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존영
일지랑
- 여강 최재효
제4부
의상은 승만여왕의 감시 하에서 심신이 자유롭지 못하였다.
지나친 간섭으로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는
영어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였다.
의상은 원효를 설득하여 낭지법사(朗智法師)를 찾아뵙자고
하였다. 낭지는 삽량주 아곡현 영취산의 혁목암(赫木庵)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법화경(法華經)에 통달하였으며, 법력을 통해 자유자
재로 신통력을 보이고 있었다. 의상과 원효는 낭지 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불도를 닦는데 정진하였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법사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두 제자에게 백제 무진주 고달산 경복사(景福寺)에 거주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보덕화상(普德和尙)을 소개하면서 찾아
뵈라 하였다.
보덕은 고구려의 승려였다. 보장왕과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서 도교를 수입하여 중시하면서 불교를 견제하는 정책을 펴자,
보덕화상은 삿된 가르침이 불교와 충돌하게 되면 나라가 위
태로워진다며, 적극 반대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받아들
여지지 않자 그는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백제 땅으로 망명하
였다.
보덕화상을 찾아간 원효와 의상은 보덕에게 열반경(涅槃經)
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공부를 할수록 더 큰 지식
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신라가 아닌 더
넓고 큰 세상으로의 구법(求法)을 꿈꾸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당나라 유학이었다. 당나라에는 인도 승려들이
다양한 불경을 한어(漢語)로 번역한 자료들이 많아 학승(學僧)
들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당장 당나라로 유학을 간다는 일은 꿈에 불과하였다.
의상과 원효가 열반경 공부에 푹 빠져 있을 때 서라벌에서
사람이 찾아와 승만여왕의 병고(病苦)를 알렸다. 의상과 원효는
학업을 중단하고 서라벌로 돌아가야 했다. 의상은 승만 여왕을
알현하고 그녀에게 승만경(勝鬘經)을 강설하니 곧 병이 나았
다.
의상은 승만 여왕에게 당나라 유학 계획을 알렸다. 그러나
승만여왕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여왕을 알현하고 나온 의상
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았다.
“어머니, 소자 당나라로 공부를 하러 갑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할 듯 합니다. 불초를 용서하소서. 수로야, 못난 오라비를
용서해다오. 먼 훗날 다시 만나자.”
의상은 당나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무덤을 찾아
작별을 고했다. 자주 찾아 벌초도 하고 가꿔야 하거늘 마치 무
연고 묘지처럼 황량해진 봉분 앞에서 출가인 의상은 통곡하였
다. 의상은 바루에서 목탁을 꺼내 들고 은중경을 독송하였다.
여러 겁을 내려오는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의 태를 빌어 금
생에 태어날 때, 날이 가고 달이 져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
에 접어드니 육정이 열렸어라. 한 몸이 무겁기는 산악과 한가지
요. 가나오나 서고 안고 바람결 겁이 나며, 아름다운 비단옷도
모두 다 뜻 없으니 단장하던 경대에는 먼지만 쌓였더라.
(累劫因緣重 今來托母胎 月逾生五臟 七七六精開 體重如山岳
動止㤼風災 羅衣都不掛 裝鏡惹塵埃)
650년 승만여왕 재위 4년째 되던 해, 26세의 의상과 34살의 원
효는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당나라를 가는 방법은 서라벌에서
가까운 동해의 율포(栗浦)에서 배를 타고 남해를 돌아 황해를 거
슬러 산동반도의 가는 해로(海路)와 고구려를 경유하여 가는 육로
(陸路)가 있었다.
그러나 해로는 보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고 도중에 풍랑을 만나
면 배가 왜나 남쪽 지방으로 떠밀려 갈 수도 있었다. 또한 신라에
서 당나라로 가는 배는 사신이나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뜨지 않아
일반 평민이 배를 이용하여 당나라로 간다는 일은 거의 불가하였
다. 고민 끝에 두 사람은 육로를 통해 당나라에 가기로 결정했다.
의상과 원효가 서라벌을 떠나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라
의 칠중성(七重城)을 지나 고구려 영토로 접어 들었다. 그들은 평양
성과 압록수 건너편 서안평(西安平), 당나라와 경계인 고구려의 요
동성(遼東城)까지 가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요동성만 지나면 바로 당나라 영주성(營州城)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당나라
국경을 눈앞에 두고 그만 고구려의 정찰병에게 잡히고 말았다.
