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6)
- 여강 최재효
“캬-, 술맛난다. 최 과장 사랑이야기 정말 가슴 뭉클하고 너무 감동적이야. 그 엄동설한 눈밭에서 목숨을 건 모험은 한편의 드라마틱한 연가(戀歌)야. 최 과장 사랑 이야기 들으면서 내가 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 사랑도 없이 욕정에 눈이 멀어 하룻밤 풋사랑을 즐기려하는 요즘 젊은 것들이 최 과장 사랑이야기를 들어야하는데, 정말로 나 혼자 듣기에는 너무 아깝네.”
박 과장은 침을 튀기며 재성의 사랑이야기를 극찬하였다.
“허허, 이 사람. 오늘 나한테 들은 내 과거 이야기는 회사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시게.
자네만 알고 있어야 해. 나의 무모했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거야.”
재성은 박 과장 잔에 탁주를 가득 부었다.
“무모하지 않아. 너무 순수하고 맑고 티 하나 없는 수정같은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야. 자네 사랑이야기는 책으로 엮어서 출판하던지 아니면 TV문학관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여 방영하면 히트할 거야. 내 대학교 선배 한분이 방송국 드라마 제작국에 있는데 자네
이야기를 한번 추천할까?”
박 과장은 진지한 시선으로 재성을 주시했다.
“예끼, 이사람. 누굴 바보로 만들려고 그래?”
“혹시 알아? 화연이란 여인이 그 드라마를 보고 자네를 찾아올지.”
“이제 그애를 만나 뭘 하겠어. 지금 남편하고 잘 살고 있을 텐데......”
재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혹시 모르지. 남편하고 사별이나 이혼을 하고 홀로 자네를 그리워하며 살고있을지.
사람이 누구를 죽도록 사랑하다 이승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면 죽더라도 이승에서
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하더군. 저승에 들지 못하고 구천(九天)을 떠돌다가 원귀
(寃鬼)가 되어 상대방이나 상대방 가족에게 해코지를 한다고 들었어. 만약에 화연이
란 여인이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자네가 위로를 해줘야 해.”
박 과장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재성에게 무언가 할 이야기가 많은 듯 했다.
“내가? 나에게는 마누라와 두 아이들이 있어. 부양할 사람들이 있다고.”
“참 그 사람. 내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구만. 사람이 사람을 돕는 방법은 꼭 금전적인 방법말고도 얼마든지 있어. 자네 무재칠시(無財七施)란 말도 못 들어봤나?”
“무재칠시? 그게 무슨 말인데?”
“허허, 이 사람. 그 말을 정말 처음 들어본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무재칠시란, 불교용어로 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오는 말로 재물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布施)를 말하지. 부처님 살아생전,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와 ‘저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다’고 부처님에게 하소연하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지. 그러자 그 남자는 ‘저는 가진 게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그 남자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돈을 들이지 않고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보
시가 일곱 가지가 있느니라. 첫 번째는 안시(眼施)로서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로서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언사시(言辭施)로서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신시(身施)로서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있느니라.
또한 다섯 번째는 심시(心施)로서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며,
여섯 번째는 상좌시(床座施)로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며, 일곱 번째는 방사시(房舍施)로서 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을 말하느니라. 이렇듯 부처님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은 남자는 무재칠시를 베풀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 그러니 자네도 혹시 모르니 화연씨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알아보시게.”
박 과장은 마치 화연이 과부가 된 것처럼 말하자 재성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연이는 청주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와서 화연이 소식을 캐서 무얼 한단 말
인가? 나는 그냥 슬프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데. 그러나 박 과장 말대로 만
약에 화연이 홀로 살고 있다면, 그렇다면 내가 불쑥 화연이 앞에 나타나면 나를 어찌
대할까?
아니야, 안 돼. 나에게는 현재의 마누라 밖에 없어. 가끔 옛 추억을 회상해 보는 것으
로 만족해야돼. 만나면 안 돼. 내 성격으로 봐서 화연이를 만나게 되면 일이 벌어질 거
야. 그냥,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 초등학교 앨범을 보듯 펴 보면 되는 거야.’
“최 과장,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나?”
“응?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자네, 화연씨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구먼?”
“아니래도.”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네. 자자, 한잔 쭉 들고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해주시게. 두부김치를 새로 하나 주문할까?”
재성은 다시 추억을 더듬어 나갔다.
10여일 만에 퇴원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10여일이 지나도 걸음을 걸을 때면 머릿속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주소도 모르면서 화연이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수취인이 없는 편지를 써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10통을 써서 가리봉동 100번지, 가리봉동 101번지, 가리봉동 201번지 하는 식으로 열통의 편지 봉투에 주소를 쓰고 우체국에 가서 부치려고 하였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화연이가 나의 편지를 정말로 받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발신인 주소도 엉터리로 썼다. 나에게 반송되는 편지를 받아보기 싫어서 였다.
사랑하는 화연이에게......!
