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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궁에 내린 비(최종회)

* 창작공간/중편 - 요석궁에 내린 비

by 여강 최재효 2017. 8. 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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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석궁에 내린 비(최종회)




                                                                                                                                            - 여강 최재효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짝이 있게 마련이다. 인연이란 짝을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 짐승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만날 때 ‘인연’이

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연이란 말은 좋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인연은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다. 좋은 만남도 인연이며, 나쁨 만남도 인연

이다. 인은 원인을 말하며, 연은 원인에 따라 가는 것이다.


 인(因)만 있어서는 결과가 있을 수 없으며, 연(緣)만 있어서도 그 결실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 인연으로 사라

지지 않는 것은 없다. 즉 인과 연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악이 연을 만나

면 악과(惡果)를 얻을 것이며, 선이 연을 만나면 선과(善果)를 이루게 된

다.


 부부의 연도 이와 같다.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것이고, 그 만남이 좋은

결실이 되든지 때론 악연이 되든지 하는 것은 그 후의 인연과에 의해서 밝

혀진다. 불타(佛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하

나도 헛된 것이 없다고 했다. 힘 센 자가 자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을 아무리

탐한다 해도 그 인연은 결코 맺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남녀 간의 행동에서 하나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감관의

문이다. 인간에게는 오욕(五慾)의 문이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이

바로 감관의 문 앞에 놓인 음욕(淫慾)이다. 불타는 남녀의 애욕을 끊으라고

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는 헌신적 사랑을 할 수 없다면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공주님, 저기 저 아래 요지가 보이죠?”
 “네에. 잘 보여요. 이미 소문을 들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저리 아름다운

곳인지 미처 몰랐답니다. 아-, 모두가 옥(玉)으로 되어 있군요.”
 요석공주는 신천지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무척 들떠 있었다.


 “저기 저 산은 곤륜산 서쪽에 있다는 군옥산(群玉山)이며, 서왕모의 궁전

이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요지(瑤池)는 군옥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름

그대로 그 연못물이 깊고 넓고 맑아 마치 투명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옥과

같습니다. 요지 주변에 선도복숭아 꽃 등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인간

의 언어로 그 절경을 감히 표현할 수 없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요지에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나요?”
 “공주님, 오늘이 아마 요지의 주인이 잔치를 여나 봅니다.”
 “요지에서는 서왕모의 생일에 반도승회(蟠桃勝會)를 개최하거나 무슨 경

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연회를 개최한답니다. 잔치에는 수많은 큰 신선들과

각지의 선관(仙官)과 신관(神官)들이 초대된답니다.”


 “저기 아래를 자세히 보세요.”
 “아아-, 여기가 진정한 선계인가 봐요.”


 산꼭대기에 네모난 광장이 있고 주위에는 경옥(硬玉)으로 된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사방의 구석마다 아홉 개의 우물과 아홉 개의 문이 나 있었다. 이 아

홉 개의 문을 지나 들어가면 바로 서왕모가 살고 있는 궁전이 보이는데, 다섯

개의 성곽에 둘러 싸여 있으며, 열두 개의 높은 누각으로 꾸며져 있다. 누각의

오른 쪽에는 새의 깃털도 가라앉는다는 약수(弱水)가 있고, 그 왼쪽에는 요지

가 자리하고 있다.


 누각의 동서남북에는 주수(珠樹), 옥수(玉樹), 선수(璇樹)가 자라고 봉황새와

난조(鸞鳥)가 노닐고 있었다. 또 사당수(沙棠樹)와 낭간수((琅竿樹)가 있는데,

낭간수 가지에는 진주와 같은 예쁜 구슬을 열매로 맺는 귀중한 나무였다.


 그리고 문옥수(文玉樹) 가지에도 오색이 영롱한 아름다운 구슬이 영글어 탐스

럽게 매달려 있었다. 또한 열매를 먹으면 장생불사한다는 불사수(不死樹)가

천길 높이로 늘어서 있었다. 그 곳에 흐르는 예천(醴泉)은 맑고 차가우며, 맛

이 감미롭고 물가에 진기하고 묘한 화초들이 우거져 아름다웠다.  


 신선들이 모여 있는 곳을 자세히 보니 3천년에 한번 열매를 맺는 반도(蟠桃)

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괴석(怪石) 등이 병풍처럼 빙 둘러 쳐진 곳에 사슴, 백

학, 공작 등에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서왕모가 시녀들과 시종을 거느리고 주연상 앞에 앉아 선동선녀

(仙童仙女)들의 주악과 가무 장면을 보고 있는데 서왕모는 무척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서왕모는 신선주가 담긴 구하치(九霞巵)를 들고 춤을 추기도 하

였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을 뵙습니다. 저는 금모(金母)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까치보다 약간 큰 푸른색의 새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운거로 날아왔다.
 “오오, 왕모의 사자(使者)께서 오셨군요. 우리는 동방의 나라 신라에서 왔습

니다. 여기 이것은 달포 전에 금모께서 보낸 초대장이랍니다.”
 원효는 품에서 붉은색 초대장을 내보이자 파랑새는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며 빙빙 돌았다.


 “요지에서는 설선랑(薛仙郞)께서 귀하신 분을 대동하고 오신다는 소문이

파다하답니다. 어서 저를 따라오세요. 두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지에서 내가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그리고 두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원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

이 탄 운거는 쏜살같이 청조(靑鳥)를 따라 비행하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운거

가 요지 한가운데 내려 앉았다.


