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석궁에 내린 비(4)
- 여강 최재효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자한다면 세상의 모든 조직으로 부터 완전히
해방돼야 한다. 어떤 일이든 걸림이 없으면 그것을 곧 무애(無碍)라 말
한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온갖 허망한 사슬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는 곧 허구의 자아(自我)로 부터 이탈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자아가 너무 강하다면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불행이 있다.
원효스님은 자아로부터 탈출한 완전한 자유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앙
으로부터, 지식으로부터, 계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주색가(酒色家)
에 자유로이 드나들며 술을 마셨고, 기녀(妓女)하고도 스스럼없이 어울렸
다. 또한 남루하고 이상한 행색으로 길거리에서 춤추고 박을 치고 다니다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기도 하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원효스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아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낫
고, 즐기는 것보다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실천하였다. 불제자이면서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다보니 다른 다문(沙門)들로부터 시기와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
는 사람의 진정한 자유를 이론적으로 쉽게 규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
의 삶으로 이를 구현해 냈다.
자유는 인간에게 생명수와도 같다. 불문(佛門)에서는 마음의 자유, 자아로
부터의 해탈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아무 간섭도 없고 완전히 자유
로운 상태에 놓여 졌을 때 편안할 것 같지만 막상 자기 번뇌와 망상에 얽매
이기 시작할 때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벗어
나느냐가 중요한데 원효 스님은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위해 일정한 범위나
틀 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주체적인 방법으로 원효스님은 유방외(遊方外)를 제시하였다. 사람들
은 자신의 범위를 설정한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어떤 범위도 넘어서서 구
도자로 활동하였다. 원효스님이 ‘유방외(遊方外)’, ‘초출방외(超出方外)’ 등
의 표현을 즐겨 썼던 것도 또한 무애의 자유인으로 행동했던 것도 이런 이
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일체무애인일도출생사) -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
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리. 원효스님의 말은 약간은 난폭하고 예의에 벗
어나기도했으며, 행동도 가끔은 범부의 상식선을 넘기도 하였다. 사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고 혹은 여염에서 유숙하기도 하였고 혹은 산수에 들
어 선좌(坐禪)하는 등 계기를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시중 잡배들과도 어울
려 노래하고 춤추고 유곽에 자유로이 드나들기도 하였으며, 천촌만락을 돌
아다니며 하화중생(下化衆生)하였다.
“스님, 스님께서 요석공주를 원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나무아미타불광세음보살-.
서라벌에는 별의별 망언(妄言)들이 춤을 추고 있구나.”
“그렇죠? 스님이 요석공주님을 원하신 적이 없으신 거죠?”
극락의 기녀 은지는 보슬비가 내리는 늦은 시간에 찾아온 원효스님을 맞고
있었다.
“허-.”
“아잉. 스님, 대답 좀 해보세요. 저는 스님 없으면 팍-, 죽어버릴 거에요. 정
말이라고요. 정말로 스님이 공주하고 혼인하면 이년 정말로 칼을 입에 물고
죽을 거라고요.”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하늘이 주신 천수를 다 누리고 죽어야지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기고 죽긴 왜 죽는다고 하는고?”
여러 달 만에 나타난 원효스님에게 은지는 빨간 입술을 오물거리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은지야, 나는 하늘 아래 그 누구도 원한 적이 없구나. 내가 원한 분이 있다면
부처님 한 분 뿐일 게야. 아미타불관세음보살-.”
“그렇죠? 스님, 정말로 공주님을 달라고 한 적이 없는 거죠? 그런데 왜 조정
에서는 서라벌 골목마다 방을 붙여 스님과 요석공주가 곧 혼인식을 올린다고
했나요? 조정의 속내를 모르겠어요. 스님, 진실을 말해주세요. 저는 스님이 공
주님과 혼인하면 정말로 죽을 거라니까요?”
“서라벌 사람들이 내가 부른 몰가부(沒柯斧)라는 노래를 잘못 해독한 게로
구나. 나무아미타불관자재보살. 꺼억-”
원효스님은 독한 술 한 동이를 순식간에 비우고 투박한 옷소매로 검붉은
입술을 쓰윽 문질렀다.
