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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나부인(최종)

* 창작공간/중편 - 관나부인

by 여강 최재효 2020. 3. 6. 16:56

본문

 

 

 

 

 

 

 

 

                    본 소설은 고구려 제12대 중천태왕의 후궁 관나부인(貫那夫人)의 억울한 죽음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창작되었습니다. 9부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감상 바랍니다.

 

                                                                                                                                      여강 최재효

  

 

 

 

 

 

 

 

 

 

 

 

 

 

 

                                                                                      관나부인

 

 

 

                                                                                                                                                                                   - 여강 최재효

 

 

 

 

                                                                                                         終

 

 

 

 

 고구려는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 등 다섯 부족이 연합한 연맹 왕국으로 출발했다. 5부는 초기 고구려 형성의 기초가 되었으며, 제9대 고국천(故國川) 태왕 때 부족의 명칭 대신에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내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는 부족의 독립성을 제거하여 태왕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조치였으나, 여전히 부족명이 병행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지방 5부의 수장(首長)은 일정한 규모의 군대를 거느렸으며, 그들은 태왕이 거주하고 있는 궁성에 수시로 드나들며 부족을 대표하여 정사(政事)에 참여하였다.


 연나부의 귀족은 대대로 계루부의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5부연맹 중 막
강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계루부 왕실이 연나부의 귀족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은 연나부 세력과 연합하여 오부 내의 여타 세력들을 억제하고 중앙집권과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연나부는 태왕의 외가로 발언권이 컸으며, 국정운영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절노부 - 연나부(椽那部)라고도 불렸다.

 

 국상(國相) 명림어수를 비롯한 연나부의 귀족세력은 다른 귀족들과 연계하여태왕을 압박하였고 결국은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고 말았다. 명림어수와 태왕비가 마음만 먹으면 태왕 연불(然弗)을 얼마든지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었다.

 

 집권 4년차를 맞은 연불은 아직 완벽한 중앙집권 체제 및 정치적 안정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5부연맹 수장들의 지지가 절실했다. 또한 위나라와 날로 국력이 신장되어가고 있는 백제 신라 등 주변국들의 침입이 빈번한 터라 태왕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관희가 안전하게 고향을 향해 가고 있을 테지요?”
 “폐하,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면 그때
다시 관희를 부르시면 됩니다.”


 관희 모자(母子)가 억지로 평양성에서 추방당하고 사흘이 지났다. 태왕이 대전
에서 두문불출하며 식음을 전폐하자 명림어수가 태왕을 위로하였다. 태왕의 양쪽 볼이 움푹 들어가고 머리는 산발한 상태여서 흡사 술에 절은 광부(狂夫)와도 같았다.


 “그런 호시절이 과연 올까요?”


 태왕은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관희가 떠나던 날을 떠올리고는 술잔을 비웠다.
앞에 사람이 있는 것도 잊은 듯 시선은 창밖 창공을 응시하고 있어 명림어수는 차마 태왕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었다.

 


 ‘소첩을 폐하의 분신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궁궐에서 내쳐질 사람은 소첩이
니라 소첩을 죽이려고 했던 음흉한 태왕비입니다. 태왕비는 국모로서 부덕(婦德)을 잃고 폐하의 총첩(寵妾)을 투기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연나부 인사들의 말만 믿고 소첩을 내치신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소첩과 관노는 아무 죄가 없사옵니다. 저희 모자를 내치지마셔요. 폐하-.’


 태왕은 술잔을 비우고 흐느끼다가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멍하니 남쪽 하
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기러기 한쌍이 끼룩거리며 남녘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만산에 봄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평양성에도 꽃내음이 진동했다. 궁성 주변에도 봄을 시샘하는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꽃동산을 방불케 했다.

 

 관희의 처소에는 한겨울에도 꽃이 만발했다. 관희는 태왕의 술잔에 붉은 꽃잎을 띄워 건네곤 했다. 태왕은 궁을 떠나던 관희와 관노가 눈에 밟혀 견딜 수 없었다. 