 “설선랑, 어서 오세요. 수만리 떨어진 신라 땅에서 이곳 서역(西域)의 곤륜산

요지까지 오시느라 정말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푸른빛이 나는 군청색 비단옷에 금관을 쓴 아름다운 여인이 수십 명의 수행원

을 대동하고 원효에게 다가와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멀리 신라국에서 온 요석공주와 설서당이라 합니다. 구령금모(九靈金母)께

문안인사 올리나이다. 평강하신지요.”
 원효스님과 요석공주는 허리를 반쯤 숙여 서왕모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내 그대의 소식은 풍문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신라 최고의 미인이며

김춘추의 여식 요석공주로군요. 나의 딸 요희만큼이나 참으로 대단한 가인(佳

人)입니다. 나의 초대에 기꺼이 참석하셨으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인간세계에

서 누리지 못한 지극한 환희와 쾌락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나의 딸 요희라고 합니다. 두 분을 잘 보필할 것이니 크게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 먹고 마시는 것과 일상

의 생활에 약간 불편함이 따를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선계(仙界)가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며, 인간 세상에 어두운 구

름을 드리웠던 지옥계(地獄界)의 극악무도한 무리들을 모두 잡아 풍도지옥에

가둬버린 전승(戰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조촐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 모인 모든 남녀 선인들은 백일 밤낮으로 먹고 마시며, 지극한

즐거움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곳은 누구든 마음에 들면 짝을

지어 수정궁에 들어 화촉(華燭)을 밝힐 수 있습니다. 행여 누가 호감을 표시

하면 주저하지 말고 응해주시면 됩니다.


 내 특별히 북해에서 잡은 용과 고래를 안주로 내놓고 수만 가지 진미(珍

味)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지 연못에는 반도(蟠桃)로 담근 술을 가

득 채워 놓았으니 실컷 마시기 바랍니다. 이곳 하늘에는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고 별들이 영롱하게 빛을 발산하여 밤낮이 없습니다. 놀다 피곤하면

아무 궁전에 들어 잠을 청하면 됩니다. 그럼, 백일 동안 근심 걱정을 내려

놓고 푹 쉬시기 바랍니다.” 


  서왕모는 안내하는 도중에 자주 요석공주에게 시선을 주면서 약간은

불편한 모습이었다. 남녀 신선들은 환호하면서 서왕모 만세를 불렀다.
 

 “요희 또는 운화라고 하옵니다. 두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선(小仙), 신라국에서 온 설서당이라 하고 이쪽은 신라국 요석공주

라 합니다. 이렇게 운화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네요. 설랑은 태상노군도 첫눈에 반할 고결한

인품입니다. 그리고 공주 역시 경국지색이고요.”
 “고, 고맙습니다.” 


 요희는 이미 요석공주를 몹시 질투하는 눈빛이었다. 두 사람은 요희의

안내로 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였다. 청기와에 기둥이 모두 황금

으로 된 거대한 궁전에 수백 명의 남녀 신선들이 어울려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연회장에는 수백명의 요정들과 무희들이 요염한 자태로 춤을

추고 신선들은 박수를 쳐대기도하고 술잔을 높이 들고 환호하면서 주

연을 즐기고 있었다.
 

 “방금, 동방의 신라국에서 오신 선남선녀(仙男仙女) 두 분을 소개합

니다. 이쪽은 설서당이라 하며, 싯다르타의 제자로서 불법을 수호하고

조국 신라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선녀(仙女)는 신라국의 공주로 이름은 요석이라 합

니다. 두 분이 나의 초청에 응하여 이곳 서역까지 오셨으니 여러분

들은 일말의 사심이 없이 동등한 자격으로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지의 주인 서왕모의 소개 중에도 여자 신선들이 ‘설랑’, ‘설랑’을

외치며 환호하였다.


 “구령금모와 운화부인 그리고 여러 남선과 여선들 이 처럼 환대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요지에 머무는 동안 여러분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또한 함께 온 신라국 공주는 소선과 인연을 맺은

사이로 영원히 함께 할 여인이랍니다. 저희 두 사람을 많이 지도하여

주세요. 저의 본명은 설서당이고 하계에서 부르는 법명은 원효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소선을 ‘설랑’이라 불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설서당이 소개를 마치자 여기저기서 남자 신선들이 ‘요석’, ‘요석’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이어서 요희가 신선들을 소개하였다.


 “두 분에게 유명한 남녀 진인(眞人)들 몇 분을 대표로 소개해 올리겠

습니다. 먼저 가운데는 저의 언니이며, 옥황상제도 반한 절세가인 태진

(太眞) 부인입니다. 그 왼쪽은 봄꽃 같은 여신선 악록화(萼綠華)입니다.


 다음은 고매한 성품의 동릉성모(東陵聖母) 그 오른쪽은 성공지경(成公

智瓊)입니다. 그 옆으로 선계의 최고 무희 허비경(許飛瓊)과 백수소녀입

니다. 그 옆은 남양공주로 요지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씨와 요염한 몸매

를 지닌 여선이랍니다.


 이번에는 진인들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금모를 언제나 기분 좋게 해주

시는 장사평(張士平)입니다. 무예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왕상(王常)입

니다. 또한 진인 중에서 가장 잘생긴 갈현(葛玄)입니다. 그 옆은 한때

한무제 유철이 무척이나 총애했던 재주 많은 동방삭이고 그 옆은 술을

아주 좋아하는 왕민(王旻)입니다. 그밖에도 재주 많고 뛰어난 신선들이

많이 계시지만 다음에 수시로 소개하기로 하고 이만 소개를 마치겠습

니다.


 어머니께서 술과 안주 그리고 악사들과 무희들을 준비하였으니 이곳

요지에 머무시는 동안 극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특히 신라에서 오신

두 분은 좋은 인연을 맺은 기념으로 이곳에 오셨으니 지상의 일은 모두

잊으시고 마음껏 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으니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유희를 즐기세요. 마음에 드시는 분

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그럼 제가 인연의 끈을 이어주겠습니다.”  


 “운화부인 최고입니다. 잘 놀겠습니다.”
 요희의 소개가 끝나자 남녀 신선들은 무리를 지어 대청 안으로 들어

자리를 잡았다.


