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못 다한 사랑 이야기
일지랑
- 여강 최재효
제1부
삼라는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인연에 의해서 소멸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처럼 지극한
진리를 망각한 채, 콩 심어 놓고 팥이 나오기를 바라는 기원이 있어
사바에 고민이 있다.
호불호(好不好)는 집착을 동반하게 되는데, 대개 신구(身口)를 통해
일이 야기된다. 모든 존재와 조건들은 연에 따라 잠깐 나타난 것일
뿐, 실체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연(好緣)은 반드시 잡아야
하고 악연(惡緣)은 버려야 한다는 위험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기에
인간사가 더더욱 혼란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7세기 중반 남삼한 삼국(三國)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혼란
의 시기였다.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켜 독재정권
을 성립하였고, 백제에서는 의자왕이 급진적인 왕권강화 시도가 있었
다. 또 신라에서는 여왕이 등극하자 당나라는 신라를 우습게 알았고
귀족들은 여왕의 등극을 못마땅하게 여겨 반란이 빈번하였다.
삼국과 당(唐)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삼국의 대치 상황은 모두
에게 위기 국면이었다. 삼국이 어떻게 혼란을 극복하고 국정을 잘 운
영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가 걸려 있었다. 삼국 중 가장 어려운
나라는 신라였다. 신라는 덕만여왕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고
구려와 백제의 침공에 시달리며, 고난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632년 진평왕이 아들 없이 붕어하자 화백회의에서 그의 차녀였던
덕만공주(德曼公主)를 왕으로 추대하고 ‘성조황고(聖祖皇姑)’라 호
를 올렸다, 이에 ‘女主不能善理(여주불능선리)’ 즉, 여자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하여 귀족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즉
위하기도 전에 이미 칠숙(柒宿)과 석품(石品)이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였다.
덕만여왕 치세 기간 중인 642년. 신라는 백제에게 미후성(迷厚城)
을 포함해 사십여 곳의 성(城)을 빼앗기고 고구려, 백제가 연합하여
신라의 당항성(黨項城)을 공격하는 바람에 당나라와의 교역로도
끊겼다.
또한 백제군의 침공으로 신라의 요충지인 대야성(大耶城)도 빼앗기
고 말았다. 위기에 처한 덕만 여왕은 김유신을 출병시켜 백제에 빼앗
긴 성을 되찾게 하고 동시에 당나라에 김춘추를 사신으로 파견하
였다.
이때 신라군에 장군 김한신(金韓信)이 있었다. 그는 신라 지증왕(智
證王) 5대손으로 대대로 문무대신을 지내온 세신(世臣)의 자손으로
진골에 해당하는 귀족이었다. 그는 신라 11관등인 나마(奈麻)가 되어
최전선인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에 출병하였다. 출병 후 얼마 뒤
고구려 군이 우수성으로 쳐들어오자 그는 고구려 군을 격퇴시켰고
4품으로 진급하여 황금보기당주(黃衿步奇幢主)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백제군이 신라의 속함(速含), 앵잠(櫻岑) 등 여러 지
역으로 쳐들어오자 김한신은 군사 5천여 명을 거느리고 나갔다가 전
멸되다 시피 하였다.
패전의 책임으로 김한신은 벼슬을 잃고 백의종군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얼마 뒤에 김한신은 김용춘 장군이 이끄는 대가야성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워 다시 나마 벼슬을 회복하였다. 이때 그
의 처는 선나부인이었다.
그녀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서 제8대 아달라왕의 15세손이었다.
그녀는 지아비의 승전을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불전(佛殿)에 나
가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가 변화무쌍
하고 덩달아 지아비의 벼슬도 부침(浮沈)을 거듭하면서 마음의 병
이 육신의 병이 되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김한신 장군에게는 일지(日芝)라는 아들이 있었다. 일지는 무장(武
將)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찍 화랑도가 되어 전선에 나가있는
아버지의 군무(軍務)를 돕고 있었다. 이 당시 신라의 청년들에게는
세 가지 희망이 있었다.
