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삼촌 산소 벌초하듯이…….
- 여강 최재효
강원 중부지방은 밤에 20mm 정도 비가 예상되지만, 주말인 내일 오전 중으로
비가 그칠 것으로 봅니다. 이 지역으로 주말 나들이 계획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
고하시기 바랍니다.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를 듣고 휴대전화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
놓았다. 새벽 2시가 되도록 정신이 맑다. 다른 날은 초저녁부터 찾
아오던 수마(睡魔)가 오늘은 길을 잃은 듯 하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을 생각하니 불안하다. 겨우 두세
시간 정도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부치고 나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천에서 고향 경기도 여주시(驪州市)까지 승용차로 2시간 거리지만
추석을 보름쯤 남겨둔 시기가 되면 30분 정도 더 지체되기 일쑤다.
잠이 덜깬 아내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대를 잡았다. 비 내리는 새벽
이다 보니 사방이 온통 어둠뿐이다. 눈꺼풀이 천근인 눈을 부릅뜨고
영동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질주한다.
예상했던 것처럼 뿌리가 경기, 강원, 충청도이면서 수도권 서부 지
역에서 타향살이 하는 나 같은 나그네들이 빗속을 달리느라 손에 땀
을 쥐고 있다. 눈이 큰 아내는 행여 내가 졸까봐 걱정이 되는지 수시
로 말을 걸어 나의 상태를 점검한다.
아침 7시 조상님들 유택이 있는 경기도 여주시 점봉동 청마루에 도
착하였다. 이미 집안 형님들과 조카들이 예초기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 일 년 내내 조용하던 산골짜기에 여러 종류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고조부 내외분, 할머니, 부모님께 서둘러 술을 올리고 예를 갖춘다.
맨 위쪽에 자리하신 고조부님은 영면에 드신지 90년 쯤 되셨다. 지
난 설날 연휴 때에는 건강이 좋지 않고 요양 중이어서 찾아뵙지 못
한 송구함에 허리가 더욱 구부러진다.
이슬비를 맞아가면서 예초기를 짊어지고 적군처럼 고개를 뻣뻣하
게 들고 나에게 대항하는 잡초를 사정없이 벤다. 나는 마치 적토마
를 타고 전장 한가운데에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적
을 쓰러트리는 관우(關羽)가 된 기분이다.
적은 백만 대군이라도 내가 휘두르는 언월도에 무참히 쓰러질 뿐이
다. 가슴 한편에 쌓여있던 각종 스트레스가 단번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후련하다.
조카가 늘 병치레를 하던 작은 아버지가 맹장(猛將)의 기세로 잡초
들을 토벌하는 모습을 보더니 씩 웃는다. 햇볕이 맹위를 떨치는 날보
다 지금처럼 이슬비가 간헐적으로 내리는 날씨가 한바탕 전쟁 놀음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한 시간쯤 지나자 속옷은 이미 흥건히 젖었고 신발과 바지는 적이
흘린 녹색 피로 물들어 움직일 때마다 핏물인지 땀인지 분간이 안 되
는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다복한 가문에 태어난 덕분에 완전 무장을 하고 여섯 군데에 분산
되어 있는 조상님들의 유택단지를 순례해야 한다. 그 단지들은 산
넘고 물 건너에 있으니, 예초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 아버
님 형제분들은 벌초 한번 하려면 이삼일은 족히 걸렸다고 한다.
그때 빽빽한 잡초군단과 맞서는 병장기는 낫이 유일했다. 이른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치열한 전투는 오후 2시가 되어서 신무기로 무장한
형제 조카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아무리 신무기가 월등하다고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잡초
들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말리라. 해마다 최첨단의 신무기가 개발되
고 있지만 무기를 운용할 전투 병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시 점봉리와 능현리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해주
최가 좌랑공파 23세대들의 평균 연령이 60세 중반이 된다. 윗세대
섭(燮 - 불꽃 섭)자 돌림 조상님들은 모두 유명(幽冥)에 드셨고,
집안의 중심 세대가 되는 재(在 - 있을 재)자 돌림은 점점 그 수명
을 다해가고 있다. 그 아래 호(鎬 - 호경 호)자 돌림 병력은 현재
재자 돌림의 1/2 밖에 되지 않는다.
