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황후
제3부
- 여강 최재효
박제상 일행이 대화국에 도착한 지 한 달쯤 지난 뒤의 일이었다.
대화국은 신라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가야 등지에 은밀하게
세작(細作)들을 보내 그 나라의 정황을 염탐하고 있었다. 고구려
는 국경 수비가 엄격하여 세작들의 활동이 수월하지 못했으나 신
라는 고구려 보다 국경 수비나 서라벌의 주요 관아의 수비가 느
슨한 편이었다.
신라 조정은 대화국 세작들이 분명히 서라벌에 들어와 있을 것을
예상하고 박제상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고 있었다. 또한 박
제상의 부인과 아들딸들의 이해를 구하고 당분간 깊은 산속이나
먼 지방에 나가 있도록 하였다.
백제의 일부 교활한 세력들은 공작을 펴서 신라와 대화국 또는 고
구려와 대화국이 싸움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가병(家
兵)을 고구려군이나 신라군으로 위장하여 대화국 해안이나 산악지방
에 침투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대화국 야마토 정권의 어리숙한 군장(軍將)들은 정말로 고구
려나 신라가 대화국을 침범한 것으로 믿고 신라와 고구려에게 보복
하기 위하여 가까운 신라 해안에 대화국 군사를 파견하여 민가를 습
격하기도 하였다.
이틈을 노려 백제의 군장들은 대화국과 연합전선을 펼치며, 신라
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백제는 이때 온조(溫祚)를 조상으로 하는
온조계와 위구태(尉仇台)를 조상으로 하는 고이왕계 간의 권력 투
쟁이 극심한 상태였다. 양측의 지도자들은 정권 탈취를 위하여 야
마토 정권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부러
신라를 침범하였다.
“황후께 아룁니다.”
외국의 정세를 담당하는 대신(大臣)이 신공황후에게 신라의 정
세를 알렸다.
서라벌에 침투하였던 세작들이 돌아와 보고한 바에 의하면, 박
제상이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고구려에서 귀국시키자 왕이 그를
크게 칭찬하였다 합니다. 박제상은 신라왕과 동서지간으로 교분
이 두터웠으나, 작은 동서인 눌지가 왕이 되자 박제상은 눌지왕
에게 정치적으로 거북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왕의 동생을 고구려에서 데리고 온 것을 크게 자랑하였고,
왕의 칭찬에 기고만장하여 왕실 여인을 겁박하고 왕실 재물에 손
을 댔다가 대역 죄인으로 몰리자 신라를 도망쳤으며, 눌지왕이
신라 전역에 박제상을 잡기위해 수배령을 내렸다 합니다. 대신
의 구체적인 보고에 신공황후는 박제상을 직접 불러 묻기로 하
였다.
“우리 대화국 풍속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셨습니까?”
음종해 보이는 신공황후는 중년의 나이로 보이기는 했지만 무척
조쌀하고 얼굴에 요염함이 흐르며, 색기(色氣)는 활화산 같았다.
박제상은 초면의 황후를 깍듯하게 맞으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소신 박제상, 황후 사마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
다.”
“경도 잘 알다시피 우리에게 신라왕의 막내 동생 미사흔이 있습
니다. 신라왕이 그대를 통해 복호라는 동생을 고구려에서 귀환시
켰다는데 어째서 미사흔은 귀국시키려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
는 눌지라는 자를 잘 모릅니다. 그자가 어떤 자인지 궁금합니다.”
황후의 눈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눈씨를 한번 맞으면
웬만한 사내는 정신이 나가 그녀의 요술에 조정 당하게 될 것 같았
다. 그러나 박제상 기상은 그녀보다 위에 있었다.
“신이 아는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제상이 신공황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시선이 마주칠 때마
다 파란 불꽃이 튀었다. 그녀는 야마토의 실질적인 권력자였지만,
백제의 신하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백제 근구수왕의 애첩이었다.
박제상은 신공 황후의 관심을 얻기 위하여 조상들 이야기를 꺼냈
다.
지금의 왜 열도에 존재하는 대화국은 예전에 마조선의 한 영역
으로 따지고 보면 반도의 백성들과 원류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
니다. 지금도 백제와 대화국은 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백제의 왕족들이 대화국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
다. 이제는 열도인(列島人)들은 반도인(半島人)들에 대하여 적대
감을 불식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설정할 때라 봅니다. 그러나 반
도의 나라 중에는 난폭한 자가 왕이 되어 백성들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제상은 신공 황후의 반응을 봐가며, 말을 조리 있게 하려고 무
진 애를 썼다. 신라 눌지왕에 대하여 독설(毒舌)을 늘어 놓았다.
