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님과 선묘낭자의 비련의 사랑 이야기
일지랑
- 여강 최재효
제3부
신라는 사람의 가치가 권력이나 재력, 가문 등에 의해 규정되는
비정상이 지극히 정상인 사회였다. 일부 천박한 특권층은 자신과
가문의 욕망을 위해 힘없는 이웃이나 아랫사람을 괴롭히거나 피
해를 주고 무례하게 구는 일을 당연시 하였다.
골품제의 틀에 박힌 굴레 속에서 일반 평민들은 그 같은 상류사
회의 부당한 행위를 알면서도 할 수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의
도덕적 해이는 사회 또는 국가의 하부를 갉아먹는 행위였다. 그들
을 보다 못한 왕들은 종교의 힘을 빌려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대덕들은 수시로 중생들을 위하여 야단법석을 마련하고, 선행으
로 이타(利他)를 하면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
지만 비정상이 몸에 배인 일부 타락한 계층사람들에게는 우이독경
이나 마이동풍 격이었다.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일은 일개 대덕의 힘으로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덕만여왕은 백성들을 깨우쳐 어려운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호국정신과 삼한일통 염원으로 황룡사 9층탑을 축조하였다.
수만리 이역(異域)에서 수입된 불교의 교리는 신라 위정자들의
염원과 맞아 떨어졌다. 덕만여왕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율사를 대국통(大國統)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황룡사에서 칠일 낮과 밤 동안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강설토록 하였다. 자장율사가 법회를 열면 하늘에서 단비가 내
리고 구름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법당을 뒤덮곤 했다. 물론 국
내에도 여러 명의 대덕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해탈과 구
법 또는 포교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야, 부마께서 오셨네.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훤칠하고 잘도
생겼네 그려. 그러니 콧대 높은 승만공주가 뻑 갔을 테지.”
“정말 기가 막힌 미남자일세. 남자도 반할지경이네.”
“아이고 저런 정인을 두고 묘화 처녀가 바다에 투신했으니 얼
마나 원통하고 억울할까.”
“일지랑이 요즘 조정에 출사도 안 하고 매일 술로 허송세월한
다네.”
“자네 같으면 일이 손에 잡히겠나? 사랑하는 여인, 장모, 여동
생이 억울하게 저승에 갔으니, 제정신 아닌 게 당연하지.”
초저녁에 월궁에 들른 일지는 약간 취한 상태였다. 월궁은 서
라벌에서 바람기 많은 사내들과 얼굴 반반한 논다니들이 매일
구름처럼 몰려드는, 제법 잘나간다고 소문난 기루(妓樓)였다.
“일지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머나, 우리 낭군님 오셨네요. 보고 싶었어요.”
“서방님, 제 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목이 십리는 나왔어요.”
“서방님, 매일 오셔요. 술값 안 받을 테니.”
기녀들이 일지를 보고 몰려들었다. 기녀들은 서라벌 최고 미
남인 일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에 환호하였다.
기녀들이 일지에게 몰려들자 다른 남자 손님들은 찬밥 시세가
되고 말았다.
“잘 있었느냐?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술과 안주를 내오거라. 오
늘은 웬일인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구나.”
일지는 기녀들을 일일이 안아주면서 등을 다독거렸다.
“하이고. 오늘 장사 공치게 생겼구먼.”
기루 여주인은 일지만 오면 투덜거렸다. 기녀들과 논다니들
이 다른 남자 손님들과 합석하여 술을 마시다가도 일지만 오
면 모두 일지에게 달려가 아양을 떨었다. 그 바람에 기분이
상한 손님들이 다른 주점으로 자리를 옮기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일지님, 승만공주님하고는 언제 혼례식을 올리세요?”
“승만공주님은 남자같이 생겼다는데, 그 말이 참말이예요?”
“일지님,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 건데요?”
