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여인
- 여강 최재효
여인은 여자 같은 여자가 아니었다
여인은 당연히 남자도 아니었다
여인은 봄처럼 따뜻했고
여름 같이 뜨거웠으며
동장군도 눈치를 보며 피해가는 장부(丈夫)였다
중년의 사내는 비 내리는 밤에
그 여인을 그리워하며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여인보다 더 늙어버린 아들
액자 속에 들어 영면(永眠)에 든 젊은 여인
뒤죽박죽되어 버린 시공(時空)의 조각들
이미 둘은 여인보다 먼저 하늘로 떠났고
나머지 피붙이들은 조석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나는 한때 여인이 천년쯤 살 거라 믿었다
몇 해 전 이맘때 여인은
첫서리 내리던 날 지아비 곁에 눕고 말았다
영원히 아들의 여인으로 사시는 어머니
두 인연 사이에 흐르는 망각(忘却)의 강
또 다른 여인이 아들 곁에 있지만
아들은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흐느끼며 피안(彼岸)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일곱 남매를 피눈물로 키우고
한 남자를 보살피며 투사가 되기도 했던
한 가문의 수문장이신 철의 여인, 어머니
바람이 가을 잎을 날려 수심 짓게 하는 차가운 밤
아들은 오랜 버릇처럼 뜬눈으로 뒤척인다
- 창작일 : 2015.11.23.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