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산(3)

* 창작공간/단편 - 유산(遺産)

by 여강 최재효 2012. 8. 24. 15:01

본문

 

 

 

 

 

 

  

 

 

                                      

 

 

 

 

  

 

                                             유산(遺産)

 

 

 

                                                                                                                                                                             - 여강 최재효

 

 

 

 

                                                     3

  

 “경희씨, 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시고 나왔을 거라 믿습니다. 저 역시 남매(男

妹)가 있는데 아직 중, 고등학생지만 애 엄마가 맡고 있어요. 큰 녀석아 아들인데 내

년에 대학에 가고 둘째는 고등학교에 올라갑니다. 아비 역할(役割)은 해야 하기 때문

에 두 아이들 독립할 때 까지 경제적 지원을 해줄 계획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애

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그리고 저의 경제력은 경희씨 보다 못합니다.

 

 현재 살고 있는 30평형 아파트와 주식, 예금, 보험과 나중에 부모님이 세상을 뜨시

면 상속받은 재산이 좀 있는데 시가(時價)는 아직 따져 보지 않았습니다.”

 동석은 경

희가 자신에 대한 대략적인 것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자신에 관한 사항을 말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저 동석씨 마음에 들어요. 우리 매일 데이트해요.”
 “매일?”

 동석이 눈이 둥그레졌다.


 “우리 휴대전화로 대화하면 되잖아요. 사진도 찍어서 보내고, 화상전화도 하고요.

렇게 하면 매일 데이트 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경희는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우리 오늘 처음 만났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거 같아요.”

 동석은 맞선을 보다 정

말로 마음에 맞는 여인이 나타나면 무엇을 물어보고, 여자가 자신에 대하여 질문(質問)

을 하면 어느 선까지 대답을 하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첫 데이트가 끝나고 동

석은 경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동석의 큰 누이는 동석이 다른 여자들을 선 볼 때 보다 훨씬 늦는 것을 알고 뭔가 일

잘 되어가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동석의 큰 누이는 친정엄마와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동석이 확실한 여자를 만난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동석의 어머니

도 내심 동석이 늦자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동석의 누이들은 모두 친정으로 모여

들었다. 드디어 남동생이 홀아비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면서 금방 잔치라도 열 분위기

였다. 동석이 귀가하자 누이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얘, 동석아. 그 여자 어떻던? 마음에 드니? 심성은 어때? 너를 좋아하는 눈치니? 나

에 다시 만나기로 한거야?”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누이들 질문에 동석은 하나하나 있는 대로 답하면서 한두 번 더 만나 본 뒤에 결혼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동석의 어머니는 아들이 드디어 홀아비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동석의 아버지 역시 아들이 홀로 되고서부터 늘 체증(滯症)에 시달리는 듯 했다. 어서 빨리 아들을 재혼시켜 죽기 전에 며느리를 보고 싶어 했다.


 첫 데이트 이후 동석과 경희는 경의 매일 만나다 시피 하였다. 경희는 퇴근시간이

동석 보다 빨라서 경희가 동석의 회사 근처로 오면 동석이 저녁을 사거나 주점(酒店)

을 찾았다. 한 달간의 만남에서 경희는 동석을 여생을 함께할 최적의 배우자(配偶者)

로 결론을 내리고 청혼(請婚)을 하였다. 동석은 청혼의 순서를 빼앗기자 무척 당황하

였다. 대개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청혼을 요구하고 여자가 사양하는 듯 하다가

허락하는 것이 통례(通禮)였다.   


 이듬해 봄 동석은 경희와 제2의 인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양가(兩家)의 부모와

아들딸만을 불러놓고 조촐한 결혼식(結婚式)을 올렸다. 동석과 경희는 가까운 친구와

직장 동료 몇몇만 초대하고 주변 인사들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하였다. 결혼식장에 동

석의 아들과 딸이 참석하였지만 경희의 두 딸들은 현지의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동석의 가족들에 비해 경희의 가족은 1/3 밖에 되지 않았다. 결혼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동석의 전처인 S가 나타났다. 동석과 경희가 결혼 기념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S는 예전의 S가 아니었다.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이 바싹 말라 S를 아주 잘 아는 사

람 아니면 알아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술에 취한 S는 동석과 경희에게 욕을 퍼부었

다. 

 
 “흥, 네놈이 나를 버리고 잘 살 것 같냐?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네놈이 외국에

자주 들락거리지만 않았다면 나는 너하고 이혼하지 않았어. 허구한 날 독수공방(獨守

空房)하게 만들어 나를 외롭게 하였어. 나쁜 놈, 너는 정말로 나쁜 놈이야. 내 인생을

망쳐 놓은 나쁜 자식이라고. 네년이 어떻게 저놈을 꼬였는지 모르지만 너도 조심해

이년아, 저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아?”

 

 동석이 남매에게 S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는데도 S는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식장에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동석과 이혼한 뒤 잠시 잘나가던 S는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많은 돈을 사기를 당하기도 하였다. 국내 영화 시장에 외국 영화가 밀려들면서 국내 시장은 겨우 명맥(命脈)을 유지하였고, 그 와중에 삼류 영화나 에로물은 거의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다.