눌지왕은 음황하고 사훼(蛇虺)같은 자로 신의가 없고 오활하며,
중취독성(衆醉獨醒)이라 떠벌려 신라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 요얼(妖孼)들만 불러들여 정치를 망쳐 놓았
습니다.
신이 그자의 강압에 못 이겨 고구려 거련왕에게 통사정하여 겨
우 그의 동생 복호를 신라로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고 신에게는 겨운 술 한 잔만 주는지라 너무 화가
나서 왕실의 계집을 탐냈습니다.
또한 큰 공을 세우고도 박대를 받는 것 같아 재물을 좀 유용하
였습니다. 그자는 두 동생 중에 복호만 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
다. 미사흔은 귀국에 온 지 이미 이십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눌지왕은 미사흔이 대화국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신이 생각하옵건대, 미사흔은 눌지왕에게 버려지고 신라에 필
요 없는 존재로 전락되었습니다. 지금 신라에는 미사흔을 기억
하는 자가 없습니다. 또한 눌지왕은 워낙 술과 계집을 밝히는
자라 신라 왕궁에는 밤낮으로 풍악소리와 계집들 웃음소리가
궁성 담장을 넘고 있습니다. 박제상의 달변에 그만 신공황후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를 맞아 들였다.
“그대는 이제부터 야마토의 신하입니다. 나를 위해 애써 주
세요.”
신공황후는 박제상의 세치 혀에 감복되었다.
“황후 사마, 소신의 피가 마르고 뼈가 다 닳을 때까지 오직 황
후 사마님의 견마(犬馬)로 살겠나이다.”
박제상은 황후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신라와 고구려 등 대화
국이 가장 적대시 하는 나라들의 대외 정책을 담당하는 관서
에서 일을 보게 되었다.
그는 신라와 고구려 궁성의 가짜 지도를 만들어 황후에게 바치
자 그녀의 박제상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갖게 되었다. 그
때 마침 백제의 일부 음흉한 세력들이 자신들의 사병을 고구려와
신라 병사로 위장시켜 대화국의 변경 지역을 침입한 사건이 벌어
졌다.
그 일로 수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이 죽거나 다치는 등 피해가
상당하였다. 야마토 조정 대신들은 발칵 뒤집혀 당장 신라로 쳐
들어가 복수하자고 결의하는 등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
위기였다.
박제상이 대화국에 온지 한 달 만에 어렵게 미사흔 왕자를 만
났다. 어린 나이에 대화국에 인질로 온 그는 장성한 청년의 모습
이었다. 외모는 늘지왕 보다 복호 왕자와 비슷하였다. 오랜 세
월에 그의 외관은 왜인이 되어 있었다.
이십년 가까이 왜의 음식을 먹고 왜의 말을 쓰다 보니 자연 왜
인이 된 듯 보였다. 그는 야마토 정부가 제공한 작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활동은 무척 자유로웠다. 낮에는 산책하거나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낚시를 하고 밤에는 외로움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늘 조국 신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십년 가까이 외부와
철저히 통제된 생활에서 외부 세계의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하
여 신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왕자님, 신라인 박제상 문후 올립니다.”
박제상은 미사흔에게 큰 이모부 였다.
“얼마 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빨리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미사흔 왕자는 신라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지만 약간 발음이
약간은 어눌했다.
“신라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지금 신라왕은 누구며, 나의 형
제들은 모두 살아 있나요?”
박제상은 미사흔 왕자가 대화국으로 떠난 이후의 신라 조정의
변화와 실성왕이 죽고 눌지왕이 등극한 사실 등 신라의 소식을
모두 전해 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거짓으로 신라를 배반하고 미사흔 왕자를 탈출시
키기 위하여 왔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 상황을 좀 더 두고 보
면서 차차 자신의 목적을 전하고자 하였다. 미사흔 왕자는 박제상
에게 그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그가 알고 있는 대화국에 대한
사정을 말해주었다.
“큰형님이 보위에 오르셨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지하에 계신 아
버님께서 이제는 편히 눈을 감고 영면에 드실 겁니다.”