“스님, 여기 고기 안주 있어요. 자아, 입을 크게 벌려보세요. 스님이 오
신다는 소식을 듣고 어렵게 구한 황구(黃狗)를 밤새 푸욱 삶은 거에요.”
은지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깃덩이를 나물에 싸서 원효스님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네가 내 입맛을 아주 잘도 알고 있구나. 내가 이걸 좋아하는 지 어찌 알았
누? 네가 나에게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게냐? 너도 자루 빠진 도끼가 분명
하렷다. 시아본사석가모니불.”
“이년은 스님이 공주님하고 혼인을 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으면 된답
니다. 스님은 저에게 해와 보름달 같은 분이라고요. 그런 분이 요석공주
님의 비단치마 속으로 사라지면 저는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
망망대해에 버려진 쪽배나 같은 신세랍니다.”
원효스님과 대작을 한 탓으로 은지 역시 입에서 술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은지의 하얀치아와 붉은 입술는 사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은지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라. 네가 알아듣든 말든 그것
은 온전히 네 몫이라 할 수 있구나. 나무석가모니불.”
취한 은지가 색기를 뚝뚝 흘리며 원효스님곁으로 바싹다가앉았다.
“스님, 쉬운 말로 하세요. 스님 말씀은 너무 어려워서 제가 금방 알아들을
수 없다고요. 스님이 말씀하실 때는 알아들을 것도 같은데 말씀이 끝나고
나면 이년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은지는 원효스님에게 귓속말로 속삭이고 나소 술 한 동이와 고기 안주를
푸짐하게 더 가져왔다.
“나의 몰가부 노래가 그리 어려운가? 마치, 나를 여인의 몸을 탐하는 파락
호로 보고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구나. 안 되겠어. 내가 잠시 지리산에
은거해 있어야 겠어.”
“스님, 그럼 왕실에서 난리가 날 텐데요?”
“난리가 나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
원효스님은 술 한 동이를 단숨에 비우고 은지의 풍만한 엉덩이를 톡톡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라는 오랜 세월 골품제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북부여(北夫餘)
계통의 혈통을 이어받고 새나라의 왕통을 세운 박혁거세로부터 시작한 진한
(辰韓)의 사로국(斯盧國)은 600여년을 이어오면서 박씨에서 석씨(昔氏) 그리
고 현재의 김씨 왕조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소수의 집단
이 사로국 즉, 신라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 통치이념의 기저에는 누구도
어쩌지 못할 혈통이 있었다.
신라의 골품제도는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骨制)와 일반 귀족을 대상
으로 한 두품제(頭品制)가 각기 별도의 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법흥왕 때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골품제도는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이
라는 두개의 골과 6두품으로부터 1두품에 이르는 6개의 두품을 포함해
모두 8개의 신분계급으로 나누어 졌다.
성골은 김씨 왕족 가운데서도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최고의 신분이
었는데, 진덕여왕을 끝으로 소멸되었다. 진골도 성골과 마찬가지로 왕족이
었으나 원래 왕이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성골이 소멸되자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부터는 왕위에 올랐다. 그 뒤로 부터 신라왕조가 왕건에 의해 문을
닫을 때까지 모든 왕은 진골출신이었다.
물론, 상위계급이라고 하더라도 특권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가령,
진골 바로 다음가는 6두품은 득난(得難)이라고 불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좀처럼 차지하기 어려운 신분이었다. 이 신분에 속한 사람들은 본래 신라
를 구성한 여러 씨족장의 후예와 신라에 정복된 작은 나라들의 지배층
후손들이었다.
이들은 골품에 따른 관직제도의 규정상 주요 관청의 장관이나 주요 군부
대의 지휘관이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관리나 군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학자, 종교가 또는 사상가가 되는 길을 택하는 사람이 많았다. 원효스님과
고운 최치원 등은 모두 6두품 출신이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했으나, 신라
왕족의 혼인관례를 어겼다는 이유로 왕실은 물론, 전통적인 서라벌의 귀
족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하였다. 진지왕의 손자이며, 진평왕의 외손이었
던 그가 성골의 대우를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진골로 여겨진 것은
바로 이 파계적인 혼인 때문이었다.
