었다. 그들의 손에는 활과 칼이 들려 있었다.
“지금 *묘시(卯時)가 좀 지난 시각이다. 이번 거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첨해만 죽이면 우리 임무는 끝난다. 지난번처럼 실패하면 우린 죽은 목숨이다. 만약 관군에게 잡히면 극약을 먹고 자살하라. 우리 편 나인들에 의하면 저기 보이는 전각이 첨해와 그의 후궁이 잠들어 있는 영명궁이 틀림없다. 밖에 궁녀와 수식(守直)을 보는 군사들이 있을 것이다. 반항하면 가차 없이 죽이고 내실로 들어가자.”
무리를 이끄는 대장처럼 보이는 자가 괴한들에게 행동 방향을 일러주었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 옆에 있는 사람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들이 어둠을 뚫고 영명궁 앞에 접근했을 때였다.
* 묘시 – 새벽 5시부터 7시 사이
“누구냐?”
“앗, 들켰다. 저놈들부터 죽여라.”
괴한의 대장이 소리치자, 괴한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쉭-’하는 소리와 함께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던 수직 군사들이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곧이어 칼을 빼든 괴한들 이십여 명이 영명궁 안으로 난입하였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나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첨해이사금이 잠들어 있는 지밀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은은한 촛불이 켜진 지밀전에는 첨해이사금이 후궁의 알몸을 부둥켜안고 잠에 취해있었다. 희미한 불빛에 후궁의 흐벅진 육덕이 눈부시게 빛났다. 괴한들은 마른 침을 삼키다가 첨해이사금을 발로 툭툭 걷어차며 소리쳤다.
“첨해야, 이제 저승으로 갈 때가 되었다. 밤새 암 여우와 질펀하게 요분질을 한 모양이구나. 너의 세상도 이제 끝났다. 어서 일어나거라.”
후궁이 투실 해 보이는 젖가슴을 드러내놓은 채 소리쳤다. 흐트러진 머리가 밤새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괴한들이 칼을 들고 서 있는데도 후궁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표독스러운 얼굴로 괴한들에게 대들었다.
괴한의 대장인 자가 후궁을 한번 노려보다가 칼을 내리쳤다. 후궁의 선혈이 비단 금침에 낭자했지만, 그때까지도 첨해이사금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잠꼬대를 해대고 있었다.
“왜 이리 시끄러운 게냐? 목이 마르다. 술, 술을 가져오너라.”
괴한들은 그의 행동에 실소를 머금고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형편없는 자가 한 나라의 군주였다니.”
“참으로 백성들만 불쌍하구나. 어차피 너는 군주가 될 자격이 없었다.”
“대장, 곧 날이 밝습니다. 어서 일을 마무리하시지요?”
괴한 한 명이 대장에게 재촉했다.
“너의 취생몽사로 인하여 그동안 계림국 백성들이 흘린 피눈물이 얼마인지 아느냐? 취한 상태에서 염라대왕을 만나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괴한의 대장인 자가 다시 한번 칼을 내리쳤다. 괴한들이 바람처럼 사라지고 한참 후에 궁궐을 수비하는 군사들이 영명궁으로 몰려들었다. 나라가 건국되고 처음으로 군주가 궁궐 내에서 피살되는 괴변이 발생했다.
월궁은 발칵 뒤집혔고, 대소신료들도 급히 입궐하라는 통보를 받고 허둥지둥 궁궐로 달려갔다. 그들은 아직도 첨해이사금이 변고를 당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최근 들어 워낙 기이한 일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웬만한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사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궁인들이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고 있으니 말일세.”
“무슨 일이야 있겠는가? 백제놈들이 또 국경을 넘었거나 왜놈들이 쳐들어온 게지. 그렇지 않고서야 새벽부터 난리를 칠 일이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사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요즘 들어 박씨, 석씨, 김씨들이 서로 이를 갈며 으르렁대더니 기어이 일이 터진 거야.”
