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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2)

* 창작공간/중편 - 가리봉동

by 여강 최재효 2011. 5. 27.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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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봉동(2)

 

 


                                                                                                                                                                                                  - 여강 최재효

 

 

 

 

 “재성아, 예비고사가 며칠 안 남았는데 여자 생각해서 되겠냐? 그 애가 내 사촌이

아무리 예쁘다고 하지만 예비고사 보고난 뒤에 실컷 만나면 되잖아?”

 기복은 재성이 건준 핑크색 연서(戀書)를 받아들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화연이는 여자가 아니야. 입시생이지. 너, 그 편지 읽어보면 안 된다. 꼭 화연이가

열어 봐야 해. 그리고 화연이 에게 꼭 답장을 받아와야 하는 건 알지?”


 “자식, 예쁜 건 알아서. 걱정 마. 잘 전해 줄게. 화연이가 내 사촌만 아니었다면 내

유혹해 보는 건데.”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 쓴 기복이 자전거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재성은 운동

장 벤치에 앉아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화이를 그

려 보았다.


 “재성아, 너는 공부를 잘하니까 꼭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너의 능력을 믿어. 수학은 약간 버거워도 국어와 영어는 만점 수준이잖아. 또 사

회, 역사 분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고. 이번 예비고사만 잘 치르면 본고사

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화연은 귀여운 입술을 오물거리며 재성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도 모의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잖아. 너도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가야해.

나도 너를 믿어. 우린 꼭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갈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너를,

너를......”

 재성이 땅바닥을 쳐다보며 우물쭈물 댔다. 화연이 재성이 입에서 어떤 이 나올

지 무척기대하고 있었지만 재성이 계속 말을 못하고 있자 답답해 했다. 


 “바보, 나를 어찌한다고? 확실하게 말해봐. 사내대장부가 용기도 없어?”
 “나는 너를, 너를, 에이 아냐.”


 “너, 정말 바보구나.”
 “그래, 나 바보가 맞아.”

 재성은 지난여름 신륵사에서 만나 데이트 하화연과 마지막 나눈 대화를 떠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왜 그렇게 용기가 없을까? '너를 사랑해'라고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바보처

우물쭈물 거리며 말도 못했지. 나는 정말 바보인가 봐.’ 


 삼일이 지나도 기복이로부터 무런 소식이 없었다. 소식은 둘째 치고 기복이도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알아보니 기복이 어제, 오늘 학교에 오지 않

았다고 하였다.

 

 재성은 기복이 왜 학교에 오지 않았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교무실에 가서 기복이

담임님에게 ‘기복이가 왜 학교에 오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내일이

면 나타나겠지’하고 참기로 하였다.


 수업 시간 내내 재성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어 시간에 시무룩하게 앉아

명상에 잠긴 듯 한 재성을 유심히 바라보던 영어선생님이 수업시간이 끝나자 재성

별도로 불러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재성아, 이일을 어찌하면 좋으니?”

 평소 씩씩해 보이던 기복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재성을 불러냈다.


 “어제, 그제, 너 왜 학교에 빠진 거야?”

 “재성아, 놀라지마.”
 “뭔데?”

 기복이는 뜸을 들였다. 평소의 기고만장한 태도와 전혀 딴판의 기복이 태도에

은 불안해했다. 기복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불안했다.


 “우리 작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서. 아주 위급한 상태야.”

 긴 침묵을 깨고 기복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재성은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기복이 작은 아버지면 화-연-이 아버지?’ 

 “기복아,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말해봐.”

 재성은 기복이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기복이 팔을 잡고 걷는 재성이 발걸

음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재성은 기복

이를 학교 본관에서 떨어진 창고 뒤편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화연이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우리 작은 아버지 말이야.”
 “화연이 아버지가 왜? 어째서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거야? 천천히 말해봐.” 


 “일주일 전에 화연이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버스와 부딪혀서 중태야.

작은 아버지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도로 시설물에 부딪혀 심하게 다쳤는데 지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의사말로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그랬어. 화연이

는 그 충격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 있어.”

 기복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담배 한 개배를 입에 물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중태라고 하지만 예비고사가 얼마 안 남았는데 병원에 있으면

어떻......”

 재성은 화연이 얼굴을 떠올리며 답답한 심정을 어찌할 줄 모르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너 같으면 집안의 기둥이 그리되었는데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겠냐?”
 “그래도 그렇지. 한 인생의 미래가 달린 예비고사가 얼마 안 남았는데......”