“이제는 일지님 못 보면 병이 날 것 같아요. 매일 오셔요. 아
니면 이년을 데리고 가시던가요. 승만공주님하고 혼인은 하지
마시어요.”
일지가 앉은 탁자 위에 술동이가 오르고 푹 삶은 통돼지가
놓였다. 여인들은 걸신들린 듯 달려들어 마시고 먹으며, 일
지의 통 큰 씀씀이를 칭찬하였다.
“일지님, 오늘도 노래 좀 불러주셔요.”
“그래요. 일지님의 노래 솜씨는 서라벌 최고랍니다.”
“일지님, 어서 한곡 불러주세요. 듣고 싶어요.”
어느 정도 술이 오르자 한 기녀가 일지를 무대 앞으로 데리고 나
갔다. 일지는 익숙한 듯 무대에 오르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
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짝 맞추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어머나, 일지랑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
고 있었지만 저리도 잘 부를 줄은 몰랐네.”
“언니,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숨이 넘어갈 거 같아요.”
“내 사랑, 김일지.”
기녀들은 일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일지가 서동요(薯童謠)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묘
화를 강제로 공녀로 뽑아서 당나라에 보낸 신라 왕실의 처사에 대한
복수심 발로에서 였다.
선화공주는 덕만여왕의 여동생이었다. 일지는 사랑하는 여인을 빼
앗긴 억울함을 신라 왕실에서 싫어하는 노래를 부름으로써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짝 맞추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일지랑 품에 한번만이라도 안겨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꿈도 꾸지마라. 승만공주가 알면 죽는다.”
“치이. 솔직히 못생긴 공주보다 내가 훨씬 낫지 뭐.”
구성지게 노래하는 일지의 모습에 반쯤 얼이 나간 기녀들과 논다니
들은 저마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들도 기루에 왔다가 일지의 노래하는 모습에 반해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술에 대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일지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여인들의 치맛자락에 파묻혀 지내는 일
지를 가엽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설서당(薛誓幢)이었다. 그는 일지와 먼 인척 관계였다. 일
지보다 여덟 살 위인 그 역시 화랑으로 활동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출
가하였다. 그는 서당, 신당(新幢) 또는 모(毛)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
다. 그는 매우 총명하였으며, 암기력이 탁월하였다.
어려서 한학(漢學)과 유학(儒學)을 배우고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하여 오래 고민하다가 스스로 출가하여 마침내 승려가
되었다.
법흥왕때 신라에 불교가 유입된 이후로 서라벌을 중심으로 많은 백
성들이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신라의 젊은이들이 속세를 떠나 승려
가 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얼마 못가서 환속(還俗)하기 일쑤였다.
다음날 일찍 서당은 일지를 찾아 갔다.
“일지야, 마음 독하게 먹고 조정에서 잘 버텨내야 한다.”
“서당 형님, 아닙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삼보(三寶)에 귀
의코자 합니다. 출세도 싫고 부귀영화도 싫습니다.”
일지는 왕명에 의해 고구려와 신라간의 분쟁이 자주 있는 전선에서
서라벌로 돌아왔지만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장래를 약속했던 묘화는 당나라 황제의 음욕(淫慾)을 달래주기 위한
진상녀(進上女)로 차출되어 가는 도중에 바다에 투신하였고, 장모가
될 선우부인도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결하였으며, 동생 수로는
계모에게 매를 맞아 죽었다.
일지가 인생에 회의를 느끼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승만공주의 질투
와 시기심이 묘화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과 동생의 죽음이었다. 계
모는 뜨거운 여인이었다.
지아비 김한신 장군이 늘 전선에 나가있는 관계로 그녀는 독수공
방 처지였다. 그녀의 쓸쓸함을 달래준 것은 외간 남자들과 밀통(密
通)이었다. 우연히 수로에게 간통 현장을 들킨 천성부인은 수로에
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타살하였다.
