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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궁에 내린 비(5)

* 창작공간/중편 - 요석궁에 내린 비

by 여강 최재효 2017. 7. 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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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석궁에 내린 비(5)




                                                                                                                                       - 여강 최재효






 자연스러운 법계(法界)의 진리란, 진리가 없으면서도 진리 아님이 없고 문이

아니면서도 문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큰 것도 없지만 작은 것도 없

모자란 것도 아니지만 넘치는 것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지만 많은 것도 아니

다. 크지 않은 까닭에 남음이 없고 작지 않은 까닭에 우주의 텅 빔으로 하여 넉 

넉넉함이 있다.


 소걸음으로 가는 까닭에 능히 삼세(三世)의 세월을 품으며, 늘어나지 않기 때

에 전체를 순식간 밀어 넣는다. 고요함도 움직임도 아니므로 삶과 죽음이 열

이 되고 열반이 생사가 된다. 하나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닌 까닭에 하

리가 일체의 진리가 되고 일체의 진리가 곧 하나의 진리가 된다.


 삼라(森羅)가 하나에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 가운데서 한량이 없음을 알 수 있

하나가 모든 것에 들어 있기에 한량없는 가운데서 하나를 알 수 있다. 서로

걸림이 없는 없다는 것 즉, 팔상(相入)은 서로가 돌고 돌아 거울이 그림자

비추듯 실제로 생기게 하지 않음으로 장애가 없다.
 

 암수가 만나서 결합을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그 법칙 중에서 첫째에

해당 한다. 자연은 그렇게 해서 연속되어가면서 유지가 되는 까닭이다. 음양

이 결합하는 것은 모든 자연계에서 항상 이뤄지고 있는 것이니 인간이라고

해서 별다른 법이 적용될 수가 없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삼라

만상이 모두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서로 결합하고 탄생시켜가면서 유지된다,


 음양의 결합이 바로 궁(宮)의 합(合)인 것이다. 이 말은 같은 말로 이해를 하여

도 된다. 그러니까 자연의 음양이 서로 결합을 하고 동물의 자웅(雌雄)도 서로

결합을 한다. 미물인 곤충들도 서로 자신의 종족을 유지하라는 조물자(造物者)

의 설계대로 궁합한다. 물고기들이 암수결합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보면 참

으로 경이스럽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고기들이 상대를 고른다는 점이다. 수컷은 누가 낳았는

지도 모르는 알에 함부로 정액을 뿌리지 않는다. 참으로 오묘한 일이다. 물고

기도 궁합을 따진다. 결국은 가장 힘이 세고 영리한 물고기가 종족 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식(食)과 색(色)은 양면성이 있다. 식이 있어야 색이 있고 색이 있어야 식도

있다. 먹어야 살고 색이 있어야 자식을 낳으며, 대를 이어갈 수 있다. 음식남녀

(飮食男女)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다. 큰 욕망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근원적

인 단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식색(食色)이 근절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어느 정도 긍정할 것인가. 시대에

따라 지역문화권에 따라 통제가 다르다. 색에 대한 규제가 특히 그렇다. 색에

대한 절제는 성인(聖人)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욕정은 하늘이 준 선물이다.

성인보다 하늘이 더 높다. 사랑채와 안채를 분리하는 이유는 과색(過色)에

대한 통제로 이해된다.


 “폐하, 폐하께서 손수 요석궁에 납시어 요석공주와 원효스님의 혼례식을 집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원효스님이 지금 어디에 기거하고 있는지도 모르

는데요?”


 김유신은 김춘추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낮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춘추는 점심 수라상을 받으며, 처남 김유신 그리고 두 왕후와 더불어

조촐한 주연을 즐기고 있었다.


 “원효가 짐의 뜻을 알고 있으니 내일 제발로 요석궁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혹여 일이 그르칠까 예부의 관리들을 시켜 원효스님을 찾아보라고 이미 지 

시해 놨습니다. 스님은 천리안을 지녔으니 짐의 뜻을 알아차렸을겁니다.”


 “과연 폐하십니다. 제 아무리 원효라고 하여도 나라님이
부르는데 안 오고

배기겠습니까?”
 김춘추는 신라의 지존이면서 요석공주의 아비로 혼일날짜를 일방적으로 발

표해 놓고 걱정이 많았다.