첫째 화랑이 되어 입신양명하여 부모님에게 효도 하고, 둘째 무장
(武將)이 되어 적군과 싸워 승리하여 국가와 백성들을 평안케 하며,
셋째 부처에 귀의하여 국사(國師) 또는 왕사(王師)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신라는 철저한 골품제 사회였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태어나면서
일생의 운명이 정해지게 되어 있었다.
이때 귀족 출신인 일지는 화랑도로서 전장에서 병사들의 무술 수
련을 지도하고 있었다. 전장에 동원되어 오는 병사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도 못하고 급히 충원된 병력으로 옷만 군복을 입혀 전
쟁에 투입된 오합지졸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지는 이미 화랑도로 있으면서 검술, 창술, 궁술, 마술 등 다양한
병술(兵術)을 익힌 유능한 무사였으며, 병사들을 지도하다가 갑자기
고구려나 백제군이 신라의 국경을 넘으면 칼을 빼들고 달려가야 하는
예비 병력이기도 했다.
여러 번의 혁혁한 전과를 세우면서 일지는 신라 조정에까지 이름
이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가 신라의 장군이라는 점도
감안되었다.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전선(戰線)에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관계로 신라 쪽에는 신
경쓸 여력이 없었다. 김한신 장군은 아들 일지를 데리고 오랜만에
서라벌로 돌아왔다.
여왕의 숙부인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 김국반(金國飯)에게는 승만
(勝曼)이라는 딸이 있었다. 승만공주의 혼기가 차자 김국반은 조카인
덕만 여왕의 승낙 하에 연무(演武)를 겸해 무술대회를 열어 문무의
고관과 15세 이상 되는 그들의 자제들을 모두 초빙하였다.
그들의 자제들은 주로 화랑이거나 공음(功蔭)으로 조정에 출사하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미장가 총각에 한하여 초대되었다.
일지도 갈문왕의 초대장을 받게 되었고 무술대회에 참가하였다. 진
안갈문왕이 대회를 개최한 목적은 혼기가 꽉 찬 딸 승만공주의 배필
감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진안갈문왕이 개최하는 잔치에는 조카인 여왕 덕만도 참가하였다.
여왕이 거동하자 신라 조정에서는 이벌찬, 이찬, 잡찬, 파진찬, 대아
찬, 아찬, 일길찬, 급벌찬, 나마와 태수나 총관 등 고관대작들이 대거
동반 참석하였다.
그들은 왕의 숙부인 진안갈문왕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미혼
의 아들이 있는 중신들은 만사 제쳐두고 부자가 대회에 참석하였다.
승만공주는 몸피가 퉁퉁하고 얼굴은 박색(薄色)이었다. 키는 칠척
장신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양팔은 원숭이처럼 길었다. 얼굴도 약
간 얽어 있어 공주의 신분이 아니었더라면 사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대회에 참가한 미장부(美丈夫)들은 대충은 승만공주에 대하여 알
고 있었지만, 출세를 위하여 공주의 외모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이때 일지는 이미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묘화(妙花)였다.
묘화는 어머니 선나부인의 여동생 딸로 일지와 이종사촌 간이었다.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였지만 군인 신분인 김한신 장군은 늘
전장에 나가 있어야 했다.
그때 김한신의 처제인 선우부인(先雨夫人)은 지아비를 전장에서
잃고 과부로 외동딸 묘화를 키우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일지에게
는 여동생 수로(水路)가 있었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일지와 수로
는 이모 선우부인 손에 거두어 유년을 보내게 된다. 이모는 어린
조카들을 친 자식처럼 대하였다.
연무가 끝나고 대회가 무르익자 각 가문을 대표하여 젊은이들이
장기자랑을 하는 무대가 열렸다. 장기는 검술, 궁술, 마술, 격구,
수박, 노래, 춤 등 다양하였다. 서라벌에서 내로라 하는 가문의 자
제들이 장기를 선보인다는 말에 고관들의 부인과 딸들도 대거 몰
려들었다.