“폐하, 원효스님이 잠적을 한 듯 합니다. 서라벌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잠적을 하여 서라벌에 나타나지 않는다고요?”
“요즘 저자거리는 요석공주와 원효스님의 혼인문제로 벌집 쑤셔놓은 듯하
자, 이에 부담을 느낀 스님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듯 하옵니다.”
김춘추는 문명왕후와 점심을 들고 있었다. 보통 아침 식사는 보희부인과
점심 식사는 문명왕후 김문희와 함께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허-, 이거 큰일이구려. 조정에서 요석공주와 혼인한다고 발표했는데
정작 신랑이 될 사람이 사라졌다면 세상에 큰 웃음거리가 되겠구려. 안 되
겠어요. 전국에 명을 내려 속히 원효스님을 서라벌로 모셔오라 해야겠습
니다.”
“폐하, 원효스님이 알아서 스스로 서라벌로 찾아오도록 하시지요?
그게 더 좋지 않겠어요?”
문희가 금잔에 반주(飯酒)를 따르며 지아비 김춘추의 눈치를 살폈다.
“왕후, 어떻게 하면 원효스님이 서라벌로 스스로 오게 할까요?”
“혼인 날짜를 발표하는 겁니다.”
“혼인 날짜를요? 원효스님과 상의도 하지 않고 신부 측에서 먼저 날짜
를 잡는단 말이오?”
김춘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에 문명왕후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
었다.
“혼인 날짜를 발표하면 제 아무리 영걸이라 하여도 서라벌에 나타나지 않
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중구삭금적훼소골(衆口鑠金積
毀銷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고 헐뜯음이 쌓
이면 뼈도 삭힌다’라는 의미입니다. 폐하, 소첩의 의견대로 이쪽에서 일방
적으로 날짜를 잡아 공표하세요.”
문명왕후가 고기반찬을 집어 김춘추의 밥숟가락에 올려놓았다.
‘흠-. 혼인 날짜를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다? 그리되면 과연 원효스님이
서라벌에 다시 나타날까? 만약 안 나타나면 큰 망신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왕후, 요석공주에게 미리 상의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김춘추는 요석공주의 달거리 기간이 궁금하였다.
“폐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아이 몸 상태를 소첩이 잘 알고 있
습니다. 그 아이 뿐만 아니라 왕실의 여인들 상태까지 잘 파악하고 있답
니다.”
“그래요? 과연, 왕실의 안주인답구려.”
김춘추는 문명왕후와 보희부인을 정실로 두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측실
(側室)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두 왕후의 묵시적 승낙 하에 은밀하게
다른 여인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개똥어멈, 소문 들었수?”
“쇠똥어멈, 뭔 소문?”
“이런 멍청한 여편네. 내달 초사흗날 원효스님과 요석공주가 혼례를 치른
다는 소문이 서라벌에 파다한데, 못 들었단 말이여?”
신라 왕실에서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혼인 날짜를 발표하자 서라벌뿐만
아니라 신라 전체가 들썩거렸다.
“흑-.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는 절대로
요석공주님과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는 날짜까지 잡다니.
남자는 그저 믿을 게 못되는 동물들이야.”
‘극락’의 가기(歌妓) 은지는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
었다.
“은지야, 네가 아무리 울고불고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너, 정말로 원효
스님 말을 믿고 있었던 게야?”
극락의 큰 주모는 원효스님을 좋아하는 은지가 참으로 멍청하다는 생각
을 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었다.
“언니, 원효스님은 나에게 신선한 공기와 같은 존재에요. 이제 그 공기
가 내 곁에 없어지는데 제가 어찌 살겠어요. 저 정말로 원효스님을 사랑
했다고요. 사랑하는 남자를 공주에게 빼앗기게 된 마당에 제가 세상을
살아가면 무엇 하겠어요.”
