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산(終)

* 창작공간/단편 - 유산(遺産)

by 여강 최재효 2012. 8. 24. 15:48

본문

 

 

 

 

 

 

 

 

 

 

 

                                  

 

 

 

 

 

  

                                                        유산(遺産)

 

 

 

  

                                                                                                                                                                                    - 여강 최재효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우리 경희를 살려주세요. 그동안 잘못된 인연으로

고생만 하고 살아온 불쌍한 여자입니다. 이제 겨우 저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출발하

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무슨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일입이니

까? 저희 두 사람의 새 출발을 시기하시는 겁니까? 시기하시면 저만 벌을 주십시

오. 저 여인이 가련하지도 않습니까?

 

  제발, 제발 경희 벌떡 일어나 제 발로 웃으며 걸어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경희만 아무 일 없이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주신다면 제 목숨이라도 드리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이렇게 빌고 빕니다.”

 동석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였다. 


 쓸쓸한 병원에 천둥번개와 함께 빗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애간장이 다 녹아버린 동석은 발을 동동 구르

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해도 품에 안겨 사랑을 갈구하며 애교

를 떨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그런 경희가 싸늘하게 식어 지금 수술실에

롭게 누워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가 막혔다.


 ‘아아, 어째서 나에게 이련 시련이 온 것일까? 내가 전생(前生)에 무슨 큰 죄를 지

었기에 나에게 이런 험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조상님을 잘못 모신 탓일까? 아니

면 경희와 인연이 아니데 부부의 연을 맺은 탓일까? 아니야, 경희는 전처(前妻)보다

모든 면에서 나와 잘 맞았어. 몸과 마음 다 잘 맞았어.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나

에게 일어난단 말인가? 어째서?’

 

 동석이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손에 수술 장갑을 낀 남자가 나오면서 동석에

게 수술실로 들어가 보라고 하였다. 동석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수술

실로 들어온 동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얀 천으로 경희가 가려져 있었고

곁에 의사가 서서있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의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석이 천을 걷어 내리자 경희는 눈을 감은 채 평안한 얼굴로 마치 잠이 든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여보, 경희, 눈을 떠봐요. 여보, 경희, 경희, 눈을 떠보라고, 여보오......, 선생님, 우

리 경희가 왜 이렇게 누워만 있는 거죠? 왜요?”


 “송구합니다. 고인(故人)께서 수술실에 실려 왔을 때 이미 심폐기능(心肺機能)이 완

전히 멈춘 상태였습니다. 저희들이 심폐소생술을 수차례 시도했습니다만, 결국 소생

(甦生)하지 못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의사는 고개를 숙이고 수술실을 나갔다. 


 “경희, 경희,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이오?”

 동석이 주저 앉아 목 놓아 통곡하며 땅바닥을 쳐보았지만 경희는 다소곳하게 누워만 있었다.


 동녘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동석은 경희의 시신을 서울로 이송(移送)하였다. 갑작스러운 부음(訃音)을 받고 동석의 가족과 친인척들 그리고 동석의 친구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또한 경희의 다니는 학교 교직원들과 친인척들이 몰려왔다. 동석은 유학중인 두 딸에

게 서둘러 경희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이튿날 경희의 두 딸들이 급히 귀국해 경희의

빈소(殯所)에 엎드려 통곡하며 몸부림 쳤다.


 “엄마, 이게 무슨 일이에요? 엄마가 왜 돌아가셨단 말씀이에요? 아니죠? 저희 자매

를 놀리시려고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 엄마, 엄마 말씀 좀 해보세요? 엄마아-

 경희 둘째 딸은 울다 지쳐 실신까지 하였다.


 “엄마, 죄송해요. 먼저 엄마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했어요. 용서하세요. 한 달 후면

박사논문(博士論文)이 통과되면 학위 증서를 들고와서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했어요.

엄마, 이게 어찌된 일이에요. 엄마아-.”


 두 자매가 너무 서럽게 우는 바람에 다른 손님들은 상갓집에 왔다가 고인에게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자매의 오열(嗚咽)을 멀뚱히 지켜만 봐야 했다. 


 “애들아, 그만 그치 거라. 엄마는 이미 하늘나라 사람이 되었으니 너희들이라도 정

신을 가다듬고 엄마를 편히 보내드려야지. 자자, 이제 그만 울거라.”


 동석이 자매를  다독거렸지만 자매(姉妹)는 오열을 멈추지 않았다. 실신했다가 정신을 차린 경희의 둘째 딸이 동석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당신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우리아빠 노릇하려고 들지마세요. 당신은 사기꾼이

에요. 우리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거에요? 건강하던 우리엄마가 갑자기 왜 돌아가셨냔

말이에요? 왜? 왜?”

 동석은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서 현기증이 일어 하마터면 쓰러질 뻔 했다.


 “얘야, 그게 무슨 말이니? 계부(繼父)도 아버지란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엄마에게 어떻게 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 너희들도 병원에서 발급한 사망진단서를 보았잖니?” 


 “거짓말 하지 말아요. 당신이 우리엄마 재산을 노리고 일부러 우리엄마를 돌아가

시게 만든 거예요. 당신은 우리엄마 재산을 건드리면 안돼요. 건드리면 절대 용서하

지 않을 거예요.”


 동석은 너무 뜻 밖에 말에 기가 막혔다. 아무리 동석이 이해를 시키려고 했지만 경

희의 두 딸들은 거세게 반항(反抗)하면서 동석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갔다. 경희의

친인척들은 경희 딸의 이야기에 쥐죽은 듯 침묵하며 동석을 주시하였다.