 ‘태왕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중신들에게 내주면 안 됩니다.
관희를 그들에게 내주면 다음번에는 태왕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들에게 그리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관희를 내치려거든 이 할미도 함께 내치세요. 관노부를 핍박하시면 안 됩니다. 태왕은 일부 인사만 볼 게 아니라 고구려 만백성을 두루 봐야 합니다.’


 왕태후 소비는 관희를 궁 밖으로 내치려는 태왕을 만류하였으나 중신들과 태
왕비의 견제로 실패하고 말았다. 소비는 궁궐에서 태왕을 직접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녀가 태왕을 만나러 대전으로 향하자 명림어수의 명을 받은 군사들이 그녀의 접근을 방해하였다. 소비가 군사들과 실랑이 끝에 겨우 태왕을 대면할 수 있었다.


 ‘소손이 할머님을 뵙습니다.’


 ‘태왕, 나는 태왕의 할미입니다. 연나부 인사들 말만 믿고 관희를 내치면 안 됩
니다. 중심을 잡으세요. 태왕은 오부의 수장이며 동시에 대고구려의 지존입니다. 태왕이 궁에서 내칠 인사는 관희가 아니라 명림어수와 태왕비입니다.’


 소비는 주변에 조정 중신들이 인(人)의 장막을 치고 있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왕을 큰소리로 질책하였다. 소비의 말에 국상 명림어수와 연나부 인사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태왕은 소비보다 연나부 소속 인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할머님, 죄송합니다. 관희와 관노 공(貢)은 호시절이 오면 다시 불러들이겠습니다.
소신료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관희를 위왕에게 시집보내라고 한 요구를 소손겨우 말려서 일단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수습했습니다. 관희가 고구에 있으니 소손이 틈이 나면 찾아갈 것입니다. 소손의 처분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태왕은 신하들에게 꺼둘리거나 뜨개질당하면 안 됩니다. 하늘 아래 오직 태왕
만이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국상이나 연나부 일개 무리들에게 휘둘리시면 장차 어찌 대제국을 이끄시려 합니까?’


 태왕은 어린아이처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도리질을 해댔다. 그 바람에 왕
관이 머리에서 벗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명림어수가 놀라 얼른 왕관을 집어 들고 태왕에게 건넸지만 태왕은 눈을 감은채 장승처럼 서있었다. 마치 신기(神氣)가 깃든 무당이나 무엇에 크게 놀란 사람 같았다. 명림어수는 관희를 궁에서 내일로 태왕이 충격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걱정했다. 


 “태왕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짐이 무슨 태왕이란 말인
가? 오부연맹의 장자들에게 휘둘리는 짐이 과연 대제국의 태왕이 맞는가?”


 태왕은 자책하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실실 웃으며 내실을 이리저
리 바장였다. 거의 실성한 사람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반쯤 허리를 굽히고 엎드려 있던 명림어수는 어떻게 상심이 큰 태왕을 달래야 할지 난감했다.


 “폐하, 성심을 바로하소서. 관희는 대소신료들의 뜻에 따라 위왕에게 시집가
야 했으나, 다행히 고향으로 향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관희도 폐하의 처분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입니다.”


 명림어수의 말에 태왕은 크게 한번 웃고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태왕의 눈에
적대감과 살기(殺氣)가 가득해 보였다. 명림어수가 태왕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과연 대소신료들의 뜻이었겠습니까?”
 태왕의 말에 날카로운 비수가 들어 있었다. 그 비수가 사정없이 늙은 명림어수
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폐, 폐하, 예로부터 경국지색은 임군과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하였습
니다. 국사정이 안정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때까지 성심을 바르게 하소서.”


 “짐은 이번일을 뼈에 새길 것입니다.”
 “폐하-.”