 “요희입니다. 설랑은 신라국에서 고명하시다 들었습니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요희의 얼굴은 백옥보다 희고 고왔다. 두 눈은 깊은 맑은 가을 호수와

같아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배시시 웃을 때마다 하얀

치아가 오색 빛을 발산하였고 알 수 없는 향기가 주변을 감쌌다. 요희가

요염한 모습으로 설랑에게 술을 따르자 요석공주의 눈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희가 요지에 온 것은 금모에게 저희 두 사람이 천년가약을 맺었음을

고하고 저희 조국 신라가 삼한일통을 하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청을 하고

자 함입니다. 신라에는 아직 태상노군님의 뜻을 받드는 이가 없으나 장차

좋은 뜻을 골라 장차 우리 신라국이 삼한을 통합하고 난 뒤에 혼란에 겪게

될 삼한의 백성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설랑의 말에 거침이 없었다. 요희는 이미 설랑의 외모에 반한 듯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랑께서는 이미 싯다르타의 말씀을 모두 깨달았다고 들었습니다. 능인

(能仁)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남삼한의 만 백성들을 정토(淨土)로 안내하

실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해탈에만 정진하는 다른 사문들에 비하면 설

랑은 하늘이 내린 분이 분명합니다.


 반드시 신라국이 삼한을 일통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가 방해를 한 것 같습니다.”
 요희는 요석공주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서당랑, 이제 우리 두 사람만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요희가 서당랑

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희를 질투하시나 봅니다? 아무려면 내가 요희에게 마음을 주겠습니까?

공주께서 요희 보다 백배는 더 아름다운 것을요.”


 “정말이죠. 정말로 제가 운화부인보다 예쁘죠?”
 “그럼요. 옆에 있는 신선들에게 물어보세요.”
 “아이 좋아라.”
 요석공주는 박수를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지금부터 벌어지는 요지의 주연을 구경하며, 잔을 주고받

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시지요.”
 “네에. 서당랑 아니지 서방님.”

 대청 앞 광장에서는 술에 거나한 신선들이 나와 각자의 장기를 뽐내고 있었

다. 왕상 신선이 여러 신선들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에 청룡으로

변신하여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더니 오색 구름조각을 만들어 뿌리고  바람

을 불게 하였다. 내빈들은 우뢰 같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그때 요희가 이에 질세라 조화를 부려 거대한 붕새로 변하더니 하늘로 날아

올랐다. 용과 붕새가 하늘을 이리저리 날며 신기한 재주를 선보였다. 붕새가

묘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붉은빛 도화(桃花) 수백만 송이가 눈처럼 날리며

전각 지붕에 소복이 쌓였다.


 이어 진인 장사평이 머리카락을 뽑아 공중으로 훅하고 불자 머리카락은 공작

과 앵무새로 변해 허공으로 날았다. 새들이 날며 노래를 하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진인과 동군의 오묘한 조화에 신선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기

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집단으로 춤을 추기도 하였다.


 주연 석에 좌정하고 있던 서왕모께서 일어나 재주를 선보인 신선들에게 친히

술을 따라 건네며 노고를 치하 하였다. 서왕모 옆에 앉아 있던 태산노군도 매

우 유쾌한 듯  흡족한 표정이었다.


 다음은 여선 중에서 가장 춤 솜씨가 좋다고 소문 난 여선 허비경이 손짓을

하자 검푸른 피부에 파란 눈의 서역인들로 보이는 남자 삼백여명이 칼을 빼

들고 검무를 추며, 무대 위 아래로 드나들었다.


 검무가 끝나자 얼굴을 붉은 사(絲)로 살짝 가리고 배꼽을 훤히 내놓은 오백

여명의 무희(舞姬)들이 풍만한 엉덩이와 한 아름도 안 되는 야들야들한 허리

를 돌리며, 주연이 벌어지고 있는 대청 안과 밖으로 빙빙 돌았다.


 무희들의 현란한 몸짓에 시선들은 일시에 숨을 죽이고 무희들의 춤에 시선

을 빼앗겼는데 이따금 남선들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무희들의

춤사위는 모든 신선들의 혼을 빼놓았다. 무희들이 퇴장하자 남녀가 무대에

올랐다.


 “방금 진나라에서 소사(蕭史)와 농옥(弄玉)이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은 부부

로 오늘 특별히 신라국에서 오신 설랑과 요석공주의 가약(佳約)을 축하하기

위하여 특별히 음악을 준비하였다 합니다. 여러분 두 분 신선을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대취한 동방삭이 비틀거리며 좌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소사와 농옥을

소개하였다.


  “저희 부부가 동방의 나라 신라에서 오신 설랑과 요석공주를 위하여 축하

음악을 준비하였습니다.”
 소사가 설랑과 요석공주를 바라보았다.
 “초면이온데 저희가 이런 호사를 누립니다. 고맙습니다.”
 설랑이 일어나 합장하여 소사와 농옥 부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아울러 여러 진인들과 군자들을 모시게 됨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가 갈고 닦은 퉁소를 선보이겠습니다. 이쪽은 제 처 농옥

입니다.” 


 “소녀, 진나라 공주로 태어나 낭군(郎君) 소사를 만나 신선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초대에 응해주신 금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멀리 신라국에서 오신 설랑과 요석공주의 가약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백합보다 예쁘고 이미 속세를 초월한 듯한 농옥의 자색는 현란하기 그지

없었다. 농옥이 꾀꼬리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어서, 두 분의 퉁소 소리를 듣고 싶소이다.”
 술에 취한 남선들이 소리쳤다. 소사와 농옥이 다정한 모습으로 퉁소를 불

기시작 하였다. 그때 주변을 날던 봉황(鳳凰), 백조, 황새, 공작(孔雀)이 가

까이 날아와 퉁소소리에 맞춰 허공을 선회하면서 춤을 추었고 주변의 기화

요초들  조차 향기를 뿜어대며, 소사와 농옥의 연주에 흥을 돋웠다. 서녘으

로 흐르던 해와 달이 보라색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오색의 꽃비가

내렸다.


 “설랑님을 뵙습니다. 소녀, 항아라 하옵니다. 설랑의 고명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퉁소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항아가 다른 원군들의 눈치를

살피며, 설랑 곁에 앉았다.


 “항아님을 뵙습니다. 이분은 저의 반려로 신라국 요석공주입니다.”
 요석공주는 눈을 반쯤 흘기며 항아를 노려보았다.