“너희들은 고구려 변방의 군사시설을 염탐하러 온 신라의 세
작들이 분명하렷다.”
“나무아미타불. 저희는 당나라로 불법을 공부하러 가는 승려
입니다.”
의상과 원효가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고구려 군관은 믿지 않
았다. 당시는 고구려와 신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
에 두 사람은 감옥에 갇혀 한 달간 모진 고문과 학대를 받다가
겨우 풀려나 간신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첫 시도가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가자 의상과 원효는 각자 관
심분야를 공부하며, 불제자로서 수도에 정진하였다. 서라벌로
돌아 온 의상에게 승만여왕의 관심이 이어졌으나 예전만 못
했다.
승만여왕의 치세 5년이 넘어가자 백제의 신라 침공은 날로 더
심해졌다. 이에 승만여왕은 김유신으로 하여금 백제군을 대적
하도록 하였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거기다 고구려까지 남하
하자 신라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어 자칫 나라를 잃을 수도 있
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신라 위정자들은 국난 타개책으로 당나라와의 연합을 모색하
게 되었고 김춘추를 당나라에 파견하였다. 김춘추가 당 황제를
설득한 끝에 나,당 동맹이 결성되었다. 승만여왕은 당나라 의관
(衣冠)을 착용하였고, 독자적인 연호를 버리고 당의 연호인 영휘
(永徽)를 사용하였다.
당과의 결속을 위하여 김춘추의 아들 김인문(金仁問)을 당나라
에 보내 당 황제를 숙위케 하였다. 그에 더하여 승만여왕은 당고
종 이치(李治)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지어 비단보에 적어 보냈다.
대당(大唐)이 큰 업을 열었으니 높은 황제의 운이 창성하다.
갑옷 입고 천하를 통일하니 전쟁이 그쳤고, 글을 닦아 여러 황
제들께서 대를 이으셨다. 하늘의 명을 이어 자비를 베풀고 만물
을 다스리니, 그 아름다운 덕을 본받으리라. 그 인덕(仁德)은
일용(日用)에 부합하고, 세상을 어루만지는 덕은 때맞추어 평
화롭게 하셨다…….
654년 보위에 오른 지 8년 만에 승만여왕이 갑자기 졸하였다.
나라에서는 그녀에게 진덕(眞德)이라는 시호를 부여하고, 사량부
(沙梁部)에 장사지냈다.
그녀의 뒤를 이어 김춘추가 보위에 올랐다. 그는 친당외교와 내
정개혁을 통해 신장된 신귀족세력의 힘과 김유신의 지지를 기반
으로 화백회의에서 새로운 신라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백제가 수시로 신라를 침범하자 당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여
본격적으로 백제정벌에 나섰다. 660년 7월 김춘추는 당나라 수군
13만 명과 신라군 5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사비성(泗沘
城)을 함락시켰다. 웅진성(熊津城)으로 피난했던 의자왕과 왕자 부
여융(扶餘隆)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그는 마침내 백제를 멸망시
켰다.
“사형, 당나라에 갑시다.”
의상이 원효를 찾아갔다.
“나도 다시 당나라 유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첫 유학 시도가 실패한 뒤 지난 10년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신라에서 할 수 있는 공부가 무척 제한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붓다의 모든 말씀이 인도에서 당나라를 거쳐야 신라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일부에 한정되거나 이미 당에서 공부를 마친 승
려들이 가져온 서책에 의존해야 했다.
지난해 백제가 망했으니 당항성(唐項城)에서 배를 타면 당나라에
쉽게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먼 길 떠날 채비를 하였다. 서
라벌에서 출발하여 상주(尙州)와 중원경(中原京)을 경유하여 20여
일 만에 당항성 부근에 도착할 때 날이 저물었다.
그들은 중원경을 지나 깊은 산길을 통과하는 중에 산 도적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산 도적들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여비와 귀중
품을 빼앗고 풀어주었다. 두 사람은 하룻밤 묵을 장소를 찾았다.
날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민가라도 있으면 행랑채나 헛
간에서 밤을 보내면 되는데, 아무리 산속을 헤매고 다녀도 민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멀리서 늑대와 승냥이 기분 나쁜 울음소리만 들
려올 뿐이었다. 거기에 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형, 저기 굴 같은 게 있는데 저 안에 들어가 하룻밤 보냅시다.”
의상이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 움푹 들어간 곳을 가리켰다.
“그래, 저기가 좋겠군.”