대전으로 몰려든 신료들은 별의별 추측을 해가며 입방아를 쪄댔다. 두 시진이 지나서 각간이 비통한 모습으로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대전에서 조회(朝會)나 어전회의를 열 때면 보통은 이사금과 각간이 나란히 들곤 했다.
각간이 비통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권좌 옆에 서서 아무 말도 없자 대전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대전에는 첨해이사금의 친인척뿐만 아니라 박, 석, 김씨족의 대표들도 참석해 있었다. 계림국의 권력을 분산하여 쥐고 있는 세 성씨의 대표들은 웬만한 중신보다 발언권이 세었다.
“여러분께 급보를 알려드립니다. 간밤에 이사금께서 오랫동안 앓아온 지병으로 붕어하셨습니다. 당분간은 이 사람이 고위 중신과 박, 석, 김씨 문중의 대표들로 구성된 귀족 회의 의장이 되어 비상시국을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늦어도 한 달 내로 차기 군주를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계림국의 차기 군주를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속히 진행해 국정에 마비가 없도록 진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람을 믿고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에 온 힘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장훤(長萱)은 이전의 각간이었던 석우로가 죽고 난 뒤부터 각간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계림국 조정 내에서 그미의 최측근 인사이기도 했다. 그는 조정의 중신 중에서 첨해이사금이 처참하게 시해당한 현장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신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대로 첨해이사금이 시해된 상황을 말하면 계림국은 자칫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장훤은 수하들을 시켜 비밀리에 첨해이사금의 시신을 깨끗하게 처리하고 관에 안치한 다음 살해된 후궁의 시신을 궁 밖으로 빼내 아무도 모르게 묻어 버렸다. 관에 안치된 첨해이사금의 시신은 잠자는 사람처럼 말끔한 상태였다.
중신들은 감히 이사금의 시신에 손을 대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첨해이사금이 지난해부터 몸이 마르고 가끔 각혈까지 하던 터라 아무도 그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아이가 결국에는 세상을 버렸구나.”
장훤은 고구려 국내성으로 사신을 급파하여 첨해이사금의 붕어를 알렸다. 그미는 고구려로 돌아온 뒤로도 태왕과 늘 함께하면서 고구려 국정을 좌지우지하였고, 태왕의 비빈들은 감히 그미를 투기하거나 시기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미는 계림국 사신의 예방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드디어 우리 김씨의 세상이 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미추(味鄒)를 차기 계림국의 군주로 옹립하도록 내가 배후에서 힘을 써야 한다. 지금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 김씨 가문은 영원히 박씨나 석씨들에게 억눌려 살면서 *색공(色供)이나 바치며 왕비족에 만족해야 한다. 내가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우리 김씨 문중과 원통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그미는 생각을 정리하고 태왕을 찾았다.
“그래요? 계림국의 첨해이사금은 왕비의 아들 아닙니까? 왕비의 아들이면 짐의 아들도 되니, 아비인 짐이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첨해가 여러 해 전부터 병을 앓아왔다 들었습니다. 결국, 몸이 잔약하여 이승을 등졌으니, 속히 후임자를 정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계림국에는 군주가 붕어하면 귀족 회의에서 의논하여 차기 군주를 뽑는다 들었습니다. 첨해에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있던가요?”
* 색공 -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색(色)을 바치는 일
태왕은 계림국의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금까지 계림국은 고구려의 신하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첨해이사금이 붕어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까 태왕은 우려하였다. 만일 계림국의 군주가 없는 틈을 타서 백제나 왜(倭)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계림국을 어찌해 볼 요량이라면 고구려와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었다.