 “항아님, 요즘에도 월궁에서 자숙하고 있는지요? 남편의 불사약까지 모두

드셨으니 영원히 죽지 않고 사시겠네요.”
 “공주, 제가 저지를 일에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왕모께서 소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마셔요. 섭섭합니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초야를 맞는 날입니다.”
 요석공주의 말에 항아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두 분에게 술 한 잔씩 올립니다. 진심으로 두 분의 합궁을  축하해요.”
 “항아님, 고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월궁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정말이지요? 두 분 같이 오셔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붉은 입술 사이로 비치는 항아의 하얀 치아가 잘 익은 석류알 같았다.

항아는 요석공주의 눈빛에 부담을 느꼈는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랑은 무척 아쉬운 표정이었다.


 “서당랑, 혹시 항아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거 아니시죠?”
 “고, 공주. 당치도 않소. 내 곁에 공주가 있는데 어떻게-.”
 설랑은 입맛을 다시며 자꾸만 항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서당랑, 우린 오늘 초야(初夜)입니다. 행여 다른 여선에게 시선을 빼앗

긴다면 저는 슬퍼질 겁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해주셔요.”
 “어험-. 다, 당연하지요. 험-.”
 설랑은 그만 머쓱해져서 빈잔만 만지작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소사와 농옥의 퉁소연주가 끝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왕자교가 신성들에

게 인사를 하고 허공을 날며, 생황(笙篁)을 불었다. 요지 하늘을 날던 모든

새들이 모여들어 생황 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퉁소 연주를 마친 농옥(弄

玉)이 설랑에게 살며시 다가와 반절로 인사를 하더니 춤을 함께 추자고 청

했다. 


 “소선은 아직 춤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설랑, 제 손을 잡고만 있으시면 되는 걸요. 소녀와 한번 춤을 추시어요.”
 설랑은 요석공주의 눈치를 살폈다.


 “설랑, 한번 추시지요.”
 설랑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자 농옥의 남편 소사가 큰 소리로 빨리 춤

추지 않고 뭐하느냐며 크게 웃는다. 모든 진인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좋

아라 웃었다. 요석공주도 설랑의 등을 떼밀었다.


 “그, 그럼. 딱 한번-.”
 “서당, 저는 신경 쓰지 마셔요,”
 공주의 말에 설랑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설랑이 농옥의 허리를 감

으니 여신선 들의 탄성이 터졌다. 설랑은 가슴이 떨리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여선들과 진인들은 질투와 시샘의 시선을 보내고 서왕모와 태상

노군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설랑님, 꿈만 같습니다. 지금 이 현실이-.”
 농옥이 강하게 몸을 밀착하며 팔에 힘을 주자 설랑은 거북했다. 설랑이 이

상한 주문을 외더니 설랑과 농옥은 한 쌍 원앙이 되어 천길 높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원앙이 새들과 어울려 춤을 추자 수 많은 신선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농옥님, 소문대로 절세가인이십니다.”
 서랑은 농옥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허공에서 춤을 추면서도 설랑은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요석공주에게 신경이 쓰였다.


 “소녀는 오랫동안 불법과 도교에 정통하신 해동의 선랑님을 존경해 왔답니

다. 이곳에 오래 머물며 소녀에게 남녀 간에 공존해야 하는 참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요.”
 “그대에게 소사가 있거늘-.”


 “그이는 밤낮으로 퉁소만 불고 있답니다. 저보다 악기를 더 애지중지 하시는

걸요.”
 “이제 곧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소선의 팔을 꽉 잡으세요.”
 주연장의 신선들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는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술을 마

셔댔다.


 “소선은 갈현이라 합니다. 신라국 공주님을 뵙습니다.”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남선 갈현이 옥으로 만든 된 술병을 들고 와서 요석

공주에게 술을 따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갈현님, 영광입니다. 가까이 보니 요희보다 더 예쁜 얼굴이네요.”
 요석공주는 갈현의 출현에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요즘 이곳 요지에서도 신라국 소식을 자주 듣는 답니다. 조만간 귀국이 삼

한을 통일할 거라 믿습니다. 그리되면 두 분께서 무척 바쁘실 듯 합니다. 부

디 두분이 합심하여 신라의 하늘을 떠바칠 단단한 기둥을 만드시기 바랍니

다. 다시 한 번 두 분이 일심동체가 되심을 진심으로 경하합니다.”


 “갈현님, 고맙습니다.”
 “제 술 한잔 받으세요.”
 

 요석공주는 수줍음에 그만 두 뺨이 붉게 물들고 말았다. 갈현의 얼굴이 어

찌된 일인지 요희보다 더 빼어나 보였다. 백옥 같은 피부, 촉촉하고 붉은 입

술, 샛별보다 맑고 영롱한 눈동자, 갈현은 공주와 시선이 마주치면 살짝 눈

흘기며 미소를 지었다. 요석공주는 금방 갈현의 두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소선이 공주를 초대하여 한담을 나누며 한잔 마시고 싶습

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며, 신라에서 맛보지 못한 지극한 쾌락을 즐기십시

오. 소선이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네에. 그리하도록 노려해 보겠습니다.”
 “그럼, 소선은 이만-.”
 갈현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는 설랑을 힐끔 쳐다보고 요석공주에게 정중

하게 인사를 하고 제 자리로 재빨리 돌아갔다.


 ‘아아, 정말로 빼어난 미남자로다. 지금껏 저렇게 잘 생긴 남자는 처음이로

다. 어쩌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예쁘게 생겼을까? 서라벌에 저런 남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공주는 마른 입술을 깨물며, 공중에서 농옥을 껴안고 춤을 추고 있는 설랑을

올려다보았다. 금방 설랑이 요석공주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설랑과 공주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꽃들조차

질투를 하는 절세미인 태진부인이 시녀를 거느리고 설랑을 찾아왔다. 부인

의 손에는 달에서 따온 계수나무 잎으로 담근 감로주(甘露酒) 병이 들려 있

었다. 한잔만 마시도 능히 천년을 산다는 선계에서도 아주 귀한 술이었다.

