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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3)

* 창작공간/단편 - 물망초

by 여강 최재효 2011. 2. 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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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망초(3)

 

 

                                                                                                                                                                                        - 여강 최재효


 
 
 “저어,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여기 속명이 이천호란 스님이 계신지요?”

 지연기훈과 아침 일찍 이천호의 친척 되는 사람이 알려준 S사에 들렀다.

침부터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S사는 천년 도량이라

고 입구에 안내푯말이 붙어 있었다. 절을 찾는 사람이 없어 모든 게 깊은 잠에

빠진 듯 적막했다.


 “나무관세음보살. 보살님께서는 어떻게 저희 도량에 오셨는지요?”

 종무소에

일을 보는 중년의 여자보살이 지연에게 물었다.


 “저어, 속명이 이천호라는 비구스님을 찾아 왔는데요. 이 절에 계시다고 해서

요. 그 스님을 꼭 찾아서 전해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분이 생명이 꺼

져가고 있는데 그분의 부탁을 받고 서울에서 왔어요. 꼭, 꼭 좀 만나 뵐 수 있

해주세요.”

 

 이번에는 기훈이 여인에게 사정했다. 그러나 여인은 함부로 스님들의 행적에

대하여 알려줄 수 없다며 자세한 답을 하지 않았다. 여인은 두 사람이 타고 온

빨간색 고급승용차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이상한 상상을 하는 듯 했다.


 “이 절에는 그런 비구스님은 안 계세요. 스님들은 속명을 사용하지 않고 법명

을 쓰십니다. 스님을 찾으시려면 법명을 아셔야 해요. 그리고 저희는 이 절에

현재 게시거나 전에 계시다가 떠난 스님들의 행적에 대하여 아무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부채를 부치며 지연과 기훈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깊은

산에 있는 산사에 아침 일찍 찾아온 두 사람의 정체가 의심스러운 모양이었다.

S사는 그리 큰 도량은 아니지만 산세가 험하고 주변 경치가 좋아 많은 학승(學

僧)들과 뜨내기 스님들이 종종 들렸다 가는 절이기도 하였다.


 “법명을 모르면 찾을 수 없나요? 보살님, 부탁이에요. 실은 저희 어머니께서

이천호란 속명을 지닌 분에게 전해드리라는 물건이 있어서 왔어요. 저희 어머

는 이승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발 부탁 드려요.”

 다시 한번 지연이간절한 부탁에 여인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법명을 알아야. 우리 절에 계셨던 비구스님 명단을 찾아보지요.”

 날카로운 인의 여인은 안경 너머로 지연과 기훈이 어떤 사이일까 몹시 궁금해

하는 얼굴었다.


 “지연아, 우리는 그분의 인상을 모르잖아? 너희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분

의 외모대하여 좀 알아봐. 여기까지 와서 법명을 모른다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잖아. 얼른 전화해봐.”

 

 기훈이 손가락으로 지연의 등을 콕콕 찔렀다. 지연은 주희에게 전화를 걸어 이

호의 인상에 대하여 물었다. 주희는 옛 일을 떠올리며 이천호의 인상에 대하여

생각 나는 대로 딸에게 일러 주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전화에 생각나는 대로 이

천호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지만 주희도 이천호가 안개 속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

지는 게 안타까웠다.  


 “저어, 보살님, 그 비구스님 키는 180 정도 되고요, 얼굴은 하얀 편이고 굉장히

잘 생기셨다는데요. ‘아파트’란 노래를 부른 가수 윤수일씨 하고 비슷하대요.

잘 생각해 보세요.”

 지연이 여인에게 매달리듯 사정하였지만 여인은 고개만 갸웃뚱 거리며 잘 모르겠

다는 표정이었다.


 “죄송하지만, 최근 5년 내에 이 절에 계시던 비구스님 중에 다른 곳으로 가신

분들을 좀 찾아봐 주실 수 있어요?”

 기훈의 요구에 여인은 마지못해 수첩 같은 것을 뒤적거렸다.


 “이 분들이 이 절에 계시던 분들 법명인데 보세요.”

 여인이 수첩을 보여주었다. 수첩에는 깨알만한 글씨로 열명이 넘는 비구승들 이

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지연은 생전 처음 보는 한자(漢字)로 쓰여진 비구승들

법명이 외계인 이름 아 보였다.


