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래서(1)
- 여강 최재효
내가 오늘은 내 간(肝)을 으깨어 육즙(肉汁)을 내었네
내일은 네가 내 오장(五臟)을 맛 보았으면 좋겠네
오오, 나찰(羅刹)같은 그대여
많은 세월이 지나 일치(一致) 될 수 있다면
떨어져 나간 조각은 전혀 미련이 없을 테지
세상이 세상을 잡아먹고
요즘에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네
내일부터는 시간이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참으로, 그 오장육부의 속은 얼마나 깨끗할까
그래서, 내가 내 얼굴을 지우고
너는 전생(轉生)의 희비(喜悲)를 말끔히 지우면
그래도, 시뻐하여 자꾸 뒤돌아 볼 때
애초에 나와 너를 낳은 시연(始緣)을 말살하여
우리가 어찌하여 인간이 되었는가 묵상(黙想)할 수 있으리
이 순간에도 갠지스 강가에서는
미련 많은 망령(亡靈)들이 노란 연기로 피어오를 테고
발정난 암캐들은 그 곁에서 천연덕스럽게 본능을 보이리
아아, 보이지 않는 바람 같은 원초(原初)여
사람이 사람을 지우는 일은 가능할 테지
사람이 귀신을 제도하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비 오는 날, 오후에 조용히 눈을 감아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타인이 된 것에 격노(激怒)한다네
그래도, 내가 인간인 것을 대견해 하고
나의 천명(天命)을 알았을 때에는 무언(無言)이 되지
미상불(未嘗不), 나의 안구(眼球)는 투명하고
혓바닥 위에 삼각(三覺)은 방황할 수도 있을지니
- 창작일 : 2016.5.15.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