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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는가

* 창작공간/Essay 모음 2

by 여강 최재효 2017. 10. 1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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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는가




  
                                                                                                                                                         - 여강 최재효





 “네 이 노옴,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영화나 티브에서 방영되는 사극(史劇)에서 한번쯤 보았을 장면이다. 죄를 지은 사

람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형틀에 묶여 처분을 기다리고 거만한 현령(縣令)은 긴수염

을 쓰다듬으며, 동헌(東軒) 마루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 수시로 하늘을 보면서 

치죄(治罪)를 한다.


 죄인으로 보이는 백성은 정말로 하늘이 두려운 듯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고 고개

를 숙인다. 구경나온 백성들도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경외심(敬畏心)을 품

고 전율한다.


 현령은 자신이 마치 하늘의 대변자라도 되는 양 더욱 의기양양하다. 남몰래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 벼슬아치나 위정자(爲政者)들은 천지신명을 기망하면서 하늘을

팔아 왔다. 그들이 하늘의 진정한 무서움을 알았다면 감히 있을 법한 일일까.


 仰不愧於天(앙불괴어천) 俯不作於人(부부작어인) 二樂也(이락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고, 아래를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

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맹가(孟軻)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주장하면서 두 번째 즐거움으로 하늘을 우러

러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꼽았다. 나는 이즈음 그가 생존해 있다면 첫 번째와 두번째 

주장을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


 그가 말하는 첫번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父母俱存) 형제가 무고(兄弟

無故)한 것이. 맹자가 살던 기원전 3세기 추(鄒) 나라 일반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40살 안팎이었다. 지금 보통 사람들 평균수명은 그 당시 수명의 두 배가 넘는다.


 요즘 사람들이 100살 가까이 살면서 많이 거만해 졌고 날카롭던 오감(五感) 또한

상당히 무뎌졌다. 우리 한민족은 오래전부터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을 가보(家

寶)인 양 가슴에 간직하고 자신의 빗나간 행동을 제어(制御)하면서 이웃을 최대한의

예로써 대하였다.


 그 사상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소수의 선비들에게는 현재 진행

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늘보다 황금을 귀하게 여기는 요즘이지만 그 분들은

감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절대자를 기망한 원죄(原罪)가 있어서도 아니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하늘을 두려워하느냐?’

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질문 하는 자를 정신 이상자 쯤으로 취급하려 들 것

이다. 아니면 어느 특정 종교를 홍보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려는 저의(底意)가 있는

아닌가? 의구심을 품기도 하리라.


 예전 사람들의 의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100여 년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을 무서워 하였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걷다가 실수로 개미를 밟아 죽이고 이불

뒤집어 쓴 채 마치 대역죄인이 된 것처럼 한참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맑은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거나 번개가 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뒤

길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자신을 경계하였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다면 있을 

수 없일이다.


 그러나 1750년경에 벤자멘 프랭크린이 피뢰침(避雷針)을 발명한 이후로 사람들

하늘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렸다. 피뢰침 발명 이전의 사회적 정서로 현세인

(現世人)을 본다면 지금 사람들을 완전히 미친 사람으로 단정할 테다. 작금에

우리 주변그런 의인(義人)이 있다면 사람들은 바보라고 놀리면서 손가락질

할 테고. 


 나는 그런 고매한 인격자를 찾기 위하여 반백년 동안 두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

다. 내가 죽기 전에 삼천리 화려강산에 반드시 그런 사람이 나타날 것을 의심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개미나 살아있는 생명체의 가치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둘 다 조물주의

귀한 자식들이니 귀천(貴賤)이 어디 있으랴. 귀천의 척도는 우리 인간이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만든 어설픈 기준에 불과하다.


 신라의 승(僧) 원광(圓光)이 주창(主唱)했던 세속오계 중 살생유택(殺生有擇)도

옳지 않다. 신라의 삼한 일통을 위하여 잠시 화랑들의 행동 규범으로 삼기위하여

원용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왜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경천사상은 이제 퇴색되어 버린 것
가.

그렇다면 애인사상만 남아 있는 게 틀림없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

로 고귀하며, 아름다운 풍속이라 권장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도를 넘는 애인

(愛人)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어떤 사내가 남편이 있는 이웃집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간음(姦淫)이며, 형제자매

끼리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은 비극을 초래한다. 후자(後者)의 경우는 신라 중기에

서 잠시 엿볼 수 있는 해괴한 풍경이었다.


 금단의 열매는 맛이 기가 막히다. 하나만 먹어도 3,000년을 산다는 천(天桃)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맛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인간은 인간

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된다.


 신라 중기 신라 왕실은 골품제를 유지하기 위한 허울 좋은 구실로 근친상간(近

相姦)을 일삼았다. 미실이라는 여인을 살펴보면 유구무언의 상태가 되어 공허함을

느낀다. 신라는 얼마 못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一去手一投足)을 손금 보듯 빤히 내

려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맞는 말이다. 지금은 하늘의 그 같은 위대한 과업

(課業)을 지구 대기권을 돌고 있는 수천 개의 인공위성들이 대신하고 있다.


 하늘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인공위성을 만들어 지구 위에 띄워놓고 지상을 훤히

살펴보고 있는 일부 과학 강국(强國)의 시스템이 무서운 것이다.