 명림어수는 태왕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위나라의 공격을 받고 선대 태왕이
붕어하였으며 왕도(王都)까지 천도한 상태지만 연불 태왕이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연나부의 위세가 하늘 높은 모르고 기고만장할 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명림어수와 태왕비는 일단 관희를 궁에서 내치는데 성공하였지만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관희 모자(母子)가 고구려에 살아 있는 한 우환은 늘 있게 될 것이었다. 희가 고향 관노부에서 권토중래하여 은밀하게 태왕과 손을 잡고 거사를 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궁성에서 관희의 고향까지 가는 길은 무척 험난했다. 고봉준령을 넘고 수많은
하천과 강을 건너야 했다. 관희 모자를 호송하는 군사들은 모두 국상과 태왕비가 특별히 선발한 군사들이었다. 관희와 관노가 탄 이륜마차를 열명의 군사들이 삼엄하게 호위를 하였다. 관희는 위나라 왕에게 강제로 욕보이지 않게 된 것을 감사하며 태왕의 처분에 고마워했다.


 ‘폐하께서는 우리 모자를 다시 부르신다고 했어. 이삼년 지나면 꼭 다시 부르실
거야. 관노가 태왕의 자식이니 누구도 우리 모자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야. 고향에 가면 한동안 죽은 듯 납작 엎드려 있어야겠어. 왕태후님에게 전수받은 온갖 방중기교(技巧)로 폐하를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건데, 참으로 아쉽구나. 참고 기다면 언젠가 좋은 소식이 올거야,’


 마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험한 길을 달리
던 관희 모자는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좀 쉬어가세요. 소자 엉덩이가 아파 죽겠어요.”
 “그럴까? 어미도 그렇구나.”

 관희는 호송 책임을 맡고 있는 조의(

皂衣)

에게 마차를 세우게 하고 바람을 쐬기로 했다. 상큼한 공기에 답답한 가슴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모자가 언덕에 올라 산하를 내려다보며 그림같은 경치에 탄복하였다.


 “어머니 저 아래 보이는 푸른 물줄기가 강이지요?”

 “그래, 저 강의 이름은 북쪽으로 요수(遼水)와 연결된 압록수라고 한단다. 남쪽으로 한나절만 달려가면 바다와 인접한 하구가 나온단다. 저 압록수만 넘으면 예전에 단군할아버님이 다스리던 번한(番韓) 땅이지. 나중에는 소서노(召西弩) 할머님이 다스리던 어하라(於蝦羅)라고 하는 나라가 있던 곳이기도 하단다.

 관노야, 네가 나중에 고구려 태왕이 되면 서쪽으로 진출하여 위나라뿐만 아니라 촉나라와 오나라 등 중원 땅을 모두 되찾아야 한다. 중원은 예전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다스리던 지역이단다.”
 “어머니, 우리 조상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고구려가 있기 전에 마흔 일곱 명의 단군님이 통치하던 조선(朝鮮)이 있었다.
그 조선 이전에는 열여덟 명의 환웅님이 다스리던 배달국(倍達國)이 있었지. 그리 고 그 위로 일곱 분의 환인님이 다스리던 환국(桓國)이 있었다. 중원의 모든 지역이 환국과 배달국의 영토였어. 고구려는 다물 정신으로 잃어버린 고토(故土)를 반드시 수복해야 한다.”


 “어머니, 소자가 고구려 태왕이 되면 꼭 우리 조상의 영토를 되찾겠습니다. 하
늘에 맹세합니다.”


 모자가 언덕을 거닐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관희를 호송하던 군
관이 군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관희 모자가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하여 밀담을 나누었다.     


 “막달, 가죽부대는 잘 보관하고 있겠지?”
 “제 말 잔등에 단단히 고정시켜놨습니다.”


 “팽우, 자네는 일이 끝나면 관노 공왕자를 위나라 군사에게 넘겨야 한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연수와 태수는 일이 끝나면 졸병들을 모두 척살(刺殺)해야 한다. 이번 일을 아
자는 우리 다섯 명 이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한다. 환궁하면 너희들에게 포상이 있을 것이야.”


 관희와 그녀의 아들 관노 공이 다시 마차에 올랐다. 호위 군사들과 마차는 뿌연 흙먼지를 날리
며 남쪽을 향해 달렸다. 해가 서천을 향해 달음박질 치고 봄꽃이 흐드러진 신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4월의 햇볕은 무척이나 따가웠다. 마차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달리고 군사들이 탄 말들도 밭은 숨을 내쉬었다. 입을 굳게 다문 군관 조의는 말을 달리는 중에도 사방을 살펴보며 무엇을 찾고 있는 눈치였다.