“야, 바보 같은 년아 정신 차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마.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년들이 바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스님을
좋아하는 년들이라니까. 어이구-.”
“언니가 제 속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 만약 알면 절대로 그런 말 못
할 거유.”
“어이구. 저 멍청한 것. 언제 철이 들려나.”
극락의 다른 기녀들까지 은지를 다독거리며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 부처님의 존엄을 훼손하는 미치광이 땡중 원효는 지금 당장 신라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
- 말도 안 되는 기행을 일삼으며, 백성을 기망하는 돌팔이 땡중 설서당
(薛誓幢)은 신라 만백성에게 사죄하라.
- 육두품 주제에 왕실의 여인을 탐하려는 원효는 즉각 산에서 나와 입장
을 밝혀라.
- 불제자로서 왕실의 여체(女體)를 탐하려는 설씨(薛氏)는 불문(佛門)에서
떠나라.
-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가짜 중 설신당(薛新幢)은 즉시 산에서 나와 도반
들에게 사죄하라.
- 가짜 중 원효는 숨지 말고 즉시 나와 진심을 말하라.
- 만백성을 기망하는 땡중 원효는 당장 법복을 벗고 자숙하라.
- 왕실 과부에게 눈독을 들이는 땡중은 이 땅에서 당장 사라져라.
- 부처님을 팔며, 술과 여인을 탐하는 가짜 중 설씨, 원효는 더 이상 사문
(沙門)을 더럽히지 마라.
- 가짜 중 원효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제 할아버지인 제7대 풍월주 설원랑
(薛元郞)과 잉피공(仍皮公) 그리고 아버지 설담날(薛談捺)을 욕되게 하지
말라.
- 과부가 된 요석공주의 육신을 안고 싶어 파계(破戒)한 원효는 영원히 불문
에서 떠나라.
서라벌 저자거리 곳곳에는 원효스님을 비방하는 불제자들과 백성들의 글들
이 사방에 나붙었다. 방을 접한 김춘추와 지도부 대신들은 크게 당황하였고
신라의 고승대덕들은 민심의 향배에 신경을 써야 했다. 지리산에 은거하고
있던 원효스님은 서라벌에서 날아드는 소문을 듣고 속으로 무척 당황하였다.
‘아,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들 같으니.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를 곡해하고
있구나. 지난 육백여년 동안 이 나라를 지탱해온 못된 적폐(積弊)를 일소하
고 만백성이 일체가 되는 새로운 불국정토(佛國淨土)를 만들려는 나의
뜻을 저리 해석하다니-. 내 스스로 백성들 마음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파계
해야 한다. 파계하지 않고서는 일반 백성들이 나를 따르려하지 않을 것이
야.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가짐으로써 파계하는 거야.
출가 전에 싯타르타에게도 부인 아쇼다라가 있고 아들 라후라(羅睺羅)가
있지 않은가? 세속에 처자식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떠한 자
세와 태도로 불법을 전승시키고 실천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거야. 나의 뜻
이 김춘추가 원하는 뜻과 상치되지만 한편으로는 맞아떨어지는 바도 있어.
음-. 일체가 유심조로다. 나무아미타불광세음보살마하살-.‘
“스님, 스님, 서라벌 저자거리에 스님을 비방하는 벽보 수백 장이 붙었답
니다. 소식 들으셨어유?”
“나무아미타불관자재보살. 소승도 어제 들었습니다.”
“그럼, 어찌 하시게 유? 정말로 요석공주님과 혼인하시게 유?”
암자에 기거하는 나이 많은 불목하니가 원효스님에게 속삭였다.
“서라벌로 가서 소란을 잠재워야지요.”
“어떻게요?”
“공주가 소승을 원하니 일단 찾아가봐야겠지요.”
“네에? 저, 정말로 공주님과 혼례를 치르시게요?”
“삼라만상 모든 것이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 아니겠습니까? 나무아미
타불관자재보살마하살.”
원효스님의 여유 만만한 태도에 불목하니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참 동안
움직일 줄 몰랐다. 다음날 새벽 원효스님은 날이 밝기 전에 지리산을 내려와
서라벌로 향했다.