화연아, 잘 있는 거지? 2년 전 갑작스러운 너희 아버지 일로 우리는 만나보지 못했어.
나의 가슴에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이 들 때 까지 항상 네가 있어. 심지어 꿈속에
서 조차도 너를 만나고 있어. 어떤 날 아침에는 꿈을 깨기 싫어 다시 잠을 청하곤 했어.
우리가 왜 이렇게 된 거야? 누가 우리의 사랑을 시기하여 훼방을 놓는 거야? 나는 우리
의 사랑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고 믿고 있어. 비록 네가 2년 동안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나는 너를 꼭 만나고 말거야. 화연아, 정말로 네가 보고 싶어 죽겠어.
제발, 내 앞에 나타나 봐.
10여일 전에는 네가 살고 있는 가리봉동에 갔다가 빙판에 넘어져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어제 퇴원했어. 머리만 아프지 않으면 오늘이라도 너를 찾기 위하여 다시
가리봉동으로 갔을 거야. 내가 몸이 좀 괜찮아지면 다시 너를 찾아 나설 거야. 나 지금
울고 있어. 내가 사랑하는 너를 같은 하늘아래 두고 어째서 볼 수가 없는 거니? 지금이
라도 빨리 나에게 얼굴 좀 보여줘. 나 정말이러다가 상사병에 걸려 죽을 거 같아. 나는
지난해 재수하여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어. 기복이를 통해서 혹시 나의 소식을
듣고 있는 거니?
화연아, 이제는 나타날 때가 되었잖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잘못했다면 말을 해봐. 그
래야 내 잘못을 알고 고칠 거 아니니. 2년 동안 너를 보지 못했더니 책을 펴도 책속에
네가 있고, 거울을 보면 그 거울 속에 네가 있어. 거리를 다니다 네 또래 아가씨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달려가 그 아가씨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단다. 그러다 이상한 놈 취
급을 당하기도 했어. 밤이면 별님이나 달님에게 네 소식을 물어 본단다. 물어보면 뭘
하겠니? 답변이 없는 걸. 옛날이야기 중에 이웃집 낭자를 짝사랑하다 죽은 총각귀신이
있다는데 혹시 내가 그렇게 될까봐 무서워.
화연아, 이제 나와.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야. 새해가 밝았으니까 올해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기 빌게. 잘 있어. 또 편지할게. 안녕.
198*년 1월 5일
세상에서 화연이를 가장 사랑 최재성
내가 화연이에게 편지를 보내고 며칠 후 기복이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기복이
는 내가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기복이에
게 화연이 소식을 물었으나 역시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나는 기복이에게 내가 병
원에 입원하게 된 사연을 말해 주었다. 기복이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 그랬구나.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
“기복아, 한 가지만 물어보자.”
“......”
“화연이, 화연이가 정말로 가리봉동에 살고 있는 거 확실하지? 나 몸이 회복되면
다시 가리봉동에 가서 화연이를 찾아 볼 거야. 한 달이 걸리던 혹은 1년 10년이 걸
리더라도 반드시 화연이를 찾아낼 거라고. 그러니 나의 이런 행동이 너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난, 화연이를 포기할 수 없어. 그 애는 나의 첫사랑이야.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너의 말을 듣고 가리봉동에 가서 화연이를 찾았던 거야. 정말로 화연
이가 가리봉동에 살고있는 거 맞지?”
“재, 재성아, 실은......”
“실은, 뭔데? 말해봐 괜찮아. 실은 뭐야?”
“실은 나도 화연이가 가리봉동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몰라.”
“뭐야? 너, 너 그럼 나에게 거짓말 한 거야?”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리집은 화연이네 하고 거의 교통이 없어. 2년 전 작은 아
버지 돌아가시고 화연이 언니가 나에게 그랬어. 화연이가 가리봉동에 살지 모른다고.”
기복이는 점점 기어들어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고 있었다.
‘아, 이럴 수가. 그럼, 내가 괜한 헛고생을 했단 말인가?’
“야, 임마.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너, 정말로 내 친구 맞니? 내가 만약
가리봉동에서 화연이를 찾다가 죽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니? 네 말만 믿고 화연이를 찾아 나섰다가 내가 사고로 죽었으면 말이야 임마.”
나는 순간 화가 나서 기복이 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기복이는 전화를 끊지도 못하고 아무 말 없이 내 말만 듣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러나 그때 화연이 언니 말투로 봐서는 분명히 화연이가 가리봉동에 살
것 같아서 너에게 그렇게 말했던 거야. 화연이 소식은 오로지 작은 어머니 밖에 모르는데, 작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때 물려주신 재산문제로 우리 아버지와 대판 다투고 일체 연락을 끊었어.
그런데 내가 가서 화연이 소식을 묻는다면 작은 어머니는 당연히 화연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을 게 뻔하고 나를 대면 조차 하지 않을 거야. 내가 네 친구가 되어서 도움
을 주지 못해 정말로 미안하구나. 빨리 회복되길 빈다.”