 “조의, 여기가 어디입니까? 내 고향을 가려면 압록수를 건너야 합니다. 이 길은
내가 처음 가봅니다.”
 마차를 타고 달리면서 관희는 가끔 창밖을 내다보았다.


 “왕후님, 압록수 하구로 내려가서 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그곳 나루에 가야 마차
를 실을 수 있는 큰 배가 있습니다.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마차가 두 시진을 더 달리자 압록수가 끝나고 시야가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났다.
조위가 군사들에게 손짓을 하자 일행이 멈춰 섰다. 조의가 말하던 나루터나 배는 보이지 않았다. 관희는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왕후님, 마차에서 내리시지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야겠습니다. 말들이 상
당히 지쳐있습니다. 말들에게 먹이를 먹이고 가야합니다.”


 관희와 관노 공왕자가 마차에서 내리자 군사들이 관희 모자에게 우르르 달려들
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저 둘을 포박하라.”
 “이놈들, 지금 무엇하는 게냐? 나는 태왕의 후궁이다. 너희들이 본분을 잊은 게
냐?” 


 호송 책임을 맡고 있는 군관 조의의 명령이 떨어지자 붉은 오랏줄이 모자를 단단
히 묶었다. 관희의 얼굴이 백짓장이 되었고 놀란 관노 공왕자는 울음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관희와 관노는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연약한 여인과 어린 아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우락부락한 군사들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관희 모자가 오랏줄에 포박당한 채 군관 조의 앞에 강제로 무릎이 꿇려졌다.


 “지금부터 태왕 폐하께서 내린 밀지(密旨)를 전하겠다.”
 “이놈들, 어서 이 오랏줄을 풀지 못할까?”


 관희는 오랏줄을 받는 과정에서 군사들과 몸싸움을 하느라 아름다운 장발(長髮)
이 풀어 헤쳐졌다. 군사들이 관희와 관노에게 달라붙어 두 사람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땅바닥에 풀어 헤쳐진 머리를 군사들이 밟아댔다.

 


   관희는 태왕비를 질투 시기한 나머지 쇠가죽 부대를 만들어 태왕비를

   살인자로 모는 등 그 행위가 도를 넘었다. 이에 짐은 그동안 수고한 공

   을 인정하여 본인이 원한 대로 가죽부대에 들어갈 것을 명한다. 관노는

   고구려와 위나라의 양국 평화를 위하여 위왕(魏王)에게 인질로 보낸다.

 

 조의가 밀지를 읽고 관희에게 내밀었다.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 그 밀지는 흉악한 연씨(椽氏)
년이 보낸 게 틀림없다. 나는 태왕을 직접 뵙기 전에는 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놈들, 어서 이 오랏줄을 풀고 나를 궁성으로 모셔라.”
 “이놈들, 나는 고구려 태자가 될 몸이다. 이 오랏줄을 풀어라.”


 관희와 관노 공왕자는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기력을 다해 발악하였다. 그러나 조의와
군사들은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군졸 한명이 쇠가죽 부대를 가져와 관희 앞에 던졌다. 그 가죽 부대는 관희가 궁인들을 시켜 만든 것이었다. 관희는 쇠가죽 부대를 보자 정신이 아득하였다. 사냥 갔다 돌아온 태왕에게 태왕비를 궁지에 몰기 위해 자신이 여아에게 지시하여 만든 쇠가죽부대였다.    


 “저년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가죽부대 속에 넣어라.”
 “이놈들 안 된다. 나는 태왕의 후궁이고 태자의 생모가 될 귀한 신분이다. 안 된
다 이놈들아.” 


 조의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관희 입에 재갈을 물리고  쇠가죽부대를 들어
관희의 머리부터 씌워 내렸다. 관희가 끙끙 거리며 발버둥 쳤다. 관희가 쇠가죽 부대에 담기자 군사들이 부대 끝부분을 단단히 묶어버렸다.