이 사건의 배후에 계모가 깊이 연루된 정황이 밝혀지면서 그녀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 선나부인, 이모 선우부
인, 사랑하는 여인 묘화 그리고 여동생 수로 등 일련의 혈육들의
죽음은 일지에게 다른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였다.
“일지야, 부친하고 상의해야 한다. 아버님께서 너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들었다. 또한 덕만여왕께서 너를 서라벌로 불러들인 것
은 왕실에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야. 여왕하고도 상의해봐야 한다.
자칫 너로 인하여 부친에게도 누가 미치면 안 되잖니.”
“서당 형님, 제 인생은 제가 스스로 개척합니다. 물론 아버님과 폐하
께 출가한다고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부처님 이외에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겠습니다.”
일지의 출가는 문중과 왕실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주김씨 문중에서는 일지를 가문을 중흥시킬 인물로 꼽고 있었다.
일지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김한신 장군과 문중의 어른들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덕만여왕과 승만공주는 일지가 출가하겠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덕만여왕은 일지의 정인(情人) 묘화를 억지로 당나라에 공녀로 보내놓
고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중은 아무나 되나요? 언니와 저에 대한 서운
함을 일지랑이 그리 나타내는 것이니, 그냥 모르는 척 하면 제풀에 지
칠 겁니다. 언니가 김장군을 은밀하게 불러 일지랑이 출가하지 못하도
록 명을 내리세요. 일지랑이 말을 듣지 않으면 감옥에 넣어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야 해요. 나는 절대로 그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승만공주의 오만방자함에 덕만여왕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승만아, 일지랑은 어린아이가 아냐. 신라의 화랑도로서 산전수전 모
두 겪은 사람이야. 권력으로 그의 의지를 꺾으려하지 말고 인덕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언니도 참 답답하세요. 어느 세월에 인덕으로 일지랑의 마음을 돌
린답니까? 일지랑이 삭발하고 산속에 들어가면 나도 머리 깎고 따라
가서 인덕을 베풀까요?”
승만공주는 사탕을 입에 물고 덕만여왕을 노려보았다. 누가 여왕이
고 누가 신하인지 분간 할 수 없었다.
‘아, 승만이가 세상을 함부로 살려고 하는구나. 묘화를 당나라에 보낸
것이 잘못이로다. 나는 일지랑에게 큰 죄를 지었어. 내가 왕이라 하지
만 출가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거두게 할 수는 없어. 이번에는 그의 의
지대로 하게끔 모르는 척 해야 겠어.’
덕만여왕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일단 물러가 있거라. 내가 알아서 하마.”
“나는 언니만 믿고 있을게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지랑이 대전에 들어 덕만여왕을 알현하였다.
일지랑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여왕은 일지랑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일지랑이 출가를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왕
은 그의 아픈 마음을 위무하고 싶었다.
여왕이 신하의 손을 잡아주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곁에 있던 내관
들은 일개 무관(武官)의 손을 잡고 그간의 공적을 치하 하는 덕만여
왕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어찌해야 일지랑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줄 수 있겠어요.”
일지는 덕만여왕의 말뜻을 얼른 알아들었다. 여왕은 묘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폐하, 당치도 않습니다. 소신은 하해와 같은 폐하의 성은을 저버리
고 출가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소신을 벌하여 주소서.”
일지는 내전 바닥에 엎드렸다.
“일지랑이 이미 마음을 굳힌 듯 합니다. 과인도 그대의 뜻을 존중하
여 깊이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부디, 이 나라가 불국토(佛國土)가 되
어 사해만방에 으뜸가는 신국(神國)이 되도록 힘써 주세요.”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신, 신라의 삼한일통과 국가의 안녕
을 위하여 불문에 귀의코자 합니다. 이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일지는 대전에서 나와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나 일지는 아버지 김
한신 장군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김한신은 대야성에 나가 있었다. 요즘 들어 백제 군사들이 자주 대
야성을 침입하자, 신라조정에서는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병력 일
부를 대야성으로 이동 배치하였다.
