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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최종회)

* 창작공간/단편 - 씨

by 여강 최재효 2010. 12. 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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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최종회)

 

 

 

 

                                                                                                                                                                                          -  여강 최재효

 

 

 

 흑기사는 자꾸 헛기침만 해댔다. 나는 속으로 남자들의 늑대 같은 본성을 보고

싶었다. 헛기침만 하던 흑기사가 나가더니 시원한 캔 음료 두개를 들고 들어왔다. 

흑기사는 콜라를 마시며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황스러워 했다.


  “그냥, 우리 연인처럼 생각하고 봐요. 오늘만.”  내가 흑기사의 귓속에 대고

속삭이자 흑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이런 데는 남자가 여자를 유혹해서 데리고 와야지 어떻게 반대가 되었남?’ 

거대한 화면 속 여기저기에서 씨를 뿌려대느라 안간 힘을 쓰는 수컷들의 몸부림

이 불쌍해 보였다.


 나는 암컷을 상대로 자신의 유전인자를 전하려는 수컷들의 리드미컬한 행동에

주목했다. 가면 쓴 늘씬한 여성들의 노골적인 구애에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본능

적인 행위에 몰두하면서 쾌락에 전율하였다. 나에게도 화면 속 여성들의 신경

전달 체계가 이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내가 거의 화면 속에 빨려들어 가고

있을 때 강한 완력을 느꼈다.


  흑기사의 왼팔이 어느새 내 허리를 감싸고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체

하고 영화에만 몰두했다. 그의 손이 내 엉덩이를 지분거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묘한 쾌락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흑기사는 내가 가만히 있자 점점 강도를 높여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나는 계속해서 못이기는 척 그의 손길에 내 전부를

내 맡겼다.


  그의 손이 내 은밀한 부위에 닿으면서 나의 육신은 잘 길이 들여진 악기가 되

어 갔다. 마치 내가 정욕에 못 이겨 남자를 유혹한 꼴이 되고 말았다. 흑기사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으면서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했다. 언젠가 본 영화 ‘아나

콘다’에서 아마존 정글의 거대한 아나콘다가 먹이를 칭칭 감고 통째로 삼키기

전에 먹잇감의 혼을 빼기 위하여 지분거리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 힘을 써보았지만, 흑기사의 완력은 점점

더 세어졌다. 흑기사의 타액이 내 목둘레에 끈적끈적하게 도배되다시피 했고,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나의 열정의 감도(感度) 역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은밀한 부위를 간질일 때 마다 수만 볼트에 감전 된 듯, 나는 몸

을 비비꼬면서 그의 악기 연주 솜씨에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남편에게서 받아

보지 못한 색다른 서비스의 감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러다가 나는 어두컴컴

한 비디오방에서 침몰할 것 같았다.


 나는 알코올의 위대한 힘에 경탄해 하면서도, 순간의 욕정이 나의 철옹성 같았

던 자존심을 깨고 이성을 마비시킨 나머지 생(生)에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

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기사의 팔을 떼어 내 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무쇠처럼

단단한 그의 팔뚝은 나의 연약한 육신을 옥죄여 왔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순하디

순한  남편과 유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악-.
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거의 누워있던 자세에서 정색을 하고 앉았다. 한참 나

에게 정성을 들이던 흑기사의 얼굴이 벌레를 씹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휑한 가슴이 어느 정도 채워졌어요?”
  “......”
  나의 질문에 흑기사는 무안해 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무르익은 복숭아 색깔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남자

의 억센 손에 놓였던 아랫부분에 쾌감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세게 지분 거렸던 탓에 약간의 상처가 난 듯 시큰거렸다. 휴지를 뽑아 흑기

사의 타액을 닦아내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한 먹이를 놓친

그의 표정에 진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우리 다른 데로 가요. 여기보다 조용하고 아늑한 데로......”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애원하듯 말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체 했다. 우리

는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애인도 아니고 부부 사이도 아니면

서 순간적인 충동에 사로 잡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동물적 행위는 서로에게 정

력과 시간 낭비임에 틀림없었다.


  “그럼, 한 가지 약속할 수 있어요?"
  "뭔데요?"
  흑기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오늘 이후로 우리는 절대로 다시 만나면 안 돼요. 혹 길거리에서 마주치더라

도 모르는 체 하기로 해요.“


  나는 그에게 계속해서 나를 어찌 해보려는 생각을 그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또 이대로 다른 장소로 옮

겨 지금처럼 의미 없는 본능적인 행동을 계속할 경우 밀려오는 허무를 나는 감당

하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은은하게 타는 참나무 숯불 같은 성격이지만 조그만

열정적 행위에도 순식간에 휘발유를 부은 화염처럼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홀아비와 유부녀가 격정을 이기지 못하면 그 후유증은 두 사람 모두에게 치명

적인 해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비디오방을 나오면서 웨슬리 스나입스와 나스타

샤 킨스키가 주연한 영화 ‘One Night Stand’를 생각했다. 나는 마치 흑기사의 애인

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팔짱을 끼면서 마치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연인처럼 행

동했다. 주변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다른 씨내림이 어떤지 몹시 궁금했다. 컴컴하고 은밀한 공간은 삼십 중반의

체통과 신분, 이성을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산

봉우리로 구름이 몰려갔다 다시 내려오기를 수십 번 반복 되면서 우리는 원초적

본능에 충실했다. 땀으로 범벅 된 흑기사는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된 것처럼 보였다.