 ‘아, 어쩐지. 경희가 그날 밤, 나에게 재산문제 운운(云云)하더니 이런 일을 예상

했었구나. 그러나 이 상황에서 내가 경희를 죽게 한 못된 남자로 의심을 받으면 안

되지. 그래, 경희가 남겼다는 그 서류를 보면 알겠군.’


 동석은 즉시 집으로 달려가 안방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화장대 안에 커다란 봉투(封套)가 있는데 앞면에 ‘동석씨에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동석은 이 서류봉투를 경희의 두 딸들과 친인척들이 입회한 가운데 개봉(開封)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안실로 가져와 경희의 두 딸과 경희의 친인척들을 모이게 했다.


 “여러분, 우선 이런 참담한 일이 일어난데 대하여 죄인의 입장으로 여러분께 진심

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 서류는 제 아내가 저도 모르게 작성해

놓은 서류입니다. 아직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처의 친인척분들 의구심(疑懼心)을 해

소하고자 여러분들이 입회한 가운데 개봉하겠습니다. 봉투 아래 위에 이렇게 봉인

(封印)이 선명하게 찍혀있습니다.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두 딸들이 봉투를 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희 두 딸들이 먼저 서류봉투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친인척들이 자세히 살펴보았

다. 모두 의심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봉투가 열리고 내용물이 경희의 큰딸 손에 들

려졌다.

 

  여보, 요즘 들어 제 몸이 이상해요. 먼젓번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진 이후로 저는

제 건강을 장담할 수 없어요. 만일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저의 이렇게

글로 제 뜻을 남깁니다. 이 글은 제 두 딸들과 함께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선 제 명

의의 서울 서초동 아파트와 빌라는 당신이 처분해서 불우이웃을 돕는 기금으로 써

주시고, S생명과 K생명에 가입된 저의 생명보험금과 예금은 찾아서 당신과 두 딸들

이 1/3씩 공평하게 나누세요. 이 증서는 이미 공증(公證)을 받아놔서 법적 효력이 있

어요. 그 동안 저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고마웠어요.


 두 딸들에게

 내가 제대로 엄마 노릇을 못한 거 같구나. 그동안 너희 자매가 공부 때문에 엄마와

너무 오래 떨어져 있구나. 너희들은 엄마가 공들여 유학까지 보냈으니 졸업하면 너

희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엄마가 남긴 재산은 위에서 말한 바

와 같이 현재 아빠(신동석)와 잘 상의하여 사용하기 바란다. 엄마가 남긴 예금과 보

험금이면 너희들이 얼마 남지 않은 학업(學業)을 마치는 데 충분하거야. 그리고 엄

마가 세상에 없더라도 아빠에게 잘해야 한다. 이 서류가 영원히 개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엄마의 건강이 의심스럽구나.


 여보, 마지막으로 부탁을 할게요. 저를 화장(火葬)해서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양평의

두물머리에 뿌려주세요. 우리 몇 번 가본 곳이잖아요.

 

 경희의 유언장이 공개(公開)되자 잔뜩 기대했던 두 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었고, 동석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경희의 친인척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적절한 내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유언장이 조작된 거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공증까지 마친 서류라 법적 효력에 대하여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다음날 경희는 벽제에서 화장되어 동석이 경희의 두 딸이 지켜

보는 가운데 경희의 유골을 아침 해가 뜨기 전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를 때 두물머

리에 뿌렸다.


 “여보, 경희, 미안하오. 나도 당신 뒤를 따라야 하는데. 내가 죄인이오. 당신과 함께

천년만년 살고 싶었소. 나는 죽을 때 까지 혼자 살면서 당신을 늘 생각할거요. 잘가요,

내 사랑......”


 동석은 경희의 하얀 유골(遺骨)이 강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통곡하였다. 경희의 장례식이 끝나자 경희의 두 딸들은 경희의 유언은 동석에 의해 조작(造作)되었다면서 경희 명의의 아파트와 빌라를 보험과 예금을 모두 자신들에게 넘겨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석이 고인이 숭고한 뜻을 지켜야 한다며 곧 아파트와 빌라를 처분하여 어

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복지재단(社會福祉財團)에 기부할 예정이고 예금과 보험은 모두 넘겨주겠다고 확고한 의지를 밝히자 사기(詐欺)에 의한 재산의 재산 양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동석을 상대로 소송(訴訟)을 제기하였다. 경희가 세상을 떴다는 소문

을 들은 동석의 전처 S는 남매를 앞세우고 동석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왔다.

 

 동석은 S가 파산하여 갈 데가 없다는 것과 두 아이들을 생각해 차마 전처를 내쫓지 못하여 옆방을 내어주고 살게 하였다. 참을 묘한 시기에 S가 찾아온 것이었다. 경희가 남긴 아파트와 빌라의 시가는 총 40억 원이 조금 넘었으며 보험과 예금은 15억 원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경희의 딸들은 조금도 동석에게 경희의 재산이 넘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였다. 결국 동석과 경희의 두 딸은 법정에 서게 되었고 첫 변론, 둘째 변론이 지나서 결국 판결이 나는 날이 되었다. 경희의 두 딸들은 외삼촌들을 통해 동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었다.


 [원고들의 고 이경희 명의의 부동산 명의이전 청구를 기각한다. 고 이경희의 유언은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는 빠른 시일 내로 고 이경희의 유언을 처리하라.]


                                                          

 

 

 


                                                                                                                                                            -끝-  

 

 

 

 

 

 

 

 

                                          _()_  긴 글 읽으시느라 소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곧 다른 작품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012.8.24.  오후에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서  여강 최재효 三拜

 

 






























'* 창작공간 > 단편 - 유산(遺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산(4)  (0) 2012.08.24
유산(3)  (0) 2012.08.24
유산(2)  (0) 2012.08.24
유산(1)  (0) 2012.08.2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