뿐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몰려든 서라벌 백성들도 진안갈문왕
댁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무대는 승만공주 한사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혼기가 찬 딸을 가진 고관 집안에서도 큰 관심
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은 이미 일차에서 일 등한 일지랑 순서입니다. 이번에 선보
일 장기는 일인 검무인 파천무(破天舞)와 마상 궁술입니다.”
파천무는 칼 한 자루를 쥐고 하늘과 땅의 기운을 칼 끝에 응집했다
가 자유자재로 천지를 제압하고 마지막에는 그 기운을 허공에 뿌리
는 고난도의 춤이었다. 마상 궁술은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 10발을
쏘아 과녁을 맞히는 마술이며, 10발은 날아가는 질그릇을 맞춰
깨트리는 묘기였다.
진안갈문왕 저택에서 개최되고 수십 명이 참가하는 장기 대회인
만큼 조정의 예부(禮部)관리들이 나와 제반 사항들을 거들었다.
1차에서 이미 예선전을 치루고 결선에 출전한 자들이 여왕과 고관
들 앞에서 장기를 선보이게 되어 있었다.
일지는 황금가면을 쓰고 일인 검무를 추었다. 칼날이 일지의 몸이
되었고 일지가 칼이 되기도 하였다. 칼날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
다. 칼 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사람들은 일지의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오오, 과연 김한신 장군의 아들이오.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님
의 신기가 일지랑에게 전승되었구려.”
덕만여왕은 일지의 검무를 보고 박수를 치며, 칭찬하였다.
“신라에 저런 화랑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신라의 자랑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일지의 검무를 지켜보던 김유신과 김춘추가 박수를 치며, 칭찬
을 아끼지 않았다.
일지가 천지의 기운을 칼끝에 모았다가 내리칠 때는 허공에서 섬
광이 일며, 우레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일지가 칼을
쥐고 허공으로 뛰어 오르면 아래에서 어른 주먹만 한 돌을 던지는
데 일지가 번개처럼 칼을 휘두르고 착지하자 돌덩이는 가루가 되어
땅에 뿌려졌다.
“어머니, 저 화랑이 뉘 집 자제인데 금빛 가면을 썼어요?”
“김한신 장군의 자제란다. 키도 훤칠하고 무예는 신기에 가깝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저 화랑이 가면을 안 쓰면 구경하는 여인들이 기절
할 수도 있단다.”
“네에? 그렇게 못생겼어요?”
“이것아, 너는 소문도 못 들었니? 서라벌 여인들이 저 화랑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 줄로 착각할까봐 그런 것이야.”
검무를 끝낸 일지는 곧바로 말에 올라 박차를 가했다.
말이 전 속력으로 마당 두세 바퀴를 돌자 일지는 말 잔등위로 일어
서서 과녁을 향해 화살을 당겼다. 화살 10발 모두 과녁 가운데를 적
중시켰다.
‘일지랑. 자랑스러워요. 이모님 보셨으면 좋아 하셨을 거예요.’
군중들 틈에 묘화가 있었다. 그녀는 일지의 신기에 가까운 무예 솜
씨를 보고 너무 감격하여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넋을 빼고 바
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질그릇 접시 열개가 차례로 허공으로 던져지자 화살이
모두 질그릇 접시를 맞춰 깨트렸다. 여왕과 중신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하며, 일지를 향해 박수를 쳐댔다. 결선에 일지랑을 포함하여
열 명이 출전하였으나, 나머지 아홉 명은 일지의 실력에 한참 못
미쳤다.
“일지랑, 정말로 수고하였어요. 그대의 무예가 신라에서 최고입
니다. 부디 나라를 위하여 그대의 뛰어난 역량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소신, 일신을 나라를 위하여 바치겠습니다.”
덕만여왕은 손수 술을 따라 일지에게 건넸다. 일지는 너무 황송하
여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술잔을 받았다.
“일지랑, 축하한다. 참으로 자랑스럽구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기
바란다. 이 아이는 나의 딸 승만이라 한다. 서로 인사를 나누거라.”
진안갈문왕은 마음속으로 일지를 사윗감으로 낙점해 놓고 있었다.
“김승만이라 합니다. 일지랑, 처음 뵙습니다.”