 만약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혼인에 응하지 않는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백성들에게 큰 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이일은 신라왕실과 김춘추의 자존심

걸린 중차대한 일이었다.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혼인이 김춘추의 뜻대

진행되지 않는다면 김춘추의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

이다. 


 “폐하, 소신의 생각인데요.”
 “대총관 말씀해보세요.”
 “내일 만약에 원효스님이 요석궁에 든다면 요석궁에는 요석공주만 있게 하는

게 어떨지요?”


 “네에? 요석공주 혼자만 있게하라고요?”
 김춘추는 애지중지하는 딸 혼자만 있게하라는 김유신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했다.


 “폐하, 오라버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혼례식을 치르기 이전에 미리

두 사람이 상견례라도 하라는 취지에서 그리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혼

인날이 앞으로 사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문명왕후는 오라비 김유신을 거들었다.


 “폐하, 왕후의 생각도 괜찮습니다.”
 문명왕후의 제안에 김유신도 흔쾌히 동의하였고, 옆에 있던 보희부인은 말없

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원효를 요석궁에 초대해 놓고 요석공주만 머물게 한다? 하긴, 두 사람은 이미

구면이고 자주 만난 사이니 걱정할거야 없지. 야심한 시간에 호젓한 궁에 남

녀 둘만 있게 된다면 역사가 일어날 테지. 아무리 법력이 대단한 원효라 할지

라도 신라 최고 미녀인 요석공주 앞에서는 파계를 하게 될게야.


 그리된다면 요석이 듯대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 으음-. 그래 오늘밤

원효와 요석공주를 합방시켜보는 거야. 혼례일도 곧 다가오니 미리 상견례

겸 운우지정을 맺도록 해야겠어.’
 김춘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폐하, 뭘 그리 골몰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오.”
 보희부인이 고기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김춘추 입안에 넣어주었다. 김춘추

는 얼른 안주를 받으며 보희부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부인, 그 아이가 오늘밤이라도 합궁이 가능하지요?”
 “폐하, 걱정마세요. 달거리 끝난지 달포가 지난걸요. 어쩌면 앞으로 사나흘 뒤

가 그 애가 회임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요. 그럼, 오늘밤 원효를 불러도 될 것 같군요. 험-, 어험.”
 두 사람이 귓속말을 주고받자 김유신은 문명왕후 얼굴을 쳐다보며 한쪽 눈을

찡끗하였다.


 “오라버니, 한잔 받으시어요. 오늘밤 요석궁에 청사초롱을 밝혀야 겠어요.

오라버니께서 도와주세요.”
 “왕후께서는 요석궁 주변에 잡인들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시고 대례복을 준비하

시고 맛있음식을 많이 차려놓으세요. 맛 좋은 술도 서너 독 준비하셔야 할 겁

니다. 요석궁 주변에 혹여 모르니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준비시키겠습니다.


 김유신은 원효스님이 요석궁에 들었다는 소문이 나면 왈패들이 요석궁 주변에

몰려들어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하였다.


 “오라버니, 걱정 마셔요. 이미 병부랑에게 말해 놓았습니다. 쥐새끼 한 마리 들

서도 안 된다고 했어요. 원효스님이 다른 불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저자거리 주점 작부가 자살을 하였다지

요? 그 아이가 평소에 원효스님을 흠모하였었나 봅니다. 서라벌 여인네 치고 원

효스님을 흠모하지 않는이가 있겠어요?”
 “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오라버니, 혹시 옛날 천관녀가 생각나세요?”
 “아, 아닙니다. 다 지나간 일입니다. 험-.”
 김유신은 잠시 화랑시절 자신을 좋아하였던 여사제(女司祭)인 천관녀를 떠올

렸다.


 “오라버니, 지소공주가 오라버니를 많이 따르지요?”
 “아, 지소공주요? 제가 가장 아까는 조카딸입니다. 지소공주도 이제 짝을 찾아

때가 된 듯 합니다만.”
 김유신은 두 눈을 껌뻑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만간 제가 오라버니에게 큰 선물을 드릴 겁니다.”
 “제가 왕후에게서 선물을요?”