    
 “오늘 금모(金母)께서 주청(奏請)을 하고 태상노군께서 심사 후, 옥황(玉

皇)께서 그대를 신선의 네 번째 품계인 비천진인(飛天眞人)으로 임명하시

었습니다.”
 “소선을 비천진인에요?”
 설랑은 무척 놀라워하였다.


 “두 분은 공손한 자세로 하사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하사품으로 신라

의 하늘을 떠받칠 하늘 기둥을 만드세요.”
 설랑과 요석공주는 얼른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태진부인은 임명장과 함께 사악한 기운을 제어할 수 있는 파천검(破穿劍)

한 자루, 천상의 구름을 부르고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백우선(白羽煽) 한 개,

천리 밖 상황을 볼 수 있는 백명주(白明珠) 한개, 신령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오제육갑좌우령비부(五帝六甲左右靈飛符) 한권을 설랑에게 전했다.

물건을 전하면서 부디 신라국이 삼한을 통일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란다는 말도 전했다.
 

 “이제 두 분은 침전으로 드시어 푹 쉬셔야 할 시간입니다. 내일 그리고

모레, 글피, 그그필-. 시간은 많습니다. 멀리서 오시느라 피곤하실 터이니

그만 쉬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것은, 이것은 공주에게 특별히 드리는 책과

엽자(葉子)입니다. 초야를 보내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태진부인은 요석공주에게 책을 내밀며 얼굴을 붉혔다.


 “아-, 고맙습니다. 세세한 일까지 신경 써주시니 몸 둘 바를-.”
 요석공주가 목례로 태진부인게 예를 표시하였다.
 “너희들은 두 분이 평안하게 주무시도록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야.”
 태진부인이 시녀들에게 하명하였다.


 ‘아직 더 놀다 잠자리에 들어도 되는데 벌써 자라고 하니. 이것 참-.’
 설랑과 공주는 태진부인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시녀

들을 따가 침궁으로 향했다.


 “어머나, 태진부인 선물한 엽자가 참으로 기이합니다. 이 책 소녀경은

이미 수차례 본적이 있어서 흥미가 없지만 엽자는 기가 막힙니다.”


 “아-, 그래요. 엽자가 그리 기이합니까?”
 ‘아아, 신선들이 이런 책자를 가지고 있더란 말인가. 정말로 기가 막히구

나. 남녀가 즐길 수 있는 서른 여섯 가지의 다양한 자세가 그려진 그림책

이로구나. 과연, 과연 요지경 속이로다.’
 설랑과 공주는 엽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서당랑, 오늘 서른여섯가지 자세를 모두 구사하여 지극한 열락의 밤을

보내셔야죠?”
 “공주께서 이미 익숙한 자세가 아니던가요?”


 “열여덟 형태는 이미 체험해본 자세입니다만 나머지는 처음 보는 장면이에

요.”
 방사에 있어서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는 요석공주였다.


 “그럼, 밤을 꼬박 새우더라도 엽자에 그려진 서른여섯 가지를 모두 경험

해보도록 하지요.”
 “정말이지요? 서당랑이 코피가 터지면 어쩌시려고요?”
 요석공주는 배꼽을 잡았다. 두 사람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지고 엽자

를 보며 속삭였다.


 “그럼. 이 자세로 시작할까요.”
 설랑의 말에 공주는 흔쾌히 자세를 취하였다. 침전은 황금색 휘장으로 둘러

처져 있고 침상은 너무 푹신하고 아늑하여 금방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침전

에는 여러 개의 촛불이 대낮처럼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공주

는 설랑을 끌어 안았다.


 “어머나. 이를 어째. 공주께서 태진부인께서 선물한 소녀경을 읽어보지도 않

고 운우의 정을 나누려 하시네.”
 “공주는 이미 그 방면에 도통하여 책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 엽자만 있어도 되겠네. 그러나 서른 여섯 가지 방중술을 모두 체험하

려면 밤을 새워도 시간이 안 될 터인데.”
 침전 문 앞에 시비들이 설랑과 공주가 들어 있는 침전 내실을 엿보며, 시시덕

거렸다. 

  
 “여봐라. 어서, 어서 요석궁으로 가보자.”
 “폐하, 아직 새벽닭이 울지도 않았사온데 거길 왜 가시려고요?”
 김춘추는 날이 밝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내관을 불렀다. 밖에는 천둥

번개가 치면서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 딸, 내 딸. 요석이 간밤에 잘 잤는지 궁금하구려.”
 김춘추는 술이 덜 깬 상태로 주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몸이 휘청거리면서도 기

어이 일어나 내관과 함께 요석궁으로 가려고 하였다. 


 “아이고, 폐하, 정말로 주책이십니다. 원효스님과 요석공주가 한두 살 먹은

아이들도 아니고 다큰 어른들이랍니다.”
 문명왕후는 기가 막혔다.


 “짐이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이 나라 천년대계가 잘 만들어 졌는지 짐이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 겠어요. 왕후도 같이 가십시다.”
 문명왕후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한참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각에 느닷없이 일

어나 요석궁에 가자고 하는 지아비가 미웠다.


 ‘고타소 공주가 혼인하였을 때에는 저런 행동을 보이지도 않으시더니, 어째

서 요석공주에게 저리 목을 매시는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다. 그놈

의 몰가부인가 뭔가가 생사람 잡겠구나.’
 문명왕후 김문희는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왔다.


 “내관은 어서 앞장서거라.”
 “폐, 폐하-, 비가 그치면 가시지요.”
 “이놈, 짐이 앞장서라면 설 것이지 무슨 잔말이 많으냐.”


 “폐하-, 아직 날도 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데 어딜 가신다고 그러세요? 내관 말대로 비가 그치면 가세요.”
 문명왕후가 김춘추를 가로 막아섰지만 지아비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니오. 내 마음이 급하오. 자-, 어서 가자.”
 “네-. 폐하께서 요석궁으로 납시신다. 어서 채비를 하라.”
 내관은 할 수 없이 김춘추와 요석궁으로 향하였다. 왕이 머무는 본궁에서 요

석궁까지는 대략 이천여보 정도 떨어져 있어 어른 걸음으로 간다면 금방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요석궁을 지키던 보초병들과 군관이 소식을 듣고 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하 납시오.”
 내관이 김춘추가 요석궁에 도착하였음을 알리는 소리에 요석궁은 갑자기 부산

해졌다. 요석궁을 호위하던 초병들과 궁녀들은 요석궁 출입문 앞에 일렬로 도열

하고 있다가 김춘추가 도착하자 고개를 숙였다.