승만공주는 일지 보다 덩치도 크고 팔과 손도 일지랑 보다 더 길었
다. 일지는 깜짝 놀랐다. 승만공주가 미색이 아니라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박색인 줄은 몰랐다.
“김한신 장군의 아들 김일지입니다. 승만 공주님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일지랑의 무예가 참으로 대단하더이다. 나는 무예가
출중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요.”
승만공주는 일지를 보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녀
는 좌우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일지는 승만공주가 묻는 몇 가지 물음에 답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그녀는 대회에서 이등, 삼등 한 낭도들도 불러 일일이 악수하며, 그
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사를 끝낸 다른 낭도들도 서둘러 자리
를 떠났다.
덕만여왕은 일지에게 상으로 비단 200필을 하사하고 진안갈문왕
은 백마 한 마리를 내렸다. 일지는 집으로 돌아와 계모에게 덕만
여왕과 진안갈문왕에게 받은 상을 건넸다.
일지의 계모는 천성부인(天成夫人)이었다. 그녀는 김한신 장군의 ,
먼 친척이었다. 김한신은 선나부인이 죽자 얼마 후에 천성과 재혼
하였다.
김한신 장군은 천성부인 사이에서 아들 남매를 두었다. 지아비가
늘 전선(戰線)에 나가 있는 관계로 천성부인은 외부에 관심이 많았
고, 유흥에 심취하여 부부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일지는 바로 묘화를 찾아 갔다. 이모 선우부인은 아들 같은 일지가
오랜만에 방문하자 크게 반가워하였다. 부인의 지아비도 화랑도 출
신이었다. 전장에서 전사하기 전에는 부부 사이의 금슬이 무척 좋았
다. 일지 남매는 오랫동안 선우부인 손에 자란 탓으로 그녀가 이모
라기보다는 친어머니 같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불심이 돈독한 선우부인은 일지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일지랑, 어서 오세요.”
묘화는 어머니 앞이라 일지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전선
에 나간 지 3년 만에 돌아온 정인(情人)이었다. 일지는 방에 들자마
자 선우부인에게 큰절을 하였다.
“이모님,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 너무 송구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자네가 전선에 나가 나라를 지키는 일에 매진하고 있어서 그런 걸
어찌하겠는가? 아버님은 무탈하시고 수로도 잘 있지?”
“네. 모두 이모님의 덕분입니다. 오갈 데 없는 저희 남매를 보살펴
주신 이모님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무슨 소린가. 내가 곁에 있었으니 그나마 자네 남매를 건사할 수
있었어. 자네가 오늘 진안 갈문왕 댁에서 있었던 무예 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받고 덕만 여왕과 진안갈문왕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들었네.
참으로 자네가 자랑스러워. 언니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꼬.
이 모두가 부처님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일세.”
선우부인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찍어냈다. 묘화가 저녁상을 들였
다.
“나는 이미 들었네. 자네들 둘이 오붓하게 식사를 하시게.”
지아비를 전쟁터에서 잃고 불심에 의존하며 사는 이모였다. 선우부
인은 두 사람을 위하여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었다.
유년시절을 한 집에서 함께 자란 일지와 묘화는 남매 같았다. 일지
가 화랑도가 되어 집을 떠나면서부터 묘화는 친오빠처럼 생각하고
있던 일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늘 같은 집에서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느끼지 못했었다. 일지가 집을 떠난 뒤로 묘화는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기분이었고, 일지를 그리워하였다. 그 같은 기분은
일지도 마찬가지였다.
일지가 낭도생활을 마치고 전선에 있는 아버지 김한신 장군 휘하
로 들어가 일할 때 묘화는 처음으로 일지를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묘화가 물어물어 서라벌에서 천릿길 수주성까지 찾아가는데 한 달
이 걸렸다.
수주성은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전선이었다.
어느 봄날, 서라벌에서 어떤 낭자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지
는 성문으로 달려갔다.
“묘화, 서라벌에서 여길 오다니.”
“나무관세음보살. 오라버니, 여여하신지요?”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미리 기별도 없이 불
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묘화가 합장을 한 채 일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일지
는 옆에 사람이 없었다면 선묘를 꼭 끌어안았을 터 였다.