 “요즘 폐하와 그 문제로 상의 중이오니 조만간 결정이 날 겁니다. 오라버니

께서 심신을 바쳐 신라의 삼국통일에 전념하고 계시니 저희 왕실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드려야지요.”
 “고맙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문명왕후와 언니 보희부인 그리고 오라버니 김유신은 신라의 왕실 사람이면서

늘 가슴 한편에는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골의 신분으로 신라 최초로

왕위에 오른 김춘추는 경주가 본관이지만 김유신은 김해가 본관이었다. 즉, 금

관가야국의 후손인 김유신은 경주토박이 신라왕실의 인척인 된 것으로 많은 진

골들의 견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진덕여왕이 붕어하자 김유신은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유신이었지만 진정한 진골이 될 수 없었다. 신라왕실의 인척이기

하였지만 결코 신라왕실의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이 같은 김유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누이동생이며, 김춘추의 정실

왕비인 김유신의 여동생 김문희는 지아비인 김춘추에게 지소공주를 오라비인

김유신에게 하가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지상 초대 과제인 고구려와

백제를 신라의 세력권에 복속시킨 뒤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소공주를 김유신에

게 하가시킨다는 것은 곧 김유신이 진정한 진골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는 당돌한 문명왕후가 김유신의 누이동생이기에 가능한 계획이었고 실행가

능한 일이었다. 김유신은 누이동생 김문희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

었다. 예전에도 문명왕후는 그 같은 언질을 여러번 한 적이 있었다.


 김춘추를 비롯한 삼남매는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주연을 즐겼다. 보희부

인은 주연 도중에 빠져나와 시녀들과 요석궁으로 향했다. 지아비 김춘추는 당장

오늘밤에 원효스님과 요석공주를 동침시킬 요량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그래 잘 있었느냐?”


 모녀가 비록 같은 왕궁에 기거하고 있었지만 매일 얼굴을 보는 것은 아니었

다. 이삼일에 한번 요석공주는 부왕 김춘추와 보희부인을 찾아뵙고 문안인사를

올렸다. 비록 김춘추가 요석공주를 애지중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모 문명공주

곁에는 김춘추의 막내딸 지소공주가 있고 여러 명의 왕자와 전군들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미리 기별도 없이 납시셨습니다.”
 “공주야, 준비를 해야겠다.”
 “주, 준비라뇨?”
 “부왕이 오늘 밤에 원스님을 모셔올 계획인 것 같구나.”


 “네에? 오, 오늘밤에요? 혼인날이 아직 며칠 더 남았는데요.”
 요석공주는 당장 오늘밤 원효스님을 맞아야한다는 모후(母后) 보희부인의 말

에 기분이 묘했다. 그렇지 않아도 원효스님과 국혼(國婚)이 코앞으로 다가온지

라 마음이 급하고 심란해 있었다.


 “어머니, 그럼 오늘밤에 원효스님과 동침을 해야 하나요?”
 “그, 그래야 할 것 같구나. 요석궁에 스님이 오시면 당연히 그리해야 할 것 아니

니?  며칠 후면 정식으로 혼인을 해야할 사이니 미리 상견례라고 생각하고 그리

해야 할 것 같구나.”


 “아, 알겠어요. 어머니.”
 ‘아-, 드디어, 드디어 오늘밤에 스님과 동침을 하다니 이게 꿈은 아닐 터.’
  요석공주는 원효스님과 동침을 해야 한다는 모후의 말에 전율하였다.


 “이곳에 원효스님께서 계시렷다.”
 “나무아미타불-. 그러하온데 어인일인지요?”
 “지엄하신 나라님의 명이시다. 지금 당장 스님을 왕궁으로 모셔가야 한다.”
 군관이 2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 남산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에 들이

쳤다.
 

 원효스님은 지리산에서 서라벌로 들어온 뒤로 남산에 있는 암자에서 두문불출

하고 있었다. 김춘추가 이미 요석공주와의 혼인날을 일방적으로 공포한 뒤라 만

자신이 서라벌이 아닌 먼 곳으로 떠난다면 김춘추와의 무언의 암약(暗約)이

깨질 것이고 그리 될 경우 김춘추의 미움을 받을 것이 뻔했다.