 나 하나의 존재는 우주에서 티끌만도 못하다. 하늘은 우주요, 땅도 우주이며,

역시 우주의 하찮은 일부이다. 토성이나 목성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하늘

떠있는 무수한 별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함이 없다. 내가 그 별 안에 살고 있다.

나 역시 별인 셈이다.


 얼마 전 인간은 달에 발자국 몇 개를 남겨놓고 마치 우주 전체를 정복한 거들

먹거리고 있다. 인간이 너무 조급하게 하늘의 문을 열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다.


 신(神)들도 금기시 하던 일을 인간이 저질렀으니 하늘의 노여움이 얼마나 클까.

머지않아 우리 머리 위로 불벼락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아폴로 11호의 무모한 달 탐사로 수천 년간 우리 어린이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

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옥토끼 이야기는 허구(虛構)가 되고 말았다. 동화와

신화가 하루아침에 늙은이들의 허망한 넋두리가 되고 만 것이다.


 사실(事實)은 가상이나 허구에서 조성되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허구의 발판

이 깨진 이상 이제 우리 어린이들은 할머니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스마트폰 속의 성숙한 이성들의 모습이나 그들의 사소

일들에 목숨을 걸고 있다. 소수의 아이돌(Idol)이 우리 아이들의 향도(嚮導)

되어 있는데 속이 쓰리다.


 6500만 년 전 지름 10km 크기의 대운석(大隕石)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한

점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지구는 열기와 쓰나미로 초토화 되다시피 하였

수개월 동안 암흑 구름이 지구를 뒤덮었다.


 그 일로 인하여 오랜 시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수많은 공룡들은 한 순간 상에

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때 지구의 모습은 성서에 묘사된 창세기의 무시무시

한 모습과 흡사하였으리라.


 인류의 고향 지구에 일정한 주기를 두고 찾아오는 우주의 떠돌이 불청객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손님이 76년 주기의 핼리, 300년 주기의 헤일밥, 1999년 목성과

충돌하여 자취를 감춘 슈메이커-레비 등이 잘 알려진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이다.


 '2012 TC4(TC4)로 명명된 지름 30m 크기의 소행성이 2017.10.12일 지구에서

약 4만2000㎞ 떨어진 달과 지구 사이를 통과한다. 지구와 달의 거리인 38만㎞의

약 9분의1에 불과한 거리이다.


 2029.4.13일 아포피스(Apophis)라 명명된 행성이 지구 지표면에서 32,000km

떨어진 거리로 지나간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걱정은 궤도 경사각이 3.33129

도로 아주 낮아 지구궤도를 스치듯 지나간다는데 있다. 이때 두 행성 사이에 이상

이 생겨 당초 계산보다 지구 인력이 커지면 대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최근 1000년 동안 인류 대부분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달과 지구 사이를 소

성들이 스쳐지나간 적이 부지기수로 있었다. 다행히 인류에게 큰 재난은 없었지

만 그것들이 언제 궤도를 틀어 지구로 돌진할지 아무도 모른다.


 지구에 지름 2-3km 규모의 혜성이나, 운석이 떨어질 경우 지구 생명체의 상당

한 종(種)이 멸종을 피할 수 없다. 45억 전에 지구가 생성되고 난 뒤로 우리 인류

이 지구에서 몇 번째 개벽(開闢)의 주인공들인가.


 더욱 암담한 것은 목성과 화성 사이에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에 행성이 되지 못한

수천억 내지 수십 조(兆)개의 다양한 크기의 운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운석들은 일정한 궤도 및 속도를 유지하며 목성과 화성 사이의 공간을 돌고

있다.


 만약 화성과 목성의 궤도나 회전속도에 약간의 이상이 생길 경우 상당수의 운석

들이 지구의 인력에 의해 지상으로 쏟아질 수 있다. 지름 5-10km 크기의 운석

서너 개가 지상으로 낙하할 경우 결과는 끔찍하다.


 바이블의 창세기 천지창조 모습이 재현될 것이며, 수억 년의 세월이 흐른

현생 인류는 모두 망각에 묻히고 지구에 전혀 다른 생명체가 나타나 새로운 문명

이 생겨날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나 안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하늘을 전혀 두려워하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눈뜬

장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에드윈 허블(E.P Hubble)이 장난감 같은 망원경을 지구 위에 띄

놓아 겨우 인류에게 맹인의 처지를 탈피하도록 도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아무 생각이 없다.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며, 하늘이 있는지 해와 달이 있는지 관심조차 없다.

내일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각 나의 말초신경의 쾌락만을 위한다. 의리와

신의도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조물주는 모든 사람에게 황금 같은 천수(天壽)를 부여하였다. 그 어떤 재물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귀하고 귀한 시간이다. 철기나 청동기시대 보다 천신명은

많이 후덕해 졌는지 사람의 수명을 많이 늘려 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모든 인류의

간은 제로가 된다. 그리고 암흑의 수억 년이 지난 뒤에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하

고 장구한 세월 뒤에 지금 같은 문명이 세워질 수도 있다. 수억년 전에 사라진

우리 인류의 전철을 밟듯.  

 



                                                                                                    - 창작일 : 2017.10.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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