“아니야. 여인이 여기까지 온다는 게 너무 힘든 일이라서 그런 거야.
이모님은 평안하시고 수로도 잘 있지?”
묘화는 여름에 입을 일지의 옷가지와 수로의 편지를 내밀었다. 서라
벌에 홀로 남겨진 여동생을 무척이나 아끼던 일지는 여동생의 편지
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수로도 이제는 다 컸는걸요. 내가 오라버니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같이 오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떼어놨어요.”
“묘화, 고맙소.”
일지는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묘화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
러웠다.
최전방 수주성이라 해서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끔씩 서라벌
에서 고관들이 부인이나 딸 또는 부하들을 대동하고 전방 시찰을 올
때도 있었다. 성 안에는 많은 민가가 꽤 있었고 아름다운 처녀들도 있
었다. 묘화는 일지가 군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임시 군막에 며칠씩 묵
을 수 있었다. 일지와 묘화는 장래를 약속하였다.
“일지랑, 뭘 생각하셔요?”
“우리가 처음으로 장래를 약속하던 그날을 생각했어.”
“벌써 삼년이나 지난 일이 되었네요.”
묘화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정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눈을 감으면 금방 또 보고 싶은 낭군이었
다. 서라벌에 일지랑 만한 헌헌장부가 없었다. 묘화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참으려 하였지만 묻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았다,
“일지랑, 한 가지만 물어도 되죠?”
“그럼, 무엇이든지.”
“오늘 일지랑이 일등을 하고 덕만여왕하고 진안갈문왕에게서 상까
지 받으셨어요. 서라벌 사람들은 오늘 갈문왕이 개최한 대회의 의미
를 모두 알고 있답니다.”
묘화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일지는 얼른 그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빨리 답변을 주지 않으면 오해를 살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일지는 입을 열었다.
“묘화. 나에게는 오로지 그대뿐입니다. 사나이가 한번 마음을 주었
으면 그만입니다. 그 마음을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는 겁니다. 걱정
하지 말아요. 나는 덕만여왕이나 승만공주 그리고 또 그 어떤 공주에
게도 마음이 없어요. 나에게는 묘화, 그대만 있으면 됩니다.”
“관세음보살. 고마워요. 저의 몸과 마음은 이미 그대에게 가 있어
요. 몸은 비록 서라벌에 있다고 하지만 저의 마음은 언제나 일지랑
이 있는 곳에 함께 있답니다.”
일지는 식사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묘화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우
부인은 주안상을 두 번이나 방안으로 들이며, 딸과 일지가 다정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원하였다.
그녀는 벌써부터 일지가 조카가 아닌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함께하는 정답고 훈훈한 밤이었다. 선우부인은
일지가 온다는 전갈을 받고 이미 비단 금침을 준비해 두었다. 묘화
는 일지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이부자리를 깔고 일지가 편히 쉬
도록 하였다.
“묘화, 우리는 이종 사촌간 이면서도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피안에 드신 어머님께서도 우리의 합방
(合房)을 노여워하지 않으실 겁니다.”
“서방님, 그런 말씀 하지 마시어요. 저는 이제 서방님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답니다. 저와 서방님이 짝으로 맺어진 인연은
부처님 덕분입니다. 어쩌면 이모님이나 어머님이 바라던 것일 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너무 힘을 많이 쓰셨어요. 이제 주무셔요.”
“묘화, 은애하오. 먼 훗날 내 수명이 다해 행여 다시 사람으로 태어
난다면 그대를 또 지어미로 맞이할 것이오.”
일지는 묘화를 깊이 안으며 속삭였다.
“서방님, 고마워요. 저 역시 그리할 것입니다.”
촛불이 꺼지고 묘화와 일지는 오랜만에 도타운 정을 나누었다. 방안
에 불이 꺼지고 나자 밖에서 애간장을 태우며, 서성이던 선우부인은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을 올렸다. 뒷산에서 귀촉도가 피를 토하고
달님은 구름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서라벌의 밤은 깊어만
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월광보살. 부처님께 비나이다. 일지와 묘화가
해로동혈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두 사람은 천생연분입니다.