나는 기복이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서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멍청하게 천정만 바라보았다.
나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가리봉동 가는 버스를 탔다. 기복이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열 번, 대충 가리봉동에 간 횟수가 100번을 넘었어도 결과는 늘 똑같았다. 친구들은 가리봉동에 누가 사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때마다 빙그레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가슴에 화연이에 대한 그리움만 더 쌓여갔다. 내가 이렇게 화연이를 찾기 위하여 혼
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에 영장이 나왔다. 계속해서 가리봉동 가는 버스를 타
야했던 나는 아쉬움을 남긴 채 7월 군복을 입어야 했다.
군대에서 신병교육을 받을 때 동료들은 애인한테서 온 편지를 자랑하며 읽고 또 읽는 모습에 나는 가슴이 아렸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하루 종일 총을 들고 뛰고 걸으면서도 오로지 화연이 생각뿐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빗속을 뛰면서도 항상 화연이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9월중
순에 자대를 배치 받았다. 나는 대구에 있는 5관구 사령부 예하 부대에 배속되었다.
경북지역을 방어하는 우리 부대의 임무로 인하여 대구, 영천, 경주, 안동, 김천, 울진
지역을 작전상 돌아다녀야 했다.
군부대 막사에는 개인 관물대가 있는데 대부분의 동료들은 관물대에 애인 사진을
걸어 놓고 밤이나 낮이나 들여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나만 애인 사진
이 걸려있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화연이와 행복하게 지내던 때 화연이에게 사
진 한장 얻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고참의 놀림에 나는 할 수 없이 알지도 못하는 아가씨 사진을 구해 관물대에 붙여
놓았다. 나는 부대에서도 시간이 나면 정확치도 않은 가리봉동의 주소를 써서 화연
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치곤 했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추석날을 전후해 고향이 부대에서 제일 먼 사병들
위주로 휴가를 보내주어 보름간 휴가를 나오게 되었다. 나는 기복이를 찾아갔다.
기복이는 고향에서 방위병으로 인근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일요일 우리는 주막
거리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기복이는 나에게 지난해 일로 미안해하였다.
“재성아, 너 지금도 화연이를 잊지 못하고 있니?”
“짜식, 지금이 뭐니? 십년이 아니라 백년이 지나도 나는 절대 화연이를 포기하지
않아.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 졸업한 뒤 직장을 잡으면 정식으로 화연이 어머니를 만
나 뵙고 화연이에게 청혼을 할 거야.”
“그, 그러니? 참, 너 같은 남자가 이 대한민국에 많다면 우리나라가 참으로 잘 될
텐데…….”
기복이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잔을 비웠다.
“기복아, 이틀 후면 추석이잖아. 그때 화연이 집에 가면 화연이를 만나 볼 수 있겠
지? 추석 날 오후에 나하고 화연이네 집에 같이 가자.”
“싫어. 우린 화연이네 하고 연락두절 상태야. 화연이 엄마, 아니지 작은 엄마는 지
금도 우리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들거야. 우리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 총각이었을 때
작은 아버지 소유의 논 열 마지기를 경작했었거든. 그런데 작은 아버지가 외지로
나가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 땅을 팔아 버렸어. 결국 작
은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까지 그 땅을 돌려받지 못했지.
그 일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자주 다퉜어.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작은 어
머니가 아버지에게 작은 아버지 땅 만큼의 돈을 달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가 거절했
지. 그일로 작은집과 우리는 원수가 되었어.”
기복이는 담배를 빡빡 피우며 잔을 비웠다.
“너희 집안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면 추석 날 화연이만 집 밖으로 잠깐 불러
내면 되잖니. 나는 멀리서 화연이가 집 밖으로 나오면 얼른 달려가 화연이를 만나
면 되고. 기복아 한번만 부탁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제발 부탁 좀 들어다오.”
“너 정말로 질긴 놈이구나.”
“그래. 나 질겨. 남들처럼 대충 사랑하다 헤어지는 그런 사람하고는 질적으로 틀
려. 나는 한번 사랑하면 저승에 들 때 까지 사랑하지. 저승에 가서도 역시 이승에
서 사랑했던 여인을 사랑할거야. 그러니 이번 한번만 내 부탁을 들어다오. 오늘 술
은 내가 살게. 일만 잘되면 더 사줄게.”
“햐-, 정말. 최 씨 고집은 못 말려. 알았다. 오늘 술이나 거하게 내라. 내가 추석 날
화연이를 꼭 불러주마.”
“역시, 역시 넌 내 친구가 맞구나.”
나는 기복이에게 코가 삐뚤어지도록 주막거리에서 술을 사주었다.
기복이는 술을 막시면서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했다. 내가 자신
의 말만 믿고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새벽까지
나와 기복이는 술을 마시고 오랜만에 어깨동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잠자
리에 들어서도 빨리 추석 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 계속 -
_()_ 이제 마지막 편이 남았습니다. 곧 올리겠습니다. 황금연휴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