산짐승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차가운 이슬비에 몸이 젖어 몸은 천근만근이고 발바닥이 부르터
서 더 걷기가 어려웠다. 겨우 두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는 크기의
굴인데 안은 아늑했다. 두 사람은 주먹밥 한 덩이로 허기를 때우
고 벽에 기대앉았다. 원효는 갈증을 느꼈다. 허리에 차고 있던 호
리병박 물통에도 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우님, 물 남았어?”
“다 마셨는데요.”
의상은 차고 있던 빈 호리병박 물통을 흔들어 보였다.
원효는 나오지도 않는 침을 삼키려 애썼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먹은 주먹밥이 목에 걸린 듯 자꾸만 거위침이 올라왔다. 굴 밖으
로 나가 샘물을 찾아보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원효의 손에 둥근 것이 집혔다. 컴컴한 굴 안이었지만 손의
감각으로 봐서 분명 바가지 였다. 손가락을 담가보니 바가지에 물
이 담겨 있었다. 원효는 얼른 그 물을 마셨다.
“아우님, 이 물맛이 꿀맛이네. 한 모금 마셔보게.”
원효는 바가지를 의상에게 건넸다.
“캬-. 물맛이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잠시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굴 안에 코고는 소
리가 진동하였다. 이슬비는 밤새 내리고 종종 번개가 치기도 하였
다. 의상과 원효가 깊이 잠들었을 때 수많은 악귀들이 굴 앞을 서성
이다가 굴 안으로 뛰어 들었으나, 신비한 힘에 의해 격퇴되었다.
늑대, 승냥이, 나찰녀(羅刹女), 식인귀(食人鬼), 속질귀(速疾鬼)
등이 접근하였으나, 굴 입구에 서있던 호법신장의 철퇴를 맞고
물러났다. 다음날 의상이 먼저 잠에서 깨어나 원효를 흔들어 깨웠
다.
“형님, 일어나세요. 당항포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아, 잘 잤다. 서라벌 떠난 뒤로 가장 편안한 잠자리였어. 아우
님도 잘 잤는가?”
원효는 두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어젯밤에 마시고 남
겨둔 바가지 물을 찾았다. 먼동이 터오는 중이기는 하나 굴 안은
어두웠다. 원효의 손에 바가지가 잡혔다. 원효가 바가지를 입에
대려다 비명을 질러댔다.
“형님, 왜 그러세요?”
“아우님, 저, 저걸 보게. 저거 해, 해골바가지 아닌가?”
원효가 바닥에 내동댕이친 해골을 가리켰다.
“헉-, 혀, 형님. 맞습니다. 해골바가지 맞습니다.”
“어젯밤에 우리가 마신 바가지 물이 저 해골바가지에 담겼던
썩은 물이었더란 말이냐?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가 무덤 속이
었고…….”
원효와 의상은 재빨리 굴 안을 빠져 나왔다. 두 사람은 손가락
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켁켁 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뱃
속의 내용물을 토해낼 수 없었다.
‘아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다. 삼천대천의 모든 것이 오
직 마음에서 생겨나고, 마음에서 사멸한다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
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법을 구하러 당
에 가려 했다. 내가 구태여 당나라에 갈 필요가 없다.’
원효는 대오(大悟)하였다.
“아우님, 미안하네. 나는 서라벌로 돌아가려네.”
“형님, 서라벌로 돌아가다니오? 평생을 기다린 유학길인데요.”
결국 원효는 의상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서라벌로 발길을 돌
리고 의상 혼자 당항포로 향했다.
신라에서 당나라를 가려면 관아에서 발급하는 허가증이 있어야
했다. 진덕여왕 때부터 당나라와 가까워지면서 많은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들락거리면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였다.
신라에서 죄를 짓고 당나라로 도망가거나 또는 당나라 사람
들이 죄를 짓고 신라로 도망쳐 오는 일이 번번이 일어나자 두
나라는 국경을 통제하였다.
“아, 이를 어쩌나. 영객부(領客部)에서 발급해준 허가증을 오
다가 산 도적들에게 빼앗겼으니, 허허 낭패로고.”
외교를 담당하는 관아에서 발급하는 허가증이 없으면 당나라
에 갈 수 없었다.
의상과 원효가 다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는 것을 왕실과 서
라벌 사문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원효는 뜻한 바가 있어 돌아갔
지만 의상은 절대로 서라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원효가 6두품 출신인 반면에 의상은 진골 출신이었다. 그가 만약
돌아간다면 왕실과 가문의 망신이며, 자신과의 약속을 배반하는
꼴이 되었다.