 “이놈들아, 어머니를 풀어드려라. 어머니는 죄가 없다.”


 관노 공왕자가 소리를 치며 대성통곡하자 군사 한 명이 왕자의 배를 서너 번 걷어찼다. 왕자
는 비명을 지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둥거렸다. 조의가 말에서 내려 공왕자를 살펴보았다. 공왕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눈동자는 하얗게 뒤집어진 채 숨을 쉬지 않았다.


 “쇠가죽부대를 저 언덕으로 가지고가서 바다에 던져라.”


 조의의 명령에 군사들은 가죽부대를 들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바
람이 불면서 바다에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서쪽 저 멀리서 먹장구름이 하구로 몰려들면서 천둥번개를 쳐댔다. 군사들은 쇠가죽부대를 들고 가면서 손바닥으로 관희를 만져보기도 하고 발로 툭툭 차기도 했다.


 “호-, 고년.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단 말이야. 난 아직 미장가인데, 나 같은 놈
에게 하사하면 얼마나 좋을꼬.”
 “이 사람아. 자네는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잖아. 이년이 하사품이라면 내 차지가
될 걸세. 참말로 아까워 죽겠네.”


 “여보게, 어차피 죽을 년이데, 조의님에게 말해서 우리들이 번갈아 가며 흐벅진
육덕(肉德) 맛 좀 보는 게 어떤가?”


 “이 사람아, 조의님이 제일 먼저야. 그리고 다음 차례는 연장자 순으로 하면 되
는 거야. 그리되면 내가 두 번째가 되나?”
 “이 사람들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자고. 곧 비가 내리겠어.”


 군사들이 시시덕거리며 쇠가죽부대를 들고 해안가 언덕에 도착하였다. 언덕 아
래는 천길 높이였다. 곧 비가 내릴 듯 천둥번개와 폭풍이 거세졌다. 파도가 칠 때마다 집채만 한 포말이 튀어 올랐다. 


 ‘아아-, 폐하, 정녕 폐하께서 소첩을 쇠가죽에 담아 수장(水葬)하라 명하셨습니
까? 아니시죠? 아닐 겁니다. 소첩은 폐하를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죽지만 결코 폐하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죽더라도 제 아들 공왕자 만큼은 죽이지 마셔요. 그동안 폐하의 사랑을 받아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부디 성군이 되시어 고구려 만백성의 사랑을 받으셔요. 저는 미리 피안(彼岸)에 가서 폐하가 오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폐하, 사랑합니다. 연불, 사랑합니다.’


 조의와 군사들은 쇠가죽부대를 언덕 위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조의가 다가와 쇠가죽부대를 살펴보더니 손으로 여기저기를 주물러보았다. 그는 씩 웃더니 군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하나, 둘, 셋 -.


 군사들이 쇠가죽부대를 들고 합심하여 바다로 던졌다. 동시에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하더니 벼락이 언덕 위로 떨어졌다. 병사들이 새카맣게 타죽고 조의와 두 명의 병사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군사들이 돌아간 뒤에도 폭풍우와 비바람은 사흘 동안 멈추지 않았고 해수(海水)가 육지로 밀려올라와 수목이 하얗게 말라 죽기도 했다. 언덕에는 철쭉이 탐스럽게 피었는데 피빛보다 더 붉었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들은 지상에서 무슨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창공을 날았다.

 

 

 

 

                                                                                          -끝-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권 17,  제5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四年, 夏四月, 王以<貫那>夫人置革囊, 投之西海. <貫那>夫人, 顔色佳麗, 髮長九尺,

    王愛之, 將立以爲小后

    중천왕 4년 4월, 왕이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서해에 던지게 하였다. 원래

    관나부인은 얼굴이 아름답고 머리 길이가 9척이나 되어, 왕이 사랑하였고, 장차 

    후를 삼으려 하였다.

 

 

 

 

 

 

 

 

      _()_  끝까지 감상하여 주신 귀하께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조만간 다른 작품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여강 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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