일지 아래로 천성부인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여러 면에서 일지와 비교가 안 되었다. 일지는 빨리 자
신의 장래를 결정지어야 했다. 덕만여왕에게도 출가를 고한 상태라
마음이 급했다.
“네가 출가를 하겠다는 데에 아비로서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내가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일단 출가하여
사문(沙門)이 되어보고,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거든 언제든지 환속하
거라. 다 큰 자식을 아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모습도 우습구나.”
“아버님, 불초를 용서하소서.”
일지는 김한신에게 절을 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설서당을 따라가
서라벌 한가운데 위치한 황복사(黃福寺)로 갔다. 일지는 그 절에서
안함법사(安含法師)에게 수계를 받았다. 서기 644년 가을이었다.
“오늘부터 너의 법명은 의상(義湘)이다. 네가 열아홉 살에 불문에
들었지만 빠른 것도 아니다. 하루빨리 세속의 때를 벗고 모든 인연
의 끈을 놓아야 하느니라. 앞으로 이삼년 내에 그동안 맺은 세속의
수많은 연들을 끊어내지 못하면 환속해야 할 것이야.”
안함법사는 일찍이 수나라에 건너가 십승(十乘)의 비법과 심오한
불교 경전과 부처의 진문(眞文)을 공부하고 온 대덕(大德)이었다.
그는 사물에 통달하고 지혜가 많아 사바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시
공을 초월하여 머무름을 뜻대로 하였다. 일지가 정말로 머리를 깎
고 출가하자 승만공주는 크게 충격을 받고 한동안 헤어나지 못
했다.
그녀는 일지가 그냥 한번 해보는 말로 치부하고 머지 않아 제 발
로 찾아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서라벌의 다른 사내나 일지가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승만공주 뿐만 아니라 일지를 사위로
맞고 싶어 했던 진안갈문왕 김국반은 조정에서 크게 망신을 당하
고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의상은 과거의 일지를 지우기 위하여 낮밤으로 부처의 말씀에
매달렸다. 새벽에 눈을 뜨면 부처를 찾았고, 잠들기 전까지 부처
를 호명하였으며,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부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세속의 인연을 끊으려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묘화, 예토(穢土)에 살던 일지는 이제 없소. 일지라는 사내 대신
의상이라는 불제자가 있을 뿐이오.’
의상은 새벽예불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천근 바위 같은 눈
꺼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서방님, 묘화랍니다. 서방님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묘화. 고맙소.’
의상은 어느새 몽중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묘화, 미안하오. 내가 항상 그대 곁에 있었더라면 당신이 당나라에
가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오. 이승에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가 봅니다. 나는 이승에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당신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불전에 엎드려 빌고 또 빌겠소.
이제는 이승에서 우리의 인연을 정리해야 하오. 내 사랑. 묘화. 정
말로 나 자신보다도 당신을 더 사랑하였소. 모든 게 한순간 춘몽(春
夢)이었소. 너무 허무하오. 내 말이 들린다면 당신도 피안에서 불문
에 귀의하시구려.
“허허, 의상이 속세의 끈을 끊기가 무척 힘든가 보구나. 잠꼬대까
지 하는 걸보니.”
요사채에 들었다가 잠들어 중얼거리는 의상을 보고 안함법사는 장
삼가사를 벗어 덮어주고 나왔다.
‘서방님, 이제 저를 잊으셔요. 제가 삼천대천 그 어느 곳에 있던 지
간에 항상 서방님의 해탈을 위하여 두 손 모으겠습니다. 항상 몸 건
강하시고 이왕 사문이 되셨으니 정진하시어 만백성에게 존경받는
불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시어요.’
묘화는 의상을 향해 하얀 손을 흔들며 허공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의상은 묘화를 쫓아갔으나 묘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붉은
연꽃 한 송이가 빛나고 있었다.
“묘화, 묘화. 나를 두고 어딜가는 게요? 묘화, 묘화-.”