“폐하, 이제 사흘 후면 우리 요석공주가 원효스님과 혼례식을 치르는 날입
니다. 듣자하니 원효스님이 서라벌에 나타났다합니다. 혼례준비는 소첩이 아
랫것들에게 명해서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연 왕후 말대로 중구삭금이야. 중구삭금.’
“그, 그래요? 짐이 예부(禮部)에도 명을 내렸습니다. 부인은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춘추는 보희부인과 아침 수라상을 받고 있었다.
“폐하, 저자거리에 원효스님을 비방하는 벽보들이 수도 없이 붙었답니다.
이러다가 원효스님이 불량배들에게 욕을 보는 게 아닌지 불안합니다. 날짜
를 너무 길에 잡은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부인, 너무 불안해할 거 없어요. 못난 놈들이나 숨어서 욕을 하는 겁니다.
원효스님은 일당백, 아니지 일당 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교리
, 천문지리, 인생사, 역사뿐만 아니라 하늘 아래와 하늘 위 삼라만상에 대하여
모든 이치를 깨닫고 있는 분이랍니다.”
“그러니까 요석이 원효스님을 생불이라 하겠지요. 그러나 원효스님도 인간
인지라 어두운 밤에 홀로 길을 걷다가 악기(惡氣)에 의해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도 됩니다.”
“부인, 원효스님은 금강역사(金剛力士)입니다. 부처님께서 항시 원효스님
의 어깨에 앉아서 삿된 기운을 막아주지요.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조만간 원효스님이 요석궁을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나, 그래요? 페하께서 사람을 보내셨나요? 스님을 모셔오라고.”
보희부인은 기쁨반 걱정반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음-, 내달 초사흗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여봐라, 어서 대총관을 드시라하라.”
“아니, 폐하. 아침부터 오라버니는 왜 드시라고 하세요?”
보희부인이 고기반찬을 집어 김춘추의 밥숟가락에 올렸다.
“원효스님을 요석궁으로 들게 하려는 방법에 대하여 논의를 할까 합
니다. 이미 신라 전역에 우리 요석공주와 원효스님이 내달 초사흗날 혼
인한다고 공표하였으니 적절히 대처해서 혼인이 잘 마무리 돼야 하겠지
요. 원효스님을 스스로 요석궁에 들게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강제가
아닌 방법으로 스님이 자연스럽게 궁 안으로 들도록 묘책을 강구해야
겠어요.”
김춘추의 양 미간이 좁아졌다.
“폐하, 불문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서라벌 백성들까지 나서 우리 공주와
혼인하려는 원효스님을 강하게 비난한다고 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칫 혼사가 그르칠까 걱정입니다.”
“부인.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김춘추는 반주를 들며, 흡족한 얼굴로 보희부인을 바라보았다. 늘 울밑에
선 봉선화처럼 말수가 적고 궁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
리하는 보희부인이 고마웠다.
“뭣, 뭐라고? 사흘 전에 은지가 음독하였다고? 오-. 어찌 이런.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네에. 스님이 내달 초사흗날 공주님과 혼인하신다는 날짜가 발표되자
밤새 울다가 음독하였어요.”
극락의 주모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훔쳤다.
“주모, 정말로 은지가 음독자살을 하였소. 무덤은 어디있소?"
“이미 서라벌에 은지가 스님을 연모하다 죽었다고 소문이 파다하답니
다. 스님만 모르고 계셔요. 남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 이럴 수가. 내가 그 아이
를 죽게 만들었구나. 이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무시아본사샤카모니불. 샤카모니불-.”
지리산에서 내려와 서라벌에 도착한 스님이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 극
락에 들렸다.
‘저는 스님 없으면 팍-, 죽어버릴 거에요. 정말이라고요. 정말로 스님이
공주하고 혼인하면 이년, 정말로 칼을 입에 물고 죽을 거라고요.’