 원효스님이 비록 출가인 이고 몸과 마음이 바람처럼 자유스럽다고는 하지만 이

번만은 달랐다. 원효스님 자신이 이미 몰가부란 노래를 만들어 서라벌 저자거리

를 누비고 다니며, 부르고 다녔기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따르지 않을 경우 자신에

게 상당한 위해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모르는 척하며 왕의 뜻에 따르는

것도 꽤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아미타파, 군사들께서 누추한 곳에 있는 소승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려.”
 “스님, 대왕께서 스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군관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원효스님을 마주하였다.
 “아미타불. 날이 너무 밝으니 해가지면 가지요.”


 “스, 스님.  해가지려면 아직도 많이 기다려야 하는데요. 이 길로 어서 저희들

따라 가시지요.”
 원효스님이 워낙 대단한 불력을 지닌 분이라 행여 도술을 부려 다른 곳으로 도

망이라도 갈까봐 군관은 몸이 달았다.


 “아미타파. 소승은 햇빛이 너무 밝으면 앞을 못본답니다. 그러니 해가 질 때

까지 기다려주시지요. 소승 어디로 도망가지 않습니다. 소승도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합니다.”


 “스님, 그럼 저희들은 이 암자에서 해가질 때까지 기다릴 테니 행여 도술을 부

려 다른 데로 가실 생각은 아예 하지마셔요.”
 “아미타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승 약속은 반드시 지키리다.”
 원효스님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면벽하며 독경을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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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공주님, 오늘밤 원효스님과 합궁하시는 거죠? 공주님은 참 좋으시겠다. 오

랫동안 공주님은 원효스님을 오매불망 사모해 오셨잖아요. 드디어 오늘밤 공

주님께서 사모하고 흠모해 오셨던 임과 밤을 새우실 테니 얼마나 좋으시겠어

요.”


 “간전아, 일국의 공주인 나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공주님을 어려서부터 모셔온 제가 누구보다도 공주님 마음 속을 잘 고 있

지요.”
 30여년 가까이 요석공주의 몸종 노릇을 하고 있는 간전이는 요석공주와 단 둘

이 있을 때는 자매나 다름없었다.


 간전이는 얼굴이 곱상하고 몸매도 빼어난 편이라 궁중에서도 왕자나 전군들

눈에 들어 유혹의 손길이 많았다. 그러나 간전이는 오로지 요석공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나이도 요석공주와 비슷하여 요석궁애서는 마음을 터놓

생활하였다. 요석공주가 김흠운과 혼인하여 하가하여 궁궐 밖으로 나가 살때

에도 간전이는 요석공주 부부를 정성을 다하여 보필하였다.


 요석공주는 몇 해 전 속절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간전이에게 궁궐수비대 소속

군관을 소개하여 부부의 연을 맺도록 주선하였다. 혼인한 이후로 간전이는

요석공주를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며 더욱 충성을 다하였다. 요석공주는 요석

궁의 모든 일을 간전이에게 맡기다 시피 하였다. 요석공주가 궁 밖으로 외출할

때는 물론 궁궐내에서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래. 네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구나. 네가 요즘 낭군과 깨볶는 재미

쏠쏠하다 들었다. 그래, 낭군이 밤마다 잘 해주던?”
 “밤마다 어찌지나 저를 못살게 괴롭히던 지요. 죽을 맛이 랍니
다.


 “네가 진정으로 복에 겨운 소리를 다하는구나. 이제는 너도 사내 맛을 잘 알

렸다. 간전아, 이리 가까이 와보거라.” 
 “공주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너희 부부는 요즘 어떤 체위를 즐기느냐? 취침 전에는 어떤 술을 마시고?

낭군이 전희(前戱)를 어느 정도 해주느냐?”
 “어머나. 공주님, 망측스러워요.”


 “별게 다 망측스럽다고 하는구나. 너는 나를 곁에서 수십 년을 받들어 모시지

았느냐. 내가 묻는 말에 하나도 빠짐없이 대답해 보렴.”
 요석공주는 주변에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데도 간전이와 귓속말로 뭐라고 한

동안 속삭였다. 두 사람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이야기를 하다말고 배꼽을

았다.