 “요석궁 근무 이상무-”
 군관이 큰 우산을 쓰고 나타난 김춘추 앞에 나가 큰소리로 이상 유무를 보고하

였다.
 “간전이는 어디 있느냐?”


 “폐하, 소녀 여기 있사옵니다.”
 비에 젖은 생쥐 꼴로 간전이가 하품을 하며, 김춘추 앞으로 튀어 나왔다. 요석

궁의 궁녀 간전이는 간밤에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초야를 훔쳐보느라 한숨도

자지 못하였다. 양쪽 눈의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간밤의 일을 소상하게 아뢰어라. 원효스님이 요석궁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

까지의 일을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아뢰어라.”


 “폐하-, 두 분께서 내실에 드신 후 식사를 하시고 합환주를 드신 다음 잠을

청하셨습니다. 소녀는 내실 문이 굳게 닫혀 내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것도

볼 수 없었사옵니다. 그리고 두분은 아직도 주무시고 계시는지라.”


 “뭐라? 이렇게 날이 훤히 밝았는데 아직도 잠자리에 들어 있더란 말이냐?”
 김춘추는 간전이를 노려보았다.


“네에-.”
 ‘아니, 원효와 요석이 밤새 술을 마셨나? 아직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

다니? 허허, 별 일이 다 있구나. 새벽 예불을 올리고도 남을 시각인데 아직도

두 사람이 잠을 자고 있다니-.’


 “여봐라. 간전이는 앞장서거라. 짐이 아직 잠을 자는지, 일어났는지 직접 확인

해야 겠다.”
 간전이는 걱정이 앞섰다.


 “페하, 두 분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습니다.”
 “어험-. 짐이 직접 확인해 봐야 겠다.”
 “폐하, 두 분 간밤에 늦게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 어쨌다는 것이냐?”
 김춘추는 직접 앞서서 요석궁 내실 쪽으로 향했다.  


 ‘아-, 아무리 왕이라고 하나 딸과 사위 될 사람이 잠을 자고 있는 침전에

드시겠다니, 전하께서 실성을 하셨나? 두 분이 알몸으로 부둥켜 안고 곤히

잠자리에 들어 있을 터인데. 이를 어쩌나?’


 “폐하-, 내실은 소녀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침전 문 밖에서 잠시

기다려 주소서.”
 “험-. 알았다. 어서 들어가 짐이 왔다고 전하거라.”
 간전이는 김춘추가 직접 문을 열고 침실 안으로 들어갈까 봐 겁이 덜컥났다.

간밤에 몰래 훔쳐봤던 다양하고 기기묘묘한 두 사람의 사랑의 행태가 떠

올랐다.


 ‘아아, 불법을 연마하는 스님이 어떻게 그처럼 해괴망측한 자세로 여인을

녹초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어젯밤 훔쳐본 장면을 생각만하여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랫도리가 음찔거려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구나.


 나는 남편과 수백, 수천 번 정사를 나누었지만 그처럼 열정적이고 다양한

자세로 사랑을 나눈적이 없었어. 나는 참으로 밋밋한 혼인생활을 하였구

나.’
 간전이는 간밤에 본 황홀한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장면은

죽기 전까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공주, 이젠 나도 지쳤답니다. 이제 잠자리에 들지요.”
 “ 서방니임-, 이제 경우 수무가지 형태 밖에 경험하지 못했는걸요. 지금 잠이

오셔요? 나는 서른 여섯 가지를 모두 체험하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을 거랍니

다. 그래야 진정으로 스님게서 파계를 하실 수 있단 말이에요. 잘 아셨지요.”


 “고, 공주-.”
 요석공주는 밤새 열락의 문을 드나들며, 지옥과 극락세계를 맛보았지만 아직

도 욕심을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허어, 큰일이로다. 어찌된 여인이 지치지도 않는단 말인가. 이미 자루 빠진

도끼에 단단한 자루를 수백자루도 넘게 끼워 넣었거늘-.’
 “서방님, 이번 자세는 너무 황홀할 것 같아요. 몸이 달아올라요. 어서, 어서

저를 달래주셔요. 어서요.”
 설랑은 할 수 없이 엽자를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고 보고 다음 행동을 취했다.


 “스님, 공주님, 폐하께서 납시셨습니다.”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공주님, 스님, 폐하께서 납시어 계십니다. 어서 나와 보시어요.”
 역시 내실 문이 굳게 닫힌 채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어제 밤늦도록 사랑을 나누시더니 두 분 모두 녹초가 되신 게 분명해.

이를 어쩐다. 폐하께서 와 계시는데.’
 간전이는 할 수 없이 내실문고리를 잡았다. 힘을 주었으나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아무리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문은 열리

지 않았다. 이번에는 궁녀들 서너명이 합세하여 문고리를 잡아다녔지만

문은 바위돌처럼 단단하여 열리지 않았다.


 “폐하-, 스님과 공주님이 주무시는 내실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려고 하여도 문이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공주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쳐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뭐라고? 문이 안 열린다고? 응답도 없다고?”
 이번에는 김춘추가 직접 문고리를 잡고 힘을 주었으나 정말로 문고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 애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나? 아니면 요석공주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김춘추는 이상한 생각이 들자 겁이 덜컥 났다. 남녀가 격렬한 행위를 할

경우 종종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들은 바가 있었다.


 “공주야, 아비다. 아비가 왔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

날이 밝았구나. 어서 일어나야지. 얘, 요석공주야, 아비가 왔다.”
 “폐하, 두 분께서 깊이 잠드신 모양이니 점심때쯤 깨우세요. 초야를 치르

느라 두 분이 몹시 피손하여 깊은 잠에 빠지신 모양입니다.”


