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망령이여
- 여강 최재효
그대여, 그대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소
나 자신이여,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거요
너와 나의 존재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소
하지만, 어제는 내가 너였고
오늘은 내가 나이기도 하고 혹은 아무 것도 아닐 진대
그대여, 그대가 그대 자신을 진정 누구인지 알고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면
내일 아침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또는, 약간의 비슷한 분위기로 바뀔 수 있다면
감히 고개를 들어도 미안해 할 것이 있겠소
아아, 희귀하고 또한 존귀한 그대여
세상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는 것이라오
내가 그대이고 그대가 역시 나 일진대
생겨날 수 없는 이 꿈같은 일이
나와 그대가 일치하지 못한다면 어찌 응결될 까요
남 몰래 풍파(風波)의 다리를 건넜고
남아 있는 중간의 험로(險路)를 지날 수 있다면
나는 분명히 순진한 1인칭으로 살 수 있을 테고
너 역시 불순하지 않은 1인자로 살 수 있을 터
그리하면 그림자 옷 한 벌은 얻어 입을 수 있겠지
오오, 있는 듯 없는 듯 가엾은 그대여
세상 모든 미움이 나로부터 기인한 것을 아실 테죠
그대 앞에 서 있는 저 망령(妄靈)의 집단들이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망령은 정처없이 떠도는 애초의 이 몸인 것을요
- 창작일 : 2016.6.14.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