의상은 궁리 끝에 당항성의 관리를 찾아가 아버지 김한신 장군을
팔고 겨우 약간의 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 허
가증을 새로 만드는 것을 물론 당나라까지 가는 뱃삯도 충당할 수
없었다. 의상이 타려고 하는 배는 당항성에서 당나라 등주까지 가
는 상선(商船)이었다.
의상은 배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임무를 맡고 있는 갑판장(甲板
長)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건네고, 전후 사정을 말하였다.
다행히 갑판장은 의상이 선하게 생긴 스님이고, 서라벌에서 의상
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었기에 그를 화물칸에 탈 수 있도
록 배려 하였다.
삼일 낮과 이틀 밤이 지나서 배는 등주(登州)에 도착하였다. 그
런데 의상은 배에서 내리다가 그만 출입국을 담당하는 등주 관리
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의상은 밀입국자가 되어 즉시 등주 관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등주를 총괄하는 주장(州長)은 유지인(劉知仁)이라
는 자였는데, 다행히 그는 불심이 깊은 자였다. 그는 신라에서
오는 배에서 스님이 불법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다
는 보고를 받고 통역관과 함께 감옥으로 찾아갔다.
“스님께서 감옥에 갇히게 된 연유가 어떻게 되십니까?”
“소승은 신라 사람으로 종남산 지상사(至相寺) 지엄(智儼) 대사
에게 화엄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고자 가던 길이었습니다.”
의상은 서라벌에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유지인은 신라인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
고 있었다. 그의 수양딸이 신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엄이 무엇입니까?”
유지인은 예전에 신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치던 가짜 승려를 만나
적이 있었다. 그는 의상이 정말로 출가한 승인지 알기 위하여 부러
화엄에 대하여 물었다. 지엄대사가 화엄종의 대가라는 사실을 유
지인은 잘 알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알고 있는 화엄에 대하여 말씀드리지요.”
의상은 부처를 한번 호명하고 화엄에 대하여 말하였다.
화엄의 구성은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삼천대천의 삼라는 하나
라도 홀로 있거나 홀로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
고 있다. 이것이 화엄에서 말하는 무진연기 법칙이다.
사법계, 십현연기, 육상원융, 상입상즉 등은 이 무진연기를 설명
하는 화엄사상의 골자가 된다. 거기서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
즉일(一切卽一), 일즉십(一卽十), 십즉일(十卽一)의 묘법이 생멸
한다. 화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고 항쟁을 거듭하는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의 대립도 지양시킴으로써 마음을 통일
하게 한다.
“아미타파. 감히 선지식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유지인은 의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내가 생불을 만났구나.’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처사님, 고맙습니다.”
의상은 유지인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스님, 어디 아프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아미타불. 소승이 신라 서라벌을 떠나 지금까지 한 달 가까이
제대로 쉬지 못한 까닭에 몸이 많이 상한 듯 싶습니다.”
의상의 차분한 말에 유지인은 정색을 하고 두 손 모아 합장하
였다. 그는 의상이 보통 스님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몸이 많이 상한 의상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머물게 하였다.
유지인의 집은 대저택이었다. 그의 집은 가옥이 열채나 되고
하인도 스무 명이나 부리고 있었다. 유지인은 슬하에 자식이 없
었다. 그런데 십여 년전에 수양딸을 들였는데 이름이 선묘(善妙)
라고 하였다.
선묘는 스물 후반으로 혼기가 지났지만 혼인할 생각을 하지 않
았다. 유지인 부부는 선묘에게 여러 차례 혼인을 종용하였지만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조용히 집안에서 양부모의 일을
돕고 가까운 절에 다니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이미 등주에 알려져 등주뿐만 아니라 근처 지방
에서도 돈 좀 있는 집안에서 유지인에게 죽매장이를 보내고 있
었다. 그녀는 저택 맨 끝에 있는 별채에 기거하고 있었다.
“아가씨, 주인님께서 웬 스님을 모셔왔어요. 보기에는 어디 안
좋은 듯 해요. 그런데 그 스님이 신라국에서 왔다고 하는데 키
도 크고 얼굴도 엄청 잘 생긴 미남자에요.”
선묘의 몸종 난희가 헐레벌떡 뛰어 들면서 소란을 떨었다.