덕만여왕이 지병으로 붕어하자 그녀의 뒤를 이어 진안갈문왕의 딸
승만공주가 신라 제28대 왕에 등극하였다. 승만공주가 왕위에 오른
것은 덕만여왕의 유조(遺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라 조정에서는 덕만여왕의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
에 장사 지냈다. 아직 정사를 보는데 서툰 탓으로 승만여왕은 상대
등 알천(閼川)에게 대리청정토록 하였다.
승만여왕은 불제자가 된 일지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고 비밀리에
관리를 보내 의상의 동태를 감시하였다. 만약 의상 스님의 동태가 파
악되지 않으면 승만여왕은 노발대발하여 중신들은 어쩔 줄 몰라 하
였다. 아버지 진안갈문왕이 아무리 말려도 승만여왕의 집착은 멈추
지 않았다.
“이것은 폐하께서 스님에게 하사하는 법복(法服)입니다.”
승만여왕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의상에게 법복을 보내고 거액의 시
주도 하였다. 그러나 의상은 세속의 인연을 이어가려는 승만여왕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신라의 지존이 되셨습니다. 제발 의상 스님과 인연을 끊으
세요. 중신들이 흉을 본답니다.”
“어머니, 불자가 되었다고 사내구실 못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죽
을 때까지 일지랑을 놓아줄 수 없어요.”
“승만아, 어머니 말씀대로 하려무나. 중신들 보기 민망하구나.”
승만여왕의 어머니 월명부인은 딸의 행동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버지 진안갈문왕도 수시로 승만여왕에게 의상 스님과의 관계를
청산하라고 주문하여도 승만여왕은 듣지 않고 날이 갈수록 의상에
대한 집착은 더해만 갔다.
‘나를 피해 도망간 일지를 절대 그냥 둘 수 없어. 내가 싫으면 싫다
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지, 머리 깎고 절간으로 숨는다고 내가 포기
할 줄 알겠지만 천만에 말씀이야. 나는 네가 죽기 전에는 절대로 포
기하지 않아. 나의 자존심을 짓밟아 놓고 네가 얼마나 잘되는지 두
고 볼 거야.’
승만여왕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중얼거렸다.
서당도 그간의 독학 방식에서 탈피하여 불문에 들어 수계를 받고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다. 그의 법명은 원효(元曉)였다. 의상과 원
효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 서로를 격려하며 불도를 닦았다.
의상은 화엄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원효는 정토종에
큰 관심을 보였다.
화엄경의 연화장세계는 현상계와 본체 혹은 현상 끼리 대립하는
관계면서도 한편으로는 융합하여 새로운 체계를 전개하는 생명체
와도 같았다. 그 사상 중심에는 대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이
계시어 모든 조화를 꾀했다. 즉 화엄은 삼천대천 삼라의 제반현상
을 온유하게 묘사한 사상이지만 통일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화엄의 일즉다(一卽多), 다일즉(多卽一)은 중앙집권적 왕권을 뒷
받침하는 이론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삼한일통을 지향하고 있던
신라의 위정자들에게 잘 부합하는 사상이기도 하였다.
그 같은 화엄은 당시에 신라나 당나라 또는 왜처럼 전제군주(專制
君主)가 다스리는 나라에 크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원효가 관
심을 보이고 있는 정토사상은 무지한 사람도 믿을 수 있는 민중의
불교로의 지향이었다. 깊은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미타불
(阿彌陀佛)을 외치면 누구라도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상
이었다.
그것의 정수는 일부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탈피하여 불성(佛性) 본
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었으며, 신라처럼 통일 국가를 꿈꾸는
체제에서 수용해야 할 새로운 방편이기도 했다. 신라의 위정자들이
원하는 삼한일통은 지배력의 통합이 아닌 통일 후 삼국의 백성들이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여 상호 교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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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랑(終) - 의상대사님과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2) | 2018.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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