 ‘그 분이 엄마보다 한 살 위라고 했지.’

 지연이 명단을 들여다 보며 주희보다

한 두 살 위의 비구승들을 찾았다.


 “저기요. 이 두 분은 지금 어디 계신지 알 수 있나요?”

 지연이 두 명의 비구승 이름을 지목하며 물었다.


 “글쎄요. 나도 그 두분 비구스님이 지금 어디 계신지는 몰라요. 그 두 분과 연

락이 닿는 스님께 여쭤봐야 해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여인은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스님, 저희는 서울서 왔어요. 이 순간에도 저희 어머니는 생명이 꺼져가고 있

어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분을 만나봐야 하거든요.”

 지연이의 말에 여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지연이 지목한 두 사람에 대하여

묻는 것 같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 두 분을 잘 아는 스님이 오실 거에요.”
 “고맙습니다. 금방 오시나요?”


 “지금 예불을 드리는 중이라 좀 시간이 걸릴 거에요.”

 여인은 음료수를 마시며

부채를 부쳤다.


 “지연아, 우리 절 구경 좀 하자.”

 기훈이 지연이 손을 잡았다.


 “그럴까?”
 “어젯밤엔 미안해. 널 너무 괴롭힌 거 같아서.”

 기훈이 게슴추레한 눈으로 지연이를 보면서 간밤의 일을 생각해내곤 회심의 미

소를 지었다.


 “몰라, 난 이제 기훈씨랑 안 놀 거야.”

 지연이도 간밤에 민박집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내곤 얼굴이 빨개졌다. 


 “너 그거 끝난 지 며칠 안되었다며?”

 기훈이 싱글싱글 웃으며 지연이 허리를 안았다. 먼저번에도 기훈은 지연이 몸에

이상 징후가 있어서 크게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안돼. 여기는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란 말이야. 이런 데서 속세의 남녀가

이상한 짓거리하면 부처님에게 벌받아.”
 “벌 받아도 너랑 같이 받는 건데 뭐?”

 기훈은 사방을 살피더니 얼른 지연이 볼에 키스를 하였다.


 “아, 울 엄마가 알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아마 장모님은 우리 둘이 어젯밤 사랑을 나눌 거라고 예상하고 계셨을걸?”
 “어머? 울 엄마가 무슨 점쟁이야? 그리고 장모라니? 기훈씨는 별 말을 다해?”

 지연과 기훈이 각신하며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경내를 걸었다.


 대웅전 앞에 있는 탑을 지연이 합장한 채 돌기 시작하자 기훈도 지연이 처럼

두 손을 모으고 뒤 따랐다. 멀리서 두 사람이 탑 돌이 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어린 비구승들이 신기한 듯 몰래 훔쳐보기도 하였다. 대웅전 안에서 비구승이

목탁에 맞춰 독경하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다.

 

 지연은 탑을 돌면서 어젯밤 기훈과 열정의 밤을 보낸 것에 대하여 주희에게

미안해 하였다. 지연은 주희의 공식적인 승낙 하에 기훈과 관계를 맺은 거 같

아 기분이 묘했다. 탑을 돌면서 지연은 엄마의 병이 부처님의 법력으로 말끔

히 치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지연아, 저기 그 아주머니가 우리를 오라고 손짓한다. 어서 가보자.”

기훈이 여인을 보고 지연이와 종무소로 달려갔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누추한 도량을 찾아주셨습니다. 무영스님과 혜목스님

을 찾으신다고요?”

 오랜 세월 불자로 지낸 흔적이 물씬 풍기는 비구승 한 분이 지연과 기훈을 향해

합장으로 인사를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지연과 기훈도 얼떨결에 비구승을 따라 합장하였다.

 

 “스님, 안녕하세요? 저희 어머님께서 불치의 병으로 지금 생명이 꺼져가고 있

요. 어머님이 이승에서 쓰신 마지막 편지를 저에게 주시면서 이천호라는 분

에게 해 드리라고 했는데 그분 고향에 가보니 그분께서 이 절에 계신다고 해

서 왔습니다. 도와주세요. 스님.”

 

 지연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비구스님은 무안해하였다. 멀리서 온 속세의 사

람들에게 선뜻 불제자의 행적에 대하여 알려준다는 것은 지극히 조심스러운 일

이었다. 비구승은 두 눈을 감고 염주알을 굴리며 잠시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

렸다. 