 “저년이, 제 발로 제가 원해 이혼하고서 남의 경사스러운 잔치에 웬 행패야. 행패가.

행색(行色)을 보니 많이 지쳐 보이는 게 생활이 녹녹치 않은 모양이군. 그 못된 버릇이 어디 가겠어. 보나마나 매일 술이나 처먹고 서방질이나 하고 다녔겠지. 밑구멍을 안 봐도 뻔 할 뻔자야.”


 동석의 큰누이는 S에게 욕설을 해댔고 다른 형제자매들도 이구동성으로 S를 창녀 취급했다. 동석은 비록 S가 망가져 보이긴 했지만 한때 자신의 아내였고 두 아이를 낳은 배우자였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서둘러 혼례식을 마치 동석은 괌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경희, 고마워. 내가 앞으로 경희한테 잘할게. 이제부터 나만 믿고 의지하며 이 거친

세파(世波)를 이겨내자고. 처음 경희를 봤을 때 난 경희가 나의 여자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어. 그 꿈이 오늘 이루어 진거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오로지 그대만을 생각하면서 내 여생(餘生)을 즐기고 싶어. 나의 지난 결혼생활은 엉망이었어. 물론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었겠지.


 그러나 경희를 만났으니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經驗)을 바탕으로 경희에게 최선을 다할 거야. 우리 앞으로의 인생계획은 천천히 세우기로 하고 신혼여행을 왔으니까 실컷 즐기다 갑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온 동석은 경희를 꼭 안고 속삭였다.


 “고마워요. 저 애아빠 하고 이혼하고 정말로 외롭고 쓸쓸했어요. 제 주변에서 저를

원하는 남자들도 꽤 있었어요. 천생연분(天生緣分)은 따로 있나 봐요. 당신에게 내 모

든 것을 바쳐 내 남은 인생을 살고 싶어요. 저는 전남편과 모든 면에서 맞지 않아 너무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苦痛)을 받았어요.


 이제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치가 떨려요. 저 역시 전반기의 제 인생을 잘 가꾸지 못한데 대해여 변명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을 만났으니 지성(至誠)으로 당신을 뒷바라지 하면서 살게요. 우리 잘 살아요. 그렇게 하실 수 있죠?”

 경희는 동석의 품에 안겨 눈물을 글썽거렸다.


 “경희, 우리오늘 아들 만들어 볼까?”
 “어머나? 이제 아이를 낳아서 어느 세월에 키우려고요?”


 “그렇지. 나나 당신 나이에 아이를 낳으면 고생이 되겠지? 그냥해본 말이야. 우리가 조금만 나이를 덜 먹었어도 2세를 가져볼 만도 한데. 자, 우리 와인 한잔하고 일찍 꿈나라 여행을 합시다. 내일 젊은 커플들하고 여행일정을 소화하려면 좀 피곤할거요.”

 

 동석이 경희의 속옷을 벗겨주자 경희는 두 눈을 꼭 감으며 20년 전 전 남편과 허니

을 기억해 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자신이 여자로 태어나 이부종사가 숙명인 것 같기도 했고, 남편이 있는 몸으로 외간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5박6일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의 직장으로 일하러 가는 시간을 제외

하고 늘 붙어 다녔다. 주변에서는 두 사람을 보고 뒤 늦게 인생을 찾았다느니, 깨소금

맛이 고소하다느니 별의별 말로 질투(嫉妬)와 시기(猜忌)를 하기도 했다. 새로운 인생

을 출발하고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동석에게 경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빨리 XX병원 응급실로 가보라고 하였다.

 

 동석은 평소 건강하던 아내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에 하늘이 노랗게 보이

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멍한 상태로 응급실로 들

어갔다.


 “여보, 경희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동석이 병상(病床)에 잠든 경희의 손을 잡아주었다. 동료 교사로 보이는 사십 초반의 여자가 동석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점심시간에도 까지도 멀쩡했었어요. 다른 선생님들과 농담도 하고 아이들 수업지

도 방식을 두고 토론도 벌였었거든요. 그런데 수업시간 중에 이 선생님이 어지럽다면

갑자기 쓰러지신 거예요. 119를 불러 이리로 왔지만 저는 지금도 가슴이 벌벌 떨려요.”

 동료 여교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렇게 건강했던 사람이 쓰러지다니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

무튼 병원까지 동행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동석이 경희의 맥을 집어봤지만 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의사가 들어오더니 동석에게 경희의 상태를 이야기 했다.


 “환자께서 심장발작증세(心腸發作症勢)를 보이셨습니다. 우선 심신의 절대안정이 필

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심근경색을 앓고 계신데 환자 본인도 증상을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원인은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 안에 노폐물이나 코레스테롤이 축적되어 혈관이 좁아져 심장기능이 원활하지 못해서 발병하는 병입니다. 특히 환자의 경우는 급성(急性)이라 조심하셔야 합니다. 발작이 일어나면 48시간 이내가 가장 위험합니다.