 “아이, 망측하여라. 공주님, 그렇게 큰 양물은 저도 아직 구경해보지 못한 걸

요.
 “너, 마음장상이란 말 들어보았니?”

 “공주님, 마음장상이 무슨 말씀이어요?”


 “모르면 알 것 없다. 법력이 높고 오래 수양한 스님들은 거시기가
마음장상의

상태로 있다고 하더구나.”
 간전이는 깔깔대는 요석공주를 보며 공주가 왜 웃는 줄도 모르면서 같이 웃어

주었다.


 “마음장상이 뭘까? 이년은 그게 무슨 듯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공주님, 알려

주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나도 아직 그 뜻을 명확히 모르고 있단다. 오늘밤 그 정체를 확인해 볼 거야.

내일 날이 밝으면 그 오묘한 이야기를 해주마. 기대하렴.”


 “어머나, 공주님. 정말이지요?”
 간전이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요석공주의 몸을 살살 밀었다.


 “간전아, 내 몸에 때는 없을 테니 너무 아프게 밀지 말고 구석구석 잘 닦으렴.

저녁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자칫 몸에 멍자국이나 상처가 나

면 큰일을 망칠 수 있단다.”
 “염려 마시어요. 이 년이 공주님 목욕을 어디 한두 번 해보나요. 평생 동안 한

일인걸요.” 


 “간전아, 내 몸이 예전같지 않지?”
 요석공주는 커다란 경대 앞에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피를 살펴보

았다.


 “공주님, 이 서라벌에서 공주님 몸매 따라갈 여인네가 아직은 없는걸요. 지소

공주님도 빼어난 미모라고는 하나 아직은 젖냄새가 난답니다. 여자는 혼인하

애를 한두 명쯤 뽑아내야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가야 남정네들이 탐내는 육덕이 된답니다.


 공주님은 이미 딸 둘을 뽑으셔서 가슴이며, 엉덩이에 적당하게 살이 오르고

키도 크시니 서라벌 남정네들이 공주님이 서라벌 저자거리를 행차하실 때 마

다 공님을 훔쳐보기 위하여 구름처럼 몰린답니다.”
 간전이는 요석공주의 하얀 피부에 살살 물을 뿌리며 재잘거렸다.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나도 혼인하기 전에는 가슴과 엉덩이에 살이 별로 없어

걱정을 많이 하였단다. 그러나 김흠운과 혼인하여 딸 둘을 낳고 난 뒤로는 네 말

대로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더구나. 이제는 이렇게 찰지고 풍덕한 육신

에 진정한 주인이 없으니 그것이 아쉬울 뿐이구나.”


 “공주님, 흠운 장군님 돌아가신 뒤로 서라벌에서 이름난 화랑이나 미남자들을

많이도 만나서 밤낮으로 즐기시지 않으셨습니까?”
 간전이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랬지. 그러나 진정한 사내는 아직 한명도 만나질 못했구나. 하나같이 풀죽

먹고 살았는지 사내구실을 제대로 못하더구나. 신라의 사내들 중에 누가 나

흡족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공주님, 오늘밤은 공주님의 인생이 달라질 거라 믿어요. 법력이 태산같이 높

고 오래 수련한 스님들은 운우(雲雨)도 대단할 것 같아요. 아마도 이 요석궁이

두분이 쏟아내는 비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이랍니다. 호호호-”


 “그래. 당연히 그럴 테지. 안 그러면 나는 크게 실망할거야. 신
최고의 불제

자를 오늘밤 맞이하는 나는 벌써부터 심장 쿵쾅거리는구나.”
 요석공주는 과연 원효스님이 부처님처럼 마음장상의 신체를 지닌 상태인지가

무척 궁금하였다.


 “스님, 저 문천교(蚊川橋)만 건너면 요석궁까지 가는데 수월할 겁니다.”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오늘밤 신방(新房)을 꾸민다는 소문이 서라벌 저자거

에 파다하게 퍼졌다. 서라벌 홍등가는 물론 여염(閭閻)의 거리조차도 벌집을

쑤신 것처럼 시끄러웠다. 서라벌 사람들은 땅거미가 지기전부터 원효스님이

지나갈 만한 길거리에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도 문천교는 벌써부터 원효스님이

지나갈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저기 원효스님이 온다.”
 “드디어 땡중이 모습을 나타냈구나.”
 “우와, 소문이 정말이었네.”


