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암
- 여강 최재효
날렵한 사람들아, 어서 저 하늘을 보아라
나는 수만 년을 잠에서 깨어 하늘을 이고
땅에 뿌리를 내린 채 만장봉을 벽 삼아
삼매에 들어 묵묵히 듣고만 있었노라
내 몸이 한 점 남김없이 가루가 되는 날
나는 비로소 이 땅에 태어나
소임을 다하였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리
몽매에 들으면 살아도 죽은 것이니
보아라, 억만년을 살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는
허공에 저 둥근 임이나 반쯤 육탈되어
하얗게 뼈를 드러낸 선인봉이 입이 없더냐
한 백년도 안 되는 헛헛한 것들 입이 크다
도봉산신령은 입 대신 거대한 쇠귀 하나
허공에 걸어 놓아 세상 희비 모두 듣게 하여
세상이 한세상을 완전히 묻어 버릴 때까지
스스로 불립문자로 우뚝 서있게 하였지
영원히 무명의 바위로 남거나 가루가 되어
천우天牛로 환골하거나
가부可否는 마음 속 조화에 달렸으니
- 창작일 : 2011.10.9.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