 “스님, 부탁입니다. 저희는 이 편지를 그분에게 전해드려야 하거든요. 시간이

습니다.”

 이번에는 기훈이 하얀 봉투를 내보이며 점잖게 말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보살님께서 알고 싶어하는 두분 스님은 이곳에서 멀리 떯어진

곳에 계십니다. 무영스님은 서울에 있고, 혜목스님은 설악산에 계십니다.”


 “스님, 두 분은 저희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해서 제가 지목했어요. 두분 중에

180 센티 정도 되시고 얼굴이 하얗고 가수 윤수일처럼 생기신 분이 어

느 분이신지요?” 지연이 주희가 말한 외모를 설명하느라 손짓발짓을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그럼 혜목스님을 말씀하시나 봅니다. 그분 외모가 보살님이

말씀한 것과 아주 비슷하십니다.”


 “스님, 그분 고향이 경상도 B군 맞지요?”

 지연이 비구승에게 다시 물었다.


 “나무아미타불, 맞는 거 같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연과 기훈은 비구승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절을 나왔다.


 “얘, 주희야, 엄마야, 주희야, 정신 좀 차려봐라. 아이고 주희야, 엄마가 왔어.

어서 눈을 떠봐 이것아. 아이고, 아이고, 생떼 같은 자식이 어찌된 일이야. 맑은

하늘에 청천벽력이라니. 아이고, 아이고…..”

 응급실 병상에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주희를 보고 주희 어머니는 땅을 쳤다.


 “얘야, 애비다. 네가 정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다면 그 남자와 사귀어도 좋다. 그

러니 어서 일어나거라. 으이그,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래."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경을 헤매던 주희는 아침에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급히 병

원으로 실

려왔다.


 “죄송합니다.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하니 좀 조용히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우리 딸애는 살아날 수 있는 거죠?”


 “위 세척을 하고 응급처치를 했으니 한숨은 돌렸습니다만 어느 정도 약물이 체

에 흡수된 상태라 깨어나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환자의 체력이

급격쇠약해져 혹시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안정을

취하도록 외부인은 가급적 통제해주세요.”

 딸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주희 부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당신이 욕심 때문에 저 애가 저리 된 거라고요. 저 애 인생을 당신이 망쳐 놓았

구요. 저 애 인생은 저 애가 사는 것이지 당신이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저 애가

만약에 잘못 되는 날이면 난 당신하고 이혼할거에요. 아셨어요?”

 주희 어머니는 주희 아버지에게 주희가 자살을 기도한 책임을 전가시켰다.


 “허, 이 사람아, 내가 저 애 앞날을 위해서 이왕이면 잘 사는 집안 자식과 짝을

맺도록 해주게 잘못이야?”

 주희 아버지는 주희 어머니에게 오히려 화를 내고 있

다.


 “당신이 그 사람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으면 저 애가 저렇게 까지 되지 않았다

요. 증거도 없이 그 사람을 경찰에 고발하니까 저 애가 충격을 받아서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겠지요.”

 주희 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난, 앞으로 저 애가 그 사내와 결혼을 하던, 거지하고 결혼을 하던 상관하지 않

테니 당신이 알아서 하구려.”

 주희 아버지는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큰소

리로 떠들어 댔다.


 “알아서 하라니요? 그럼, 당신은 앞으로 아비 노릇을 하지 않겠단 말씀이에요?”

 주희 어머니는 남편의 말에 발끈하였다.


 “그게 아니고 이 사람아. 두 모녀가 알아서 잘 해보란 말이야. 난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 테니까. 에이, 참.”

 

 주희의 삼촌이 두 사람의 말다툼을 말리면서 주희 부모님의 부부싸움은 끝이 났

다. 병원에 입원한지 삼일 후에 주희는 정신이 돌아왔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 온

이후에도 주희는 주변의 시선과 이천호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

려야 했다.


