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어(自語)
- 여강 최재효
내가 지금 무엇에 홀려 정신없이 서성이고 있는가
어느 봄날, 본디 나는 저 허공에서 왔거늘
무슨 연유로 수미산(須彌山) 남쪽 물가에 내려 앉아
가당치도 않은 세사(世事)에 미혹되어 밤마다 뒤척이는지
날 밝으면 붉은 가면(假面) 쓰고 집을 떠나서
해 저물면 하얀 얼굴로 무겁게 돌아와 헛소리만 해대니
그대여, 내가 왜 여기서 방황하는지 알고 있다면
백천 만년 체증(滯症)이 시원하도록 말씀해 주시구려
밤을 새워 부르던 청춘가는 아직도 입가에 맴도는데
명경(明鏡) 속 쇠잔(衰孱)한 모양은 무척 낯설기만 하다네
명일(明日)이면 나는 포말되어 저 끝까지 밀려나가
까마귀 까치에게서 조차 외면당할까 두렵기만 하다네
요즘 이 몸은 시나브로 유식한 촉견(蜀犬)이 되어
달뜨는 밤이면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밤새워 짖어 대니
차가워진 폐부(肺腑)를 독주(毒酒)로 겨우 씻어내야
수마(睡魔)가 찾아오는 참으로 처량한 신세 되었다네
내 무슨 일로 수미산 아래에서 이리 방황하는지
오로지 저 창공의 신명(神明)만이 아실 테니
어찌 세치 혀를 함부로 놀릴 수 있으리오
만유(萬有)가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안개 속인 것을
공맹도 한 세상 주유(周遊)하다 허망한 말만 남겼고
능인이나 야훼도 가까운 가솔만 다독거리다 지나쳤지
하늘에 명멸하는 뭇별들도 모두 수신(守神)이 있을 터
저쪽에서는 내가 별일 테고 또한 탄식일 수도 있고
- 창작일 : 2016.02.27일 02:30
[주] 1)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산.
수미산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승신주·섬부주(贍部洲)·우화주·구로주의
4대 주가 동남서북에 있고, 산의 가장 낮은 섬부주에 인간계가 있음.
2)촉견 - 촉견폐일(蜀犬吠日) 또는 촉견폐월(蜀犬吠月)의 준말로 옛날 중국
촉나라는 산새가 높고 안개가 많은 곳이라 안개가 걷이고 해나 달이 뜨면
개들이 이상하게 여겨 짓는다 하여 식견이 넓은 사람의 말을 이해 못하는
소견이 좁은 사람들을 뜻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