“폐하, 첨해에게는 후사가 없습니다. 소첩에게는 조분과 첨해, 두 아들이 있습니다. 조분은 첨해 이전 계림국의 군주를 지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걸숙(乞淑)과 유례(儒禮)라는 아들이 있습니다만, 모두 하찮은 후궁의 소생이고 어려서 할 수 없이 첨해가 군주를 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두 손자가 장성하였습니다. 하오나 아직도 영민하지 못하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여 나라를 책임질만한 그릇이 못 되옵니다.”
“왕비는 누가 차기 계림국의 군주가 되면 좋겠습니까?”
그미의 눈에서 파란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 계림국의 차기 군주 선정은 그미의 입에 달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미는 태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현재 계림국에서 가장 쓸만한 인재는 소첩의 아우 김미추밖에 없사옵니다. 미추가 소첩의 아우라 폐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미추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뛰어나고 만백성을 아우를 만큼 빼어난 군주의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계림국은 박씨와 석씨가 번갈아 가며 군주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두 씨족은 백성들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소첩의 두 아들도 석씨인데 오죽하면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이에 반해 소첩의 가문은 수백 년 동안 계림국의 국모(國母)를 배출하며 군주를 보좌하고 지지하면서 지금까지 조용히 내려오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소첩을 은애하신다면 다음번 계림국 군주는 소첩의 아우가 맡도록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림국 군주는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소첩이 고구려와 인연을 맺은 후 계림국과 고구려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장차 중원대륙으로 더욱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후방의 안정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백제나 왜국이 고구려의 후미를 공략하려 든다면 계림국이 나서서 그 두 나라를 저지해야 합니다. 소첩의 충심을 깊이 헤아려 주세요.”
그미의 주청에 태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왕은 대륙의 강자인 만큼 위나라는 물론 백제, 가야, 왜까지 세작(細作)들은 들여보내 각국의 정세를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태왕은 그미를 왕비로 맞이하기 전부터 첨해이사금의 통치 성향과 계림국의 정치세력들에 대하여도 세밀히 알고 있었다. 방금 그미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고,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음-, 왕비의 말대로 김미추를 계림국의 군주로 세우는 방안이 가장 좋다. 유례는 죽은 조분이사금과 후궁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백성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걸숙도 후궁소생이지만 유례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또한, 죽은 아달라(阿達羅)가 계림국 박씨 가문의 마지막 군주였으나, 공식적으로는 아들이 없어 안심은 된다. 하지만, 아직도 박혁거세 후손들이 석씨에게 군주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김씨 가문의 미추를 군주로 앉히게 되면 계림국의 정치적 내분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좋다. 미추를 계림국의 새로운 군주로 앉혀보자. 모두 한솥에 집어넣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놈은 살고, 잡아 먹히는 놈은 도태되는 것이다.
지난 삼백 년 넘게 계림국은 박씨와 석씨가 번갈아 군주를 맡았지만, 정치적 발전은 크게 없었다. 새로운 씨족에게 군주를 맡겨 볼 필요도 있다. 처남 미추의 역량도 시험해 볼 겸 그를 새 군주로 앉히자.’
그미는 태왕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태왕의 발 앞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었다. 태왕의 뜻이 곧 법이며, 세상의 이치와도 같았다. 그것은 신하국으로 간주되고 있는 계림국에도 적용되었다.
“왕비, 일어나세요. 왕비의 친동생이며 짐의 처남인 미추가 계림국의 군주 후보에 오른 자들 중에서 가장 조신하고 후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짐이 계림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미추를 계림국의 군주로 봉하는 성지(聖旨)를 보낼 것입니다.”
“폐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첩과 소첩의 가문은 영원히 폐하의 성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미는 일어나 태왕에게 수도 없이 절을 올렸다. 그미의 두 눈에서는 연신 환희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감정을 추슬렀다. 태왕은 고구려 중신이며 심복인 명림어윤(明臨於潤)을 서라벌로 보냈다. 그의 손에는 고구려 태왕이 내리는 성지가 들려 있었다.