 “이 길은 요석궁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오늘밤 원효가 정말로 요석공주를 품어

요량인가 보네. 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원.”


 “젠장, 우리 같은 버러지들은 언감생심이여.”
 “육두품 밖에 안 되는 중이 어떻게 진골의 공주를 품는단 말이여.”


 “부럽다. 부러워. 중이 신라 제일의 미색(美色)인 요석공주를 다 안다니. 그렇게

력이 태산 같다는 원효가 스스로 파계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말세로구

나. 말세야. 중이 여인을 몸을 탐하려 스스로 부처님을 배신하다니.”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드디어 원효가 미쳐가는구나. 불제자로서 세속의 여

을 품다니. 아-, 이제 신라의 불성(佛性)은 끝나는가.”


 “나무석가모니불. 원효스님이 부럽구나. 나는 언제 나라님의 부름을 받아

를 안아보나.”


 “억울하면 원효처럼 불법을 공부해. 나라님에게는 지소공주도 있잖아.”
 문천교 근처로 몰려든 서라벌 백성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면서 원효스님

가까이서 보려고 서로 밀고 떼밀며 안간힘을 썼다.


 문천교 아래를 흐르는 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 양쪽에 구름처

럼 몰려든 서라벌 백성들의 시선을 의식한 원효스님은 마음이 무거웠다. 서라벌 사

람들에게 살아있는 부처로 칭송받고 있는 자신이 하룻밤 정욕(情慾)의 노예가 되

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서라벌 백성들의 눈을 피해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

다.


 “이보시오 군관.”
 “스님, 부르셨소?”
 “내가 목탁을 두드리며 저 문천교를 건너갈 거요. 내가 다리 한가운데 쯤 도달

면 나를 사정없이 저 다리 아래로 밀어서 내가 물에 빠지도록 해주시오.”


 “네에? 저 차가운 물에 빠트리라고요? 그러다 감기라도 드시면 어쩌게요.”
 “염려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주시구려. 부탁이오.”
 원효스님의 말에 군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

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

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


 문천교는 서라벌 한 가운데를 흐르는 큰 내를 가로지르는 다리였다. 다리의

모도 제법 커서 다리 아래에는 거지들이 살고 있었다. 원효스님은 문천교

아래 막을 짓고 사는 거지들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먹을 것이 생기면 스님

은 손수 막 안으로 들어가 굶주린 거지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용기를 심어

주었고 그런 원효스님을 거지들은 존경하며 따랐다.


 소문을 듣고 문천교 아래 움막에 사는 거지 떼들이 문천교 위로 올라와 원효

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행여 원효스님이 먹을 것이라도 주지 않을까 무척

기대는 눈치였다. 그러나 저 멀리 원효스님이 군사들의 호위 속에 다가오자

거지들상심하였다.


 “에이. 오늘은 스님에게 얻어먹을 게 없을 것 같다. 군사들과 함께 오니 다가설

수가 없겠구나. 얘들아, 움막 안으로 들어가자. 괜히 군사들에게 붙잡히면 경을

칠라.”


 “왕초, 스님이 먹을 것을 안 주셔도 인사는 해야지요. 우리들을 얼마나 예뻐해 

주시는데요."


 “왕초, 맞아요. 스님에게 절을 올려야지요. 예전에 우리들에게 음식과 입을 옷

을 얼마나 많이 주셨는데요. 아무리 거지지만 사람의 도리는 해야 하잖아요.”
 거지들은 구경나온 사람들과 섞여 문천교 위에서 원효스님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원효스님이 다리를 건너신다.”
 거지 아이가 소리 쳤다.


 “나무아미타불. 원효스님을 뵙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스님을 뵙습니다. 그간 여여하셨는지요?”
 문천교 아래에 사는 거지 왕초가 거지들 서넛을 데리고 나가 막 문천교에 들어

원효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놈들, 어느 안전이라고 길을 막느냐. 어서 썩 비키지 못할까?”
 “군관, 가만두시오. 나를 맞이하러온 신라의 불쌍한 백성이오.”