맺어지지 못하면 두 사람은 평생 번뇌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비(阿
鼻)와 규환(叫喚)같은 지경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두 사
람 연분이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보살피소서.”
초저녁부터 홀로 울던 귀촉도가 어느새 암수 짝을 맺어 노래를
하고 있었다. 늦봄의 하늘에는 구름도 모두 사라지고 달님은 밤새
은빛 월광을 서라벌에 흩뿌리면서 조용히 서천을 향해 흐르고 있었
다.
“승만아. 오늘 배우자감을 봐두었느냐?”
“아버님, 당연히 일지랑이지요. 다른 사내들은 눈에 안 들어와요.
저는 무조건 일지랑입니다.”
“아비도 역시 일지랑 이외에는 마음에 드는 사내가 없더구나. 부인은
어떻게 보시었소?”
“소첩 생각에도 일지랑이 으뜸이긴 한데……. 오늘 대회 끝나고 일지
랑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월명부인(月明夫人)은 일지를 칭찬하면서도 밝지 않은 모습이 었다.
“부인, 이상한 이야기라니요?”
진안갈문왕은 월명부인의 안색을 살폈다.
“일지랑에게 이미 장래를 약속한 묘화라는 처녀가 있다고 합니다. 분황
사 근처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천하일색이고 영민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이미 장래를 약속한 사이를 어떻게 갈라 놓을 수 있답니
까?”
“그래요? 그렇다면 일지랑을 우리 가문으로 데려올 방법을 모색해봐야겠
습니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승만이 배우자는 일지
으로 정합시다. 내일 폐하를 만나서 말씀드리고 김한신 장군을 불러 우리
가문의 뜻을 전해야겠습니다.”
진안갈문왕은 딸 승만공주를 멀거니 바라보면서 불편한 속을 억누르며 시
치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도
헌헌장부로 한 인물하고 월명부인도 미색(美色)인데 어쩌다 박색인 딸이
나왔는지, 딸 승만을 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자신이 일지랑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딸을 평생의 배우자로 맞이하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듯
싶었다.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보구나. 저 아이가 한 인물하면 얼마나 좋을꼬,
아무리 내가 낳은 딸이지만 서라벌에서 제일가는 사윗감을 고르려고 하니
참말로 남들 보기 민망하구나.’
진안갈문왕은 딸 승만공주를 바라보다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아버님, 소녀는 일지랑 아니면 평생 혼자 살 겁니다. 아버님께서 덕만언니
에게 말씀드려 일지랑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힘써주셔요. 그깟 평민의
여식은 있으나마나 하잖아요. 죄를 뒤집어 씌워서 멀리 귀양 보내거나, 아니
면 감옥에 집어넣어 바보천지로 만들면 되잖아요. 그 계집애만 서라벌에 없
으면 일지랑이 뭘 어쩌겠어요.”
승만공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서운 말을 뱉어냈다.
“알았다. 사탕 좀 그만 먹어라. 몸피가 자꾸만 불어나면 안 된다.”
승만공주는 연신 사탕을 입속으로 집어넣으면서 갈문왕에게 곤란한 주
문을 하였다. 가득이나 큰 덩치에 매일 주전부리에 열을 올리는 승만은
갈수록 자용염미와 거리가 먼 사내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쩌다 저애가 딸로 태어났더란 말이냐. 차라리 사내로 태어났으면 십만
대군을 거느리는 대장군이 되었을 터인데…….’
누르퉁퉁한 딸을 보며 월명부인도 한숨만 토해냈다.
사실 진안갈문왕의 위치에서 평범한 백성 한두 명에게 없는 죄를 씌워 마
음대로 처리하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는 딸이 혼기가 찼지만 내
로라하는 집안에서 청혼이 없자 불안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무술대회를 열어 서라벌에
서 내로라하는 가문의 자제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장기를 보는 자리를 만들
었다. 서라벌에는 출세에 눈이 먼 자들이 많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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