또한, 계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군대를 국경으로 이동시켰다. 태왕의 성지를 받든 명림어윤은 삼천여 명에 달하는 철갑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서라벌에 도착하였다. 그는 서라벌 외곽에 임시 병영을 설치하고 병력을 주둔시켰다. 계림국 조정 중신들은 고구려 태왕의 군사적 조치의 의미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명림어윤은 계림국의 귀족들과 왕실 인사들을 만나서 먼저 차기 군주 후보에 오르내리는 인물들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았다. 고구려의 태왕이 성지를 내려 특정 후보자를 차기 계림국 후보로 내정한다고 해도 우선 계림국 내부 사정을 알아봐야 했다.
그가 여러 인사를 접촉해본 결과 김미추가 단연 최고의 점수를 받고 있었다. 그는 각간 장훤이 정한 한 달의 마지막 전날에 태왕의 성지를 공포하기로 하고 계림국 조정과 왕실 인사들에게 통보했다.
계림국 귀족 회의에 참석하는 중신들과 박, 석, 김씨들은 차기 군주 후보를 선정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석씨 가문의 원로들은 유례와 걸숙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박씨 가문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없자 일성이사금이 왜국에 망명가 있을 때 낳은 *단마제조(但馬諸助)의 후손을 불러들여 후보로 세우려 했다. 김씨 가문에서는 김미추를 군주 후보로 내정해 놓고 서라벌의 조정 중신과 지방장관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각간 장훤이 차기 군주를 한 달 안으로 뽑겠다고 못 박은 기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귀족 회의에서 후보에 오른 인물 중에서 한 명을 뽑는데 선정 절차가 무척 까다로웠다. 미추와 유례가 중신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차기 군주로 오르내렸지만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세는 이미 김미추에게 기울고 있었다. 서라벌 귀족들은 김미추의 친누이며 신라의 태후인 동시에 고구려 태왕의 왕비인 그미를 염두에 둬야 했다. 또한, 고구려 대군이 국경에 대기하고 있고, 삼천여 명의 막강한 철기(鐵騎)와 태왕의 특사가 서라벌에 와 있는 상태에서 귀족들은 미추 말고 다른 후보를 지지할 수 없었다.
* 단마제조 – 일성이사금이 왜국에 망명가 있는 타지마국(但馬國) 출도(出嶋)의 사람 태이(太耳)의 딸
마타오(麻多烏)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
명림어윤이 태왕의 성지를 공표하기로 한 날이 밝았다. 그는 귀족 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월성에 들어서는 순간 계림국의 귀족들과 대소신료들은 숨을 죽였다. 그는 계림국의 모든 대소신료 앞에서 연불 태왕의 성지를 폈다.
계림국의 김미추를 계림국군주겸동해대왕겸우위대장군(鷄林國君主
兼東海大王兼右衛大將軍)으로 봉하고 징표로 금옥새(金玉璽)와 면
류관, 황포(黃袍)를 내린다.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만약 귀족 회의에서 태왕의 뜻과 상반되는 결론이 맺어지고 있더라면 서라벌은 끔찍한 상황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미의 남동생 미추가 계림국의 열세 번째 군주가 되었다. 나라가 개국 되고 319년째 되는 임오년(壬午年) 정월 25일이었다. 그미는 아버지 김구도가 임종할 때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김미추(金味鄒)는 미조(未照) 혹은 미소(未召)라고도 한다. 김알지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김알지의 5대손인 김구도이고, 어머니는 지마이사금의 손녀이자 이칠(伊柒) 갈문왕의 딸 박씨(朴氏)이다. 배우자는 조분이사금의 딸, 광명부인 석씨(昔氏)이다.
명림어윤과 철갑기병들은 두 달 가까이 서라벌에 더 머물며, 새로운 군주의 즉위식까지 지켜보았다. 서라벌과 각 지방은 새 군주의 즉위를 축하하는 분위기였으며, 백성들은 차분하게 일상에 전념하였다. 계림국 전역에서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특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