“뭐라, 신라에서 오신 스님이라고? 그분 지금 어디 계시느냐?”
“바깥채에 계시는데 방금 의원이 다녀가셨어요.”
‘신라에서 오신 스님이라고, 어떻게 생긴 분이실까?’
이 전에도 양부(養父)가 스님을 집안에 몇 번 초대한 적은 있었
지만 신라에서 온 스님은 처음이었다. 선묘는 신라 스님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당장 달려가 그 스님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대갓집 규수가 외간 남자를 함부로 찾아가서 만날 수 는
없었다. 특히 스님은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가 좀 쑥스러웠다. 그
러나 선묘는 자꾸만 그 신라에서 왔다는 스님의 정체가 궁금하
였다.
잠자리에 누웠어도 신라 스님에 대한 호기심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선묘는 양부모에게 문안 인사를 하러 안채에 들
었다.
“아버님, 어머님.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오냐. 너도 잘 잤느냐? 요즘 네가 더욱 고와졌구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게야?”
유지인이 딸 선묘에게 덕담을 하였다.
“늘 걱정해주는 아버님, 어머님 덕분입니다.”
“네가 어서 좋은 낭군을 만나야 할 텐데…….”
양모(養母)는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딸이 안타깝기만 했다.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내일이라도 당장 혼례식을 올려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차일피일 혼인을 미루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딸이라면 강제로라도 혼인을 시켜보겠지만
수양딸을 억지로 혼인을 시킬 수 없었다.
“아버님, 어제 신라에서 온 스님이 집에 들었다면서요?”
“그래. 의상이라는 스님인데 지금 바깥 체에서 요양 중이란다. 신
라에서 오느라 제대로 못 먹고 못 쉬어서 그런지 몸이 무척 상했더
구나.”
“제가 한번 의상 스님을 뵈면 안 될까요?”
“그래라. 그 스님을 만나보거라. 보통 스님과 다르더구나.”
선묘는 아침 문후(問候)를 마치고 물러났다. 별채로 돌아온 선
묘는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추억을 곱씹었다. 한참동안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물기가 스며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가씨, 그 스님을 뵈러 가신다면서요?”
“응. 그래. 가자. 내가 부탁한 거 준비하였지?”
“그럼요. 그런데 아가씨, 우셨어요? 어젯밤부터 좀 이상하세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시죠?”
선묘는 난희와 함께 바깥채로 향했다. 선묘는 난희를 시켜 신라
사람이 운영하는 떡집에 다녀오도록 하였다. 스님이 몸이 많이 상
했다는 말을 듣고 딱히 선물할 것이 없었다. 선묘는 그가 출가인이
아니라면 몸에 좋은 육식류를 준비했었을 터 였다.
“스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난희가 의상이 들어 있는 방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난희가 두 번 더 큰소리로 외치자
그제야 기침소리와 함께 들어오라는 답이 있었다. 선묘는 조심스
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문고리를 잡은 선묘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이전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동굴 속으로 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선묘는 작은 기침 소리와 함께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이 열렸다.
그녀는 반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섰다. 의상은 결
가부좌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앉아서 면벽 삼매경(三昧境)에 들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염주가 쥐어져 있었다. 그의 모습은 불단에
모셔져 있는 부처와 흡사하였다.
선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합장(合掌)하고 의상과 같은 자세로
면벽하였다. 방안에는 남녀의 숨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적막하였다.
밖에서 서성이며, 이제나 저제나 선묘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난희는
방안이 무척 궁금하였다.
선묘가 방에 들어간 지 서너 식경이 넘도록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
으니 난희의 조바심은 더욱 커갔다. 난희는 방문을 살짝 열고 방안
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두 분이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무엇을 하는 걸까? 그것참
희한한 일이네. 나 같으면 스님과 다정히 앉아 연애하는 이야기나
실연당한 이야기를 할 텐데. 스님들이 출가를 할 적에는 반드시 말
못할 사연이 있다고 들었어. 저 스님도 무슨 사연이 있을 거야. 스님
이 많이 아프다고 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 나았나?’
난희는 문을 닫고 나와서 하릴없이 마당을 이리저리 걸으며, 하품
을 해댔다. 의상은 삼매경에서 깨어 눈을 뜨고 헛기침을 하였다. 그
때 선묘도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의상을 살며시 바라보았다.
- 계속 -
일지랑(終) - 의상대사님과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2) | 2018.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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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랑(5) (0) | 2018.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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