 우울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딸을 위하여 주희 어머니는 주희 친구들을 불러 파티

도 열어주고 백방으로 이천호를 찾기 위하여 수소문해 보았지만 이천호의 소식은

끝내 알 수 없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주희는 이천호의 고향이 있는 경상도 B군

에 찾아가 보기도 하였으나 이천호의 가족들도 이천호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주희는 대학원 학업도 포기하고 이천호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 가서 이천호를 찾

야 할지 막막했다. 이천호가 다니던 회사에 찾아가 보아도 이천호의 행방에 대

하여 아는 사람이 없었고, 이천호의 대학 동창들 역시 이천호의 행방에 대하여 알

지 못했다.


 “아, 천호씨, 어디 있는 거에요? 도대체 어디 숨어있기에 이리도 사람 애간장

을 녹이세요? 이제, 제발 나오세요.”

 주희의 바람대로 이천호는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흘러가도

이천호는 다시는 서울에 나타나지 않았다. 주희는 이천호를 단념하지 않았다.

 

 주희는 일년에도 서너 차례 이천호의 고향을 찾았지만 이천호는 고향에도 아무

소식을 전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세상을 바람처럼 떠 돌아 다녔다. 3년이 지나면서

주희는 이천호를 단념하기 시작하였다. 주희 자신도 서서히 이천호를 지워가면서

가슴속에 묻기로 하였다.


 주희는 결국 아버지의 고향 친구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평범한 가정주

부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주희의 가슴속에는 늘 이천호가 살아 있었다. 딸 둘

을 낳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로 변신한 주희는 어느 여름날, 휴가철을 이용하

여 문득 이천호의 고향을 가보고 싶었다. 주희는 남편을 설득하여 두 아이들을 데

리고 이천호의 고향을 찾아가 보았다. 


 개울가에 텐트를 치고 이틀간 캠핑을 즐긴 주희 가족을 다음 또 오자고 하였다.

차에 텐트와 짐을 싣고 주희 가족은 S사를 돌아보고 동해로 가서 여러 곳의 해수

욕장을 돌며 여름 휴가를 보냈다. 남편에게 말을 하지 못했지만 주희는 이천호와

함께 왔던 곳이었다.

 

 주희는 S사에서 불공을 드리며 이천호의 안녕과 평안을 빌어 주었다. 20년 세

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서울 중심지에서 잘 나가는 한정식당을 운영하

며 하나님 아버지만 찾는 남편,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는 두 딸들, 주희는 마땅

히 할 일이 없었다.


 식당에 나가 남편이 일손을 거들어 주려고 하면 남편은 주희를 식당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주희 남편은 바쁠 땐 자신이 손수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

고 손님들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싫다고 하였다. 주희는 한

동안 등산에 정신을 팔며 서울 근교 산을 거의 매일 오르곤 하였다.

 

 등산도 2년 정도 다니다 보니 시들해졌다. 주희는 집에 들어서 두문불출 하면

서 하루 종일 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물끄러

미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도 없었다.

 

 어쩌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잘 나가는 식당을 운영하는 주희

에게 돈을 빌리려는 이야기뿐이었다. 만나면 돈 이야기뿐인 동창생들을 만나는

일도 금방 시들해졌고 우연히 남편이 마시던 양주를 한 두잔 마시던 것이 습관

이 되어 어느새 하루 한 병을 마시는 애주가가 되었다. 일년이 흐른 뒤 주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주희 남편은 아내가 집에만 있다 보면 지루하고

무료해 술 한 두잔 마시는 것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천호씨, 지금 어디 있어요? 저요, 아무것도 할 수도 없는 무능한 여자가 되

었어요. 박제된 여자라고 해야 정확할 거에요. 남편은 내가 새장 안에 갇혀있

는 새가 되길 원해요. 미안해요. 저 때문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어느 날 연

기처럼 사라져 버린 당신, 내 사랑 천호씨, 요즘 들어 나는 당신이 죽도록

보고 싶어요. 어딘가에 살아계신 거죠? 우리 아버지가 당신과 사귀어도 좋다

고 해서 당신을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으나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땅속으로 꺼진 거에요? 아니면 날개를 달고 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거

에요? 세월이 점점 쌓일수록 우리 아버지와 내가 당신 가슴에 상처를 준 것

에 대하여 깊이 속죄하고 있어요. 이제는 저와 저희 아버지를 용서해주 실만

하잖아요. 아직도 세상이 싫어 숨어 계신 거에요? 천호씨……’

 주희는 술에 취하면 이천호 이름을 부르며 우는 버릇이 생겼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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