  “우린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예요. 아셨죠?”
  숨을 몰아쉬던 흑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섬세하고 정교한, 그러면서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손놀림은 우륵이나 왕산악 보다 더 절묘하거나 최소

한 입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나는 내 몸 곳곳에 분화구속 용암처럼 끓고 있

는 쾌락의 욕망을 음미하며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ABO식

에 대하여 계산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본연의 임무는 씨를 잘 뿌리고 잘 가꾸는 일 아닌가? 나는 상상 임신이

아닌 진짜 임신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다른 씨앗이 뿌려져 잉태가 되었다면 나는

다른 여염집 아낙들처럼 얼마든지 수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고, 즉시

내 중요 부분에 마취와 동시에 날카로운 메스에 의해 억울한 생명이 태어나 보지

도 못하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그 흔한 씨들이 함부로 나에게 뿌려져서는 안 된다고 늘 자신을 경계해 오던 나는

오늘 잠시의 방황 속에서 남자들의 원초적 본성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에 대한 열정도 서서히 식어 갔고 아직은 아이와 인연이 없

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라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어 독

서 등 정서활동에 주력하였다. 남편은 내가 늦은 시간까지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감상하면 수면에 방해가 된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또 TV를 함께 시청하지 않는

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남편과 잠시 수면 아래로 숨은 아이문제와 서로 다른 취미생활로 자주 부딪히

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눈물은 마음을 치유하는 묘약이었고 스스로를 지탱하고

견디게 하는 마음의 보석이었다. 늘 밝은 모습이라 자부했던 나의 모습을 보고 

타인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둡다고 했다.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어두운 나의 얼굴

은 그대로 결혼생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내가 우울증까지 왔으리라는 상상을 못했을 것이지만 나는 지극히 정

상적이고 평범한 삶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 했다. 독서를 통해 그 갈증을 채웠

고, 산행은 정신 건강에 큰 힘이 되었다. 사색과 명상은 나를 차츰 우울증에서 벗

어나 게 해주었고, 몸의 컨디션도 차차 좋아지게 되었다. 아내로서 본분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에 남편은 나를 조금씩 신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불현듯 이기심과 남편에 대한 원망과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나 자신

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나에게 산행과 독서 음악 감상 그리고 야간운동을 하며

사색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망가져 있었을 것이다. 나를 포기하

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게 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정서

생활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독신주와 저 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홀가분하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면 어떠냐고 강변하는 사람들의 말

은 지나친 이기적인 발로가 아닐까 싶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서 느끼는 잔

잔한 기쁨과 행복이 여자에게 있어 또 다른 인생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평생 가꿔가는 즐거움 또한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 아닐까 싶다.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형편에 나는 어쩌면 시대의 대세를 거

스르며 살아가는 얌체 같은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억지로 안 되는 임신에 대한 욕

구를 상상 임신이나 잠깐의 외도가 달래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어제 오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퇴근 후에 시간 좀 내 줘요.”
  “무슨 일 있어?”
  “아뇨, 어디 갈 데가 있어서요.”


  “......” 

  나는 남편과 함께 애완견 센터를 찾았다.


  “어머나, 오랜만에 오셨네요? 유니 잘 있죠?” 오랜만에 찾은 애완견 센터 사

장은 우리를 반겨주었다.


  “네에, 잘 있어요. 오늘 유니에게 남자 친구를 구해 주려고 왔어요.”
  그녀는 참으로 잘한 결단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동안 늘 혼자서 집을 지

키던 유니에게 우리 부부는 최고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새로운 파트너를 맞은

유니는 첫 날부터 남자 친구에게 아양을 떨면서 전에 못 보던 묘기를 보여주

기도 했다.


  “진작 남자 친구를 구해 줄걸 그랬어.”
  유니의 재롱에 입이 양귀에 걸린 남편이 덩달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짝이 있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 같다. 유니의 남자 친구

가 집에 들어오고부터 집안은 활기를 되찾았다. 비 오는 날을 빼고 매일 아침

6시면 남편은 유니와 유섭이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어떤 날은 유니를 내가 데리고 유섭이를 남편이 데리고 달리기도 하고 아침 체

조도 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유섭이는 유니와 금슬이 좋아 잠시도 떨어

지지 않으려고 했다. 


 흑기사로부터 꼭 한번만 만나달라는 이메일이 몇 번 왔지만 나는 답장도 하지

않고 묵살해 버렸다. 남자가 여인네 하고 한 약속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지 욕망의 노예가 되어 편지를 보냈다는 것에 나는 그 남자의 허약한 의지를 탓

했다. 아이가 없는 허허로움을 달래보려고 남편과 늦은 밤, 집 주변의 잘 꾸며진

호프집을 찾거나 강변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곤 했다.


 또한 매일 밤은 아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남편으로부터 많은 씨를 받아내고

그 씨가 싹을 틔우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담담한 심정으로 정성을 다했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여보, 유니 엄마. 저기 좀 봐”
  “어디?” 현관문 앞에서 유니와 유섭이가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기

쁨에 앞서 유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제 씨 뿌리는 데는 밤낮이 없나보구나.’
나는 혼자서 중얼 거렸다. 씨를 뿌리려고 온 정성을 다 바치는 유섭이의 행위는 

아름다우면서도 눈물겨워 보였다.


  ‘바보, 뿌리면 뭐해. 싹도 트지 않을 텐데.......’
  "으윽-"
  "유니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뇨,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헛구역질이 나서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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