 재성은 화연이 측은한 생각에 콧날이 시큰했다.


 “나도 화연이에게 용기를 돋우기 위해 별의별 말을 다해보았다. 그런데 그 앤 아

버지가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는데 공부를 해서 뭣하냐며 대학교 포기한다고 해서

나에게  혼나

기도 하였어.”

 ‘대학을 포기한다고?  화연이가 대학을 포기......’ 

 재성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오면서 속이 울렁거려 금방 토할 것 같았다.


 “기복아,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화연이가 대학을 포기해서는 안 돼.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몸이니 네가 화연이게 내 뜻을 전해 줘. 제발 정신 차리고 예비고사에 전념하

라고 말이야. 기복아 부탁해.”


 재성은 기복이 두 손을 잡고 애걸하다 시피 했다. 담배 연기를 동그랗게 말아 허공

으로 뿜어내던 기복이 재성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재성아, 너 정말로 화연이를 사랑하고 있구나? 네가 부럽다. 나도 화연이 같은 계

애를 너 처럼 열렬하게 사랑 좀 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화연이는 이미 대학진학

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굳힌 듯 보였어. 아마 내년을 기약하려고 하는 거 같아. 작은

아버지저리된 상태에서 대학입학시험이 눈에 들어오겠니?

 

 화연이네가 잘 살았었는데 얼마 전 화연이 아버지가 부동산업에 손을 댔다가 크

게 손해를 봤어. 작은 아버지는 손해 본 투자금을 만회해 보려고 무척 고심하셨거

든. 그런데 저리되셨어. 화연이가 참으로 딱해 죽겠어. 가자, 수업 시작할 시간

야.”

 기복이는 담배 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복아, 너 먼저 가라. 나 잠시만 생각 좀 하고 갈게.”
 “화연이 이제 잊어. 아무래도 그 앤 너하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너 임마, 함부로 그런 말 하지 마. 화연이 아버지는 곧 쾌차하실 것이고 화연이

도 마음을 추스르고 공부에 전념할거야.”

 재성이 기복이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미안하다. 나도 그리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나 먼저 간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화연이 인생은

그럼 어찌되나? 나하고 화연이는 앞으로 어떻게 인생이 전개 될 것인가?’

 재성은 수업

을 두 시간이나 빼먹고 담임선생님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 것참, 사람일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더니. 에이, 비 한번 시원하게 잘

온다. 최 과장, 잠시 목 좀 추기고 이야기 하시게. 자, 건배하자고.”

 재성의 이야기에 빠져 있박 과장은 재성의 이야기를 끊으며 빈 잔에 탁주를 가

득 부었다.


 “박 과장, 내 이야기 너무 진부하고 틀에 박힌 연애 이야기 같지 않아?”

 재성이 박 과장과 잔을 부딪치며 물었다.


 “남들은 어찌 들을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자네 사랑이야기는 드라마감이네. 아직

전반이야기만 들었으니 중반부와 결말 부분을 듣게 되면 웬만한 강심장인 나도

눈물 좀

뿌려야 할 거 같은 두려운 예감이 들어.”


 “에이, 박 과장답지 않게 왜 그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
 “어? 내 몸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어디 바늘로 찔러봐.”

 박 과장이 와이셔츠 매를 걷어 올리며 재성에게 들이 밀었다.


 “하하 하하하, 이 사람 정말.”
 “내가 자네한테 냉혈한(冷血漢)으로 비쳐지고 있나?”


 “괜히 하는 소리일세. 신경 쓰지 마시게. 자자, 때마침 비도 내리고 옛님 생각도 나고

정말 근사하이.”

 재성은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 탁주 두 잔을 연거푸 비웠다.


 “그래, 그 이후에는 어찌되었어? 그 화연이란 여학생 정말로 예비고사를 보지 않

았어?”
 “휴우-. 그때 학교를 뛰쳐나가 그녀를 만나 시험을 보도록 설득했어야 하는 건데......”

재성은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자네도 학교 울타리 안에서 영어의 몸이 된 상태인데 어찌 할 수 없었잖아. 그때

자네그녀를 만났어도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을 거야. 아버지가 위독

한 상황서 그녀도 많은 생각을 했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자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최 과장, 다음 이야기보따리를 슬슬 풀어 보시게. 이러다 아까운 시간 다 가겠어.”    박

과장은 재성의 빈 잔에 탁주를 따르며 재촉하였다.