 “험-.  아무리 깊이 잠이 들었어도 그렇지 여러 명이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기척이 없다면 안에 무슨 변고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
 “폐하-, 변고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요.”


 “여봐라, 내실로 통하는 문이 몇 개더냐?”
 “내실로 통하는 문은 모두 세 개가 있사온데 두 개는 사람을 드나드는 문이

옵고 하나는 짐이나 물건을 넣다 뺐다할 때 사용하는 문이옵니다.”


 “그럼, 그 문이 어디 있는지 안내하라.”
 “폐하, 두 분께서 깊이 잠드신 것이 분명하옵니다. 어젯밤 합환주를 드시고

늦게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좀 기다려 보소서.”


 간전이 아무리 아뢰어도 김춘추는 고집을 피웠다. 할 수 없이 간전이는 다른

문을 알려주었다. 발 받침대를 놓고 그 위에 올라서야 내실을 들여다 볼 수 있

었다. 김춘추는 먼저 내관을 시켜 안의 동태를 살펴보게 하였다.


 “헉-, 아니. 두 분이, 두 분이 잠도 안 주무시고 정사를 나누다니.”
 내관은 요석궁 내실을 살펴보다가 그만 기절을 할 뻔했다.
 “폐하, 그냥 돌아가셔야겠습니다. 두분이, 두 분이-.”


 “그래, 스님과 공주가 곤히 잠을 자고 있더냐?”
 “폐하, 그, 그게 아니옵고. 그게 저-, 저.”
 내관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말을 하지 못했다.


 “허-, 답답하구나. 뭘 그리 우물쭈물하느냐? 어서 아뢰지 않고.” 
 “그것이, 저-. 그것이-.”


 “허, 답답하구나. 그것이 뭐가 어찌되었다는 게야? 저리 비켜라. 짐이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이번에는 김춘추가 국왕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받침대에 올라서서 요석

궁의 내실을 살펴보았다.


 ‘앗-, 저애가, 저애가 스님하고 밤새도록 저 일을 지속하고 있었더란 말이

냐. 짐이 법력이 뛰어난 불자 중에 십일 밤낮 동안 방사(房事)를 치러도 끄

덕도 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설마-. 아아, 절륜하도다.

저 정도니 짐에게 여식을 달라고 몰가부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녔겠

지.’


 김춘추는 한참 동안 요석궁 내실을 들여다보며 보희부인을 떠올렸다. 김

춘추의 눈앞에서 요석공주가 보희부인의 특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김춘추

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 허

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하였다.


 “여봐라. 돌아가자. 해가 서천으로 기울 때쯤 다시 와야겠다.”
 김춘추가 돌아가고 나자 궁녀들은 요석궁 내실을 훔쳐보려고 혈안이었

다. 


 “폐하께서 왜 크게 놀라워하며, 부리나케 가시는 것일까?”
 “공님과 스님이 코라도 골며 주무시나?”


 “쉿-, 너희들 떠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내실을 살펴볼 테니.”
 “간전 언니, 내가 먼저 볼게요.”
 궁녀들은 서로 요석궁 내실을 훔쳐 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간전이가 겨

우 다른 궁녀들을 달래고 내실을 살펴보았다.


 ‘앗-, 두 분이 잠도 자지 않고 저런 일을-. 그럼 밤새도록 한잠도 주무시

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공주님은 마치 체면에 걸린 듯 스님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 같고 스님도 잠을 자는 듯한 상태로 차분하게 일을 치르고

있는 장면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두 분이 무의식 상태에서 방사를 즐기고 있는 거야. 저런 상태라면 몸에

진액(津液)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망측한 자세가 가능할 거야. 과연 도통

한 분이라 그 일도 경지에 오르신 게야. 아아, 공주님이 정말로 부럽다.

나는 언제 저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간전이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요지경 속 사실들을 뇌리에 기억해

놓았다.


 "공주님과 스님이 곤히 주무시고 계신단다. 우리도 물러가 있다가 폐하

께서 다시 오시면 오자.”
 “간전 언니, 정말로 두 분이 주무시고 계신거죠?”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니? 너희들도 알잖아. 두 분이 간밤에 밤

늦도록 앉아계시다 주무셨다는 사실을.”
 요석궁은 초병만 남아 있고 고요해졌다.
 

 세상은 음, 양이라는 두 가지의 성질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은 하늘과 땅

으로 구분되고 동물도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사람도 남과 여

로 나누어져 있다. 세상 만물은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상대되는 물질로

나누어져 있다. 남성적인 성질을 양, 여성적인 성질을 음이라고 말한다.


  음양이 잘 조화될 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조화되지 않고 깨지거나

역행하면 세상에 큰 혼란이 일어난다. 방술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안정되

고 번영하게 돕는다. 사람도 남녀가 조화를 이루면 지극한 즐거움이 생긴다. 


 방술은 음양의 도를 중시한다. 남자는 양이니 양의 성질이 있고 여자는 음

이니 음의 성질이 있어 천지가 화합하듯 교합하면 인간은 영원을 추구할 수

있다. 남녀의 은밀한 정사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 진행이 되어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다.


 남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하늘과 땅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

어도 소통을 하니 서로에게 기운을 전달하여 천지의 조화를 이룬다. 남녀도

몸과 마음이 달라도 합궁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된다. 그 소통은 단지

몸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소통이 되어야 한다. 마음의 소통이란

남녀가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관계해야 한다. 원치 않는 방사는 좋은 정(精)

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은 가뭄에 이슬비만 내리는 것과 같다.


 “폐하, 비가 그쳤습니다.”
 “요석공주와 원효스님은 아직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
 “폐하, 방금 전에 두 분이 긴 취침에서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어허-, 어찌된 사람들이 삼일 밤낮 동안 잠을 잔단 말이야. 짐이 요석궁으

로 가 볼 터이니 채비를 하라. 그리고 왕후는 두 사람이 일어났다고 하니 서둘

러 혼례식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원효스님과 요석공주가 요석궁 침실에 든 지 삼일 만에 일어났다는 소문이

궁성 낭에 순식간에 퍼지고 말았다. 소문은 금방 서라벌에도 퍼지면서 호사

가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김춘추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도 요석궁의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며, 화제의 중심에 두고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간전 언니, 그게 정말이에요? 공주님과 원효스님이 사흘 밤낮을 주무시고

일어나셨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쉿-. 너희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야 해. 사실이야. 사흘 밤낮을 주무시

고 방금 전에 기침하셨어.”