 “스님, 건강하신지요? 저희들은 그냥 스님 얼굴이나 한번 뵈었으면 해서 이렇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저희들 절을 받으십시오.”
 거지들이 일제히 원효스님에게 큰 절을 올리자 다리 양쪽에 서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미타불, 이들에게 부터님의 자비가 있으시길.”
 원효스님은 입고 있던 가사와 장삼을 거지들에게 벗어주고 바랑 안에 있던 주먹

밥과 엽전을 거지들에게 건네주었다. 스님은 속옷 차림이 되었다.


 “스님, 고, 고맙습니다요. 아직은 이른 봄이라 날씨가 쌀쌀한데 보잘것 없는 천한

거지들에게 옷을 모두 내주시다니요.”
 “스님, 감기 드세요.”


 “아미타불, 나에게는 그 옷이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그 옷을 가져가서 아이들

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세요. 이제 소승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이 속옷

이 전부랍니다.”
 원효스님이 문천교 다리 위에서 옷을 벗어 거지들에게 건네자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과연, 과연 원효스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이 틀림없구나. 우리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우리들은 배불리 잘 먹고 잘 살면서도 저 거지들을 구박만 했지 한번 도와주

못했다.”


 “저 거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신라의 백성이다. 오늘 스님이 우리들에

큰 깨달음을 주셨다.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님을 비방한 내 자신이 부

끄럽구나.”
 구경하던 사람들 틈에서 자성과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
 “스님-, 저희들은 그저 스님 얼굴만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거지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원효스님은 속옷 차림으로 목탁을 두드리며 발걸

음을 옮겼다. 원효스님이 다리 한가운데 이르자 갑자기 군관이 다른 사람들이

치 채지 못하게 원효스님을 순식간에 밀어 다리 아래로 떨어트렸다.


 “앗-, 스, 스님이 다리 아래로 떨어지셨다.”
 “오오-, 저런. 스님이 다리 아래로 떨어지셨구나.”
 “얘들아, 어서 물에 뛰어들어 스님을 구하자.”


 원효스님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자 거지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병사들이나 구경꾼들은 소리만 지를 뿐 누구하나 물속으

로 뛰어들지 않았다. 거지들이 원효스님을 물 밖으로 안전하게 모셨다.


 “스님,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
 군관이 다가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원효스님에게 물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괜찮습니다.”
 원효스님의 모습이 물에 빠진 새앙쥐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봐라, 너희들이 스님을 요석궁까지 안전하게 모시 거라. 내가 너희들에게

수고비는 넉넉하게 주겠다.”
 “나으리, 수고비는 필요없습니다요.”


 등치가 제법 크고 젊은 거지가 원효스님을 들춰 업고 뛰기 시작하였다. 문

천교 주변에 몰려들었던 서라벌 사람들은 방금 전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

졌던 믿기 어려운 장면에 잔잔한 감동을 받은 듯 모두 말이 없었다. 어떤 사

람들은 원효스님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합장한 자세로 ‘나무아미타불’

을 연호하였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스님을 뵙습니다.”
 “아미타불. 공주님을 뵙습니다.”
 원효스님과 요석공주는 요석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방에서 대면하였다.


 “스님, 문천교에서 떨어지셨다면서요?”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한눈을 팔다가 그만-.”

 공주는 배꼽을 잡으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스님, 물을 따뜻하게 덥혀놓았습니다. 목욕부터 하세요.”
 “공주님, 고맙습니다.”
 원효스님은 요석공주의 육체와 비단옷에서 풍겨져 나오는 향긋한 냄새에

취해 정신이 몽롱하였다.


 “스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오늘밤 자루 빠진 도끼에 아주 단단하고 실한

자루를 박아주셔야 합니다.”


 “아미타불-, 여부가 있겠나이까. 소승이 신라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썩은

기둥을 잘라내고 천년만년 이 나라 하늘을 지탱해 줄 금강석 보다 단단 기둥

을 깎아드릴 것입니다.”


 “스님,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아미타불. 기대하셔도 됩니다. 소승 이미 단단한 자루를 준비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말속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외설스러우면서도 결코 그렇

지도 않은 듯 했다.


