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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중년

* 창작공간/Essay 모음 2

by 여강 최재효 2014. 10. 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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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과 중년

 

 

 


                                                                                                                                                                             - 여강 최재효 

 

 

 


 
 밤공기가 제법 차다. 초여름부터 활짝 열어놓았던 창문을 슬그머니 닫아야 했다. 밀폐된 공간

에서 참을 청하는 일은 퍽 상쾌하지 않다. 몸에 열이 많은 나는 한창 때 한 겨울에도 빠끔하게

창문을 열어 두어야 했다. 5년 전 내 몸의 내연기관內燃機關 일부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대수

술을 받은 후유증으로 지금도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몸에서 진액津液이 모두 빠져나간 탓일까. 소슬바람이 살살 불어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콧

물이 나온다. 요즘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이나 의료기술 발달로 30년 이후 더 연장될 수치를

안하여 계산해 보아도 나는 겨우 인생의 중년에서 약간 지난 위치에 서있다.


 10월은 외롭고 쓸쓸한 이미지 때문일까. 나는 사춘기부터 지금까지도 시월이 되면 심한 열병

을 앓는 아름답지 못한 습관이 몸에 배여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춥고 없으면 더더

욱 쓸쓸해 하는 아주 몹쓸 병이 분명하다. 그 병의 원인을 가만히 규명해본 결과 나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 첫째 원인이고 단단하지 못한 여린 마음이 두 번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봄볕 속에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산천山川의 초록빛은 사람들 눈에 미래, 재기再起, 희망,

미지의 만남 등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반면 만추晩秋의 갈색, 붉은색, 노란색, 검정색은 갈무리,

종착역, 기약 없는 이별, 우울, 지루한 기다림 등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게 한다.


 유년幼年 시절부터 내 주변 사람들과 이별 또는 사별死別이 자주 있었다.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새싹이 나기 이전까지 그같은 일이 집중되었던 탓도 내가 시월병十月病을 심하게

앓는 원인이 되었다. 이 시기에 내가 창작하는 문장에 등장하는 주요 시어詩語나 문향文香의

요소에 유독 별리別離, 눈물, 낙엽, 추풍秋風, 독작獨酌, 추억, 밤비, 기러기, 새벽달, 문설주 등

누구를 떠나보내거나 하염없이 미지의 사람기다리는 슬픈 연가풍戀歌風이 주류를 이룬다.

 

 곁에 시선을 맞추고 바라 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쓸쓸하고 슬픈 노래는 원초적으로

내 몸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향하는 연민憐憫에 기인

한다.


 떨어지는 낙엽과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텅 빈 들녘. 차가운 하늘을 홀로 날며 긴 여운을 남

기는 외기러기. 모두가 떠나간 석양빛에 물든 텅 빈 들녘에 쓸쓸히 서있는 허수아비. 그 한가운

데 말없이 서있는 어느 중년의 사내. 시월의 풍경화를 그려보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러나 바

라보는 시각의 차이 아닐까.

 

 늦가을을 대변해 주고 있는 그 여러 물상物象들은 어찌 보면 설렘과 기대의 상징이 된다.

적도부근 열대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낙엽과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텅 빈 들녘은 상상

속의 일이다. 그들에게 우리처럼 가을이 되면 느끼는 센티멘털하고 멜랑콜리한 서정敍情은

기대할 수 없다.


 유명 시인이나 문호文豪가 온대지역에서 배출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백, 두보, 백거이, 황진이, 허난설헌, 바이런, 워즈워드, 예이츠, 가브리엘 G마르께스 등 모

두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 태어난 인물들이다. 천지신명이나 조물주의 마음을 읽어내는

신비한 눈과 귀를 가진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신이 빚어낸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변화를 보고 신이 우리 인간에게 전달하려는 의미를 파악

하여 문자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시인은 발명가가 아니라 발견하

는 사람이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그러나 시를 창작하는 시인을 찾아보기 힘든

게 요즘이다. 미사여구의 나열은 시가 아니라 넋두리나 신변잡기 또는 타령조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온대지방에 사계四季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사계가 존재한다. 나는

이미 봄과 여름의 계절의 터널을 지나왔다. 부지런한 농부는 봄에 논밭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

열심히 김을 매고 잡초를 뽑아준다. 다행히 장마나 태풍이 없다면 그해는 풍년이 농부의 노

고勞苦에 화답을 준다. 물론 게으른 농부도 재수가 좋으면 풍년을 맞이할 수 있다.