원효스님은 지난번 극락에 들러 은지와 술을 마실 때 은지가 하던 이야기
를 떠올렸다. 그때는 기녀가 그냥 지나가는 말이려니 하고 크게 신경을 쓰
지 않았었다.
“내가 화랑 시절 백제와 전투에서 무수히 적군을 베었어도 전혀 슬프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없었거늘. 그 아이의 죽음이 왜 이리도 가슴이 아
프단 말이냐. 진정으로 그 아이가 나를 은애하였더란 말이더냐?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도는 이 못난 중을-. 먼 훗날 해탈하지 못하고 명부(冥府)에 들
면 염왕(閻王)과 그 아이한테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한단 말인가. 은지
야, 은지야-. 미안하구나. 정말로 미안하다. 나무아미타불지장보살마하살.
지장보살마하살-.”
원효스님은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술마시러온 손님들
은 기이한 광경을 보고 무척 재미있어 하였다.
“허-. 그 유명한 원효가 기녀 하나 죽었다고 목을 놓아 울다니. 참으
로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로다.”
사내들은 스님을 훔쳐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아, 중도 사람이야. 남자이기도 하고. 자신을 짝사랑하던 여인이
죽었는데 중이라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어쩌면 깊은 산속에 들어 앉아
수도하는 스님들이 보통 사람보다 사람의 정이 더 그리울 거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가 원효스님을 바라보고 한마디 하였다.
“자네 말이 지당함세. 중이라고 벙어리, 봉사가 아니지.”
“따지고 보면 중들도 여인의 몸에서 나온 거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세상에 여인의 음문(陰門)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
가 어디있누?”
“그런가?.”
이번에는 나이가 가장 어려보이는 사내가 주모를 한번 돌아보고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이 나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어디 그분뿐인가? 고구려를 세운 추모왕(鄒牟王) 주몽도 알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영웅들은 모두 알에서 나오고, 우리같이 천한 것들은 여인의 거시기
에서 나오나?”
술꾼들은 술잔을 들고 배꼽을 잡으면서 원효스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효스님은 바랑을 뒤지더니 목탁
을 꺼내 들었다.
무상심심미묘법 (無上甚深微妙法) / 백천만겁난조우 (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 (我今聞見得受持) / 원해여래진실의 (願解如來眞實義)
옴 아라남 아라다 / 옴 아라남 아라다 / 옴 아라남 아라다
츰부츰부 츰츰부 아가서츰부 바결람츰부 암벌람츰부 비러츰부 발절람
츰부 아루가츰부 담뭐츰부 살더뭐츰부 살더일허뭐츰부 비바루가찰붜츰부
….
원효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게송(偈頌)과 츰부다라니를 외치면서 자
신으로 인하여 목숨을 버린 은지의 넋을 위로하였다. 저승까지 들릴 것
같은 목탁소리와 낭랑한 염불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주점 안에
울려 퍼졌다. 원효스님의 염불소리에 주점은 잠시 숙연해 졌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아, 과연. 과연 큰 스님이시다. 천하디 천한 기녀의 죽음에도 통곡하며
염불을 하다니. 정말로 큰 스님이 맞구나. 보통 땡중 같았으면 당장 내쫓
았을 텐데. 원효스님의 염불을 들으니 속이 다 후련하면서도 슬프고
가슴 속에 바위처럼 박혀 있던 백년 묵은 응어리가 단번에 눈 녹듯 하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가?”
“이 사람아, 그러니 신라백성들이 대덕(大德)이니 생불(生佛)이니 따르
며 존경하지 않는가?”
“저런 분이 공주와 혼인을 하다니 참말로 아깝도다. 신라 만백성을 부
처님말씀으로 계도해야 하는데.”
“소승이 눈치도 없이 자리를 시끄럽게 하여 송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지장보살마하살.”
“아이고, 스님. 아닙니다요. 이놈, 큰스님 염불소리 듣고 감격했습니
다요.”
은지를 위한 염불이 끝나자 원효스님은 술꾼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돌
리며, 위로하였다. 조금 전에 원효스님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술꾼들도 헌헌장부(軒軒丈夫)가 발설하는 염불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떤 사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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