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수종사에서
- 여강 최재효
추풍에 놀란 갈잎 강으로 떨어지네
파란 하늘은 강물에 빠져 일렁이는데
속 없는 한 나그네 돌부처 되어
한나절 멀리 남녘만 바라보고 서있네
홍엽(紅葉)이 바람타고 비상하면
향수(鄕愁)는 만리를 달리고
기러기 떼 저녁 노을 속 쓸쓸히 날면
타관 사내 남몰래 눈물 훔치네
운길산(雲吉山)은 붉은 비단으로 몸을 가리고
산사는 독경 소리에 숨을 죽이는데
인연으로 이어진 발걸음 또 발걸음
합장(合掌)하며 임에게 고(告)하네
금강산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북수(北水)
태백산부터 급한 남수(藍水)
수종사 아래에서 해후하니
천지가 흥하고 현황(玄黃)이 조화롭네
지난 봄, 연두 산빛은 갈색으로 퇴색하고
산 아래 물빛조차 적멸(寂滅)에 들었거늘
지명(知命)의 중반에 선 어떤 미련한 백수(白首)
부운(浮雲)을 잡으려 허둥대네
한번 일생(一生)으로 왔으면 가야하고
때가 되면 조용히 낮추어야 하거늘
공수거(空手去)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데
미륵불(彌勒佛)은 웃고 반달은 모르쇠 하네
- 창작일 : 2015.10.26. 17:20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