미사흔은 큰형 눌지가 보위에 올랐다는 말에 감격하였다. 이국(異
國)에서의 지난 17년 세월은 고독경(孤獨境) 속의 암울한 생활이었
다. 처음 대화국에 왔을 때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과 풍속이 달라 무
척 고생을 하였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박제상은 미사흔을 만난 첫날 미사흔이 과연 조국을 어찌 생각하
고 있는지, 만약 고향에 돌아가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
고 왜의 땅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많은 대
화를 나누었다. 야마토 조정은 미사흔을 미질기지파진간기(微叱己
知波珍干岐)라고 불렀고, 박제상을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라고
불렀다.
“이모부님, 낚시하러 가시지요?”
“좋습니다.”
미사흔은 낚시를 무척 좋아하였다. 그가 홀로 살면서 익힌 유일한
취미이기도 했다.
바다낚시는 특별히 미끼 없이도 고기들이 잘 잡혔다. 두 사람이
낚시 갈 때는 반드시 오례사벌과 부라모지를 동행하였다. 야마토 조
정에서는 두 사람의 안내자로 카츠라기노소츠히코(葛城襲津彦)를
붙였다.
그는 사무라이로 무술에 있어서는 경지에 오른 자였으며, 야마토
조정 병부(兵部)에서도 중요 보직을 맡고 있었다. 박제상은 가츠라
키를 통해 야마토 조정의 정치 상황 및 군사조직 등 중요 정보들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와 미사흔 왕자님 선물입니다.”
“도우모 아리가토.”
미사흔과 박제상은 낚시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를 반반 나누어 가
츠라키에게 주었고 그는 물고기 선물을 받고 척 고마워하였다.
낚시에 흥미를 잃으면 미사흔은 박제상과 가까운 산으로 사냥을
나가기도 하였다. 사냥 나가서 잡아온 짐승들을 반은 늘 가츠라키
에게 선물하였다. 한 달, 두 달 무상한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박제상과 미사흔 단 둘이 바다낚시를 가게 되었다. 바람
이 불어 낚시가 힘들었다.
“왕자님, 지금부터 소신의 이야기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말씀하세요.”
미사흔은 이미 박제상이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대충
은 그가 대화국에 온 이유를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박제상의 미사흔의 속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다. 야마토 정권과 신라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입니다. 신공
황후는 무서운 여인입니다. 그녀는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지만 속
은 천 길 낭떠러지로 그 음흉한 속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녀 앞
에서는 절대 말조심하셔야 합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백제와 가야
를 충동질하여 신라를 침범할 것입니다.
그녀가 원하지 않아도 백제의 간악한 무리들이 일을 만들어 신라를
침략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태가 장기화 하거나 빈번해지면 왕자님께서 신라에 돌아가기 어
렵습니다.
신은 왕자님을 반드시 신라로 귀향시키기 위하여 왔습니다. 신라
를 배반하고 도망쳐 왔다고 저들을 속이기는 하였지만 언제까지
저들이 믿어 줄지 의문입니다. 곧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지
금처럼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생활하시면 됩니다. 미사흔은 박제상
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떨렸다.
“어제도 신라와 고구려 수군들이 대화국 변경을 침범하여 수백
명의 어민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 갔다고 합니다. 아마 조만
간 큰 일이 벌어질 듯 합니다.”
오례사벌이 박제상에게 아스카 저자 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박제상은 이제 어느 정도 속내를 터놓고 대화하는 사이
가 된 카츠라기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제상이 야마토 정권에서 신라나 고구려 관련 대외적인 업무를
보조한다지만 제한이 많았다. 비밀이 요구되는 사안은 야마토 조
정의 관리들도 박제상과 미사흔에게 철저히 함구하였다. 박제상
일행이 대화국에 들어 온지 반년이 된 어느 날이었다.
“나리께 신라에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카츠라기가 박제상을 찾아왔다. 야마토 조정에서는 카츠라기
에게 박제상과 미사흔에 관한 모든 관리 관독 권한을 위임한 상
태였기 때문에 신라에서 박제상을 찾아온 사람들에 대하여는
별도의 조사를 받지 않았다.
‘눌지 대왕께서 약속 날짜에 맞춰 사람을 보내셨군.’
“간, 저희는 서라벌에서 왔습니다. 우선 이 서찰을 받으십시오.”
젊은 사내 두 명이 해질녘에 박제상을 찾아왔다. 그들이 건넨
서찰은 눌지왕의 지시에 의하여 비밀리에 작성된 것으로 마치 눌
지왕의 국정에 반대하는 자가 쓴 것처럼 되어 있었다. 서찰의
내용은 박제상이 대화국을 출발하기 전에 눌지왕에게 부탁한 내
용과 동일했다.