 

 모든 산이 단풍으로 물들 때 대풍大豊의 수확을 거든 농부는 저절로 흥이나 노래를 부른다.

부의 흥겨운 풍년가는 하늘과 땅과 바람, 구름, 비, 천둥, 번개 등 천지신명이 지어준 가락이

다. 추수가 끝난 텅 빈 들녘은 농부에게 명년에 또 다시 찾아 올 대풍大豊을 약속해준다. 떨어

지는 낙엽이 있어야 명년 봄이 다시 찾아 올 수 있다. 외기러기는 헤어진 짝을 만날 설렘에 부

풀어 있다. 모든게 신의 섭리요 삼라만상이 가야할 길이다.


 그러나 어느 중년의 사내에게 시월은 많은 상처를 치유하는 시기이며 휑하게 뚫린 가슴의

터널로 광풍狂風 불어와 혹시 남아있을지 모른 미련의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휩쓸고 가는 시

기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단풍이 채 익지도 않은 도봉산을 다녀왔다. 산신령은 오랜만에 찾

아온 나를 기꺼이 반겨주었고 나는 하얀 미소로 화답和答하였다.

 

 나무들은 이미 조물주의 의중意中을 알아차리고 원색으로 곱게 단장丹粧하느라 무척 분주

해 보였다. 나는 봄부터 달려와 무서리 내리는 만추의 한가운데 아름다운 신부로 치장한 산

의 정령들을 보듬어 안았다. 붉은 나뭇잎에서 갓 시집온 새색시의 분 냄새를 맡아 볼 수 있었

고 진갈색의 나뭇잎은 내 누이 같은 포근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가을의 향기에 대취하여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가지 서운한 일은 모두가 가을로 향해 바삐 달려가는데 나는 한여름의 뇌우雷雨를 맞고

서성이고 있었다. 아직도 진초록의 옷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말 못할 사연과 이끼 낀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있으니 언제 산신령이 주관하는 만산홍엽滿山紅葉 잔치에 동승할 수 있을까.

내려놓지 못하고 훌훌 털어버리지 못한 탓일 게다. 비우지 못하고 아등바등 채우려 몸부림 치

고 있기 때문일 게다.

 

 나의 생애 시계는 가을의 문턱에 와 있다. 어쩌면 내가 천의天意를 거스르며 시계 바늘을 붙

잡고 놔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지신명의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

나 사람의 시계는 주인 마음에 따라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가을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 봄에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수확을 하

려는 사람,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빈등거리고 놀다가 남의 논밭을 기웃거리는 사람, 사람의 탈

을 쓴 사람 같지 않은 사람 등 다양한 군상群像들이 눈을 번뜩이며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는 행

태를 목격할 수 있다. 모두가 계절의 추이推移에 둔감한 탓이다.

 

 나무의 감각 보다 못한 심성이나 신의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하는 무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반증反證이기도 하며, 천년 쯤 살 거

라고 착각하는 아둔함의 결과이기도 하다. 자연의 시계든 사람의 시계든 멈추면 안 된다. 또는

거꾸로 돌리려 해도 안 된다. 신의神意에 반하는 행동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보이는 무든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봄에 파릇파릇 새싹이 나서 여름 한철 천둥

번개를 맞고 성장하여 무서리 내리는 늦가을 붉게 단풍이 들어 삭풍이 불면 낙엽이 되어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날아가는 것이 어디 낙엽뿐이랴.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시간이

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거나 이승에 나와 주어진 임무를 알면서도

의로 유기遺棄하는 자들이다.

 

 추풍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자연의 시계와 인간의 시계는 같은 속도로 흐

때문이다. 내가 손바닥으로 아무리 하늘을 가린다고 하여도 나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신에게 억만금億萬金을 바쳐도 인간의 시계 멈출 수 없다.


 급히 길을 달리다 넘어져 진액이 모두 소진된 몸으로 맞이하는 가을이 두렵기만 하다. 만추

앓는 열병은 시원한 탁주 한잔으로 식히면 되고 끈끈하게 달라 붙어있는 응어리 또한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로 도려내면 되련만 나의 계절이 조추早秋임에도 계절의 변이를 일부러 모

르는 체 하려는 어리석은 중년의 치기稚氣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고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심오한 원리

아직도 깨닫지 못한 무지함에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소산일

수도 있겠다.

 


                                                                                                                                                   - 창작일 : 2014.10.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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