벌초를 마치고 형제자매들이 식당에 모여 술과 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도 전쟁의 승리를 만끽하기 보다는 내년, 후년
그리고 그 이후의 일에 걱정이 되어 인상들이 어둡다.
점점 늘어가는 유택단지와 그에 비해 반비례로 줄어드는 전투 병
력들. 이제는 결단의 때가 되었다. 잡초와의 전쟁을 계속 할 것인
지, 아니면 전쟁을 그만 둬야 할 것인지. 나는 형님들의 눈치를 보
며, 조심스럽게 납골당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 무거운 헛기침만
해댈 뿐이다.
형제자매, 조카들이 전국 혹은 이국(異國)에 흩어져 각자도생하다
보니 일 년에 한번 있는 대작전에 전원 참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하게 되었다. 이미 많은 가문에서 사방에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을
화장하여 납골당 한곳에 모시고 있다.
납골당 한 채를 지으면 최소 100여 분을 모실 수 있으니, 벌초할
필요도 없고, 강 건너고 산 넘어 성묘 다닐 필요도 없다. 얼마나 편
리하고 좋은가? 아들이 없는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후사(後嗣)가 없는 나 같은 경우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처삼촌
산소 벌초 하듯이…….’ 이다. 남자들은 누구나 처삼촌이 될 수 있
다. 무덤이 없는 금수강산, 후세들에게 바람직한 모습이다.
후세들에게 뿌리가 없는 세상이 도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
이 내키지 않아도 가까이 처삼촌 묘가 있으니, 남들 눈치가 보여 벌
초를 해야 하는 순박한 미풍양속이 살아있던 세상이 사라지고 있다.
내 조상님 산소도 돌보지 않는 속빈 얼자(孽子)들이 증가하고 있
으니 어찌할까.
지금 60, 70세 된 대한민국의 노년층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
제가 바로 조상님들의 산소와 벌초 문화이다. 이들이 나 몰라라 하
고 세상을 떠난다면 30,40년 후에는 금수강산에 인골들이 굴러다
니게 된다.
홍수로, 산사태로, 혹은 무분별한 국토개발에 따른 지반 붕괴로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 무덤 들이 열려 조상님들의 귀중한 유골들
이 굴러다니게 된다. 얼마 전에 **시 **공동묘지 일부가 산사태로
지반이 무너져 내려 관 속에 있던 인골들이 산과 개천에 굴러다
니던 끔찍한 일이 있었다.
조상님들의 사후를 깨끗하게 해드리는 것도 효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조상의 산소를 왕릉처럼 치장했다가 부정
한 일에 개입되어 몰락하게 되면 덩달아 그 조상의 묘 역시 비바
람에 무너져 내린다.
신라왕조는 뼈의 왕국이었다.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이 버팀목
이 되어 천년 동안 번성했던 나라였다. 뼈대 있는 집안 후손이라
면 뼈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상님과 훗날 자신의 뼈를 잘 간수하
거나 말끔히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화장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안타까운 일은 화장을
하고 난 뒤에 부모나 동기간의 골분(骨粉)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행위다.
중국 진나라의 시인 겸 학자 곽박(郭璞)은 한나라 풍수지리서인
청오경(靑烏經)을 인용하여 ‘살아 있으면 사람이요, 죽으면 귀신
이다. 부모가 돌아가시어 장사를 지냈는데, 그분들이 지기(地氣)
를 얻으면 같은 종류의 기가 서로 감응하게 되고 그 복은 반드시
살아 있는 자식들에게 응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화장 후에 고인의 골분을 아무렇게나 버리지 말고 납골함에 담아
잘 보관해드리고, 고인의 생일, 추석과 설날에 찾아뵙고 정성껏
술잔을 올려 드리는 것이 우리 정서에 마땅하다.
부모 자식 간에는 최소 30년간 동기감응(同氣感應)을 하기 때문이
다. 매장이나 화장이나 효과는 같다. 살아생전 온갖 못된 짓을 하고
죽은 뒤에 무덤 앞에 거대한 묘비석을 세우고 미사여구로 허언(虛言)
을 기록한들 날아가는 새가 쳐다나 볼까.
- 창작일 : 2018.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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