 “스님, 잠시 가만히 서 계셔요.”
 요석공주는 흙탕물로 범벅이 되다시피 한 원효스님의 속옷을 벗겼다. 초면

도 아니고 이미 수년전부터 궁궐 안에서 개최되는 법회나 분황사 혹은 다른

사찰의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수도 없이 봐 왔던 관계였다. 또한 최근에는

요석공주가 원효스님에게 모란꽃과 법복을 선물하기도 하였으며, 모후 보희

부인과 함께 분황사로 원효스님을 찾아뵙기도 하였다.


 알몸이 된 원효스님은 요석공주 앞에서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해

하지 않았다. 요석공주는 마른 수건을 원효스님에게 건네며 목욕물이 준

비된 방으로 안내하였다. 원효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합장으로 요석공주

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원효스님은 욕조가 준비된 장소로 발길

을 옮기기 전에 요석공주의 방을 빙 둘러보았다.


 방의 크기는 대략 성인 50여명이 앉아서 담소를 나눌 정도였으며, 벽은

붉은색과 황금색 그리고 보라색 벽지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춤을 추는 그림

이 그려진 벽지로 장식되어 있고 바닥은 당나라에서 수입한 서역(西域)의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 한쪽에 성인 두세 명이 누워도 넉넉해 보이는 상아로 장식된 침대가 있

었는데 위로 노란 사(紗)로 된 장막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붉은 비단 이불과

다정하게 놓여 있는 베개 두개가 첫날밤을 준비한 동방(洞房)이 틀림없어 보

다. 침대 양쪽으로 어른 키만한 황촛대에 황촛불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었다.  


 방 한가운데는 둥근 탁자가 있었는데 10명이 빙 둘러 앉을 정도로 커보였

다. 탁자 위에는 보통 사람들이 구경할 수 없는 산해진미가 태산처럼 쌓여

었고 오방색으로 치장된 술병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술들로 가득 담겨져 있었다.


 “스님, 어서 씻고 나오셔요. 이 방에는 저와 스님 단 둘 뿐이어요. 오늘밤

부터 열흘간 이방에서 스님은 저와 머물러 있어야 해요. 저와 스님 그 누구

도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된답니다. 군사들이 문 앞을 지키고 서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할 거에요. 이 모두가 부왕의 명령이랍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뜻이겠지요.”


 “아버님의 뜻이던, 부처님의 뜻이던 아무려면 어때요?”
 “두 분의 뜻이라면 소승은 이제 꼼작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님, 목이 말라요. 어서 목욕을 하고 나오셔요.”
 “아미타불-.”
 원효스님이 목욕재계를 마치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요석공주는 원효스님

을 왕실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마주 앉았다.


 “스님, 너무 근사하세요. 이렇게 촛불아래에서 단 둘이 있으니 지아비와 지어

미가 다정히 정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합환주를 준비하였니다.”


 “합환주는 혼례를 치른 신랑과 신부가 초야(初夜)에 마시는 술인데 소승과 공

주님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소승은 그저 옷이나 말려 입고 바로 나갈 참이었

습니다.”


 “아잉-. 스님, 너무 재미없으셔요. 정녕 그럴 뜻이 아니면서 그렇게 말씀하시

기 예요?” 
 유리로 된 잔에 요석공주가 붉은색이 감도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술을 가득

따라 원효스님에게 건넸다.


 “아미타불-.”
 “스님, 오늘밤만은 제발 아미타불 좀 그만 찾으세요. 그 동안 수억 번도 더

그분을 호명하셨으니 극락에 계시는 아미타불께서 충분히 스님의 마음을

아셨을 거예요. 그러니 오늘밤에는 저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마셔요.

아셨죠?”

 “아미타불-.”


 “스님, 요석궁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지요. 이제는 아무 걱정 하지마시고 제

품안에서 평안히 쉬셔요. 일체가유심조라고 스님께서 갈파하셨듯이 제 치맛

속이 극락이라고 생각하셔요.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옥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까요.
 여인의 진향 살내음이 고된 산 생활에 찌든 원효스님의 오감을 서서히 무기

력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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