 “그럼-. 두 분이 잠만 주무신 거예요?”
 요석궁에 궁녀들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은 무엇이 알고 싶은 거니?”
 “언니가 사흘 밤낮 동안 본 장면들을 모두 말해주세요. 엄청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언니, 어서 언니가 본 일들을 말씀해 주세요.”
 “그래요. 간전 언니 두 분이 어떻게 첫날밤을 보냈는지 무척 궁금해요.”
 궁녀들은 간전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사흘 밤낮 동안 본 장면은 참마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어 미안하다.

나중에 내가 두고두고 이야기해 줄게. 너무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가 될 거야. 나도 너무 많은 장면을 훔쳐봐서 머릿속으로 일단 정리를 해야

해. 그러니 기다리거라.”


 요석궁의 모든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간전이는 갑자기 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삼일 내내 요석궁 내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폐하, 두 분 왕후님. 소승의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용서하소서.”


 “스님, 용서라니요? 이제 스님은 짐의 사위이며, 신라왕실의 사람이 되

었습니다. 앞으로 요석공주와 백년해로할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은 두 사

람이 새롭게 출발하는 날입니다.”
 김춘추는 원효스님과 요석공주를 번갈아 보았다.


 “나무석가모니불-. 스님, 경하 드립니다. 우리 요석공주를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의 인연은 곧 우리 신라왕실의 경사입니다.”
 문명왕후 김문희는 금방이라도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요석공주의 생모로서 앞

으로 요석공주와 스님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또한 스님

의 법력으로 인하여 우리 신라왕실이 천년 제국으로 통일 될 수 있으면 좋

겠습니다. 부디, 폐하의 대업에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요석동생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심을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태자 법민은 유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공주야, 사흘 밤낮 동안 신라의 하늘을 떠받칠 튼튼한 기둥을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다. 사흘을 굶었을 테니 혼례식 끝나면 맛있는 거 많이 먹도록

하여라. 스님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버님, 고생이라뇨. 소녀 조금도 고생하지 않았어요. 소녀는 백일동안

잠을 자려고 했답니다. 요지에서는 소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신선들이 여

러 명 있었는 걸요. 아, 언제 다시 갈현 신선을 만나 보려나.”


 “공주야, 갑자기 요지가 무슨 소리더냐. 갈현 신선은 또 뭐고?”
 “아미타불-. 폐하, 소승을 이리 배려해주시기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혼신을 다해 폐하의 대의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나이다.”


 “공주야, 사흘밤낮이 모자랐던 게로구나.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백일 아

니라 천일이라도 자려무나. 네가 요지경 속을 다녀온 게로구나. 자주 다녀

오거라.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갈현인가 뭔가하는 신선도 만나보고. 스님,

짐의 대업을 돕겠다니 무척 기대가 됩니다. 신라왕실에 큰 경사입니다. 짐

이 삼한을 일통하면 뒷 수습을 할 인재 하나만 생산하도록 도와주시면 된

답니다.”


 “나무아미타불-. 폐하,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도 도와주시리

라 소승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백성들을 전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원효스님은 김춘추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였다.


 “스님, 신라는 부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북방의 당나라 오랑캐와

바다건너 왜적들은 삼한을 집어 삼키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 신라가 삼한을 통일 할 거라 믿습니다. 짐과 법민이

통일을 위하여 양손에 피를 묻힐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 후에는 민생

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거려 줄 문필(文筆)이

필요합니다.”
 김춘추의 주문에 원효스님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이미 왕실과 신라라는 나라를 떠받칠 천주(天

柱)을 준비하였습니다.”
 “오, 듣던 중 고마운 소리입니다. 짐은 스님만 믿겠습니다.”


 “폐하, 곧 혼례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흘 동안 내린 비로 서라벌은 자칫 물에 잠길 뻔하였다. 사람들은 요석

궁에서 시작한 비가 신라 전역에 내렸다면서 엉뚱한 이유를 댔다.


 “폐하, 만세.”
 “요석공주 천세.”
 “신라국 만세-.”


 요석궁에서 성대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신라 왕실의 사람들뿐만 아니

라 조정의 만조백관들이 모두 요석궁에 모여 요석공주의 새 출발을 축하

하였다. 김춘추는 흉악범을 제외하고 대사면령을 내려 죄인들을 풀어

주었다.


 “경들은 들으시오. 오늘부터 백일 동안 서라벌 전역에서 축제를 열 것

이오. 이 기간 동안 짐을 비롯한 왕실과 진골, 육두품, 오두품 인사들은

백성들과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가지도록 하시오.


 또한 축제기간 동안 서라벌 안에 있는 모든 주점(酒店)과 기루(妓樓)에

서는 술값의 반만 받도록 할 것이오. 술값의 나머지 반은 왕실에서 댈 것

입니다. 이는 신라 하늘을 떠받칠 든든한 기둥을 세우는 의미에서 짐이

제안하는 일이니 만백성은 시름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시오.”
 신라의 지엄한 왕 김춘추의 포고에 서라벌 저자거리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들썩거렸다.


 “흠-, 과연 김춘추는 대인의 면모를 지녔도다.”
 “원효스님이 과연 어떤 기둥을 만들어 주실까.”
 “원효가 드디어 방하착하였구나.”


 “우리 같은 백성들은 나라님이 주시는 술이나 퍼마시면서 박수나 쳐대면

그만이오. 내 배 부르고 등 따시면 최고 아니겠소.”
 서라벌 백성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대왕

을 칭송하였지만 원효스님의 파계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 끝 - 













   _()_  아직 탈고를 못했습니다. 오탈자는 탈고시 수정보완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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