 재성이 학교에서 기복이를 만난 다음날부터 기복이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틀

후에 학교에 나타난 기복은 풀이 죽어있었다. 점심시간에 재성은 기복이 만나 학교 본

관 뒷편에 있는 창고로 데리고 갔다. 재성이 손에 이끌려 가는 기복이는 시종 침울한

표정이었다. 기복이는 창고 뒤편에 도착할 때 가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

성이 화연이 소식이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기복아, 화연이, 화연이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니? 화연이 아버지는 좀 차도가 있

으신 거야? 화연이는 학교에 다니는 거지?”
 “......”


 “야 임마, 무슨 말 좀 해봐.”

 재성이 기복이에 재촉하였지만 기복은 묵묵 부답이었다. 재성은 점점 더 초조해

졌다.


 “......”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너 왜 이틀 동안 학교에도 안 나왔어? 학교가 네

마음대로 결석하고 싶으면 결석하고, 나오고 싶으면 나오는 곳이 아니야. 얼른 말

좀 해봐. 나 답답해 죽겠어.”


 “......”
 “어휴-, 기복아. 도대체 왜 그래? 너 어디 아프니?”


 “재성아, 미안하다.”
 “뭐가?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화연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제 장사지냈어.”


 “뭐? 화연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나는 순간 하늘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경험을 하였다. 현기증과 함께 나는 몸이

휘청거려 하마터면 쓰러질 뻔 했다.


 “너에게 빨리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 너는 곧 예비고사 볼 입장이라 일부러 안 알

어.”

 기복이는 습관처럼 청자 담배 한 개비를 빼 물었다.

 
 ‘아, 안 돼.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재성은 조용히 어깨를 들썩거렸다. 눈물 많은 소년에게 화연이 아버지 소천(召天)

큰 충격이었다. 재성이 한참을 소리없이 흐느끼며 장승처럼 서있었다.


 “짜식. 너 우니? 너희 아버지도 아니고 너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죽었

네가 왜 우는 거니?”


 ‘아, 화연아, 우린 이제 어찌되는 거니? 네가 대학진학도 포기하였다면 나도 대학을

포기하련다. 너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 재

 성은 눈물을 삼키며 파란 하늘을 수놓고 있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었

다.


 “화연이, 화연이는 지금 어디 있니?”

 눈물을 닦고난 재성이 기복이게 물었다.
 “화연이는 집에 없어.”


 “화연이가 집에 없다니? 그게 또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말 해봐.  화연이가 집에 없

다니? 그렇지, 지금 학교에 있겠지. 집에 없는 게 당연하지.”


 “그게 아니고 임마. 그 앤 서울로 올라갔어.”

 “서울?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서울엔 왜?”


 “서울에 화연이 언니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당분간 서울에 있겠다며 올라갔어.

내 생에는 아마 졸업식 때나 돼야 나타날 거야.”

 기복이는 꽁초를 빡빡 피워대며 지그시 눈감았다.


 ‘나와 화연이의 고운 인연이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이게 아닌데. 내가 의도한

화연이인연이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행복추구권이 있

어. 행복을 맛보기도 전에 이렇게 끝내야 하다니. 아, 하나님, 부처님, 나와 화연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요?’

 재성은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고통 속에서 3개월이 흘렀다. 2월 중순 Y여자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재성은 졸업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Y여자고등학교 졸업식장에 도착하여

화연이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화연이를 찾을 수 없었다. 창피를 무릅쓰고 3학년

교실을 모두 뒤졌지만 화연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재성은 졸업

식장을 두리번거리며 화연이찾아 다녔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마치 참새들처럼 조잘거리다 일순 조

용해졌다. 졸업식이 진향되는 내내 재성을 하객들 사이를 누비며 강당 가운데 밀집

한 졸업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끝내 화연이를 찾지 못한 재성

은 강당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재성은 K대에 응시 하였으나 본고사에서 수학을 망쳐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여름방학 때 마지막으로 본 화연의  모습이 환영으로 나타 날 만큼 재성은 화연이애타게 찾고 있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기복이를 괴롭혀 화연이의 행방을 알아

봐 달라고 하였으나 화연이 서울 가리봉동에서 직장 다니는 언니와 함께 있다는 말

만 했다.


 재성 본인은 물로 가족과 재성에게 기대를 걸었던 학교와 주변 친인척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재성을 바라만 봐야 했다. 재성은 재수(再修)를 계획하고 있었다. 재성의 부

는 후기 대학교나 전문대학교라도 가라고 권했지만 재성은 듣지 않았다. 재성은 서

여의도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누나의 집에서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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