신라왕 눌지가 박제상의 처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보름 후에 처
형할 예정이며, 모후인 보반왕후(寶飯王后)를 핍박하여 냉궁으
로 쫓아냈는데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대화국에
인질로 가 있는 미사흔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라는 내용이었다.
서찰의 작성자는 박제상의 둘째딸 아영(阿榮)으로 되어 있었다.
박제상은 서찰을 받자마자 바로 신공황후를 찾아 갔다.
“신라 눌지왕이 그리도 악독하군요.”
신공황후는 서찰을 살펴보았다.
“황후 사마, 급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신라로 가서 처자식들을
데리고 다시 대화국으로 돌아와 살 수 있도록 선처하여주소서.”
“미사흔의 모친도 위태하다는데 그녀는 어찌하려오?”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사옵니다.”
박제상은 이미 생각해 둔 바를 신공황후에게 설명하였다.
설득력이 약할 경우 만사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이었다.
신이 신라국의 압량주 군수를 수행한 적이 있어 아는데 신라의
감옥은 허술하옵니다. 그러나 서라벌에 남아 있는 신의 가솔들
은 처자식이 모두 다섯이옵니다.
감옥에 있는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무예에 능한 군사 열
명 정도가 필요하옵니다. 그러나 보반 왕후까지 함께 모시기 위
해서는 군사 이십 여명 정도 있어야 무난할 것 같사오니, 황후께
서 군사를 내어 주신다면 반드시 일을 성사시키겠나이다.
박제상의 제안에 신공황후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녀는 박
제상의 지난 반년동안의 행적을 보았을 때, 그가 신라로 도망칠
염려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녀의 판단에는 신라왕에게 미움을
사서 대화국으로 망명한 박제상이 신라로 돌아갔다 잡힐 경우에
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서라벌에서 박제상의 가솔들까지 모두 대화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눌지왕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 되는 것은 물론
장차 대화국이 박제상을 앞세워 신라를 공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보반 왕후도 데려 올 수 있겠습니까?”
“황후 사마, 그녀를 대화국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미사흔 왕자
를 동원해야 가능합니다. 그녀는 의심이 많아 누구의 말도 듣지 않
지만 자신이 낳은 아들의 말은 절대 신임할 것이오니, 미사흔 왕자
를 동원시키도록 하소서.”
박제상은 신공 황후의 예상되는 의문까지 생각해 두었다.
황후의 입장에서는 대화국 군사 이삼십 명 동원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393년 내물왕 치세 기간 중에서 대화국 병사 수
천 명이 신라의 도성까지 침범하여 5일간 도성을 포위한 적도
있었다.
신라왕의 어머니인 보반 왕후를 대화국으로 데리고 올 수만 있
다면 지금의 신라왕은 국정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할 뿐만 아니
라, 체면이 땅에 떨어져 권좌에서 축출될 것이었다.
‘미사흔을 미끼로 던진다?’
“좋습니다.”
신공 황후는 즉석에서 박제상의 제의에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
녀의 두뇌 회전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경에게 카츠라기노소츠히코 장군과 일당백의 정예 수군(水軍)
일백을 내줄 터이니, 미사흔과 함께 신라로 건너가서 반드시 경
의 식솔들과 보반 부인을 구출하여 오시오.
이참에 말해두지만 우리 대화국은 신라나 고구려에 원한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자주 바다를 건너가는 것은
고향이 그리워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은 비록 열도에 살고
있지만 우리 대화국 사람들의 고향은 반도입니다.
야마토 조정에서는 절대로 왜구(倭寇)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 도적들은 우리 야마토 조정과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그들
은 대륙이나 열도 또는 반도 주변 바닷가에서 자생한 도둑
떼들입니다.
그런데 고구려나 신라 사람들은 그 도둑들을 우리가 보낸 것
으로 오해를 하고 있답니다. 황후의 말 중에는 야마토 조정이
왜구로 인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황후 사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이 반드시 목적을 달성
하여 대화국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나이다.”
신공황후를 속이는데 성공한 박제상은 미사흔에게 자신의 계
획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박제상은 카츠라기와 신라를 가는
방법과 서라벌로 들어가 파옥(破獄)하여 보반 왕후와 가족들을
탈출 시키는 세세한 방안을 논의 하였다. 하가다(和家多) 포구
에서 신라를 가기 위해서는 중간 기착지인 목도(木島)를 경유
해야 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