 

 며칠 발작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발작이 일어날 경우 부정맥(不整脈) 현상이 일어나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부정맥이란 심장 안에 스스로 전기 자극을 만들어 내는 곳 도는 만들어진 자극이 전달되는데 장애 있을 때 발생합니다. 


 고혈압, 대사성질환, 갑상선질환, 자율신경이상, 각종 약물부작용, 커피, 흡연, 정신

적 흥분 등이 부정맥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환자에게 절대 안정

이 필요합니다.“ 의사의 말에 동석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경희와 새로운 인생을 출발

하려는 시점(始點)에서 복병(伏兵)을 만난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라 동석

은 불안하기만 했다. 경희도 심장발작이 처음이라 충격이 컸다.

 

 가끔 심장이 뻐근하고 아픈 느낌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이혼 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오랜 기간 약을 복용했다. 혼자서 살림을 꾸리고 외국에 유학 보낸 두 딸들의 뒷바라지에 경희의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다.


 “어머, 당신 언제 오셨어요? 별거 아닌데”

 잠에서 깨어난 경희가 동석을 보자 반가워했다. 경희는 자신 때문에 괜히 동석이 바쁜 시간에 온 것에 미안해했다.


 “당연히 와야지. 당신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에요. 의사 에게 이야기 들었는데 이삼일 푹 쉬면 될 거라고 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동석이 경희의 뺨에 키스를 했다.


 “여보, 동석씨, 고마워요.”

 경희는 전 남편에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표현에 감격했다. 냉랭하기만 했던 경희의 전 남편은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사나 집안일을 하지 못하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며 경희를 불안하게 했었다.  그런 전남편에 비하면 동석은 너무나 다정다감(多情多感)하고 배려심이 많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였다. 

 
 “당신 입원실로 옮기면 오늘부터 내가 이십사 시간 당신 곁에 있으면서 간병을 하거예요. 회사에 삼일 정도 휴가(休暇)를 신청했어요. 그러나 안심해요.”

 동석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럴 실 필요까지 있어요. 전 지금 당장 일어날 수 있어요. 나 때문에 당신 회사에 누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경희는 동석의 배려(配慮)에 너무 고마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경희씨,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모르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요.”

 동석은 경희 등을 다독거려 주면서 속삭였다. 


 ‘아, 동석씨, 여보, 정말로 고맙고 또 고마워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남자의

따스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에요. 아버지도 그리고 전 남편도 저에게

당신처럼 사랑을 베풀어주지 않았어요. 아니면 그 분들은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목석

(木石)같은 남자였어요. 그러나 왠지 불안해요. 당신을 10년 전 또는 처녀실절 만났더

라면 좋을 뻔 했어요. 제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렸어요. 인연(因緣)이란 참으로 묘한 거 같아요. 세상에 나가보면 수백 수천 명의 남자가 있어요. 그 분들 개개인의 면모(面貌)를 자세히 뜯어보면 한결 같이 착하고 순진해요.


 그러나 그런 착한 남자들이 어떤 원인에 의해 돌변(突變)하는 걸까요? 부귀? 영화?

여자? 명예? 쾌락? 다른 그 어떤 것? 동석씨는 변하지 마세요. 저는 진심으로 당신

에게 다가가고 있어요. 지금 제 심정 같아서는 당신은 백년 아니 천년만년 사랑하고

싶어요. 당신도 한 번의 이혼으로 가슴이 뻥 뚫렸을 거예요. 그 허전한 가슴을 제가

채워드릴게요. 유학중인 딸들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 애들도 당신을 친 아버지 이상으

로 따를 거예요. 그 애들 성격이 나를 많이 닮았으니 분명해요. 항상 변함없이 제 곁

에만 있어주세요. 당신을 저의 새로운 인생 반려자(伴侶者)로 택한 뒤로 저는 꿈을

꾸는 거 같아요.


 그런데 당신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날부터 자꾸만 이상한 꿈을 꾸고 있어요. 생전 보

지도 못한 어떤 여자가 나타나 저와 당신을 번갈아 보면서 자꾸 웃어요. 처음에는 흔

해빠진 꿈으로 여겼지만 두 번, 세 번 자꾸 그 여자가 나타나니까 저도 신경이 쓰여요.

그러나 몇 번 나타났다가 말거에요.

 

 아마 나를 질투하는 제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던 어떤 형상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

난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전 최선을 다해 당신을 보필하고 해로동혈 하도록 노력할게요. 어느 날 백마 탄 왕자(王子)님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난 당신, 저에는 너무 과분한 거 같아요. 앞으로 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당신을 향할 거예요. 사랑해요.‘

 경희는 눈가가 촉촉이 젖어 동석의 품에 안겨 잠이든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 계속 -

 

 
















'* 창작공간 > 단편 - 유산(遺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산(終)  (0) 2012.08.24
유산(4)  (0) 2012.08.24
유산(2)  (0) 2012.08.24
유산(1)  (0) 2012.08.2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